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의 끝은 어디일까. 사람이 할 수 없는 일, 귀찮고 싫은 일들을 대신 해주는 로봇과 인공지능의 개발은 인간의 끊임없는 꿈이었다. 많은 명사들이 뛰어난 AI의 개발이 가져올 위험에 대해 경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인공지능은 인간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며 핑크빛 미래를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다.

하지만 게임 업계에서는 인공지능과 봇(Bot, 오토, 매크로)이 암적인 존재로 평가받고 있다. 게임 내 경제와 유저들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궁극적으로 게임의 재미를 없애기 때문. 봇을 이용해 불법적인 이익을 노리는, 일명 ‘작업장’과의 전쟁이나 게임 밖의 재화와 게임 안의 재화 교환, 즉 ‘현금거래’의 당위성에 대한 논쟁은 온라인 게임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주제이다.

왜 작업장이 등장하는 것일까, 왜 현금 거래가 이뤄지는 것일까, 그리고 이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NDC2015에서 발표된 이은석 넥슨 왓 스튜디오 디렉터의 “Pay-to Skip: 게임 속 경제와 내몰리는 인간” 강연은 바로 이런 의문에서 시작됐다. 인공지능의 역사와 게임에의 적용, 그로 인해 파생된 문제와 예방책, 그리고 해법까지. 한 시간에 담기에는 너무 깊고 방대한 내용이었다.

▲ 강연을 맡은 이은석 넥슨 왓 스튜디오 디렉터



인간과 로봇의 미래: 로봇이 가져올 미래는 과연 핑크빛일까

인간을 닮은 피조물에 대한 상상, 자동인형에 대한 갈망은 오래전부터 신화나 동화 속에 존재했다. 그리고 1900년대 중반, 급격한 과학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힘든 일은 기계에게 맡기고 인간은 풍요와 여유를 누리는 삶을 살 수 있게 되리라는 핑크빛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되었다. 행복한 미래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세기 후반 나온 수많은 영화, 소설에서 그려진 미래는 인공지능에 의해 망가지고 피폐된 세상, 기계가 인류를 지배하는 미래였다.

하지만 현실의 21세기는 당시의 상상만큼 빠른 발전을 이루진 못했다. 로봇은 주로 산업 현장에서 입력된 프로그램에 따라 단순작업을 반복하는 기계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딥 러닝(Deep learning) 기법의 재조명과 발달에 힘입어 알고리즘을 개선하고 생물의 지능과 진화 메커니즘을 흉내내기 쉬워지면서 인공지능의 극적인 발전이 가능해졌다.

솔라시티 회장 ‘엘론 머스크’의 “인공지능은 악마를 호출하는 일이다”라는 발언 등 여러 명사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은 이미 다양한 분야에서 우리의 삶 깊숙이 들어와 있다. 운전, 요리 등 단순한 분야에서부터 논문 분석이나 기사를 작성하고 게임까지 하는 등 인간보다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인공지능의 이러한 발전은 점차 인간의 삶을 위협하기 시작한다. 로봇을 이용한 무인화, 자동화는 인간보다 더 높은 생산성을 보장하기 때문에 고용이 감소한다. 수많은 직업이 컴퓨터로 대체될 것이고, 이러한 흐름 속에서 창조적, 감성적 직업도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 부의 편중과 양극화라는 현대 자본주의가 직면한 문제점을 로봇이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물론 기술의 발전은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낙관론을 펴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러한 변화를 개인이 따라가기에는 한 개인이 생에 내에 겪을 패러다임의 변화가 너무 빈번하다는 반박 역시 존재한다.

여기까지 말한, 꿈같은 21세기와는 거리가 있는 미래가 특정한 문제를 인간처럼 풀 수 있는 ‘약한’ 인공지능의 시대의 모습이다. 언젠가는 인간처럼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는 ‘강한’ 인공지능의 인간과 로봇의 구분이 불분명해지면서 인간성의 정의와 도덕, 법률을 새롭게 써야 하는 시대가 찾아올 것이다.

레이 커즈와일은 미래에 기술 변화의 속도가 급속히 변함으로써 그 영향이 넓어져 인간의 생활이 되돌릴 수 없도록 변화되는 기점을 기술적 특이점이라는 용어로 설명했다. 지구의 역사적 사건들로 인한 패러다임의 변화 간 시간은 지수적으로 짧아지고 있고, 그에 맞게 혁신의 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한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결국 모든 일들이 한 순간에 벌어지는 시대가 올 것이다. 인공지능의 발전을 넘어 인간과 기계가 하나 되는, 물론 그에 따른 위험도 있겠지만 그런 위험을 넘길 수 있다면 그 다음 스테이지인 초월시대로 이행할 것이다.




게임 내 인간과 로봇: 게임 내의 로봇은 왜 등장했으며 게임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온라인 게임은 현실 사회의 축소판이다. 특히 MMORPG 장르는 초창기부터 가상 사회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MMORPG가 재미있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소득 분배의 불균형과 같은 현실사회의 문제점이 가상사회에서도 벌어질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탈이 어려운 현실 사회와는 달리, 게임은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 이탈이 가능하기 때문에 게임은 현실보다는 재미있어야 한다. 온라인 게임 사회는 불공정한 현실보다 공정하게 느껴져야 한다. 따라서, 개발자는 모두가 만족하는 공정함은 불가능할지라도 플레이어들이 느끼는 공정성의 인식에 유념해야 한다. 때문에 구성원의 재미와 공정성을 위해 사람의 노력과 재능만 인정하고 로봇의 동원은 ‘반칙’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가상세계는 오토, 즉 봇들이 활동하기 좋은 환경이다. 적절한 인터페이스만 있다면 전신마비 환자도 게임이 가능할 정도로 육체로 인한 핸디캡이 적기 때문이다.

또한, MMORPG의 핵심 요소는 바로 ‘성장’이다. 난관을 극복하고 그 보상으로 게임 내 재화와 지위를 얻어가는 과정 자체가 재미이다. 과정의 난이도가 쉽다면 지루함을 느낄 것이고, 지나치게 어렵다면 좌절하고 게임을 떠난다. 하지만 온라인 게임은 사람에 따라 난이도를 변경할 수 있는 싱글 게임과는 달리 모두에게 동일한 난이도가 제공된다. 실력이 없다고 해서 발판을 주지도 않으며, 치트가 있다면 말 그대로 잘못된 행위가 된다. 대신 그만한 노력, 즉 시간을 들일 때 그만큼의 발판을 준다. 온라인 게임에서는 레벨이 즉 발판이고, 레벨이 올라갈수록 더 많은 발판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온라인게임의 공정성이다.



온라인 게임에는 필연적으로 타인과 협력 혹은 경쟁하는 상호작용이 존재하고, 이 과정 자체도 게임의 재미이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사회가 형성되면 자연스럽게 타인을 의식하게 되고 나에 대한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롭기가 쉽지 않으며 나 자신의 절대적인 상태 보다는 남들과 비교하는 상대 상태에서 행복감을 많이 느낀다. 특히,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 문화권에서는 타인의 시선에 더욱 민감하며 이런 문화에서는 재미가 곧 지위의 성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남들보다 더 빨리 성장하고 싶고, 그것을 과시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현금거래(Real Money Trading, RMT)는 바로 이런,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해 시간과 돈이라는 비용이 필요한 상황에서 시간은 없지만 돈은 있는 사람들과 시간은 있지만 돈은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쉬운 부분을 교환하고 싶은 욕구 때문에 등장한다. 즉, 게임 밖의 재화와 게임 안의 재화를 교환하는 것이다. 이 교환이 공정한가 하는 당위성은 차치하더라도, 어쨌든 누군가에게는 게임이 일이 되었다. 바로 이런 흐름에 따라 음지에 ‘작업장’이 생겼고, 현재는 거래량이 1조원을 넘어가는 거대한 산업이 되었다.

작업장 등장 초창기에는 사람이 직접 게임을 플레이하는 형태로 운영되었다. 하지만 인부 대신 기계를 이용해 인건비를 절감하고 효율을 높일 수 있게 됨에 따라 사람이 직접 플레이하는 노동 집약적 작업장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기계가 대신하게 되었다. 이는 인건비에 따라 국가를 옮겨가며 공장을 세우고 결국은 기계가 노동을 대신하는, 자본주의 노동의 패턴이 작업장에도 적용되어가는 과정이다. 이러한 봇들은 시간을 무한에 가깝게 사용할 수 있으며, 인간 플레이어들의 게임 밀도를 대폭 떨어뜨리고, 돈이 적은 유저들에게 더 큰 피해를 입힌다.



봇들의 반칙 플레이는 게임 내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대량으로 생산되는 골드는 게임 내에 인플레이션을 일으켜 게임 머니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게임 운영팀의 경제 모니터링의 거시적인 지표를 왜곡해 경제 밸런싱을 방해함으로써 유저들에게 피해를 입힌다. 실제로 한 게임에서는 서버 전체에 지나치게 많이 쌓이는 자산을 모니터링하면서 걱정하던 중 기술 개발을 통해 봇 작업장을 대량차단하자 게임 내 자산 증가량이 오히려 – 수치를 보인 경우도 있다. 극단적인 사례이지만, 실제 유저들은 플레이할수록 게임 속에서 가난해지고 있던 것이다.




이는 유저들의 신뢰도에 악영향을 미친다. 규칙을 위반하며 불공정한 플레이를 하는 봇들 사이에서 게임을 해봐야 상황은 점점 악화되는데, 이 게임에 나의 시간과 노력, 자산을 투자해도 괜찮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 이러한 불안감은 게임에서의 이탈로 이어진다. 다시 말하지만, 현실보다 재미있어야 하는 것이 게임이다.

결국 게임 내 대다수의 유저들은 밀도 낮은 경험을 하게 된다. 투자한 시간만큼의 성장폭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무료 플레이어들은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해야 할 것이고, 유료 아이템은 밸런스를 무시한 채 오버파워로 맞춰진다. 결과적으로 게임 세계 내의 양극화를 부추기는 것이다. 이는 현실에서 로봇에게 일자리를 빼앗기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물론 레벨업과 아이템 획득 등의 성장 과정이 돈을 지불하고서라도 건너뛰고 싶을 정도로 재미가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만약, 게임의 지루한 부분을 흥미진진하게 밀도를 높인다면, 작업장은 그 다음으로 밀도가 낮은 부분에 집중할 것이다. 다시 그 부분의 밀도를 높인다면 작업장은 결국 다음으로 밀도가 낮은 곳에 봇을 투입한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결국은 게임의 모든 부분이 Pay-to-Skip이 되어버린다.




F2P(Free-to-Play)가 아닌 월정액 게임에서는 봇들의 활동이 적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 물론 F2P 게임만큼 무한정 계정을 만들 수는 없겠지만, 비용 대비 수익이 높다면 작업장 측에서 마다할 이유가 없다. F2P게임의 봇 만큼 유서 깊은 것이 정액제 봇이다. 이는 마치 현금을 동원하고 싶은 유저가 봇들의 정액비를 내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수많은 고용인을 거느린 부유층과 비슷하다. 결국 봇이 양극화를 부추기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작업장과 게이머는 공생 관계”라는 말은 흔히 하는 오해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봇들은 게임을 망치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막아야 하는 것이다.





게임 내 봇 문제 해결방법: 완벽한 방법은 없지만, 그래도 계속해야하는

강연 내에서 제시된 봇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크게 일곱 가지이다. 물론 이 방법들이 전부 효과적이고 확실한 것은 아니다. 일부는 기술적으로 힘들고, 일부는 게임의 재미를 침해해야 한다.

게임 클라이언트가 봇 프로그램을 감지해 차단하는 방법은 분명한 한계가 보인다. “클라이언트는 적의 손아귀에 있다”는 말처럼 각종 보안 프로그램을 우회해 접근할 수 있기 때문. 또한, 한때 창궐했던 오토마우스 류는 USB 마우스로 인식돼 애매한 것도 사실이다. 아직은 농담이지만, 미래에 만약 신체가 있는 로봇을 만들어 실제로 게임을 플레이하게 한다면, 소프트웨어 방식이 아니므로 클라이언트 감지 방법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플레이타임을 짧게 가져간다거나 성장, 혹은 재산 축적이 안 되게 하는 방식은 온라인 게임에서는 도입할 수 없는 방법이다. 만약 이런 방법을 선택한다면 봇들은 확실히 없어질 것이다. 물론 그와 동시에 게임의 재미도 같이 없어지겠지만.




최근 많이 사용하고 있는 것이 유저 간 거래 자체를 막아버리는 방법이다. 유저 간 거래가 안 되면 현금 거래도 당연히 불가능해지고, 작업장의 존재 이유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AOS, 스포츠, 혹은 모바일 게임 등 MMORPG 장르만 아니라면 거래가 안되는 게임도 많다. 혹은 귀속 시스템을 이용, 아이템 소유자를 바꾸지 못하게 하거나 업적 등 거래 불가능한 명예 요소를 활용할 수도 있다.

1:1 거래를 막고 오직 거래소(경매장)만 허용하고 판매자도 익명으로 처리함으로써 ‘특정인과 등가교환 없는 일방적 증여’가 어려워짐에 따라 아이템 거래는 적절한 게임 내 시세로만 가능하도록 한 사례도 있다. 하지만 이는 현금 거래를 막는 방법은 될 수 있으나 유저 간 상호작용을 막는, 싱글 게임 같은 경제를 만들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물론 이런 방법을 사용해도 계정 자체를 거래한다거나 대리육성 등을 통해 거래하는 것은 막을 수 없다.




다음은 화면의 글자를 맞추는 캡차나 대화 내용을 통해 상대를 파악하는 튜링 테스트 등 다양한 인증 방법을 통해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 직접 플레이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 역시 작업장 측에서 캡차만 인간이 풀게 한다면 의미가 없다. 실제로 인건비가 싼 개발도상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플레이어도 귀찮아지는 부작용이 있다.

또는, 기존의 플레이 기록을 통해 ‘믿을만한’ 인간 플레이어로 활동했는지를 확인, 신규 플레이어에게는 낮은 신용도로 각종 거래에 제약을 두고 인간으로서의 신용도가 높은 플레이어에게는 제약을 줄이는 방법도 있다. 만약 여러개의 게임을 동시에 서비스하는 대형 퍼블리셔라면 게임 간 교차 체크도 가능한 수단이 된다.





봇에는 봇으로, AI로 행동 패턴을 분석해 로봇을 감지하는 방식도 사용할 수 있다. 이미 게임회사들이 많이 사용하고 있는 방법이며, 앞으로 더 깊게 연구해볼 가치가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게임과 봇은 공진화 관계이다. 심플한 패턴 매칭 수준으로 봇이 잡히지 않는다면 기계학습 수준으로 대결이 발전해 나갈 것이다.

혹은 가장 근본적으로 작업장 자체의 효율을 낮추는 방법도 있다. 생산성을 급격하게 떨어뜨려 작업장의 비용을 최대한 많이 들게 함으로써 다른 게임으로 이동하게 하는 것이다. 게임 내 재화의 흐름을 추적해 생산 봇들의 골드를 세탁하고 판매하는 중간책의 계정을 파악, 골드가 모인 순간 일망타진하는 방법으로 작업장에게 타격을 입힐 수도 있다.



작업장의 봇들을 긍정적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있다. 노비노비 보이와 같이 유저가 많아질수록 재미가 더해지는 방식이라던지, 소모적인 튜링 테스트 대신 컴퓨터가 풀지 못하는 과학 난제를 인간의 집단 지성으로 풀어내고자 하는 노력이다.






봇을 막는 완벽한 방법은 없어도 어찌됐든 계속해서 봇은 막아내야 한다. 인공지능의 발전을 거듭하다보면 언젠가는 인간과 봇을 구분할 방법이 없어질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그 날쯤 되면 게임이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