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에 앞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저는 게임 음악에 참 관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한창 시기의 질풍노도 상태의 저에게 큰 영향을 줬던 게임이 '테일즈위버'였거든요. 게임 자체는 사실 레벨업의 연속이었지만, 지루할 듯 질릴 듯하면서도 플레이를 유지할 수 있던 이유는 바로 테일즈위버의 OST였습니다. 네, 여러분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Reminiscence, Second Run 같은 곡들요.

게이머에서 기자로 전직한 지금도 제 한켠에는 게임 음악이라는, 조금은 마이너한 분야가 들어차 있습니다. 다들 게임의 그래픽을 논할 때 저는 사운드를 평가하고, 신나는 클럽 송이 흘러나올 때에도 MD에(지금은 외장 하드에) 차곡차곡 모아 뒀던 게임 OST들을 다시 꺼내 듣고 있을 정도로요.

그래서인지, 전 모바일 천하 시대인 지금 약간의 불만이 있습니다. 아, 게임에 대한 불만은 아닙니다. 기기 성능이 좋아지면서 그래픽도 콘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멋져졌고, 콸콸 터지는 국내 와이파이 환경에 힘입어 멀티 플레이 콘텐츠도 발전하며 게임성 자체는 성장 중이긴 하죠.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OST에 대한 관심과 중요도는 글쎄요, PC 온라인 시대에서도 하부 분야라 여겨지던 과거보다도 입지가 좁아진 느낌이라 많이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몇몇 게임들이 음악에 대한 애정과 신념을 버리지 않고, 오히려 게임 속에서 밖으로 끌어내려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바일 MMORPG '영웅의군단'은 자그마한 규모였지만 OST로 콘서트도 했었고, 리듬게임 '라디오해머'는 앨범 그 자체로 평가받고자 4개의 앨범을 출시하기도 했죠.

이번에 만나 본 스마일게이트 메가포트의 '큐라레: 마법도서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화면 이동이 잦고 빨라서 그렇지, 손가락을 잠깐 멈추고 소리에 집중하다 보면 명랑하면서도 풍부한, 멋진 음악들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 음악들을 작업한 작곡가들은 바로 Nauts, ESTi, TAK. '게임 음악'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죠.

큐라레 : 마법도서관의 작곡가들

Nauts(남구민)
테일즈위버의 대표 명곡 "Second Run", "Reminiscence" 등으로 유명한 작곡가.
와라!편의점, 파페포포 메모리즈 등 애니메이션 음악, 음향 감독으로도 활동 중이다.

ESTi(박진배)
많은 게임 음악에 참여했으며, 테일즈위버, DJMAX, 팡야, 사이퍼즈 등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국내뿐 아니라 Ridge Racer, THE iDOLM@STER 등 해외 게임 이력도 화려하다.

TAK(한원탁)
리듬게임 계에서 확고한 팬층을 갖고 있는 작곡가 겸 DJ. 서태지 크리스말로윈 리믹스로 경연대회 1위 수상, K-POP Culture 리믹스 등으로도 유명하다. 현재 군복무 중.

- 큐라레: 마법도서관 제작진 소개 중 발췌

뭐, 유명 작곡가 섭외 정도에 그쳤더라면 굳이 이렇게 흥분해 가며 큐라레 개발팀이 있는 스마일게이트 메가포트로 찾아가진 않았겠죠. 절 흥분하게 만든 건 '큐라레 OST 앨범 발매' 소식이었습니다. 저에겐 정말 좋은 뉴스였습니다. 큐라레에는 보물 같은 OST가 참 많은데, 모바일게임의 빠른 화면 전환으로 제대로 감상하기 어려웠거든요.

여기에 보너스처럼 얹어진 반가운 소식 한 가지 더. 앞서 언급한 Reminiscence, Second Run 등 그렇게 듣고 또 들었던 주옥같은 OST를 작곡한 Nauts, 남구민 작곡가를 만날 수 있다는 거였죠. 제 추억을 만들어 준 장본인을 마주할 수 있다는 사실에 부랴부랴 인터뷰를 요청, 장비를 챙겨 달려나갔습니다.

같이 들으면 좋은 노래, 'Nauts' 남구민 작곡가의 대표곡, 'Reminiscence'


★ 큐라레, Nauts, 첫만남, 성공적...

터뷰 현장에는 큐라레 개발진인 현승수 기획자, 강호연 기획팀장과 우은성 사업PM 그리고 남구민 작곡가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이번 인터뷰 목적이 '큐라레 OST 앨범 발매' 그리고 게임음악 업계에 관한 현직 전문가의 견해와 방향이 포인트다 보니, 큐라레의 사운드를 담당하는 현승수 기획자 및 멋진 음악을 만들어 내는 남구민 작곡가와 주로 대화했습니다. 먼저 두 분에게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부탁하는 걸로 시작했죠.

남구민 작곡가 :
안녕하세요. 'Nauts'라는 닉네임으로 활동 중인 프리랜서 작곡가 남구민입니다. 소프트맥스 재직 당시 4Leaf, 테일즈위버의 OST작업을 담당하면서, 업무 외적으로는 SoundTeMP라는 그룹에서 활동해 왔습니다.

직업 때문에 게임에 빠져든 건 아니에요. Nauts라는 닉네임부터가 코나미의 게임 '폴리스너츠'에서 따온 겁니다. 원래 이 닉네임을 정할 때만 하더라도 제가 세상에 알려질 거라 생각도 안 했는데, 테일즈위버 클라이언트에 포함된 OST폴더에 제 이름이 본의 아니게 노출되면서 대중 앞에 서게 됐어요(...).

너무 갑작스레 세상에 툭 튀어나오게 되서 그런지...2004년부터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모나크부터 이것저것 작업은 많이 했는데, 제가 한 일을 세상에 퍼트리는 걸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어요. 하지만 대외적으로 그간의 작업을 알리는 것도 재산이고 도움이 되겠다 싶어 1~2년 전부터는 드문드문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 게임 기자라서 행복했던 순간.꼭 한 번 만나 보고 싶었던 'Nauts' 남구민 작곡가

현승수 기획자 :
이렇게 유명한 분에 뒤이어 소개를 드리려니...많이 머쓱하네요(웃음). 저는 스마일게이트 모바일 기획팀 소속으로 사운드를 포함해 큐라레의 코딩, 아트 등 여러 분야의 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현승수라고 합니다. 테스트 빌드 버전에 장난삼아 '소야의 모에모에차원' 같은 긍정적인(?) 문구를 넣으면서 혼자 뿌듯해하는, 언제나 유쾌한 사람이 되려 노력하는 기획자입니다.

사운드 작업이 주된 업무는 아니지만, 한 때 음악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음향과 음악의 지식을 다른 분들보다는 조금이나마 쌓아왔습니다. 큐라레에 대해 짤막한 칭찬을 하자면, 음악부터 아트, 약간의 '모에함'이 녹아 있는 콘텐츠의 집합체라 할 수 있어요. 이런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어 매우 기쁘고, 과거의 음악적 경험들이 지금 와서 남구민님 같은 유명 작곡가분과의 협업을 할 수 있던 원동력이 되었다 생각하니 매우 뿌듯합니다.


일 궁금했던 건 남구민 작곡가와 큐라레의 첫 만남입니다. 다른 참여 멤버인 ESTi, TAK 작곡가는 미디어에도 종종 모습을 드러내거나, SNS활동을 꾸준히 해 주다보니 '이런 사람이겠거니...'라는 감이 오는데, 앞서 언급됐듯이 남구민 작곡가는 대외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거든요. 유추할 수 있는 정보가 없으니, 그냥 막연히 점잖고 과묵하고 위엄찰 것 같은 인물이라고만 생각했었죠.

그런 이미지였던 남구민 작곡가가 발랄하고 쾌활한 카드RPG 큐라레를 작업한다는 소식은 저에게 있어 소주와 초콜릿의 조합처럼 어색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먹어 보면 소주와 초콜릿이 꽤 좋은 궁합이듯이, 'Nauts+큐라레'의 궁합도 굉장히 좋았습니다. 큐라레의 여름 시즌에 공개된 '오렌지오션'도 남구민 작곡가의 풍부한 화음에 큐라레의 발랄함이 합쳐진 멋진 노래였죠. 예상치 못한, 하지만 막상 보니 멋진 이 조합은 어떻게 이뤄진 걸까요?


현승수 기획자 :
런칭 준비 OST 회의를 할 때, 김용하 총괄 PD의 확고한 취향, '락이나 오케스트라와 같은, 애니메이션 OST에 주로 쓰이는 장르는 안 할란다!' 에 따라 주요 장르는 일렉트로닉으로 선정되었어요.

근데, 김용하 총괄PD가 원래 Naut, ESTi, TAK작곡가의 열렬한 팬이었거든요. '우리 프로젝트에 참여해 줬음 좋겠다...' 싶었지만, 세 분은 이 분야에서 업계 최고의 분들이잖아요. 못 먹는 감 찌르는 심정으로 연락을 취했죠. 근데 예상 외로 너무 흔쾌히 승낙해 주셔서 개발진이 모두 놀랐던 기억이 나는군요.

남구민 작곡가 :
우리에게도 큰 영광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김용하PD 하면 '모에론'이 떠오를 정도로 전반적인 문화를 이해하는 인물 아닙니까. 작업 과정을 함께 하는 현승수 씨 또한 음악 감각이 훌륭한 사람이라 타 프로젝트에 비해 쉽게 작업했어요. 작곡 리스트를 정하고 소화하는 정도는 다른 누구도 할 수 있지만,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작곡가의 의도와 요구를 이해하는 사람은 흔치 않기 때문이죠.

현승수 기획자 :
어...음악 경험이 다른 분들에 비해 조금 더 있어서 그런지, 제법 수월하게 작곡가님들과 대화할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원래 작곡 작업이라는 게 전문적인 용어도 많고, 표현도 추상적인 경우가 많아 일반적인 상식을 가지고 접근하긴 조금 어렵거든요. 개발부가 이해하고 반영하기엔 조금 난해한 영역인데, 제 선에서 좀 더 일반적인 언어로 풀어낼 수 있었다는 게 그럭저럭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네요.

남구민 작곡가 :
맞아요. 확실히 피드백이 구체적이었어요. 이해도 빨리 될뿐더러 왜 이런 피드백이 왔는지 이유도 분명했고 수용할 만했어요. 이 작품의 컨셉이 무엇인지, 어떤 방향으로 접근해야 하는지 아주 쉽게 파악할 수 있었죠. 음악을 잘 아는 사람과 같이 일한다는 게 정말 편하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됐습니다.

▲ 어려운 음악을 쉽게 풀어내어 개발팀-작곡가의 조화를 이룬 숨은 공신 현승수 기획자

현승수 기획자 :
초반 작업부터 꽤 호흡이 잘 맞았어요. 김용하PD도 음악의 중요성을 잘 아는 사람이라, 곡 작업과 게임 클라이언트 개발을 동시에 진행했거든요. 게임 클라이언트부터 뽑고 음악을 작업하는 게 일반적인 형식이라는 걸 생각하면 나름 색다른 작업 방식이죠. 초반부터 같은 컨셉으로 함께 가니 오히려 개발 후 BGM을 얹는 것보다도 음악과 게임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더군요.

남구민 작곡가 :
곡과 게임이 잘 어우러지려면 확실히 컨셉이 잘 잡혀 있어야 합니다. 다행히도 큐라레는 정체성이 뛰어난 게임이었어요. 구동만 되는 프로토타입만 보더라도 애니메이션이나 만화를 좋아하는 유저층에게 꽂힐 수 있는 게임이더라고요. 그럼 요즈음의 트렌드에 맞춰 발랄하면서도 경쾌한 일렉트로닉으로, 대신 너무 경박스럽고 가벼워보이지는 않게 가자고 방향을 잡았습니다.

근데, 저에겐 트렌드라는 게 참 어려운 개념이에요. 이제껏 해 오던 것이 있으니...트렌드가 뭔지는 알아도, 그걸 곡 속에 반영하는 데는 서툴러요. 저와 같은 세대인 ESTi도 비슷한 고민이었을 거에요. 하지만 TAK 같은, 최신 트렌드의 정점에 서 있는 친구는 달랐죠. 젊은 친구라 그런지 음악 속에 기백, 패기가 한웅큼 묻어 나오더군요. 자극도 많이 받았고, 많이 배울 수 있어 좋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 친구가 좀 더 잘 됐으면 좋겠어요.


★ 신뢰로 빚어진 고품격 OST...그리고 앨범 발매

심으로 만나 작업 파트너로서 신뢰를 얻기까지. 두 사람은 그간 다수의 작곡 작업을 함께해 왔을 텐데요. 출시부터 지금까지 거진 1년을, 같은 소속이 아니더라도 함께 할 수 있던 원동력은 다름 아닌 서로에 대한 이해겠지요. 게임 속의 음악이 어떤 중요도인지에 대해 공통된 결론을 내고, 서로의 작업 방식을 존중하는 것이 서로를 이해하는 첫 스텝일 겁니다.

이 조건이 들어맞았기 때문에, 남구민 작곡가와 현승수 기획자 모두 수월하게 작업할 수 있었다고 자랑스레 이야기할 수 있었겠죠.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큐라레 OST 작업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그 안에 서로를 얼마나 존중하고 음악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남구민 작곡가 :
테일즈위버 곡 작업은 상당히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는데요. 시간도 시간이었고, 생각보다도 빨리 작업되어서 이게 잘하는 건가, 내가 과연 잘 하고 있나...싶었어요. 지금 저보다 더 유명해진 'Reminiscence'도 사실 맘에 들지는 않았어요. 잠깐 딴 얘기이긴 하지만, 예상 외로 너무 반향이 커서 감상자와 제작자의 생각이 항상 일치하지는 않다는 걸 알게 되었죠. 감상자의 입장에서 제 곡을 평가할 수 있게 해 준 계기가 되기도 했고요.

어느덧 저도 경력이 많이 쌓였고, 작업 기간 자체가 넉넉한 편이어서 큐라레의 OST 작업은 여유롭게 작업했습니다. 업데이트 플랜도 다 짜여져 있는 상태였고, 어떤 업데이트가 진행될 예정인지 두세달 전쯤엔 공유가 되는 구조였거든요. 수월했죠. 작업 과정에서 필요한 정보들은 추가로 받고 업데이트 한 달 전쯤엔 스케치를 보여줄 수 있었죠. 첫 스케치가 어렵지, 이후 피드백을 반영하는 건 쉬워서 초반 정보가 얼마나 신속하게 공유되는 지가 가장 중요한 법이거든요.

아무래도 음악 쪽에 관심이 있는 팀이라 스케치에 반영될 사항도 구체적으로, 빠르게 전달해 주더군요. 손발이 척척 맞으니 같이 작업하는 게 즐거워, 큐라레 제작팀이 외주를 주는 '갑'이라기 보다는 파트너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영상 작업도 그래요. 보통은 영상이 먼저 뽑히고, 그다음에 음악을 얹는 것이 일반적인 작업 방식이죠. 그런데 큐라레 작업은 일단 곡을 먼저 작업하고, 음악에 맞춰 영상을 편집해 주더라고요. 한계가 없다 보니 상상력을 좀 더 많이 발휘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영상과 음악의 조화도 만족스러웠고요.

현승수 기획자 :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영상을 먼저 작업하더라도 결국에는 음악에 맞추게 되는 것 같아요. 영상에 음악을 얹는 건 그야말로 허공을 채우는 역할을 하는 BGM이지, 음악의 본질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고 봐요. 가능한 많은 임팩트, 감각을 주려면 뮤직비디오처럼 영상과 음악이 맞물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영상팀에서도 BGM을 먼저 듣고 작업하는 등 많이 협력해 줬고요.

확실히 큐라레 제작진은 게임에서 OST가 얼마나 중요한 지 잘 아는, 국내 몇 안되는 팀 중 하나라고 자부해요. 김용하 PD의 입김(?)도 있고, 함께 하는 작곡가분들의 실력도 상당하니 OST콘텐츠에 대한 중요성은 날로 부각될 수밖에 없죠. 확실히 지난 1년 간 큐라레 게임 속 OST는 곡 수는 물론, 보컬 등의 색다른 시도도 하면서 바리에이션, 풍미 등이 넓어지고 깊어진 걸 확인하실 수 있을 거에요.

이렇게 볼륨 있는 음악 콘텐츠를 갖췄으니, 이젠 또 새로운 시도를 해 봐도 될 듯하다 여겼습니다. 든든한 작곡가분들을 믿고 한 번 일을 저질러 보려 합니다. 이번에 시도한 건 바로 텀블벅 모금을 통한 큐라레 OST 앨범 발매 프로젝트입니다.

▶ 큐라레: 마법도서관 공식 OST 제작 모금 프로젝트 텀블벅 페이지 바로가기

▲ 그간 게임 속에서만 짤막하게 들었던 고품격 OST들을 풀 트랙으로 모은, 앨범이 발매된다고?!


임 OST를 CD로 발매하는 프로젝트는 있긴 했지만, 그렇게 많지는 않았습니다. OST의 중요성이 타 플랫폼에 비해 적은 모바일에서는 더더욱요. 프로젝트의 희소성도 중요하지만, 유저들의 힘을 모으는 소셜 크라우드 펀딩 형식으로 진행하는 것도 상당히 이색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지난 3월 20일 시작, 4일 만에 목표의 400만 원을 380% 이상을 달성, 1,500만 원을 모금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스마일게이트 메가포트가 내 건 공약은 단순히 지금껏 내놓은 OST를 한데 모은 CD를 발매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일정 모금액을 달성하면 신곡을 공개하고, 유명 성우진들이 연기한 등장인물의 목소리를 담은 드라마 트랙도 보여줄 예정입니다. 준비 하나 안 된 상태에서 'bam!' 하고 실행을 호언장담하기엔 좀 힘든 공약들이죠. 꽤 철저히 준비한 듯한 콘텐츠 구성에, 이 프로젝트의 준비과정과 시작, 앞으로의 각오를 들어 보았습니다.


현승수 기획자 :
큐라레 제작진 전부 예전부터 생각은 해 오고 있던 프로젝트였습니다. 이렇게 좋은 OST를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각 음악을 그렇게 적극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는 유저분들의 이야기도 있었고, 원래 하고 싶기도 했고요. 그간은 업데이트 콘텐츠 개발 및 기타 여러 프로젝트로 인해 틈이 나지 않았지만, 게임서비스가 안정된 지금은 한 번 해볼 만하다 싶어 텀블벅 프로젝트를 진행하려 합니다.

꽤 큰 규모의 스마일게이트 메가포트가 모금을 하다니. 의아할 겁니다. 사실 큐라레 OST프로젝트가 신규 유저분들을 끌어온다거나 매출을 증가시키는 효과가 있진 않아요. 다른 마케팅 방법으로도 진행할 수 있는 OST앨범 발매를 텀블벅 모금으로 진행하는 건 유저분들이 우리의 앨범을 내 도움으로 이루는 프로젝트, 내가 만드는 굿즈라는 느낌을 받길 소망하기 때문이죠. 이것 역시 게임을 현실로 끌어내 즐기는 방법이니까요.

OST앨범은 21개의 곡과 히든 트랙 1곡 등 총 22곡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금액 목표는 4백만 원으로 설정했습니다. 이 정도만 모여도 앨범 CD제작은 할 수 있으니까요. 여기에 모금액 단계 별로 신규 보컬 곡이나 보이스 드라마 트랙 등을 추가할 예정입니다. 성우에 대한 유저분들의 니즈도 있으니까요. 모금액이 크면 드라마 트랙 분량도 더 크게 해서 2CD구성으로 선보일 계획입니다.

▲ 성우에 대한 유저들의 애정을 존중해, 일정 모금액 이상 달성 시 풀 보이스 라디오 드라마를 앨범에 삽입할 예정이다


남구민 작곡가 :
작곡가 입장에서도 감상자분들의 손길이 차곡차곡 쌓인다는 건 크나큰 행복이에요. 이렇게까지 제 곡을 듣고 싶어하는 분들에게 보답할 수 있는, 좋은 음악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냐는 '행복한 압박'도 받을 테고요. 이번 앨범을 위해 게임 속에서 각 화면에 맞게 조각조각 잘라진 음악도 리마스터링을 통한 고품질의 풀트랙으로 선사할 예정입니다.

저에게도 많은 의미가 담긴 프로젝트입니다. 게임업계에서도 음악 콘텐츠가 중점이 된 프로젝트는 거의 없기 때문에 더더욱 애정이 많이 갑니다. 좀 떨리기도 해요. 제 이름 값(?)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유저분들이 진정 제 곡을 듣고 싶어하는지 표면으로 드러나니까요. 4월 16일까지 모금이 진행되니 아무쪼록 많이 관심가져 주시면 좋겠네요.

▲ 바람대로 됐네요. 모금 4일 차, 목표치의 4배 가까이 모금한 큐라레 OST 앨범 프로젝트


★ 아직 남은 게임 음악계의 그림자, 현업 종사자들의 각오

야기 도중, 게임계에서 음악의 위치가 많이 낮다는 다른 작곡가분들의 대화 내용이 갑자기 생각났습니다. 거기다 요즈음은 모바일 세상. 음악에 애정이 있는 제가 보더라도 요즈음 OST의 가치는 많이 낮아졌어요.

이런 게임계에서 음악을 10년 이상 고집해 온 남구민 작곡가야말로 지금 게임계에 음악이 처한 현실과,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조금 민감한 주제라 조심스레 질문해 보았는데, 오히려 남구민 작곡가는 거침이 없었습니다.


[같이 보면 괜찮을 인터뷰] 게임음악의 대명사, SoundTeMP 전 멤버 곽동일,장성운,박진배

남구민 작곡가 :
음...국내 게임은 스타일이 좀 정해져 있는 편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음악과 같이 부가 작업을 할 때도 '이 스타일에 맞게 해주세요!'라는 요청이 잦죠. 다양성이 있어야 하는데, 출발 자체가 똑같다 보니 큰 발전이 없는 것 같아요.

특히 모바일에서 음악을 끄고도 플레이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음악이 평이하다는 이야기죠. 톤을 해치지 않은 선에서 조금 참신하게 작업하면 음악도 돋보이고, 실제로 유저 만족도도 높은 편인데도 '모바일에 OST는 중요하지 않다'라는 선입견 때문에 BGM수준의 천편일률적인 음악작업만 진행되는 것 같아요. 이것도 솔직히 거슬러 올라가면 비슷한 음악을 만들게 된 출발선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문제를 또 지적하자면, 게임은 광고, 애니메이션, 드라마, 영화와 같은 다른 업계와 비교했을 때, OST에 대한 소유권이 회사로 넘어가는 유일한 시장입니다. 타 시장은 회사에 귀속되거나 다른 프로젝트에는 쓰이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저작권이 제작자에게 돌아가지만, 게임은 회사에 귀속되기 마련이죠. 열심히 작업한 사람들이 무수히 많은데, 정작 그 사람들의 이름은 노출되지 않습니다. 제작자 고유의 아이덴티티가 있어도 말이죠.

저 스스로는 저작권이 회사로 넘어가는 현재 시스템에 큰 불만이 있진 않지만, 적어도 OST앨범 정도는 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밖으로 내 작업이 알려진다면 그 프로젝트를 좀 더 소중히, 열심히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거고요. 개인적으로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여지가 된다면 일의 동기가 훨씬 더 생기겠죠.

그래서 TAK같은 젊은 친구들이 이름을 알리는 게 중요합니다. 외주사 명보다는 제작자의 이름이 들어가면 확실히 좀 더 힘낼 수 있는 여지가 많죠. 저도 이제는 좀 더 나서볼까 합니다. 적어도 내 작업이 어떤 게 있었는지,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릴 수 있도록 홈페이지 개설부터 대외 활동까지 해볼 까해요. 올해 안에 착실히 준비해서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Nauts로 변해 보려 합니다.

아무쪼록 작곡가들 개개인이 조명되어 이름을 건 행복한 압박이 들어오고, 그 압박이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길 소망합니다. 이번에 제가 작업한 OST앨범과 크라우드 펀딩이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으면 좋겠네요. 저의, 그리고 작곡가들의 자존감을 얻을 수 있는 일이 앞으로도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 드문드문 이용하던 블로그와 함께, 새 둥지 '코너스 그루브' 활동도 활발히 할 예정


임 음악계에서 하나의 긍정적인 움직임이 될 수 있는 이번 OST 앨범 발매 프로젝트. 두 사람 모두 결의에 찬 표정이었습니다. 다행히도, 그 대화들을 인터뷰 기사로 정리하고 있는 지금 모금액은 상당히 고무적입니다. 두 사람이 실망할 일은 없을 것 같아 마음이 꽤 훈훈합니다.

아무튼, 수많은 이야기가 오고 간 자리였습니다. 대화 내내 남구민 작곡가는 게임계에서는 흔치 않은 OST앨범 발매를 진행해 준 스마일게이트 메가포트에게 감사를 표했고, 현승수 기획자는 게임 음악에 대한 애정, 그리고 각오를 밝혔죠. 기나긴 내용의 정리 겸, 이번 대화를 관통하는 두 사람의 마지막 멘트를 옮겨 적어 보았습니다.


현승수 기획자 :
사실 전 팀 내부에서 사운드만 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여러 일을 도맡아 하다 보니 작곡가분들의 작업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점도 있고, 이래저래 일정이 연기되기도 하고...돌이켜 보면 죄송스런 일들뿐이지만, 그래도 마음껏 하고 싶은 음악을 하실 수 있도록 판을 깔아 드리는 서포터의 역할을 충실히 하려 합니다.

마지막이니 개인적으로 한마디 하고 싶어요. 큐라레 제작진에 소속되어 있지만, 굳이 큐라레가 아니더라도 게임 음악은 그 자체로 중요합니다. 이번 저희의 프로젝트가 그 중요성을 대중에게 알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아요. 큐라레 뿐만 아니라, 게임 속의 음악에 대해 많은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남구민 작곡가 :
지금 제가 하는 이 인터뷰는 분명 큐라레 OST 앨범 프로젝트에 관한 겁니다. 하지만 단순히 모금 장려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이 프로젝트는 여러 의미로 중요합니다. 모금이 성공적으로 진행된다면, 지금 업계에 몸 담고 있는 여러 게임음악 종사자들이 좀 더 힘을 얻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거든요.

저 역시 올해는 힘차게 달려보려 합니다. 원래 꿈도 콘서트를 한 번 열어보는 거였어요. 당장 그 꿈을 이루긴 무리지만, 기회가 된다면 게임 음악과 관련된 여러 활동을 해보고 싶어요. 게임 속에서 음악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준 큐라레 제작진에게 정말 고맙습니다. 제 곡을 사랑해 주시는 유저분들도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좋은 게임 음악을 위해 노력하는 Nauts가 되겠습니다.

▲ 큐라레 OST 앨범을 위해 뭉친 큐라레 제작진과 작곡가. 왼쪽부터 현승수 기획자와 남구민 작곡가, 강호연 기획팀장, 우은성 사업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