어릴 적 내가 살던 집 뒷산에는 군부대가 있었다. 그렇기에 어릴 때부터 군인들을 심심찮게 만나곤 했는데, 하필 산쪽으로 사격장을 만들어 둬 총 쏘는 소리로 동네를 시끄럽게 만들기도 했다.(그리고 입대 후, 우연의 일치인지 그 부대로 배치되어 실제로 그 사격장에서 사격을 했었다.) 그 시절 부모님은 소총 쏘는 소리를 들으며 마치 '콩 볶는 소리'와 같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사격장에서 집까지의 거리는 직선 거리로 약 300미터. 그 사이에 완만한 산 하나를 놓은 상태에서 들리는 소총 소리는 콩 볶는 소리와 비슷했다. 이후 20대 초반이 되어 실제로 총을 쏘아 보았다. 그리고 그 때 처음 가까운 거리에서 들은 총소리는 내가 알고 있던 총소리와는 전혀 달랐다. 다 타버린 장약의 매운 향기는 미처 맡을 새도 없었다. 그만큼 총소리는 강렬했고, 파괴적인 느낌을 주었다.

▲ 레드덕의 장규식 사운드 디렉터


NDC2014에서 들을 수 있었던 장규식 사운드 디렉터의 강연은 그 시절을 생각나게끔 했다. 그는 온라인 FPS게임인 '아바(A.V.A)'의 사운드 디렉터다. 실제로 엄청나게 많은 총소리를 들어보았을 것이고, 또한 직접 데이터화해 다뤄왔을 것이다. 학생 참관이 허용되지 않아 여유로운 분위기에서 시작된 강연의 내용은, FPS에서 사용되는 총소리에 대한 오해와 진실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어째서 게임에서는 우리가 듣는 실제 총소리가 나지 않을까? 실제 총소리를 정확하게 게임으로 옮길 수는 없는걸까?



◈ 사운드 디렉터에게 날아오는 클레임. 어떤 점들이 있을까?


장규식 디렉터는 사운드 디렉터로 일하며 겪는 고충을 논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운드 디렉터에게 요구되는 사항은 많았다. "총소리를 더 크게 하라.", "이러이러한 총기 소리를 조금 더 강렬하게 해달라.", 혹은 "이런 무기의 사운드를 조금 더 신경써라."같은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었다.

하지만 장규식 디렉터는 이런 요구 사항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자세를 취했다. "총소리를 크게 해달라"는 요구에 대해 장규식 디렉터는 이렇게 말했다. "얼마나 키워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데시벨이란 소음의 기준이 있음에도, 이런 요구를 할 때 사람들은 데시벨 기준의 오더를 말하지 않는다. 소리의 크고 작음은 개개인의 기준이기 때문에 정확한 기준이 설 수 없다."

▲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일들


이어 특정한 총기의 사운드나, 특정 무기의 사운드를 조금 더 부각시켜달라는 요구를 두고 장규식 디렉터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모든 이들에게 그들이 쓰는 총기는 단 하나, 혹은 두개뿐인 무기다. 더 특별하고 특별하지 않은 무기가 어디 있겠는가? 모든 무기는 다 특별해야 한다."

논리적으로 정확하게 맞는 이야기였다. 장규식 디렉터가 하는 말의 골자는 이것이었다. "모든 사람은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있지 않다. 사람은 다양하다."



◈ "왜 총소리가 내가 듣던 소리와 다른가요?"



장규식 디렉터가 말한 가장 난감한 문의사항은 '실제 총소리와 게임 내 소리간의 괴리였다. 이에 대해 장규식 디렉터는 소리라는 정보의 판단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앞서 말했듯, 그의 이야기 저변에는 '모든 사람은 다 차이가 있다.'라는 바탕이 깔려 있었다.

한 사람이 판단하게 되는 총소리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는 굉장히 다양하다. 일단 소리의 근원과 청각 장치 사이의 거리. 쉽게 말해 얼마나 멀리서 총을 쏘는가이다. 그리고 기후적 요소도 개입된다. 당시의 습도와 날씨, 공기가 흡수하는 정도. 모두가 소리에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차이는 '귀'라는 감각기관의 차이점에서 온다.

인간의 귀는 조금씩 다르다. 지문만큼은 아닐지라도 같은 형상의 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다 다르게 생겼다. 귓바퀴의 생김새는 소리라는 정보를 판단하는데 있어 영향을 준다. 내부로 들어가면 더 복잡하다. 귓구멍의 크기와 구조, 그리고 더 들어가 울림판 역할을 해주는 달팽이관도 사람마다 개개인의 차이가 있다.

▲ 사람들의 '귀'는 다들 제각각이다.


결국 모든 사람은 같은 소리를 미묘할 정도로 다르게 듣는다. 언뜻 들으면 소름이 끼칠 수 있으나 실제로 그렇다. 우리는 각각 자신에게 익숙한 소리에 맞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소리에 대한 개개인의 기억과 경험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군대에서 들어왔던 총소리를 이야기하자면, 귀가 큰 어떤 이는 비오는 날 탄피주머니를 나눠주며 들은 총소리가, 또 귀가 작은 어떤 이는 건조한 날 안전교육을 받으며 들었던 총소리가 뇌리에 남아 있다는 것이다.

▲ 선 하나하나가 개개인이 들은 소리이다. 비슷하지만 전부 다르다


더불어 또다른 근본적인 문제도 있다. "게임 내에서 듣는 총소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제로 들어보지 못한 소리"라는 점이다. 이 점은 바로 게임 내에 존재하는 총기의 종류와 현실에서 듣게 되는 총기간의 차이점에서 기인된다.

실제로 정상적으로 군생활을 하며 듣는 총소리는 대부분이 K-2소총의 소리다. K-1기관단총을 쓰는 병과도 존재하고, 실제로 그 발사장면을 많이 볼 수 있지만, K-2와 K-1의 격발기관 메커니즘은 기본적으로 굉장히 유사하기 때문에 큰 차이가 없다. 그 외에는 M16이나 카빈 소총 정도일까? 군생활을 조금 특별하게 했거나, 전차병 출신이라면 콜트 M1911이나 K-5권총의 격발음을 들어 보았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게임 내에 구현되어 있는 총기는 너무나도 다양하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평생 보고 살 일이 없는 불펍식 소총이나 9mm 파라블럼 총탄을 사용하는 기관단총, 흔히 보는 5.56mm 탄종 외 7.62mm 탄을 사용하는 총기 등, 가짓수가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게다가 12.7mm를 쓰는 총기들까지 포함하면... 실제로 우리가 살면서 듣는 총소리는 굉장히 한정되어 있다.

▲ 약실의 노출 유무에 따라서도 소리는 달라진다.


물론 이러한 근본적 이유 외에 다른 이유도 존재한다. 다름아닌, 게임을 즐길 때 사용하는 사운드 하드웨어의 차이다. 사운드 재생장치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게임을 즐길 때 가장 많이 사용되는 장치는 이어폰과 헤드폰이다. 소리의 방향성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 FPS게이머들이 가장 많이 사용되는 재생 장치가 저 두 가지다.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재생 장치가 커질 수록 재생 가능한 주파수 대역폭도 넓어진다. 총기 소리는 굉장히 다양한 대역폭에 걸쳐 이루어져 있다. 이어폰으로는 절대 실제 총소리를 그대로 들을 수 없다는 것. 헤드폰이나 스피커 역시 인간이 들을 수 있는 대역폭 이상의 소리를 소화할 수 없기에 완벽하게 같은 소리를 재생할 수는 없다.

▲ 좌측부터 흰색 부분이 LCD TV와 무선 스피커의 주파수 재생 영역




◈ 사운드 디렉터의 숙제 '사운드 리프로덕션'


장규식 디렉터의 논조는 '인간의 다양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각기 다른 귀를 가지고, 다른 경험을 했고, 다른 기억을 쌓으며 살아온 사람들이 기억하는 총소리가 모두 동일할 수는 없는 법이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소리를 다루는 과정에서도 아쉬운 점은 존재한다.

어떤 소리를 정확하게 담아내는 것을 '사운드 리프로덕션'이라고 부른다. 말만 들어도 어려워 보이고, 실제로도 엄청나게 어려운 기술이다. 상기했던 바이지만, 소리는 굉장히 복합적인 요소들이 모여 구성된다. 이 과정을 녹음 장치에 제대로 담는 것도 어렵거니와, 각종 문제들로 인해 100% 소리를 복원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정확한 사운드 리프로덕션은 모든 사운드 디렉터들의 숙제일 수 밖에
없다.

▲ 게임 내에서 표현할 수 있는 요소는 한계가 있다.




◈ 무엇이 올바른 소리인가?


FPS 게임에서 사운드는 굉장히 중요하게 작용한다. 걸작 FPS인 '콜 오브 듀티' 시리즈가 처음 주목을 받았던 이유도 다른 것 보다 실감나는 사운드가 한몫 했었으니 말이다. 확실히 살면서 들었던 총소리와 게임 내에서 듣는 총소리는 다르다. 아니 같을 수 없다는 것이 맞겠다. 실제 그 총소리를 FPS 게임의 입장에서 그대로 표현하자면 총을 쏠 때마다 귀청이 뜯겨나가는 경험을 할 테니 말이다.

▲ 10미터 거리에서의 발사시 소리 크기


장규식 디렉터가 보여준 영상 중 흥미로운 영상이 있었다. 어떤 소년이 권총을 발사한다. 총을 쏠 때 마다 둔탁한 소리가 난다. 강연장 내 모든 이들은 조금 어색함은 있지만, 총소리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 소리는 옆에 앉아있던 소년이 슬리퍼로 바닥을 때리는 소리였다. 사람은 상황이 갖춰져 있으면, 유사한 소리를 듣고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사운드 디렉터의 역할은 생생한 소리를 만드는 것이다. 같은 소리는 아닐지언정, 그 상황을 가장 잘 나타내 줄 수 있는 소리를 만드는 것이다. 이제 다시 생각해 볼 때다. 군생활을 한 사람이라면 모두 총 소리는 들어 보았을 것이다. 다시 기억을 되짚어보자. 우리가 군생활 중 무심결에 들어왔던 그 수천발의 총소리도 들을 때 마다 조금씩 다르게 들리지 않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