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엘게임즈 송재경 대표

새로운 시대의 MMORPG는 어떻게 될까?

이 질문을 던진다면 아마, 도저히 셀 수 없을만큼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올 것이다. 바꿔 말하면, 그 어떤 사람이라도 쉽게 의견을 내놓기 힘든 주제이기도 하다.

기자가 그동안 봐왔던 송재경 대표는 늘 그랬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기를 꺼리는 부분일지라도 나서서 솔직한 의견을 전했고, 논쟁이 있을 법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자신의 소신을 밝혀왔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그라면, 뭔가 실마리가 될만한 이야기 하나라도 던져주지 않을까. 완벽하지는 않을지라도, 쉽사리 이야기하기를 꺼려하는 주제에 대한 과감한 한 마디.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의 이야기가 정답이건 아니건, 그것은 그 다음에 생각할 문제다.

"1992년 즈음이었나. 텍스트 머드를 처음 시작했습니다. 1994년 쯤에 '쥬라기 공원'이라는 텍스트 머드를 '조금' 도와주는 정도로 함께 했죠. 그 시절 생각하기로, 글자로만 하던 게임에는 불편한 점이 많은데, 이걸 그림으로 나오면 좋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송재경 대표의 이름이 거론된 작품 중 하나인 '바람의 나라'가 그렇게 시작됐다. 이후 그는 바람의 나라를 개발하던 중 하차했으며, '리니지'에 이르러 하나의 게임을 계속해서 만들게 됐다. '수많은 사람이 무리를 이루어 즐기는 전투가 엔드 콘텐츠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리니지의 공성전으로 실현됐다.

다음으로 그의 이름이 내걸린 작품 '아키에이지'. 송재경 대표는 그동안 '해보고 싶었지만 각종 제약이 있어 못해봤던 것을 모두 실현으로 옮겼던 프로젝트'라고 말했다. 가상 속 또 하나의 세계로서의 느낌을 살리고 싶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수많은 사람이 무리를 이루어 즐기는 엔드 콘텐츠, '리니지' 공성전.

MMORPG의 체크 포인트. 그리고 다음 한 걸음. 송재경 대표가 오늘 말하고자 한 핵심이다. 그는 "MMORPG란, 인류 문화 기술의 총집합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인터넷, 컴퓨터를 기반에 두고 3D 그래픽이나 첨단 사운드 등 수많은 요소들이 복합된 결과물이라는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짚어오던 게임의 핵심이다.

그 중에서도 MMORPG는 '함께 하는 세상과 사람들 사이의 즐거움'을 추구한다. 수백 수천의 사람, 많게는 수만 명의 사람이 한데 어울려 같은 세상을 공유하는 것은 MMORPG만이 제공할 수 있는 고유한 감동이라는 것이 송 대표의 설명이다.

통상적으로 MMORPG는 '끝'이 존재하지 않는다. 바뀌면 바뀌는대로 시간선은 계속해서 흘러간다. 그 안에서 유저들은 사냥을 하고 레벨업을 하며, 다른 사람들과 만나 협동 콘텐츠를 즐긴다. 이런 패턴은 MMORPG를 플레이하는 내내 이어진다.

계속되는 같은 패턴의 MMORPG. 여기에 '엔딩'이 있다면 어떨까?

"1995년 '바람의 나라'를 만들던 시절은 사실 MMORPG라는 장르명도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은 시기였습니다. 그때 누군가 사무실을 방문해, 제게 질문을 던진 적이 있죠. 그래서 이 게임은 끝이 뭐에요? 라고.

그때 저는 '이건 엔딩이 없는데요. 그대로 그냥 지속되는 겁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거의 20년 정도가 지난 지금, '엔딩'이 있는 MMORPG를 만들게 됐네요.


송재경 대표는 "MMORPG에 엔딩이 있다면 더 많은 즐거움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가 말하는 엔딩은 통상적인 패키지 게임의 엔딩과는 다르다. 모든 것이 말 그대로 '끝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포인트. 그리고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더 다양한 인생을 경험할 수 있게 하는 것. 송 대표가 말하는 '온라인 MMO의 엔딩'이다.

그러한 생각을 할 때 '문명' IP와의 인연이 닿아 출발한 것이 엑스엘게임즈의 신작 '문명 온라인'이다.

인류의 역사를 바꾸는, 그 중심에 설 수 있는 경험. 자신의 선택으로 여러 사람과 함께 역사를 재창조하는 경험. '문명 온라인'이 지향하는 유저 경험의 핵심이다. 이를 테면 이렇다. 피라미드가 중국에 있었다면. 혹은 만리장성이 로마에 있었다면. 이런 단순한 의문에서 출발한 '변형된 역사'로부터 얻는 경험을 담았다는 것.


현재 계획 중인 세션 하나의 길이는 일주일. (CBT 버전의 세션 길이는 별도)
향후 개발 과정에서 바뀔 수도 있다고.

패키지 버전 '문명'은 소위 '타임머신'으로 불리곤 했다. '한 턴만 더, 한 턴만 더' 하다 보면 어느새 밤을 새게 되고, 어느새 일주일이 훌쩍 지나가게 된다는 것. '문명 온라인'에서는 MMO의 특성상 턴 방식을 구현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한 스킬만 더, 한 직업만 더' 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흘러갈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는 것이 송재경 대표가 말하는 기획 의도다.

세션 내의 시간이 흘러 강철이 열리면 중갑기사를, 화약을 개발하면 화승총병을 만들 수 있는 구조. 어느 테크를 먼저 개방할 것인가를 문명 내 구성원들이 결정하게 되는 것 또한 문명 온라인의 핵심 재미 중 하나다.

원작과는 다른 의미에서 '타임머신'을 제공하고 싶다는 것이 송재경 대표의 설명.

시작, 그리고 끝. 처음부터 다시 시작. 이런 식으로 세션이 반복되어도 질리지 않고 계속할 수 있을까? 실제로 '문명 온라인'을 개발하며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이라고 한다.

이에 송재경 대표는 "기존과는 달리 정해진 경로를 따라 플레이하는 것이 아니면, 세션을 반복하는 플레이가 충분히 새로운 경험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매번 다른 유저들이 모여 서로 다른 의지를 가지고 선택을 이어나가고, 그 선택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무수히 많은 형태의 플레이. 개발사가 만들어 낸 규칙과 틀 안에서 유저들 스스로 콘텐츠를 직접 만들어나가는 구조가 바로 '문명 온라인'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표점이다.

"물론 이것이 꼭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다만, 앞으로 MMORPG가 나아갈 수 있는 여러 방향 중 한 가지가 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함께 플레이할 수 있다는 MMORPG의 기본적인 특성만 유지한다면, 이것저것 새로운 것들은 얼마든지 시도해봐도 좋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