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참 빠르게 흐른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VR'은 아직 멀다고만 느껴졌다. 투박하게 생긴 사각형 기기, 5분을 사용하고 50분을 누워 있어야 하는 어지럼증. 당시의 VR은 '신기함'과 '생소함'이라는 긍정적인 코드만으로 포장하기엔 너무나도 부족했다.

그러나 그 이후, VR은 마치 성장기의 어린아이처럼 엄청난 속도로 성장했다. 해상도는 높아지고, 지연 시간(Latency)은 줄어들었으며, 기기는 세련된 형태로 바뀌어 갔다. 그리고 지금 현재. 이제 상용화까지 단 한걸음만을 남겨 두고 있다. '오큘러스'의 상용화 일정이 밝혀졌고, 모델의 모습과 새로운 입력 장치인 '오큘러스 터치'가 공개되었다. 이제 필요한 건 타이밍에 맞춰 그 속을 채워줄 '소프트웨어'뿐이다. 아직 VR은 태동하지 않은 시장이기에, 소프트웨어의 숫자가 부족하지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듣게 된 '애스커'의 소식은 다소 의외였다. '애스커'가 어떤 게임인지는 익히 알고 있었다. '프로젝트 블랙쉽'이라는 이름으로 개발 당시에도 관심을 두고 있었던 게임이었으며, 1차 CBT 때 직접 체험기를 작성하기도 했다. 나아가 얼마 전, 2차 CBT를 앞두고 미리 체험하기 위해 다녀온 기자들이 '게임이 굉장히 좋아졌다.'라고 말하는 것도 들었다. 실제로 좋아지기도 했고.

▲ 2차 CBT를 앞두고 상당히 개선된 모습을 보여준 '애스커'

중요한 건 '애스커'가 좋아졌다는 게 아니었다. 개발 기간이 길어질수록 게임이 개량되고, 더 좋아지는 것은 당연한 절차일 테니 말이다. 그러나 '오큘러스'를 통해 VR로 구현된 애스커를 체험할 수 있다는 것. 그 사실은 애스커가 1차 CBT 때보다 좋아졌다는 것보다 더 크게 다가왔다. VR로 구현될 최초의 국산 온라인 게임이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인가? 그 궁금증을 안고, 사무실을 나섰다.


■ VR로 옮겨진 애스커, '위화감'은 없었다.

6월의 태양은 뜨거웠다. 설상가상으로(진짜 눈이면 좋으련만...) 판교와 강남을 이어주는 버스의 에어컨이 고장 나 앞문을 열고 달리는 기행 끝에 도착한 판교는 불지옥을 방불케 했다. 버스에서 내린 후 짧다면 짧고, 멀다면 먼 거리를 걸어 도착한 네오위즈 본사. 실내의 차가운 공기를 느끼기도 전에 관계자의 손에 이끌려 시연 현장으로 향했다.

시연장은 꽤 넓었지만 동시에 단출했다. VR을 취재하며 익숙해진 분들, 그리고 네오위즈 CRS의 박성준 PD와 인사를 나눈 후, 곧장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몇 번의 체험 끝에 이제는 익숙해진 VR 장비인 '크레센트 베이'를 머리에 착용했다.

▲ 내 신변보호, 여러분 안구보호

게임 화면 외 모든 시야가 원천 차단되는 VR 장비의 구조 탓에 키보드와 마우스를 사용할 수는 없었다. 게임 패드를 손에 쥐고 시작한 게임. 일단 눈에 띄는 건 'UI'의 배치였다. '애스커'의 UI 배치는 아직 최적화가 된 모습이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PC와 같은 UI를 사용했는데, 화면 중앙에 시선이 쏠리는 VR의 특성상 알아보기가 매우 어려웠다. 이를 염두에 두었는지 체험용 빌드에서는 게임 패드에서 원 버튼으로 UI를 켜고 끌 수 있었으며, 게임 진행 중에는 UI를 끄는 것이 오히려 게임에 몰입하기 편했다.

아직 덜 다듬어진 UI에 반해 패드로 이식된 조작 감각은 매우 훌륭했다. 애당초 장르부터가 패드와 굉장히 어울리는 액션 중심의 게임인 것도 있지만, 기대했던 이상이었다. 버튼 조합을 통해 시전하는 스킬과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까지, 패드만 가지고도 게임을 즐기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이는 별것 아닌 듯 보여도 굉장히 중요한 요소였다. VR 장비를 착용하게 되면, 플레이어의 시야는 극도로 제한된다. 오로지 게임 화면 외에 다른 것을 볼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런 상황에서 게임을 불편함 없이 즐기려면 게임과 100% 대응되며, 동시에 손에 쉽게 익을 수 있는 입력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애스커'는 적어도 입력장치에 관해서는 확실하게 그 솔루션을 마련해 둔 상태라 할 수 있었다.

▲ 조작감은 훌륭했으며, 다듬어지지 않은 UI는 끄고 진행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하게 살펴보아야 할 것은 UI도, 조작도 아니었다. VR의 가장 큰 의미는 '모니터'로 표현되는 2D 화면을 양안에 대응하는 스크린을 이용해 3D로 표현한다는 점에 있다. '시점'과 '가시성'. 이 두 가지 가치가 VR로 이식되는 기존의 게임을 살펴볼 때 가장 신경 써서 살펴보아야 할 부분이리라.

'애스커'는 기본적으로 '크레센트 베이'가 가지고 있는 '모션 트래킹' 기능을 지원하고 있었다. 쉽게 말해 고개를 위로 돌리면 하늘이 보이고, 아래로 숙이면 바닥이 보인다는 뜻이다. 시점을 고정하지 않고 플레이어의 움직임에 따라 바뀌게끔 하면 약간의 어지럼증을 유발할 수 있을지언정 게임에 대한 몰입도는 극도로 높아진다. 오감 중 하나인 '시각'을 완벽에 가깝게 장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기능과 함께 줌 인, 줌 아웃을 사용하니 캐릭터의 모습이 구석구석 눈에 들어왔다. 흔들리는 눈동자부터, 입을 벌리고 숨을 쉬는 모습까지 말이다. 다만, 가끔은 시점이 불편해지는 때도 있었는데, 카메라와 캐릭터 사이에 장애물이 존재할 때 카메라가 무조건 장애물 앞으로 나타나 캐릭터를 보여주게 된다. 이는 장애물 탓에 캐릭터의 모습이 가려지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서 의도된 것이지만, 이 시스템이 마우스보다 비교적 시점 이동이 불편한 패드의 조작과 결부되면서 시점이 널뛰기하듯 변화하는 경우가 생기곤 했다. 물론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물 흐르듯 끊어지지 않는 액션을 중시하는 장르 특성상 불시에 벌어지는 이런 현상은 게임의 흐름을 끊기게 할 수도 있다.

▲ 시점을 돌리다 보면 가끔 캐릭터가 사라진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VR로 옮겨진 애스커의 영상은 굉장히 뛰어난 편에 속했다. 언급했던 단점 역시 버튼 하나를 눌러 시점을 리셋해 준다면 큰 문제 없이 넘길 수 있다. 평면의 화면을 VR 화면으로 옮기는 과정은 생각 이상으로 어려운 과정을 수반한다. VR의 화면은 평면이 아니며, 양안의 초점은 다르다. 그럼에도 VR로 바라보는 애스커의 화면은 큰 위화감이 없었다. 게임을 플레이하기 전 조금은 걱정했던 마음이 사라지고 있었다.

▲ VR로 보고 깜짝 놀랐던 돌 친구


■ 남은 것은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

물론 '게임 자체'가 아닌, VR로의 이식을 이야기하자면 애스커가 가야 할 길은 아직 한참 멀다. 한쪽 화면만이 떨리는 현상이라던가, 정돈되지 않은 UI, 아직은 최적화되지 않은 해상도 등, 해결해야 할 부분이 상당 부분 남아 있다.

그럼에도 내가 긍정적으로 현 상황을 바라볼 수 있는 이유는, 짧은 시간이나마 체험해본 VR 버전의 애스커가 생각 외로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애스커'의 게임 시스템은 VR로의 이식에 큰 괴리감이 없으며, 시각적인 만족감을 충족해줄 비주얼 또한 훌륭했다. 보이는 몇몇 아쉬운 점은 프로그래밍 비전문가인 내가 보아도 충분히 개선할 수 있어 보이는 부분. 그렇기에 애스커를 바라보는 시선에 호의를 담을 수 있었다.

다가올 2016년은 '애스커'에게, 더불어 VR로의 영역 확장을 꿈꾸고 있는 다양한 온라인 게임 개발사들에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듯 VR의 본격적인 태동은 이미 예고되어 있으며, 구체적인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VR이 과연 온라인 시장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인가? '애스커'는 그 의문에 답해줄 작품이 될 것이며, 성공한다면 미래의 온라인 게임 트렌드를 선도할 선봉으로 우뚝 설 것이다.

가능성은 이미 엿보았다. 이제 남은 것은 시간의 문제다. 앞으로 남은 9개월여의 시간을 네오위즈 CRS가 어떻게 사용할지, 그리고 마침내 다듬어져 나올 VR 버전 '애스커'의 모습이 어떠할지. 지켜볼 일만이 남은 것이다.

▲ 분수령은 2016년 상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