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솔게임의 불모지로 불리는 한국이었지만, PS4가 발매되면서부터 국내 콘솔 시장에 활력이 감돌기 시작했습니다. 대작 타이틀 위주로 한국어판이 출시되었던 과거와는 달리, 다양한 장르의 게임이 연이어 한국어화를 선언하면서 국내 출시 라인업을 화려하게 장식했죠.

그리고 이제는 국내 개발사들이 PS4 타이틀 개발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PS3 시절부터 콘솔게임 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블루사이드의 '킹덤언더파이어2'와 콰트로기어의 '블랙위치크래프트'는 물론이며, '큐라레:마법도서관 카페'나 '프리스타일' 등 기존 게임을 PS4로 이식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24일(미국 현지시각 23일) 국내 개발사가 개발한 게임이 최초로 PSN에 출시되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게임 개발사가 아닌 IT업체가 제작한 타이틀이라는 건데요. SCEK 측으로부터 개발킷을 받은 지 1여 년 만에 게임을 출시했다는 부분도 놀라웠습니다.

'엔더 오브 파이어' 북미 PSN 페이지

'엔더 오브 파이어(Ender of Fire)', 자이네스가 개발한 횡스크롤 액션 게임입니다.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채택했으며, 기사와 궁수, 마법사 등 3가지 직업 중 선택해서 모험을 펼칠 수 있습니다. 총 6개 스테이지와 다양한 배경, 40여 종의 몬스터들이 등장합니다.


북미 PSN을 필두로 이후 유럽과 아시아, 한국 PSN에도 발매되며, 차후에는 Xbox One 플랫폼으로도 출시됩니다. 이미 스팀에서는 그린라이트를 통과한 상태이며, 콘솔 타이틀 개발 이후 PC 버전에 대한 개발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자이네스와는 TGS에서 처음 만났는데요. 그 당시 버전과 최종판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유저들로부터 많은 이야기(?)가 나왔던 '타격감' 부분은 개선되었는지, 모바일로의 출시는 계획하고 있지 않은지 물어보고 싶은 게 너무나 많았죠.

이에 PSN 출시에 맞춰 자이네스를 방문, 자이네스의 고범석 대표와 서정훈 이사를 다시 만났습니다. 나중에는 SCEK 김여명 과장도 찾아와 함께 이야기 꽃을 피웠는데요. 100분동안 이야기 한 '엔더 오브 파이어'와 자이네스, PSN 출시까지 그들이 겪은 콘솔게임 개발 도전기를 확인해보세요.

▲ 자이네스 고범석 대표(좌), 서정훈 이사(우)



Q. 게임 타이틀 명이 '엔더 오브 파이어'인데요. 무슨 의미인가요?

서정훈 : 게임 내 최종 보스가 '레드 드래곤'이에요. 그래서 레드 드래곤을 물리치는 자라는 의미로 '엔더 오브 파이어(Ender of Fire)'를 타이틀 명으로 짓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제가 읽던 소설명이 마침 '엔더의 게임'이기도 했고요.

사실 원래 게임명은 따로 있었어요. '헤러틱 아일랜드(Heretic Island)'였죠. 게임 스타일도 횡스크롤 액션이 아니라 TPS식 액션게임이었습니다. 장르를 바꾼 건 사실 현실적인 문제 때문이었죠. 개발기간이나 비용이 여의치 않았거든요.

그래서 초반 기획 단계에서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한참 콘솔 인디게임이 쏟아지던 시기이기도 해서, 더 늦어지면 진입이 어렵겠다 싶어서 개발 방향을 바꾸어 출시를 서두르게 되었습니다.



Q. 게임 배경이 중세시대로 채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서정훈 : 게임 기획 초창기에 저희가 생각한 바는 '던전앤드래곤'을 현대판으로 재해석한 타이틀이었어요. 당시 게임업계에 레트로 스타일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었고요. 그래서 중세풍의 판타지를 전통적인 모양새로 담아내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Q. '엔더 오브 파이어'의 특징을 한마디로 말한다면요?

고범석: 던전앤드래곤이나 나이츠 오브 라운드 등 과거 오락실에서 유행했던 횡스크롤 액션의 맛에 포인트를 두고 개발했습니다. 사실적인 3D 그래픽에 타격 효과 역시 분위기를 해치지 않은 선으로 제작했죠. 전통적인 맛은 살리면서 액션의 강도에 따라 날아가는 거리가 바뀌거나 물리 엔진에 따라 타격이 달라지는 점이 '엔더 오브 파이어'의 특징입니다.



Q. 지난 TGS 인터뷰에서 타격감을 강조했는데, 당시 플레이 영상을 본 유저들의 반응이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었어요. 칼을 휘두르는데 각목으로 두들기는(?) 소리가 나기도 했는데요. 타격감 개선을 위해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는지요?

고범석: 하하하, '각목' 이야기 오랜만에 다시 듣네요. 저희도 물론 알고 있었어요. 사실 지난 TGS 데모 영상은 저희가 게임을 개발한 지 2개월 만에 나온 버전이었어요. 핑계이긴 한데 그때 시간이 촉박했어요. 시연버전을 출품해야 하는 데 여유가 없었죠.

그래서 사운드 부분을 미처 다듬지 못한 상태로 게임쇼에 들고 나가게 되었어요. 그 당시에 "칼을 휘두르는데 각목으로 치는 것 같다"는 피드백을 정말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타격감 개선을 위해 여러 부분에서 신경을 썼습니다. 이펙트도 많이 도입했고요. 이제는 그래도 각목이 아닌 철로 때리는 소리가 날 겁니다(웃음).




김여명: 사실 소니로서는 결과물을 보고 정말 놀랐어요. 개발에 착수하고 나서 도쿄게임쇼까지 시간이 얼마 없었거든요. 그 짧은 시간에 그 정도의 퀄리티를 뽑았다는 것에 내부에서는 감탄했었죠.

하지만 게이머 분들은 전후 사정을 모르고 결과물만 놓고 판단하기 때문에 아쉬움의 피드백이 더 많이 나오지 않았나 싶네요.

▲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코리아 김여명 과장


Q. 지난 TGS 인터뷰 때 "투자는 꿈도 못 꾼다"고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이후에 어땠나요? 게임이 어느 정도 모양새를 갖추면 투자를 받기가 수월해지지 않나요?

고범석: '엔더 오브 파이어'는 본래 유럽 시장을 타겟으로 제작된 게임이에요. 그런데 게임 영상을 처음 유튜브에 올렸을 때 네오위즈나 텐센트, NHN 엔터 등 국내 메이저 퍼블리셔 여러 곳에서 연락이 왔어요. 정말 기뻤죠. 하지만 막상 만나보면 그들은 모바일 게임으로 알고 연락을 준 거였습니다. 이후부터는 연락이 끊겼죠.

개발 초창기에는 네오위즈에서 상당히 적극적이었어요. 이 게임을 모바일 플랫폼으로 출시해달라는 요청도 있었고요. 결국, 내부 사정으로 투자는 받지 못했습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아무리 한국이라도 게임을 완성해서 어느 정도의 퀄리티가 나오면 콘솔게임이라 할지라도 투자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현실은 제 생각과는 달랐습니다. 투자사와의 미팅은 많았지만, 모두 모바일만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래도 작년 말 캐나다의 엔젤 투자자로부터 도움을 받아 게임을 계속해서 개발할 수 있었습니다.



Q. 자이네스가 본래 게임사로 시작한 건 아닌데요. 갑자기 왜 게임 개발을 결심하게 되었나요? 콘솔 게임에 대한 열정만으로 이 시장에 뛰어들기는 현실적인 부분에서 문제도 많았을 듯합니다. 온라인이나 모바일이 아닌 콘솔 게임을 왜 만들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고범석: 저는 남들이 하는 것을 따라 하고 싶지 않았어요. 요즘 모바일 게임 시장이 급속도로 커지다 보니,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모바일 게임 개발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대세라고 해서 별 뜻 없이 따라가고 싶진 않았어요.

그래도 가장 크게 작용한 건 콘솔게임에 대한 열망이랄까요? 어릴 적부터 품어왔던 콘솔게임에 대한 로망이 가장 크게 작용했습니다. 대학생 시절에는 6개월 동안 아케이드용 당구게임을 만든 적도 있어요. 세운상가에서 제가 만든 게임을 들고 갔는데, 한 분이 게임을 보더니 2천만 원에 팔라고 제안을 했어요. 당시에 오락실이 전국에 약 15,000개가 있었는데 2천만 원에 판다고 생각하니 너무 싸다는 생각도 들었죠. 그래서 팔지는 않았어요.

이후 대학원을 컴퓨터 공학 부서로 가면서 게임과는 다소 멀어졌습니다. 졸업 후에는 KT와 SKT 등에서 근무했고, 새로운 사업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던 찰나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해보자는 생각이 문득 들었죠. 그래서 콘솔 게임을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Q. 요즘 나오는 신작들은 개발 단계에서부터 중국 시장을 염두에 두는 경우가 많은데요. '엔더 오브 파이어'는 어떤가요? 중국 현지화 및 중국PSN 진출에 대한 계획이 있나요?

고범석: 물론 생각하고 있습니다. 6월 1일부로 JJ 게임즈와 계약했고요. 샤오미나 레노보 등과도 컨택하고 있습니다. 중국 현지화 작업 역시 JJ게임즈가 담당하게 됩니다.

특이사항이 있다면 중국 시장만을 위한 별도의 모바일 게임이 콘솔, PC 타이틀과 함께 출시된다는 점입니다. 물론 모바일 게임 제작은 저희가 하는 건 아니고요. 별도의 회사에서 '엔더 오브 파이어'의 IP를 활용해 제작에 들어갑니다.


Q.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엔더 오브 파이어' 모바일 게임이 출시되지 않는 것인가요?

고범석: 계획은 있습니다. 다만, 이것도 중국 모바일 게임과 동일한 방식으로진행될 예정이에요. 외부 개발사가 저희 IP를 가지고 게임을 제작하는 거죠. 중국 모바일 게임과 국내 모바일 게임은 전혀 별개입니다. 개발사도 다르고요.




Q. 내부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엔더 오브 파이어'의 기대 성적 및 목표치는 어떻게 되나요?

고범석: 글쎄요, 저희도 모르겠어요. 내부적으로는 1년에 30만 카피 판매량을 희망하고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목표이니깐요(웃음). 결과는 좀 더 두고봐야 알 것 같습니다.

김여명: '이런 게임이 되겠어?' 생각했던 타이틀이 대박이 나기도 하고, 반대로 무조건 성공한다고 생각했던 게임이 흥행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요. 정말 결과는 누구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지난 3월에 있었던 GDC에서 저희가 발표한 바로는 PS4 글로벌 판매량이 2,020만대를 돌파했는데요. 그 속에서 30만 카피를 판다는 건 1.5%에 해당하는 수치에요. 불가능한 목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낙관적으로 봐서는 안되겠지만, 그 정도의 시장이라면 충분히 시도해볼만 하지 않을까 싶어요.

▲ 북미 PSN 오늘 출시!


Q. 게임을 개발하는데 SCEK의 도움도 컸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부분에서 소니의 협조가 있었는지 알고 싶어요.

고범석: 인디 개발사가 독립적으로 콘솔 게임을 만들어서 PSN에 출시하는게 생각보단 쉽지 않더라고요. 이것저것 생각해야 하는 부분도 많고요. 각종 행정적인 절차가 꽤나 있더라고요. 이런 부분에서 SCEK의 TPS(서드파티 릴레이션쉽)팀이 많은 도움을 주었어요.

우선 게임사가 아닌 저희를 믿어주고 지지해 주었다는 점에서 너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게임 개발을 처음하다보니 유저들 사이에서 인지도가 없어 걱정을 많이 했어요. 하지만 소니 덕분에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었습니다. 매체와의 인터뷰도 발벗고 나서서 여럿 마련해주었고요.

처녀작임에도 불구하고 신뢰를 바탕으로 적극적인 서포트를 해주셔서 저희로써는 너무 감사하죠. SCEK를 만난건 정말 천운이라고 생각해요.

김여명: PS4 타이틀로 게임 개발을 꺼내온 국내 개발사는 자이네스가 처음이었어요. 게임 개발사가 아니라는 점 때문에 내부에서는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과연 높을까'하는 의문도 있었어요. 그래도 믿고 개발킷을 전달했죠.

2주만에 결과물이 나왔다고 연락이 오더라고요. 회사를 재방문해서 큰 화면으로 본 게임은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이걸 2주만에?'라는 생각도 들었죠. 자이네스라면 가능하겠다 싶었어요. 지금은 지속적으로 함께 갈 수 있는 파트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Q. 자이네스의 향후 계획과 더불어 마지막으로 유저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려요.

고범석: PS2나 PS3 시절에는 게임을 만들고 싶어도 기술적인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한국에서의 콘솔게임 입지가 굉장히 협소하기도 했고요. 실력 좀 된다는 개발자들의 대다수가 해외로 나갔죠. 고급개발자들이 해외로 나가다보니 국내에서 인재를 찾기란 쉽지 않았죠. 이런 부분들이 너무 아쉬웠어요.

새로운 인재를 양성하고 게임업계에 발을 들여놓게끔 하는 취지로 서강대 게임교육원과의 연계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데 여건이 안되거나, 콘솔게임을 개발하고 싶은데 갈 곳이 마땅치 않은 분들에게 도움들 드리면서 상생하고자 함입니다.

그래서 현재 저희 개발자가 서강대 게임교육원에서 강연을 하고 있는데요. 콘솔게임에 관심있고 열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저희가 별도로 연락을 드리고 있어요. 그들이 콘솔게임을 개발하면 저희를 통해 서비스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퍼블리싱 사업에 대해서도 구상하고 있고요.

젊은 개발자 중에서 콘솔게임 개발에 꿈을 가지고 있는 분들도 분명 있을거라고 생각해요. PS4로 들어서면서 소규모 개발사가 콘솔게임을 개발하기가 수월해졌습니다. 문제는 정보의 부재라고 봐요. 저희 역시 유나이트 코리아에서 SCEK 관계자와 만나지 않았다면, 이런 개발킷이나 인디 게임 지원에 대한 부분을 몰랐을거에요. 그래서 이러한 부분의 프로세스와 노하우를 많은 분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김여명: 자이네스를 기점으로 현재 PS4 게임을 개발하겠다고 연락오는 개발사들이 상당히 증가했습니다. 그중 대다수의 분들이 대규모 게임사에서 개발을 담당했던 사람들이고요.

실력이 없어서 인디 게임을 개발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정말 만들고 싶었던 게임을 개발하기 위해 별도의 회사를 설립하고 게임을 만드는 겁니다. 그래서 실제로 그분들을 만나보면 열정과 패기가 넘치죠. 카와우치 시로 대표님을 포함해 많은 분들이 한국 콘솔게임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콘솔을 사랑하는 유저 여러분들의 응원도 필요합니다.

건전한 비판은 개발자 분들이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지만, 비난을 위한 비판은 개발에 대한 의지를 꺾는 부정적인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게이머 분들의 응원과 콘솔게임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서정훈 : '엔더 오브 파이어'가 북미PSN에 출시되었는데요. 오는 7월 8일에는 유럽 43개국과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주요국에 동시 출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엑스박스 플랫폼으로 발매되는건 조금 더 이후일 것 같아요. 한국이 Xbox One 1차 발매국가에서 제외되면서, 마이크로소프트 싱가폴 지사로부터 개발킷을 올해 3월에 받았어요. 현재 열심히 개발 중입니다. 이후에는 스팀을 통한 PC판 발매도 진행할 예정이니 기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