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에 속아 소중한 것을 놓치지 마세요."

누가 처음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만드는 말이다. 서툴렀던 것에 편안함이 더해지면 익숙함이 되고, 익숙했던 것에 불편함이 더해지면 새로움을 찾아 나서는 게 인간이라고 한다. 특히 타인과 상호 작용할 때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한다.

인간관계에서 일상을 돌이켜보면 그저 놀랄 뿐이다. 어제와 엊그제를 구별할 수 없다는 사실에, 내가 새긴 발자취를 확인할 틈도 없이 눈 깜짝할 사이에 바람에 날려 어디론가 사라지고 만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익숙함에 속게 된다.

언제부터인가 게임도 익숙함이라는 미명하에 소중한 '재미'를 등한시하기 시작했다. 익숙한 시스템으로, 익숙한 전투방식으로, 익숙한 이야기로 익숙한 결제를 유도하는 것. '헬로히어로'의 성공 이후 공식처럼 자리 잡힌 수집과 성장은 대중성이라는 장점을 가진 동시에 식상한 먹거리라는 평가를 받기에 이르렀다. 어쩌면 익숙함은 전에 했던 실수를 다시 반복한다는 말의 다른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샐러드볼'이 개발한 '돌격전차'도 수집과 성장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익숙함에 기댄 구태의연함은 아니다. 따로 떼어놓으면 익숙한 요소를 샐러드처럼 한데 모아 개성 있게 표현했다. 유저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재미'를 전달하기 위해 게임플레이와 성장 구조를 다르게 설정했다. 이질적인 익숙함이다. 새로움에 편안함을 더했다.

▲ 샐러드볼의 한인섭 이사(좌), 서동현 대표(우)
*인터뷰는 서동현 대표와 진행했다.


게이머들에게 익숙지 않은 개발사 '샐러드볼 크리에이티브(이하 샐러드볼)'. 창립된 지 채 2년이 되지 않은 회사다. 외형만 보면 모바일 게임 열풍에 편승해 우후죽순 생긴 스타트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 내부는 좀 다르다. 개발진 면면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디렉터인 서동현 대표는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를 나와 넥슨의 카트라이더 기획팀장, 버블파이터의 디렉터를 역임했으며 지노게임즈의 '데빌리언' 기획 총괄을 맡았다. 서 대표 외에도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홍대 미대 출신으로 넥슨, 게임빌 등 메이저 업체에서 경험을 쌓은 멤버로 구성되어 있다.

그 때문일까? '샐러드볼' 스타트업이 흔히 겪는 자금에 대한 문제에 크게 봉착하지 않았다고 한다. 엔젤투자를 받고 한국콘텐츠진흥원 차세대 게임 제작지원 사업에 선정되기도 했으며 프로토타입이 나오지도 않은 상태에서 네시삼십삼분에서 전략 투자를 받았고 컴퍼니케이파트너스에서 10억 원의 재무 투자를 유치 받기도 했다.

"먼저, '샐러드볼'이란 이름은 여러분도 알고 있는 그 샐러드 볼이에요. 샐러드 담는 접시. 샐러드가 채소를 한데 모아놓고 적당히 소스를 올려서 요리라고 우기잖아요? 그것처럼 우리도 개성 강한 사람들을 한데 모아 의미 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어서 이름을 짓게 됐어요.

십 년이상 같이 해온 사람들과 창업했어요. 서로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기대 해야 할 것, 하지 말아야 할 것 등을 잘 알고 있어 작업하기는 편했죠. 통상 게임을 만들면서 서로의 생각이 달라지고 외부에서 돌발 상황이 발생하고 그러는데 서로 잘 알고 경험했던 부분이라 그런지 저희는 큰 문제가 없었어요.

게임빌, J2M, 엔클립스의 창업 멤버들에게 엔젤 투자를 받으면서 시작했어요. 투자 금액도 금액이지만 그분들의 노하우와 조언을 많이 들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개인적으로 시장의 흐름을 따라가는 게임을 되게 싫어하는 편이에요. 저도 그렇고 구성원도 그렇고 수집, 성장으로 대변되는 '몬스터길들이기'류 RPG는 만들기 싫었어요. 사실 네시삼십삼분에 투자받을 당시 투자가 크게 필요한 시점은 아니었는데 매우 적극적으로 나오시더라고요. 그런데도 네시삼십삼분이 '활' 이나 '회색도시'같이 시장의 흐름으로 보자면 말도 안되는 게임을 출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끌렸던 것 같아요. 피드백도 많이 주시고 무엇보다 개발과정에서 핵심 게임성을 건드리는 일이 없어서 좋았어요."




■ 1성, 2성, 3성... 별들의 전쟁은 이제 지겨워!

출시를 앞두고 막바지 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는 '돌격전차'는 사전 예약 48시간 만에 신청자가 15만 명을 돌파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전차에 올라타 독특한 패턴을 가진 보스를 무찔러야 하는 이게임은 400여 종의 캐릭터, 100여 개 이상의 스테이지, 특별한 몬스터나 대량의 재화를 얻을 수 있는 7가지 모드 등 충실한 콘텐츠로 무장했다.

특히 캐릭터들의 액티브 스킬을 이용해 밀고 당기는 몰이 사냥을 할 수 있어 학살과 액션 쾌감을 전달한다. '돌격전차'는 슈팅과 디펜스의 재미 그리고 RPG의 요소를 샐러드처럼 뒤섞어, 한 마디로 확실히 정의하기 힘든 장르를 가지고 있다.

"기획 초반에는 간단한 좌우 이동을 기반으로 공격 스킬을 사용하는 형태를 생각했었어요. 거기에 깊이 있는 보스와의 교전을 생각했죠. 상태 이상, 힐 같은 거요.

'돌격전차'에 등장하는 특정 보스들은 스킬을 사용할 때 시전 시간을 필요로 해요. 이때 유저가 제어 스킬로 보스의 스킬을 끊어야 하는 거죠. 또 도트 데미지를 주는 보스는 힐 스킬을 사용해서 상쇄한다거나 소환을 주력으로 이용하는 보스는 본체에 폭딜을 넣는다거나 하는 전략을 세워야만 해요. 스킬 구조가 맞물려서 자연스럽게 순환하는 것이 핵심이에요.



일반적으로 모바일 RPG는 온라인 RPG의 요소를 다운그레이드해서 간단하게 표현하잖아요. 전 그런것 보다 보스와 심도 있는 교전의 재미를 넣고 싶었어요. 수치상으로 강력한, 높은 별을 가진 캐릭터가 답이 아니라 보스의 패턴을 분석해 전략을 짤 수 있게요.

기존의 게임들은 전략적인 행동을 하려고 해도 무조건 별이 높은 캐릭터가 최고였어요. 일종의 모범 답안이 존재했던 거죠. 그 답안 이외의 캐릭터들은 강화할 때나 사용하는 캐릭터로 전락해 버리고요. 전 그게 싫었어요. 의미 있는 수집의 가치를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다가 각 캐릭터의 유용함을 보스전을 통해 살릴 수 있도록 한 거에요. 기존의 수직적인 성장에서 탈피해 캐릭터 사용의 폭을 확대한 거죠. 3성과 5성의 능력치는 다르지만 3성도 의미 있게 쓸 수 있도록 말이죠.

상업 게임은 특정 BM을 통해서 플레이 타임을 보장 받아야만 해요. 즉 수직 성장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1성, 2성, 3성 등 수직축에만 결제와 시간을 배치하니까 갈수록 유저들이 피곤을 호소하는 거에요. '돌격전차'는 수직축과 함께 수평축을 배치해서 질적으로 좋은 유저 경험을 선사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 의미 없는 친구 초대는 스팸일 뿐이다.

온라인 게임 개발을 오래 해온 개발자가 처음 모바일 게임 개발을 하면 생각보다 신경 쓸 거리가 많은 점에 놀라고 시장 분위기가 다른 점에 또 놀란다고 한다. 서동현 대표는 본격적으로 '돌격전차'를 개발하기 전, 공동개발 형식으로 모바일 게임을 개발하고 출시해 시장 분위기를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온라인 게임에는 생경한, 그리고 모바일 게임에서는 공식처럼 익숙하지만 구태의연한 소셜 요소를 차별화해 강점으로 내세웠다.

"2013년, 모바일 게임 개발을 마음먹었을 때 온라인 게임과 모바일 게임이 어떻게 다르냐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저는 소셜 요소라고 생각했거든요. 사람들이 친구와 같이 게임하는 것에 열광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더 발전을 할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소셜 요소는 별다른 성장이 없었어요. 카카오톡을 통해서 친구 초대하는 것은 스팸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심지어는 친구가 아닌 유령으로 가득 찬 유령방들도 생겼잖아요. 그래서 '돌격전차'는 이런 의미 없는 소셜 요소를 탈피하고자 했어요.



소셜 요소의 핵심은 실제로 알고 있는 친구와 함께 게임을 즐긴다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단순히 체력을 선물로 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게임을 즐기면 게임 내 재화를 주고받을 수 있게 했어요. 모바일 게임은 익명이 모이는 구조가 아니니까요.

그런데 이러면 친구 캐릭터가 약하면 효율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특정 친구는 외면받을 수 있다는 문제가 생겨요. 만약 제가 '돌격전차'를 재미있게 즐겨서 여자친구에게 소개를 해줬는데 여자친구가 성장치가 낮으면 짐 밖에 안되는 거잖아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랭크별로 받을 수 있는 재료를 다르게 설정했어요. 낮은 랭크의 친구와 함께하면 파워는 약해도 그 친구에게만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이 있으니까 의미 있는 친구가 될 수 있게요. 친구도 캐릭터와 마찬가지로 수직축만 보는 것이 아니라 옆으로 퍼질 수 있게 신경 썼어요.

'돌격전차'는 다른 게임보다 추가할 수 있는 친구 숫자가 적은데, 진짜 절친끼리 복작거리는 느낌을 주고 싶어서예요. 좀 더 작은 커뮤니티에서 오가는 끈적한 정이죠. 재료를 주고받는 것뿐만 아니라 함께 즐길 수 있는 소셜 레이드도 고려 중이에요."





■ 일주일 동안 개발 하지 마!

"회의를 엄청나게 많이 했어요. 내부 구성원들 성향이 무턱대고 시장의 흐름에 편승하는 것을 싫어해요. 그렇다고 인디처럼 시장을 완전히 외면하는 것도 아니고요. 반반, 딱 반반이에요. 새로움만 고집하면 너무 위축될 테고, 너무 시장성만 보고 가면 '또 카카오냐?'라는 소리를 듣게 될 테니까요. 선을 지키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일단 새로운 방식이니까 테스트를 많이 했어요. 공식 클로즈베타도 두 번 실시했고요, 4~6주 단위로 게임을 만들고 테스트하는 것을 반복했어요. FGT를 꾸준히 실시해서 외부 의견을 지속적해서 많이 받으려고 노력했어요.

또, 4~5주 개발하면 일주일은 개발을 못 하게 했어요. 사실 개발자들은 작업을 하다 보면 시야가 좁아지는 경우가 많거든요. 개발에서 손을 놓고 게임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는 거죠. 처음에는 내부에서도 불안해했죠. 스타트업은 무조건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말들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놀랍게도 개발을 할 때는 보이지 않았던 문제가 보이기 시작한 거에요.

개발 외적으로도 구성원들에게 목표를 명시화해서 발표하게 했어요. 인민재판처럼요. (웃음) 그리고 평가를 '왜 못했어?'로 몰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런 방식, 저런 방식을 같이 논의하며 더 잘할 수 있는 방향을 찾아 피드백을 서로 주고받았어요. 이런 과정이 조직과 게임 양 측면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해요.

'돌격전차'의 성장 시스템이 시장에 있는 다른 게임들과 조금 다른 이유도 이러한 분위기 때문 아닐까 싶어요. 앞서 말했듯 수평축으로 캐릭터 고유의 가치를 지키려고 한 것도 있지만, 성장 부담을 없애고 유저들이 게임의 본질인 '재미'에 집중하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죠. 만랩 강화 후 진화? 강해지기 위해서 지금 당장 약해지는 것? 이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대신 상성이나 보스 패턴 등을 공략해야 되는 것에 더 초점을 맞춘 거죠."




다른 스타트업과 다르게 서동현 대표는 조직 관리와 자금 관리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했다. 다만 게임 플레이 만드는 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했다. 언뜻 보면 익숙한 요소를 샐러드처럼 조합해 신선한 게임을 만들기 위한 산고였으리라. 산고 끝에 빛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돌격전차'. 출시를 앞둔 서 대표에게 마지막 한 마디를 부탁했다.

"드래곤 플라이트에서 스킬만 쓰는 거란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시야를 바꿔보기도 했고, 지금 밀도보다 세밀히 늘려보기도 하고 작게 해보기도 하고, 이동 속도를 바꾼다거나 컨트롤 방법을 다양화한다거나 별짓을 다 해봤어요. 전차 위에 캐릭터를 디펜스 게임처럼 배치하고 움직이는 것도 해봤을 정도로 장르를 왔다갔다 했죠

장르를 두 개 합치는 것도 힘든데 슈팅, 액션, 디펜스, RPG 요소를 모두 포옹하려니 정말 쉽지 않더라고요. (웃음) 그래도 유저들이 원하는 재미를 주기 위해 많은 시도와 고민을 했죠.

'돌격전차'는 한마디로 색다른 재미를 확실히 줄 수 있는 게임이에요. '그 나물에 그 밥'은 아니에요. 최소한 다운받고 해보고서는 '또 이거야? 너 삭제'라며 유저의 시간을 뺏는 게임은 아닌 거죠. 이 바램이 과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정말 열심히 만들었거든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