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푹 자고 일어났건만, 아직 찌뿌둥한 느낌이 있는 채로 스마트폰의 알람을 껐다. 비몽사몽, 드러누운 상태지만 더듬더듬 안경을 찾아서 흐린 시야를 바로 잡았다. 시야는 바로 잡았건만 눈꺼풀은 여전히 무겁다. 그러나 일단 앱스토어로 접속한다. 어젯밤에 못 봤던 게임이 지금 나왔을까 하는 마음에. 이건 기자이기 전에 그냥 개인적인 일상이다.

순위표를 눌러보고 게임순위를 정렬하려는 찰나, 이상한 게 눈에 들어왔다. "…어제 이런 걸 봤었나." 할 정도. 일단 확인해봤다. 뭐 또 그렇고 그런 게임 아니겠느냐는 생각보다는 '혹시'라는 느낌이 강했다. 림보, 배드랜드와 비슷한 느낌. 뭐, 명작은 갑자기, 무심코 찾아오는 경우도 꽤 많은 것 아니겠나.

이제 스마트폰 SD카드의 한 구석에 주차한 el.과 인사를 나눌 시간이다.




그는 감옥에서 일어났다.
창문으로 쏟아지는 햇살은 포근하면서 따스했다.
그리고 그는 부서진 감옥을 나섰다.
그를 맞이한 건 낭떠러지. 그는 감옥외에 자신이 갈 곳은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떠올렸다.
포근한 바람이 불었다. 그리고 그의 앞에는 우산이 내려섰다.
우산을 움켜잡았다.
그는 이제 어디든 갈 수 있었다.

잊혀진 감옥에서 깨어난 그가 이제 목적을 찾아 날아간다.


어우우우…소-오름. 역시 이런 건 취향에 맞지 않는다. 제법 쌀쌀해진 날씨와 천고마비의 계절이 말라비틀어진 우뇌의 활동을 좀 자극했나 보다. 아무튼 게임을 실행하기 전에 대체 무슨 게임인가 싶어서 다운로드를 실행하며 리뷰들을 살펴봤다. 대부분이 칭찬 일색. "이게 무료게임이라니?"라는 반응들 뿐.

다른 게임이었으면 피식하고 웃어넘겼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일단 접어두기로 했다. 게임을 해봐야 아는 것 아닌가. 어젯밤에 깜빡하고 Wi-Fi로 해놓지 않아서 이미 데이터는 나갔다.

▲ 조작법은 친절히 잘 가르쳐준다.

아마, 간단한 조작방식으로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는 퍼즐 형식의 어드벤쳐 게임이 아닐까 싶었다. 예상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단지 el.은 사람의 감성을 다른 게임들보다 많이 자극한다는 점과 퍼즐적인 요소가 거의 없다는 점을 빼면.

조작은 간단하다. 화면을 양분했을 때, 오른쪽 화면을 꾹 누르면 우산이 펼쳐지며 상승하고, 손을 떼면 내려간다. 좌측화면을 쓱쓱 긁으면 앞, 뒤로 이동할 수 있다. 이걸로 조작 설명은 끝. 이제 우산과 바람에 몸을 맡기고 여행을 시작했다. 아 참, 패드보다는 폰이 좀 더 조작에 편리하다.

내 여행을 도와주는 건 거부감 없이 귀에 녹아드는 부드러운 피아노의 선율. 매 스테이지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BGM은 편안하고 아늑한 여행을 보장한다. 그리고 대사 하나 없지만,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스토리와 BGM이 어우러지면 마침내 메말랐던 감성이 촉촉히 젖어오기 시작한다.



바쁜 일상에 치여 감성에 메말라가는 현대인에게 좋은 자극이 되는 게임이다. 그래, 여기까지는 정말 좋았다.

조금 불편한 조작, 이건 익숙해지면 그만이다. 그러나 정작 아쉬운 건 따로 있었다. 플레이 도중에 이건 추천해봐도 되겠다 싶어서 해보라고 링크를 던져줬더니 "이걸 하던 중에 이걸 하라고 귓이 오네. 소-오름"이라고 했던 동료 기자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단조롭다.'

게임의 난이도는 노멀, 하드 두 개다. 그리고 중간에 등장하는 깃털로 HP를 채우면서 꾸준히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면 된다. 새와 돌, 맥주병(으로 추정되는 물체)과 헬기, 비행기, 건물, 벌레 등 여행을 방해하는 모든 것들이 처음에는 게임 분위기에 익숙해 잘 보이지 않지만, 금방 익숙해지니 괜찮다.

▲ 소녀와,

▲ 아기와 함께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 헬기, 새, 맥주병 등 다양한 장애물이 여정을 방해한다.


장애물의 타이밍에만 맞춰 피하는 것이 끝. 하드 모드로 하면 장애물의 데미지가 좀 더 강해서 신중히 플레이해야 한다는 점과 좀 더 정확한 타이밍을 요구한다는 것 말고는 어려움이 없다. 차라리 퍼즐 요소를 더 넣었으면 어땠을까. 비슷한 느낌을 주는 게임들은 뭔가 남들과 다른 하나를 더 첨가해 명작이 됐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콕 찝어 말하긴 어렵다. 퍼즐로 해결한 게임도 있고 기하학과 착시라는 시도를 해본 게임도 있고, 스토리에 더욱 열을 들이거나 한층 더 깊은 곳에서 감성을 울리게 하는 게임도 있었으니까. el.도 뭔가 하나만 더 있었다면 명작의 반열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을거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너무나 아쉬운 작품이지만, 만족한다. el.은 삶에 찌든 현대인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새로운 게임이기에 충분히 추천할 만한 작품이다. 예전의 몇몇 작품들처럼 플레이하며 어안이 벙벙해질 정도의 명작은 아니지만, 나름 즐겨볼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최고의 강점은 무료라는 점. 누구나 쉽게 한번 쯤 스마트폰에 깔아볼 수 있다는 건 엄청난 메리트 아닌가. 게임내에 추가로 결제하는 인앱결제 그런거 없다. 정말 무료 게임이니 편안하게 즐겨보자.

감성에 젖어보고 싶은 게이머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어차피 가을이잖나. 감성이 충만히 젖어 첫사랑에 빠진 사춘기 마냥 중2병스러운 대사를 해도 이상하게 쳐다볼 사람 없다. 아, "크크큭, 내 안의 흑염룡이 어쩌고저쩌고…"와 같은 중2병은…위험할 것 같다.




※ 10월 8일 업데이트로 신규 난이도 'Easy'모드와 음악 감상 모드가 추가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