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돌아본다는 것은 때때로 남다른 의미를 가진다.

'하루가 다르가 변한다'는 말이 어울리는 현대사회. 최신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도 물론 필요한 일이고 중요하다. 하지만 그렇게 치열하게 앞만 보고 살다보면 언젠가 한 번씩 회의가 들고 주춤하게 될 때가 있다.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보는 건 바로 그럴 때 도움이 되곤 한다.

이제는 국내 게임업계의 선도업체로 꼽는 대기업 넥슨. 하지만 세상만사가 그렇듯, 넥슨 역시 처음부터 컸던 것은 아니다. 넥슨의 초창기. 지금에 비하면 너무도 작았던, 스타트업이라 할 수 있던 시절. 그때를 증언해줄 수 있는 사람이 강단에 섰다.

김상범 넥슨 전(前) 이사

30여 년을 게임과 함께 살았으며, 넥슨에서만 십수 년을 함께한 김상범 전(前) 이사. 그는 약간 쉰 듯하지만 걸걸한 목소리와 꾸밈 없는 말투로 '초창기 그 시절' 온라인 게임 개발 스토리를 풀어놓았다. 기억 어딘가 한구석에 겨우 들어있을 법한 장면들과 함께 약 한 시간 가량의 과거여행이 시작됐다.

"어릴 때부터 정말 게임만 만들었습니다. 각종 경진대회에 나갔었고, 거기서 송재경 대표를 만난 적도 있었죠. 대학 때도 당연히 전산학과를 갔습니다. 기숙사 생활을 했죠. 당시 카이스트에 인터넷이 있었는데요. 그걸 연구 목적으로 썼으면 참 좋았겠지만... 저는 한국에 출시되지 않은 슈퍼 패미콤 게임들을 모으는데 썼습니다.

제가 만든 게임들이 친구들 사이에서는 꽤 인기가 있었어요. 여기저기 나눠주다보니 학교 컴퓨터 곳곳에 그 게임들이 깔리게 되고, 학교 관리실 아저씨는 그거 찾아서 지우기 바쁘고... 저는 안 깔았습니다. 그런데 하도 많이 퍼져있다보니 다른 사람들이 자꾸 깔아놓더라고요."


그는 카이스트에서 컴퓨터 알고리즘으로 대학원 과정을 밟았다. 당시 국가 정책에 의해 서울에 있던 과학기술원이 대전으로 이전된 첫 해였다.

"인터넷이 잘 갖춰져 있다보니 다들 모여서 딴짓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송재경 대표 같은 경우는 Xterm을 한글화하기도 했고요. 웹툰이 없던 시절이라 다함께 모여 만화책을 보기도 했습니다. 신일숙 씨의 리니지 같은 만화를 봤던 기억이 납니다."

추억 한구석 어딘가에 있을 법한 이름들.
그에게는 역사의 시작이나 다름 없었다.

김상범 전 이사가 박사 과정에 있던 시절, 6년 간의 룸메이트였던 송재경 대표가 회사 생활을 하기 위해 학교를 떠났다. 김정주 회장 역시 창업을 하겠다며 떠났다. 그 당시 김 전 이사는 "그들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열혈 개발자로 살아왔던 그는 뒤늦게나마 넥슨 합류를 선택하게 된다.

"공부는 꽤 했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점수 잘 받는 방법'을 알았던 거지만요. 어쨌든 주위에서 보기에는 공부 잘하고 주변 기대를 많이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연히 극심한 반대에 부딪쳤죠. 삼성 같은 대기업 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친구들 열댓 명이 모여서 라면 먹으면서 게임 만들겠다고 하니, 그럴 수밖에 없겠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30년 동안 정말 꾸준히 '덕질하던' 사람이었는데 당연한 선택이었죠. 학교에서 유닉스 같은 것들 가지고 매일 밤새가며 놀았으니까요.

게임을 만든다는 건 유저들을 대상으로 심시티를 하는 기분이었습니다. 다만, 심시티는 한 세션 내내 열심히 해도 남는 것이 없지만, 게임은 만들면 사람들로부터 반응이 나오고 때로는 돈이 되기도 한다는 점이 다르죠.

무엇보다 너무나 좋아서 게임 만들기를 도무지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라! 흔히 볼 수 있는 스토리 흐름이지만,
그만큼 흡입력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회사가 정말 작았던 시절. 김상범 전 이사는 그 시절만의 장점이 분명히 있었다고 말한다. 각각의 프로젝트마다 팀이 나눠져 있긴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른 팀의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고 있을 정도. 게다가 자기가 맡은 일을 열심히 하다가 두세 명 정도가 마음이 맞으면 사내에서 즉석 스핀오프 팀이 꾸려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그야말로 굉장히 자유로운 분위기. 김 전 이사는 "그런 자유로운 분위기 안에서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무척 많이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작은 회사만의 DNA라 할 수 있겠다"고 이야기했다.

"서로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서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시간과 장소. 우리나라에서는 아마 담배타임이나 커피타임이 아닐까 합니다. 요즘은 담배를 피우더라도 대개 직군별로 따로 모이곤 하더라고요.

회사가 작던 시절, 그러니까 선릉역 쪽에 있던 시절이었는데요. 그때는 그런 구분이 없었습니다. '크레이지 아케이드' 전화 상담을 맡은 직원이 '형하고 동생하고 컴퓨터 놓고 맨날 다툰다'는 내용으로 전화가 온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옆에서 듣던 프로그래머가 '키보드를 두 쪽으로 구분해서 두 명이 같이 게임할 수 있게 하면 되지 않을까'라고 하니, 디자이너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또 다른 프로그래머가 '될 것 같은데'... 그래서 해봤더니 되더라고요.

동접이 거의 2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물론 PC방 아저씨는 싫어했을 겁니다. 두 명이 오면 두 명치 벌이가 되야 하는데 컴퓨터 하나 가지고 둘이 하니까 당연한 일이죠. 회사가 작았던 시절에는 이런 이상한 혁신? 그런 것들이 가능했습니다."


이상한(?) 혁신을 앞세워 넥슨은 최근까지 성장해왔다

남들이 잘 하지 않던 것들을 시도하는 움직임. 그렇게 그들은 비교적 최근까지 성장을 거듭해왔다. 그리고 '모바일'이라는 이름의 파도를 만나면서 위기라 부를 수 있는 시기에 봉착하게 된다. PC온라인 게임을 주로 개발해오던 다른 회사들도 적응하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90년대에 '바람의 나라' 첫 버전을 만들 때만 해도, 그 시기에 나오던 '파이널판타지' 시리즈를 생각해보면 퀄리티 차이가 엄청납니다. 스퀘어에닉스 쪽에서도 10년 전 수준이라는 식으로 퀄리티 면에서 부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했었죠.

하지만 온라인 게임은 전혀 다른 사용자 경험을 제공합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그걸 알죠. 처음 만들던 시기에야 겉으로 보이는 퀄리티를 기준으로 무시당했을지언정, 다른 UX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으로 가능성을 보여왔습니다.

온라인 게임은 그렇게 콘솔 게임 못지 않은 비중으로 성장했습니다. 모바일 역시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요. PC온라인과는 전혀 다른 사용자 경험을 제공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 말이죠."


2, 3년 전부터 말 그대로 '급속 성장'을 이뤄온 모바일 시장

그가 말하는 '바람의 나라' 초창기는 온갖 스토리가 다 담겨 있었다. 돈 복사, 서버 다운은 당연한 일이었다. 새벽에 전화와서 서버에 이상 생겼다고 하면 바로 일어나서 수정하고, 서버 재부팅해서 문제가 없으면 다시 잠드는 것이 일상다반사. 그뿐만이 아니다. 서버실 과열로 역삼동 전체가 정전된 적도 있었고, 엄청난 폭우로 침수된 적도 있었다.

"쉽게 말해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은 다 겪어봤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아, 당시에 원자력 발전소는 없었으니 그건 빼고요."

OX 퀴즈에 오타를 낸 걸로 전화가 와서 비행기 타고 부산에 다녀온 적도 있고, 고객지원실 폭행 사건도 있었다. 배포용으로 제작한 마스터 CD에 바이러스가 들어가 전량 폐기한 적도 있었다. 지금이야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회사가 작았던 그 시절에는 전체가 휘청할 정도의 타격이었다고.

물론 좋은 일도 많이 있었다. 게임에서 만난 사람들끼리 커플이 되어 결혼했다는 이야기. 지금에야 종종 있는 일이지만, 당시 그런 일을 처음 겪어본 김 전 이사에게는 문화적 충격에 가까운 일이었다.

한 장애인 유저가 '바람의 나라' 안에서 자신은 슈퍼맨이 될 수 있다며 게임을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편지를 보내온 적도 있다고 한다. 김 전 이사는 "게임을 개발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너무도 감사한 일"이라며 편지 내용을 공개하기도 했다.

"게임 안에서 불우이웃돕기를 한다며 기부 모금활동을 하기도 했고,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참 좋았습니다. 몇백 명 수준의 작은 커뮤니티라서 서로를 잘 알다보니 나쁜 짓을 하는 경우도 거의 없었죠.

게임 내에서 정말 진상이었던 유저가 개발실에 항의하러 온 적이 있었는데요. 새로 개발 중인 마법이나 퀘스트 같은 걸 보여주니까 자리에 앉아서 벅찬 표정으로 시연해보고 정말 좋아하더라고요. 손을 덜덜덜 떨 정도로 말이죠.. 그렇게 친해지게 됐습니다."


여러 가지 생각들을 시도해봤고, 그 중 몇 가지는 현 업계의 표준이 되기도 했다.

'게임 아이템을 얻기 위한 위장취업'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고.

김상범 전 이사는 "돌이켜보면, 남들이 하지 않았던 것들을 하려고 했다는 게 지금의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나 한다"고 말했다. 30여 년의 세월 동안 열심히 게임을 즐기고 만들어왔지만, 그는 아직도 게임은 그리 크나큰 진화를 하지 않은 듯 보인다고 말한다.

"이 자리에 개발자 분들이 많이 오셨을 텐데, 저는 굉장히 운이 좋은 세대라고 생각합니다. 갤러그나 스페이스 인베이더 같은 저해상도 게임부터 시작해 구글 글래스와 같은 신기술들까지 두루 겪어볼 수 있는 유일한 세대니까요.

지난 30여 년 동안 인간은 그리 진화하지 않았습니다. '뉴 타입'이 나오지 않았다는 겁니다. 과거 재미있게 즐겼던 게임들이 모바일로 재현되는 것을 보면 사람의 눈으로 보고 반응하고 조작하는 능력은 과거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의미일테지요.

게임산업은 여전히 재미있고 좌충우돌로 나아간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과거에 비해 영향력이 큰 하나의 산업으로 성장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김동건 본부장인지 이은석 디렉터인지 정확하지 않지만
아무튼 넥슨 개발자가 한 이야기라고.

김상범 전 이사가 공개한 '바람의 나라' 유저의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