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게임업계 사정에 정통한 인물이 학계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1세대 게임 개발자들과도 어느정도 얼굴을 텄을 정도로 오랜 기간 일했다고 한다. 특히 개발이 아닌, 회사 운영과 관련한 업무에 집중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흥미가 생겼다.

오늘 소개할 인물은 경희대학교 문화관광콘텐츠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유창석 교수다. 서울대학교에서 자원공학, 대학원에서 자원경제학을 전공했으며, 언뜻 보기에 게임과 크게 관련이 없는 분야 교육하고 있지만, 이전에 넥슨, 엔씨소프트 CJ E&M을 거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이건 인터뷰를 진행하자마자 바로 알 수 있었다.

교수실에 들어가 노트북을 열었다. 첫 질문을 꺼내기도 전이었지만, 그는 이미 할 말을 다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 술술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엔씨소프트와 넥슨, 그리고 CJ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회사 분위기는 어떠한지 들을 수 있었다. 제각각인 업무 환경 속에서도 무언가를 배워야만 한다는 특유의 고집도 엿보였다.

인터뷰는 꽤 길었다. 아니, 시간은 1시간 가량이었지만 유창석 교수는 제로 칼로리 콜라를 마시는 잠깐의 순간을 제외하고는 끊임없이 말을 이어나갔다. 자신의 과거사로 시작했던 그의 이야기는 어느새 게임업계의 현황을 바라보고 있었다. 김택진 대표와 김정주 회장의 업무 처리 방식, 부분유료화의 선구자적 역할을 했음에도 국내 게임사들이 유저들에게 신뢰받지 못하는 이유, 중국과 일본 게임업계의 오늘, 그리고 차세대 게임 환경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도 들을 수 있었다.

워낙 많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 기사 하나로 다 정리하려면 일종의 옴니버스 형식을 채택하는 게 좋아 보였다. 회사로 돌아와 컴퓨터를 켠 후 천천히 그의 이야기를 복기해봤다.

▲ 경희대학교 문화관광콘텐츠학과 유창석 교수





■ 게임회사 이야기

그는 보드게임 동호회 활동을 시작으로 게임업계와 인연을 쌓아나갔다. 시간이 흐르고 당시 동호회에서 만났던 친구들은 각 분야에서 역량을 드러내는 네임드 게임 개발자로 성장했다. 그는 개발보다는 경영 쪽에 관심이 많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업계로 돌아왔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이끈 듯 그렇게.



어렸을 때 하이텔 보드게임 동호회에 들어갔다. SNURPG라는 데서도 활동했고 또 서울대 RPG 동호회에서도 있었고. 대부분 TRPG 동호회였는데 그때 재밌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리니지' 초기 개발 팀원이었던 김형진 상무, 넥슨에서 '제라' 만든 전유택 PD도 그때부터 알았다. 그 친구들이랑 영어책 갖다 놓고 막 토론하고 그랬다. 번역도 하고. 나중에 그 사람들은 게임산업에 아예 자기 미래를 맡기더라. 반면 난 '공부할래' 하고 대학원을 갔는데... 왜, 그런 거 있지 않나. 혼자 뒤처지는 느낌. 좀 찜찜하고 그랬다.

대학원 졸업하고 바로 취업하려고 여기저기 알아봤다. 그런데 그거... 취업이라는 게 생각보다 잘 안 되더라. 겨우겨우 어떤 연구소에 들어갔다. 당시 나는 보드게임동호회 회장도 겸하고 있었는데, 따로 게임을 수입해서 팔기도 하고 그랬다. 공동구매만으로도 규모가 꽤 되더라. 좀 더 원하고 있던 일이란 생각에 아예 회사를 차렸다. 온라인에다 사이트 만들어서 대량으로 수입하고.

그러면서 살고 있는데 넥슨에서 연락이 왔다. 고등학교 선배가 당시 넥슨 이사로 있었는데, 우리 회사를 넥슨에 팔라고 하더라. 좋다고 하고 팔았다. 그런데 그냥 파는 건 안 되고, 나더러 여기 와서 일도 함께 해야 한다고 조건을 달았다. 그때 대학교에서 박사 과정 밟고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넥슨에 입사하게 된 거다. 파트타임으로 다녔다. 월, 수, 금요일은 넥슨. 화, 목요일은 공부하고.


넥슨은 자유로운 회사 - "하지만 불안했다."



보드게임 동호회에서 주로 활동했지만, 사실 나는 보드보다 온라인 게임에 더 관심이 많았다. 넥슨에서 마케팅 전략팀 소속으로 일했던 것도 그때문이었다.

넥슨은 특유의 색이 있는 회사다. 하려면 뭐든 할 수 있고, 반대로 안 하려면 어떻게든 안 할, 그런 회사였다. 이게 어느 정도냐면... 해외 바이어와 만날 일이 있었는데, 내 명함을 넥슨 부사장으로 찍어 주더라. 한글로는 못 파주지만 영어로는 된다고 그러면서, 내 맘대로 쓰라면서 파 줬다. 그 정도로 넥슨은 자유로웠다. 대표님한테 '이런 사업 하고 싶은데, 돈이 필요해요.'라고 말하면 '그래? 그럼 해 봐'라는 답변이 왔다.

그런데 이게 참 특이한 건데, 난 그게... 그 넥슨의 자유로운 방식이 뭔가 답답하게 보였다. 체계가 없는 거 같았다고 할까. 당시 난 20대였다. 상식적이지 않은 회사로 보였고 이대로 가도 되나 싶었지. 솔직히 불안했다.

혼자 속으로만 조마조마하던 중, 이야기를 하나 들었다. CJ가 넷마블을 인수하고 따로 관리하는 팀을 만든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CJ 엔터테인먼트로 자리를 옮겼다. 이미 검증된 대기업인 만큼, 안정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CJ 입사 - "새로운 프로세스, 재미는... 글쎄?"



CJ는 넥슨과 완전히 반대였다. 대리가 보고서 쓰면 과장이 검수하고 그걸 또 부장이 검수하고... 그런 프로세스를 처음 겪어봤다. 막상 겪어보니 이건 또 다르더라.

당시 넷마블이란 회사는 만만치가 않았다. CJ가 컨트롤 하기에는 이미 너무 큰 회사였던 거다. 옆에서 넷마블 커가는 거 보면서 이것저것 생각하던 중, 내게 제안이 하나 들어왔다. 'CJ 회장실로 갈래, 아니면 CJ 엔터 내에서 영화산업 배워볼래'라고 묻더라. 회장실은 좀 팍팍할 것 같고... 무엇보다 방준혁 사장님 스타일은 나랑 너무 안 맞았다.

넷마블은 그때 입수보행금지였다. 사내에서는 주머니에 손 넣고 걸으면 안 되고,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는 '집중업무시간'이라고 해서 화장실도 못 가게 했다. 자유로운 넥슨에 있다가 거기로 옮겨가려니 도저히 적응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영화산업 간다고 했다.

당시 CJ에는 영화에 미쳐 있는 사람이 많았다. 난 전혀 다른 분야에서 왔고. 사실, 영화 쪽의 열정은 게임만큼 크지 않았다. 단지 지금까지 겪어 본 적 없는 새로운 분야라는 데서 끌렸다. 사업적인 부분과 관련해서 여러 가지를 배웠는데, 솔직히 재미는 없었고, 끝까지 할 계획도 갖고 있지는 않았다. 전반적인 콘텐츠 산업 조감도를 짤 만하다고 느껴질 때쯤, 게임업계에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 김정주 회장과 김택진 대표.

인터뷰 내내 유창석 교수는 편안한 말투를 유지했다. 하지만 그가 겪은 사연, 그리고 가끔씩 나오는 제스처가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의욕적이며 누구보다 강한 추진력을 가졌다고. 이것이 국내를 대표하는 두 N사의 수장을 바로 옆에서 보도록 하는 원동력이 된 것은 아닐까.



엔씨소프트 쪽에서 투자 관련한 사람이 필요하다고 연락이 왔다. 가서 보니 그 일을 기획조정실에서 하더라. 김택진 대표실 옆 방이었다. '왜 여기서 이 일을 해요'라고 물으니 '일단 여기서 잠깐 하고, 곧 옮길 거다.'라고 내게 말했다. 난 뭐, 당연히 잠깐 일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렇게 3년이 지났다.(웃음)

3년간 일하면서 특별히 불만이 없었던 이유는, 그때 정말 많은 걸 배웠기 때문이다. 보안, 신사업 전략, 해외사업 등을 배웠다. 김택진 대표 바로 옆에서 일하게 되니 참 여러 가지를 보고 들을 수 있었고. 지금 생각해 보면, 김택진 대표와 김정주 회장, 우리나라 게임업계의 두 거인을 바로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이것도 나름 행운 아닌가.


업계 대표 인물들의 특징 - "다른 유형의 천재"



김택진 대표와 김정주 회장은 스타일이 정말 다르다. 내가 보기엔 두 사람 다 천재다. 두뇌 회전은 두 사람 모두 엄청 빠른데... 특히, 김정주 회장은 상식을 깨는 움직임을 자주 보인다. 생각을 하면 어느새 그 곳에 있고. 이렇게 되면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으로서는 배울 게 없다. 아니, 배울 게 없다기보다는 너무 빨라서 따라가질 못하고, 그러니 배울 수가 없다는 게 정확하다.

김택진 대표도 일반인과 비교해서 엄청 빠른 사람이다. 생각의 흐름이 2주 단위로 바뀔 만큼 빠르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그걸 하나씩 하나씩 설명해준다. '이게 이렇게 되니, 앞으로 이렇게 될 거야'라는 식으로. 즉, 김택진 대표는 옆에서 보고 배울 수 있는 스타일이다. 사업적으로 보면 김택진 대표는 하나만 쭉 파는 사람, 그리고 김정주 회장은 파파팍 하고 이런저런 일을 동시에 진행하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볼 지 모르겠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힘들긴 했지만 좋은 경험이었다. 사장 밑에서 일한다는 건 특별한 일이다. 회사가, 그리고 산업이 움직이는 전체적인 그림을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서 볼 수 있었다. 정말로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감사한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다시 돌아가서 그 일을 하라고 한다면… 뭐, 군대를 두 번 가지 싶지 않은 느낌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 게임사의 기업가치

업계 경제 관련 이야기가 나오자, 유창석 교수의 말이 빨라졌다. 관련 지식이 풍부한 만큼 전문적인 이야기가 나왔고, 그 사이로는 게임업계를 향한 현실적인 조언이 깃들어 있었다.



내가 공부했던 것도 그쪽이었고, 사실 내가 가장 일하고 싶었던 분야는 재무 관련 부서였다. 가치평가라고 할까, 얼마를 투자해서 어떻게 결과를 내는지... 이런 거에 흥미가 있었다. 학교에서 공부할 때, 그리고 회사에서 일할 때도 이쪽 관련으로 계속 파다 보니 나중에는 탁 봐도 느낌이 왔다. '저 회사가 지금 무슨 게임을 냈는데 얼마를 벌고 있지, 지금 개발자가 몇 명이니까… 아, 영업이익이 이만큼 되겠구나' 이런 거. 그거 가지고 논문도 썼고.


가치가 높은 회사? - 투자자는 그래픽, 프로그래밍 위주로 본다.



투자자 측면에서 볼 때 높은 가치를 갖는 회사들은 나름대로 공통점이라는 게 있다. 일단 자신들의 역량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게 제일 중요하지. 투자자들한테 잘 보이는 게임 개발 분야는 그래픽이랑 프로그래밍이다. 그리고 이들을 조율해 높은 퀄리티를 뽑아내는지에 대한 종합 평가를 한다. 기획은 좀 예외다. 누가 기획 잘하는지 기획자끼리는 알겠지만, 안타깝게도 그걸 일반적인 투자자가 알긴 어렵고 이해하는 건 더 어렵다. 그래픽은 어떤 회사가 잘 뽑는지 딱 보이지 않나. 김형태 AD가 엔씨 나와서 회사 차렸는데, 이러면 투자가치가 높을 수밖에 없다. 척 봐도 그림 실력 장난 아니니까. 이렇게 그래픽 역량이 뛰어난 회사가 가치평가를 높게 가져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그 회사가 핵심 인재를 보유하고 있느냐 마느냐'다. 콘텐츠 만드는 것도 창조의 범주 안에 들어가고, 솔직히 창의성이 필요한 분야에서는 재능이라는 걸 무시할 수 없다. 되는 사람과 안 되는 사람이 있다는 거다. 어디 가서도 항상 잘하는 사람이 있고, 아무리 노력해도 단계를 넘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그 잘하는 사람, 열쇠가 되는 개발자를 다수 보유하고, 이들의 능력을 활용해 좋은 품질의 게임을 만드는 회사에 높은 가치가 매겨진다.

모바일 게임사는 조금 다른 영역이다. 일단 시장 진입을 빨리 한 회사의 투자가치가 높다. 성공률이 말해준다. 초기 시장진입한 회사와 지금 들어간 회사는 성공률에서 100배 쯤 차이가 난다. 속도다. 속도. 먼저 치고 가는 거, 국내든 글로벌이든 빠르게 가는 회사가 유리하다. 그게 모바일 플랫폼에서 기업가치 올리는 지름길이다.

기업가치를 설명할 때 하나 더 이야기할 게 있는데, 이른바 '자린고비'같은 회사가 평가를 좋게 받는다. 이런 성향의 회사들은 뚝심이 있다. 시장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던 일단 살아남는다. 대표적인 회사가 '제페토'다. 그 회사는 굉장히 많은 실패를 겪었다. 만든 게임 다 엎어버리고. 그런 상황에서도 핵심 인재는 지켰고, 다른 데 돈도 거의 안 풀었다. 벤처는 버티는 게 이기는 사업이다. 제페토도 그렇게 버티다가 인도네시아 쪽에서 '포인트블랭크' 대박 터뜨리면서 큰 기업이 된 거다.

이 분야에서 도는 말 중에 이런 게 있다. 뭐 만들 계획 세웠다면, 그 계획보다 9배 많은 자금이 들어간다는 거. 인원 3배, 시간 3배 해서 아홉 배라는 거다. 이 압박을 견디고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면 회사가 독해야 한다. 조금 안타깝기는 하지만, 현실을 고려한다면 이게 옳다고 본다.




■ 게임의 과금 모델

과금모델에 대한 이야기는 이번 인터뷰에서 가장 많은 내용을 차지한다. 이미 게임업계는 이와 관련한 외풍을 크게 맞기도 했고, 유창석 교수 자신도 이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업가치 평가도 어느 정도 공식화됐다. 일이 너무 쉬워진 거다. 일해도 재미가 없으니 다른 방면으로 눈이 갔고, 이전부터 흥미로운 소재라 생각했던 게임의 비즈니스 모델을 좀 더 연구해보기로 했다.

강원대에서 강의한 적이 있었다. 경제학 관련 강의였는데, 그중 한 파트가 부분유료화의 원리를 주제로 했다. 오히려 강의하면서 더 흥미가 생겼다고 할까. 깊게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회사 돌아와서 책상 옮기겠다고 강하게 건의했다.

그렇게 막 어필하던 차에 일이 터지더라. 하필, 엔씨소프트가 첫 번째 구조조정을 시작했고, 그 와중에 모든 TO가 동결되어버렸다. 난 갑자기 붕 뜬 거지. 원래 소속으로 가자니 내 입장도 미묘하고, 무엇보다 그쪽 역시 살갑게 나를 받아줄 수도 없는 상황이었고.

다행히 게임하이 김정준 대표님께서 '이 쪽으로 와서 데이터 마음대로 분석해보는 게 어때?'라고 권유를 해주셨다. 가장 원했던 일이기도 했고, 엔씨소프트에선 이걸 자유롭게 허락하는 파트가 없었다. 다시 없을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 둥지를 옮겼다.


한국은 부분 유료화의 선구자 - "하지만 더 나아가지 못했고, 결국 혁신은 외국에서 나왔다."



넥슨은 비즈니스 모델 구축에 있어 선구자 입장에 선 회사다. '퀴즈퀴즈'로 부분유료화 모델의 시작을 알렸고, '크레이지아케이드', '메이플스토리', '마비노기' 등을 통해 다양한 실험을 거쳤다. 즉, 이미 독자적인 노하우를 쌓던 시점이었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게임 비즈니스 모델의 최고 권위자는 김동건 본부장이라고 생각한다. '마비노기' PD셨는데, 이 게임이 처음에 굉장히 독특한 과금 모델을 채용했다. 월정액이면서 부분 유료화였던 거지. 펫도 팔고. 그거 진행하는 것을 옆에서 쭉 보니 배울 게 참 많았다. '왜?'라는 근본적인 원리를 계속 고민한 결과물이었고, 이건 어디에서나 항상 필요한 거니까.

이런 사람들이 있다. 국산 게임 과금모델은 하나같이 뽑아먹으려 혈안이 되어 있고,기분 좋게 돈 쓰게 만드는 건 대부분 외국 게임이라고.

그런데 이걸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기분 좋게 돈 쓰도록 만드는 외국 게임들은, 그 시장에서 정말 최고 수준의 비즈니스 모델을 갈아 넣은 거다. 일반적인 외국 게임 찾아보면, 한국 게임보다 훨씬 심하게 현질 유도하는 것들도 많다. 그런 게임들은 애초에 우리나라에 들어오질 못하고, 그래서 사람들이 모르니까... 착한 게임만 들어오니 외국 게임이라고 통합해서 비교하는 것 같다. 국산 게임을 옹호하고 그런 차원이 아니라, 비교 대상이 맞지 않다는 거다.

외국 최고의 게임과 우리나라의 평범한 게임들을 비교하면 당연히 게임이 안 된다. 분데스리가 보고 나서 K리그 보고 '축구 왜 저렇게 못하지?'라고 생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부분 유료화라는 모델은 한국에서 처음 나왔지만, 이를 넘어선 혁신적인 BM은 일본과 중국에서 나왔다. 중국 게임들의 비즈니스 모델을 보면서 무릎을 칠 때가 많다. 교과서에 적힌 이론에 딱 맞는 최적화된 모델을 쭉쭉 만들어내더라. 이걸 주제로 하는 강의 자료도 준비 중이다.


원조의 중요성 - "외형만 가져와서는 이길수 없다."



과금모델은 원조를 넘어서기 어렵다. 부분유료화는 정말 확고한 영역이다. 뽑기 시스템은 일본이 가장 먼저 써먹었고, 일본이 또 그쪽에 워낙 역사가 깊다. 시간이 흐르면서 쌓인 그 에센스가 별도로 존재한다는 거다. 한국 게임들도 뽑기 시스템 쓰고는 있지만, 일본 게임들의 뽑기 시스템과 비교해보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퍼즐앤드래곤'을 보자. 유저가 직접 슬롯을 조작한다. 그리고 내가 뽑은 몬스터 수준을 미리 색으로 알려준다. 이게 되게 큰 거다. 유저는 황금알이 나온 순간, 이게 자기가 갖고 있는 몬스터이든 아니든 관계없이 최소한의 만족감을 느낀다. 돈 썼는데 이미 나온 몬스터라면 그건 그냥 돈 날린 거 아닌가. 하지만 '황금알 봤으니 그래도 돈 쓴 의미는 있네'라고 스스로 위안을 한다. 그리고 또 결제하게 되고.

이게 굉장히 과학적인 기술이다. 지금 국내에서 확률 관련한 이슈가 나오는 것도 국내 게임사들이 뽑기 시스템 노하우도 부족하고, 무엇보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원조 게임의 외형만 카피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일본 게임이 이렇게 하니, 우리도 이렇게 하자.' 이 정도 마인드로 접근하니 유저들한테 욕만 먹고, 앞으로 나아가질 못하는 거다.

그리고 겅호는 진짜 괴물 같은 회사다. 난 '퍼즐앤드래곤' 처음 보고 뒷목을 잡았다. 게임이 어떻게... 비즈니스 모델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디테일 하나하나가 지갑 열게 만들어 놨더라. 진짜 무서운 수준으로. 이거 처음 보고, '와, 이거 일본 게임이 한국 들어오면 큰일 나겠구나' 싶었는데, 운이 좋게도 그 BM이 다른 게임에 확산은 안 됐다. 우리나라 게임업계 입장에서는 다행이지.


시작은 앞섰지만 - "정부가 발을 잡았고, 추월당하는 원인이 됐다."



물론, 뽑기 시스템이 양날의 검인 것은 사실이다. 사람의 머리는 확률에 약하다. 조건을 분석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말이다. 그런데 돈 계산은 잘한다. '이거 따려면 몇 번 돌려야 해' 이런 식으로. 수익성 측면에서는 바람직하지만, 위험 요소가 있지 않나. 철저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이와 관련한 연구를 진행할 생각이 전혀 없다. 그냥 '금지해, 막아.' 이러니 발전이 없는 거 아닌가.

2007년경 액티비전 대표는 넥슨의 부분유료화 시스템을 두고 '미친 모델'이라고 혹평했다. 그런데 지금 미국에서 개발되는 게임들은 서서히 부분유료화를 적용하고 있다. 그만큼 앞서 있었다는 거지. 한국은 이미 10년 이상 먼저 가고 있었는데, 정부가 발을 묶는 바람에 연구 개발이 늦어지고 말았다. 유저들에게 비난만 받을 뿐, 모두가 공감하는 BM이 나오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제대로 된 연구가 되지 않았으니까.




■ 모바일 게임 시장

모바일 게임 시장 현황에 대한 유창석 교수의 의견은 다소 회의적이었다. 시장 크기에 어울리는 공룡급 기업이 나와줘야 하지만, 아직 그 단계가 아니라는 것.




시장은 크다 - "하지만 세계를 선도하는 게임이 부족하다."



모바일 마켓 사이즈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가 세계 3위 안에 든다. 그런데 세계 모바일 게임사 톱10 안에 우리나라 회사는 하나도 없다. 글로벌 성공이라 부를 만 한 게임도 '서머너즈 워'나 '크리티카' 정도가 전부이고. 이 게임들도 순위는 이미 다 내려갔다. 킹의 캔디 크러시 시리즈, 슈퍼셀의 '클래시 오브 클랜' 같은 공룡 급 기업이 나와줘야 하지만, 그게 안 되고 있다.

난 이게 혁신이 늦었기 때문이라 본다. 일단 기계 들어오는 것부터 4년인가 5년 정도 늦었다. 2009년경에야 아이폰 들어왔고 모바일 마켓은 2011년 되어서야 제대로 열렸다. 한국 모바일 시장은 막 따라가는 수준이고, 지금은 외국과 4년 벌어진 걸 2년 정도로 당긴 상태로 보인다. 콘텐츠 산업은 스타트를 먼저 끊는 게 중요한데, 2년 뒤쳐진 거 따라잡기는 정말 어렵다. 그 와중에 정부는 입에 재갈만 물리려고 하니 답이 없고.




■ 경희대학교 교수

교수가 된 사연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은 그리 거창하지 않았다. 업계에 있을 때도 강단에 서는 꿈을 꾸었고, 운이 따라줘서 교수가 될 수 있었다고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또, 회사에서는 하기 어려웠던 지식 공유. 그리고 여기에서 행복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내가 교수 된 거는 참 운이 좋았다고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게임하이에서 일하고 있으면서도 한쪽으로는 교수 되는 거에 관심이 많았다. 정확히는 내 나이 마흔다섯에 교수 되는 게 목표였다. 그런데, 박사논문을 심사해주시던 교수님께서 그러시더라. 마흔둘 이전에 교수가 안되면 포기하라고. 나이 많은 사람은 안뽑는다고. 그래서, 큰 욕심 부리지 않고, 한쪽으로는 공부하면서 한쪽으로는 학계에 계속 관심을 두고 있었다.

경희대에 이력서 넣을 때 사실 큰 기대는 안 했다. 바로 전에 임용된 교수님이 SSCI 논문을 15개를 쓰셨다고 하더라. 그것도 3년 만에. 거의 논문 머신이라고 봐도 될 분이었다. 그런데 난 논문 3개가 전부였다. '이거 갖고 되겠어?'라는 생각이었고 그냥 연습 삼아 넣었는데, 덜컥 합격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전 교수님이 이론의 최고봉이니 이번에는 실무에 해박한 사람을 뽑자'고 했다더라. 회사에서 일한 경험이 크게 작용한 거다. 경희대는 2013년에 왔는데 와서 정말 많이 배웠다. 학교랑 회사는 다르니까. 문화도 그렇고, 해야하는 것도 다르고.


교수가 되어 행복하다 - "지식을 나눌수록 보람이 커진다."


교수가 되고 가장 행복한 게 지식을 공유한다는 것 자체다. 내가 아는 걸 남에게 알려준다는 거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그런데 회사 다닐 때는 이런 게 잘 안 된다. 지식을 비우면 공간이 생기고, 거기에 새로운 지식을 채우는 걸 반복하면서 총량이 늘어나는 법이다. 한데 회사에서는 당장 불이익이 생길까 하는 마음에 이걸 망설이게 된다.

그리고 신기한 게 또 있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오히려 더 배우게 된다. 이 분야에서 교과서를 제일 많이 보는 사람이 누구일 것 같나. 학생? 절대 아니다. 교과서 가장 많이 보는 사람은 교수다. 학생들을 가르치려면 이미 아는 거라도 다시 읽어야 한다. 다섯 번, 여섯 번 읽다 보면 뭔가 또 발견하게 된다. 이거 배우려고 초기에는 내 강의를 다 녹음해서 다시 듣고 그랬다. 요즘에는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지만, 학생들에게 새로운 개념을 알려주고자 계속 노력 중이다.

경희대 내에서는 국제캠퍼스 디지털콘텐츠학과가 그나마 게임산업과 연관이 있다. 나는 호텔관광학과 소속이라 큰 관계는 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우리 학과 졸업생 중에서도 게임 쪽으로 가는 친구들이 간간히 있다. 그러니 커리큘럼 제대로 짜야 한다. 좋은 인재 키워서 보내려면.

사실, 이거 관련해서 하고 싶은 건 많지만, 수요자는 내가 아니라 학생이다. 그리고 학교라는 게 그렇게 쉽게 바뀌진 않는다. 천천히 시간을 두고 가르칠 거 넣어 보고, 학생들이 원하는 거 추구하면서 조금씩 틀을 잡아가는 거다.




■ 게임산업, 그리고 미래

마지막으로 게임산업에 대한 전체적인 생각, 그리고 업계의 미래를 어떻게 예측하는지 물었다. 개인적으로 미래를 묻는 질문은 업계 관계자 인터뷰 때마다 꼭 하는 편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제각각의 특성으로 무장한 신제품이 속속 등장하는 시기. 온라인과 모바일, 콘솔 이후 게임업계는 어디를 주목해야 할까.



항상 그렇게 생각한다. 게임산업이 날 10년간 키워준 거라고. 어떻게 보면 빚을 진 거다. 지금 중국 게임들이 막 쳐들어오고, 규제도 날로 심해지고... 이런 어려움을 헤쳐나가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다.

게임산업 스스로 이 위기를 헤쳐나가는 건 무리다. 정책, 그러니까 법이 도와줘야 한다. 그러면서 게임사회의 어두운 면도 조금씩 고쳐나가야 하고. 그거 도움 주려고 강연 같은 데도 꾸준히 나가는 거다. 내가 아는 영역이라면 최대한 지식을 공유하는 게 좋다고 본다.

전문가는 특정의 스페셜리스트이지 않나. 그렇기에 조금만 몰라도 어려운 상황이 바로 온다. 사실 난 게임 심의나 등급 같은 분야는 거의 문외한이다. 예전에 참석한 토론회에 황승흠 교수님이 좌장으로 계셨는데 이 분은 등급 관련해서만 10년 이상 공부하셨더라. 그때 옆에서 정말 많이 배웠다. 좁은 분야 알고 있다고 잘난 체 하면 안 되겠더라. 이후 한국콘텐츠진흥원의 등급 관련 자료에 대해서도 공부 많이 하고 있다. 파고들면 너무 깊은 분야이기는 하지만, 관심은 가져야 할 것 같았다.


다음 세대의 게임 - "가장 큰 잠재력은 '가상현실'에 있다."



게임 산업의 미래... 장기적으로는 잘 모르겠으나, 단기적으로 볼 때에는 가상현실(VR)에 있다고 본다. 게임이 다른 엔터테인먼트와 구별되는 것이 '경험'인데, VR은 이전에 대중화되지 않았던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PC 패키지 게임이 대세였을 적에 등장한 온라인 게임이 유저들에게 신선한 경험을 안겨준 것처럼. 예전에 엔씨소프트 배재현 부사장님이 어떤 컨퍼런스의 기조연설에서 '기존과 다른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게임에서 중요하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나도 그게 맞다고 본다.

클라우드 서비스도 화제가 되고 있는데, 이건 솔직히 잘 모르겠다. 클라우드는 다른 경험이 아닌, 환경만 제공하는 구조다. PC 업그레이드 안 하더라도 고사양 게임 즐기게 해주는 시스템 아닌가. 장벽을 없애는 거지, 새로운 경험을 주는 것은 아니다. 사용자층이 바뀌진 않는다는 거다. 스마트 TV도 마찬가지다. 판을 뒤집긴 어렵다.

VR에 단점이 있다면 아직 이렇다 할 킬러 콘텐츠가 없다는 거다. 그런데 이걸 바꿔 말하면, 뭐 하나가 터진다면 그야말로 대박이란 뜻이다. 이브 온라인 만든 CCP가 '발키리'를 킬러 콘텐츠로 세우려는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고 생각한다. 선구자를 꼭 FPS쪽에서만 찾을 이유는 없다고 본다.

페이스북도 VR에 엄청나게 투자했는데, 난 이걸 순진하게 바라보는 사람이 이상해 보인다. 당연히 의도가 있는 것 아닌가. 혁신은 5년마다 나왔다. 가장 최근에 나온 혁신이 스마트폰이다. 이게 활성화된 지 약 5년 됐고, 이제 다음 것이 나올 차례다. VR과 홀로렌즈가 가장 높은 가능성을 갖고 있지만, 아직 국내 게임업계는 이들을 보수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콘솔 기반의 게임시장이라면 VR의 대입 모양새가 그려진다. 그런데 온라인, 모바일 위주인 한국 게임시장에서는 아직 명확한 그림이 나오지 않는다. 이를 빠르게 연구하고, 한 발짝 먼저 나아가는 게임사가 크게 주목받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