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무대 '디 인터내셔널5(The International5, 이하 TI5)'까지 불과 약 1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 전 세계에서 가장 강한 16개 팀이 한 자리에 모이는 TI. 인벤은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TI를 위해 이번 대회에서 가장 주목받는 일부 팀들을 조명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그 첫 번째 순서는 거의 모든 도타2 팬들이 꼽는 TI5 우승후보 0순위, 각 팀의 에이스들만 모아서 만들었다는 평을 받는 팀 시크릿이다.



■ 올스타에서 더 강한 올스타 2.0으로! 팀 시크릿의 역사


팀 시크릿의 역사는 불과 1년도 되지 않았지만, 선수 면면을 살펴보면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기라성같은 선수들만을 모아서 만든, 도타2 올스타같은 팀이었다. 얼라이언스의 's4', 나투스 빈체레의 '퍼피'와 '쿠로키', 구 프나틱의 '노테일'과 '플라이'가 모여서 만든 팀 시크릿은 2014년 8월 27일, 창단과 동시에 많은 팬들의 주목을 받았다.

팀 시크릿은 창단한지 2개월도 되지 않아 ESL One 뉴욕 4강, 스타래더 시즌10 준우승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렇게 뛰어난 엔트리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이상하게 프리미어급 토너먼트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따금씩 팀웍이 맞지 않는듯한 모습도 나타나면서 팬들이 기대했던 만큼의 경기력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팀 시크릿은 2014년 12월 펼쳐진 더 서밋2에서도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 더 서밋2가 끝나고 며칠 후, '플라이'가 팀 시크릿을 떠났다. '플라이'가 떠난 뒤 팀 시크릿은 도타 핏리그 시즌2에서 우승을 차지하긴 했지만 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은 온라인 대회였기 때문에 팀 시크릿의 갈증을 풀기엔 아직 부족했다. 그 후 2015년 1월 1일, '노테일'까지 팀 시크릿에서 탈퇴하면서 기대를 받았던 올스타 팀은 이렇게 쓸쓸히 사라지는 듯했다.


① 2014. 8. 17 팀 시크릿 창단 ('s4', '플라이', '노테일', '쿠로키', '퍼피')

② 2014. 12. 16 '플라이' 탈퇴

③ 2015. 1. 1 '노테일' 탈퇴

④ 2015. 1. 6 '아티지', '자이' 합류. 현재의 로스터로 개편



하지만 곧바로 북미 팀 EG의 미드레이너와 서포터였던 '아티지'와 '자이'가 다가올 도타2 아시아 챔피언십(이하 DAC)에서 팀 시크릿의 예비 멤버로 활동하게 될 것이란 사실이 밝혀졌다. EG 역시 DAC에 참가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이는 곧 '아티지'와 '자이'가 EG를 떠나게 될 것임을 시사했다. 그리고 5일 후인 1월 6일, 둘은 팀 시크릿의 공식 멤버가 되었음을 밝혔다.

재미있는 것은 이 과정에서 '아티지'와 '자이'가 기존에 EG에서 맡고 있던 포지션과 다른 포지션에서 게임을 하게 됐다는 사실이다. 미드레이너 '아티지'는 1번 캐리로, 서포터 '자이'는 오프레이너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DAC라는 큰 대회를 불과 1개월 앞둔 상황에서 이는 큰 모험수였다. 아무리 클래스가 있는 선수들이라곤 하지만 계속 해 오던 역할을 버리고 다른 역할을 맡을 경우 이미 수 년간 그 자리에서 잔뼈가 굵은 타 팀의 선수들을 넘을 수 있을 것이란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두 선수는 팀 시크릿 이적 후 DAC가 첫 공식전이었기에 팀웍도 장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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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팀 시크릿에 대한 우려는 모두 기우였다. 팀 시크릿은 DAC 조별 풀리그 15전 전승이라는 믿을 수 없는 괴력을 발휘했다. '아티지'와 '자이'의 포지션 변경은 대성공이었고, '아티지'는 이따금씩 미드를 맡으면서 's4'와 포지션도 자유자재로 바꾸며 경기에 임했다. 비록 이번에도 EG에게 발목을 잡혀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새 멤버를 갖춘 팀 시크릿의 저력을 엿볼 수 있는 대회였다.

이후 팀 시크릿은 스타래더 시즌12 패자전 1라운드에서 폼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얼라이언스에게 패배해 탈락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2015년 5월, 6.84 패치가 진행되면서 시크릿은 날개를 달았다. 6.84 패치에서 지향하는 난전 메타에서 엄청난 팀웍을 선보인 팀 시크릿은 승승장구했다. 레드불 배틀 그라운드에서 중국의 iG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으며, 불과 1주일 후 펼쳐진 더 서밋3에서도 오랜 라이벌 EG를 잡고 우승했다. 마르스TV 도타2 리그에서는 엠파이어를, ESL One 프랑크푸르트에서 또다시 EG를 잡고 우승하면서 팀 시크릿은 불과 1개월 만에 4개 대회를 휩쓸면서 확고부동한 현 메타 최강 팀의 자리를 굳혔다.

TI 직전에는 패치를 하지 않는 그간의 도타2 관행을 볼 때, 팀 시크릿의 힘은 수그러들지 않고 TI5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 도무지 약점이 안 보인다! 무시무시한 팀 시크릿의 전력


팀 시크릿은 도대체 왜 이렇게 강할까? 깊은 고민을 한 결과, 팀 시크릿은 가타부타 잡다한 이유를 붙일 것 없이 '그냥 강하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미드, 캐리, 오프레이너와 서포터 어디 하나 부족한 부분이 없다.

팀 시크릿의 중추를 담당하는 가장 중요한 선수들은 서포터인 '쿠로키'와 '퍼피'라고 할 수 있다. 팀 시크릿의 양 서포터는 상대하는 팀의 색깔에 철저하게 맞춘 플레이를 한다. 미드에 힘을 쏟는 팀을 만날 때는 요술사나 첸, 루빅 등 갱킹에 뛰어난 서포터를 골라 지독할 정도로 미드를 후벼 판다. EG와 경기를 펼칠 때 EG 전력의 핵심인 '수메일'을 말려 죽이는 장면을 보면 상대 입장에서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가고 싶을 정도로 지옥을 선사한다.

▲ 첸 장인 '퍼피'와 루빅 장인 '쿠로키' (출처 : 리퀴드도타)

'쿠로키'가 루빅, 이오 등 레인에 붙어서 캐리를 보호하는 영웅을 맡는다면 '퍼피'는 첸, 요술사, 지진술사 등 맵리딩을 하고 상대 영웅을 갱킹하는 역할을 맡는 편이다. '퍼피'가 맵을 돌아다니느라 빠진 상황에서도 팀 시크릿은 레인 주도권을 쉽게 넘겨주지 않을 정도의 실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선택이다. 특히 '쿠로키'는 대회에서 얼굴 한 번 보기 힘든 영웅인 기술단을 꺼내 동남아 절대강자 프나틱을 침몰시킬 정도로 특이한 픽도 즐겨 사용한다. 상대하는 입장에선 머리가 복잡할 수 밖에 없다.

오프레이너 '자이'는 원래 서포터를 맡았다고 믿기 힘들 정도로 뛰어난 오프레이너다. 상대 오프레이너와의 1:1 대결에서는 솔로킬을 따내는가 하면, 트라이 레인을 맞아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도 한타 때만 되면 귀신같이 나타나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오프레이너라고 하면 레인전에선 죽어라 고생하고, 게임 중반부까지 가난에 찌들어 허덕이는 이미지가 강했지만, '자이'는 달랐다.

특히 최근 대세 영웅으로 급부상한 얼음폭군 사용이 극에 달한 선수로, 눈덩이 스킬을 통해 아군을 살리거나 위기 일발의 순간에서 역으로 적을 잡아내기도 하고, 얼음 파편으로 적의 퇴로나 추격을 기가 막히게 차단한다. 팀이 위기일 때도 '자이'의 전투 개시로 팀 시크릿이 일발 역전을 하는 경기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레인전, 생존, 전투 개시, 심지어 파밍까지 잘하는 '자이'는 팀 시크릿의 보이지 않는 가장 큰 무기이기도 하다.

▲ 오프레이너로 전향한지 1년도 되지 않아 세계 최강자로 올라선 'zai' (출처 : 리퀴드도타)

가장 눈에 띄는 역할을 맡은 '아티지'와 's4' 역시 각 레인에서 둘 째 가라면 서러워할 실력자다. 초창기에 '아티지'의 단점으로 지적받던 것 중 하나가 좁은 픽풀이었다. 실제로 DAC 당시 '아티지'는 그림자 마귀와 늑대인간을 제외하면 다른 영웅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들어 자이로콥터, 혈귀 등 초반 난전형 영웅은 물론이고 환영 창기사, 항마사, 스벤 등 후반을 바라보는 하드캐리도 언제든 꺼내들고 있다. 때로는 레슈락, 그림자 마귀 등 미드에 갈 수 있는 영웅을 골라 본인이 직접 미드를 가기도 한다. 사실상 못 다루는 영웅이 없다고 봐도 될 정도다. 한타에 꾸준히 참여하면서도 CS 1위를 놓치지 않고, 후반에도 확실한 캐리력을 보장하기 때문에 팀 시크릿은 후반에 가서도 전혀 힘이 빠지지 않는다.

'아티지'가 중후반 한타에서 힘을 쓰기 시작한다면 's4'는 중후반에 접어들기까지 팀을 이끈다. TI4 미드 솔로 챔피언십 이벤트전에서 iG의 '페라리430'을 꺾고 우승에 오르기도 했던 's4'는 대단히 안정적인 레인전을 펼친다. 's4'는 상대 미드가 레인을 비울 수 없게 만든 뒤 다른 레인에서 싸움을 걸면 곧바로 포탈을 타고 날아가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한타를 승리로 이끈다.

가끔 상대의 집중 갱킹에 당해 's4'가 크게 말리는 경우가 나타나곤 한다. 다른 팀 같으면 큰 위기라고 할 수 있겠으나, 팀 시크릿은 '자이'와 두 서포터가 판을 흔들면서 시간을 벌어주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 '자이'의 갱킹 한 방으로 미드에서 받은 손해를 전부 만회하고 's4'가 날뛰는 경기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 팀 시크릿의 스타 플레이어 '아티지'와 's4' (출처 : 리퀴드도타)

특히 밴픽 단계에서 '아티지'와의 포지션, 영웅 연계는 상대로 하여금 머리를 싸매게 만든다. 팀 시크릿이 고통의 여왕이나 레슈락을 고른다고 해서, 리나를 고른다고 해서 이 영웅들이 캐리인지, 미드인지, 서포터인지 알 수가 없다. 's4'는 최근 대세 미드 영웅들은 물론이고 리나까지도 미드로 기용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티지' 역시 고통의 여왕, 레슈락을 캐리로도 쓰기 때문에 상대 팀은 밴픽 심리전에서부터 압박을 받게 된다.

팀 시크릿의 또 하나 무서운 점은 초반 난전 위주의 경기 운영, 하드캐리 육성, 한타 올인, 랫도타 등 모든 운영을 전부 구사할 줄 안다는 것이다. 최근 경기에선 대세에 맞춰 자이로콥터, 레슈락, 고통의 여왕, 폭풍령 등을 주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 이전 경기들을 보면 나가 세이렌, 늑대인간, 퍽 등 다양한 운영을 만들어내는 영웅도 자주 활용한다.

개개인의 역량도 역량이지만 팀 단위로 뭉쳤을 때 발휘되는 이들의 시너지 때문에 타 팀은 '타도 시크릿'을 목표로 대회에 임해야 할 지경이 됐다.

▲ 레이저와 레슈락을 누가 고를지, 미드일지 캐리일지 고민하게 만든다. (출처 : 고수게이머즈)




한타, 운영, 레인전 무엇 하나 약점이 없는 정점 중의 정점 팀 시크릿. 모두가 예상하는대로 팀 시크릿이 TI5 우승컵을 들어올릴 것인가? 아니면 또다른 팀이 혜성처럼 나타나 이들을 제압하고 새 시대를 열 것인가?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혁신적일 정도로 참신한 전략을 들고 나오지 않으면 정면 승부로는 팀 시크릿을 무너뜨릴 팀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팀 시크릿이 TI5에서 얼마나 높은 무대까지 올라갈지, 이들과 맞붙게 될 한국 팀은 어느 정도의 경기력을 펼칠지 기대해 본다.

▲ ESL One에서 나타난 팀 시크릿의 무시무시한 팀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