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처음으로 디 인터내셔널5(The International5, 이하 TI5) 본선 무대에 진출한 MVP 피닉스는 8강이라는 성적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목표가 8강이라는 말은 했지만, 이런 성적을 실제로 낼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었다.

MVP 피닉스, 아니 한국 도타2는 전 세계에서도 변방 중의 변방이었다. 전 세계가 도타 올스타즈 시절부터 치열한 경쟁을 벌인 반면, 한국에서는 도타 올스타즈가 대중화되지 않았기에 이렇다 할 팀 조차 없었다.

도타2로 넘어온 후에도 상황은 똑같았다. 세계 각지의 팀들은 도타 올스타즈 시절부터 10년 가까이 경험을 쌓은 반면 한국 팀들의 경험치는 0이었다. NSL에서 강세를 떨치던 스타테일, FXO 등은 슈퍼매치에서 해외 팀들을 상대로 어린 애 손목 비틀어지듯이 손쉽게 무너졌다. 훗날, '마치' 박태원은 '당시엔 외국 팀들이 왜 밴픽을 이렇게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고 고백했다. 그 정도로 한국 팀과 해외 팀의 수준 차이는 극심했다.


KDL이 열린 후에도 한국 팀은 소위 '한물간' 해외 선수들이 모였다는 제퍼를 상대로 단 1승도 거두지 못하며 시즌1 우승을 넘겨줬다. 중반 운영을 할 줄 몰라 제퍼에게 역전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일부 팬들은 '한국 팀은 발전이 없다'며 화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MVP 피닉스를 비롯한 한국 팀들은 제퍼를 상대하면서 운영법을 터득했다. 넘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제퍼를 넘고, 스타래더를 시작으로 각종 해외 대회에 조금씩 얼굴을 비추면서 꿈도 못 꾸던 동남아 2티어 팀들까지 잡기 시작했다.

여전히 중국, 서양 강팀에게는 한없이 약했지만 동남아 내에서 한국 팀의 지위는 꾸준히 상승했다. TI4 동남아 예선에서 MVP 피닉스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성적을 거두며 승승장구했다. 비록 애로우 게이밍을 넘지 못했지만 와일드카드전 진출에 성공하면서 사상 처음으로 시애틀 땅을 밟게 됐다. 슈퍼매치에서 일방적으로 얻어맞은지 불과 6개월 만의 일이었다. MVP 피닉스는 TI4 와일드카드전에서 VP를 꺾는 이변을 일으키며 자신들의 성장을 세계에 알렸다.


잘 성장하던 한국 팀에게도 위기는 찾아왔다. 2015년 2월 펼쳐진 도타2 아시아 챔피언쉽(이하 DAC)에서 MVP 피닉스는 초청 팀 자격으로 참가했으나 1승 14패라는 최악의 성적을 거두고 말았다. DAC가 끝난 후 기존의 MVP 피닉스는 분해되고 선수들은 2개의 팀으로 찢겨지고 말았다. TI5 예선이 불과 3개월 가량 남은 시점에서 일어난 최악의 참사였다. 아무리 팀이 리빌딩이 잘 되더라도 한국 팀에게는 시간이 부족했다.

그러나 걱정과는 달리 MVP 피닉스와 MVP 핫식스는 독자적인 팀 컬러를 만들며 각각 생존에 성공했다. 팀 리빌딩 이후 공식전이 워낙 많지 않았던 탓에 실전 감각 저하가 우려됐지만, TI5 동남아 예선에서 양 팀은 타 동남아 팀들을 압도하고 나란히 각 조 1위를 기록했다. MVP는 동남아 예선 최종 결승전을 형제 팀 내전으로 만들었고 MVP 핫식스가 TI5 본선 직행, MVP 피닉스가 와일드카드전 진출을 달성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MVP 피닉스의 TI5 행보

① 2015. 7. 26 와일드카드전 1경기 VS 팀 아콘 2:1 승
승자전 VS CDEC 0:2 패
최종전 VS 베가 스쿼드론 2:1 승

② 2015. 7. 27 ~ 7. 30 A조 그룹 스테이지
VS 컴플렉시티 0:2 패
VS 나투스 빈체레 1:1 무
VS LGD 0:2 패
VS 프나틱 1:1 무
VS C9 0:2 패
VS iG 2:0 승
VS 팀 시크릿 1:1 무

③ 2015. 8. 3 본선 플레이오프 패자전 1라운드
VS 뉴비 1:0 승

④ 2015. 8. 4 본선 플레이오프 패자전 2라운드
VS 엠파이어 2:0 승

⑤ 2015. 8. 6 본선 플레이오프 패자전 3라운드
VS VG 0:2 패



와일드카드전에 진출한 MVP 피닉스는 팀 아콘, 베가 스쿼드론과의 경기에서 이따금씩 불안한 모습을 보였고, 본선 첫 경기에서 약체로 생각되던 컴플렉시티에게 패하면서 걱정을 자아냈다. 그러나 형제 팀 MVP 핫식스가 그룹 스테이지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사이 MVP 피닉스는 조금씩 경기력을 회복하면서 iG를 2:0으로 꺾고 최강자 팀 시크릿과 무승부를 기록하는 등 점점 상승세를 탔다.

MVP 피닉스는 본선 플레이오프 패자전 1라운드에서 TI4 챔피언인 뉴비를 꺾었고 2라운드에서 전투의 제왕인 러시아의 엠파이어를 2:0으로 잡는 대이변을 연출했다. 일부 해설자는 와일드카드 꼴찌로 탈락할 것이라 예상했던 MVP 피닉스가 단순히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실력으로 TI 8강권에 들었음을 입증한 것이다.

첫 국내 도타2 리그가 열린지 2년도 되지 않아서 한국 팀은 10년 뒤처진 경험치를 거의 따라잡았다. '마치' 박태원은 은퇴 전 마지막 무대에서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고 아름답게 떠나게 됐다.

앞으로 한국 도타2는 박태원이 없는 상황에서 더 큰 인원 변동을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척박한 환경에서도 TI 8강이란 성과를 올린 현 상황이라면 앞으로 더 높은 곳을 바라보는 것만이 꿈은 아닌 것 같다. MVP 피닉스의 위대한 도전을 보고 자극받은 유저들의 더 활발한 참여가 이루어지면서 한국 도타2가 더 높은 TI 무대를 노릴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