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경기를 선정해 MVP를 받지 못한 선수의 시점으로 경기를 분석해보는 '뻔한 이야기.' 2화의 주인공은 최근 잘 쓰이지 않는 야스오를 선택해 좋은 모습을 보였던 삼성의 미드 라이너 '크라운' 이민호다.


삼성은 예전부터 야스오를 잘 다루는 미드 라이너가 많아 '야스오 명가'라고 불렸다. 지금은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다데' 배어진과 '폰' 허원석이 야스오를 정말 화려하게 잘 다뤘다. 이 두 선수가 팀을 나가기도 했고, 야스오가 꾸준히 너프의 철퇴를 얻어맞으면서 삼성의 야스오는 서서히 희미해졌다.

하지만 삼성은 여전히 야스오 명가의 이미지를 이어갈 수 있었다. 바로 CJ 엔투스와의 대결에서 이민호가 보여준, 화려하진 않지만,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한 야스오에 의해.


■ 밴픽 단계부터 경기 초반까지 신중했던 야스오

야스오를 아무리 잘 다루는 선수라고 할지라도, 상대 미드 챔피언이 무엇인지 보지도 않고 선택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너프를 당하기 전에도 야스오는 라인전에서 강력함을 드러내는 챔피언이 아니었다. 하물며 지금은 어떻겠는가? 이를 잘 알고 있던 삼성은 아지르와 빅토르를 모두 밴하고 '코코' 신진영이 어떤 챔피언을 고를 것인지 유심히 지켜봤다.

▲ 상대 조합을 다 확인하고 나서야

▲ 삼성은 야스오를 선택했다

신진영의 선택은 미드 룰루였다. CJ 엔투스는 이를 통해 쉔과 룰루, 알리스타가 주력 딜러인 칼리스타를 보좌해주는 조합을 완성했다. 그리고 이를 확인한 삼성은 이민호에게 야스오를 쥐여줬다. 저 상황에서 야스오는 엄청 좋은 선택은 아니었지만, 선수를 믿는다면 충분히 괜찮은 픽이었다. 야스오는 투사체 스킬 위주인 룰루를 상대로 라인전을 편하게 가져갈 수 있고, 한타에서도 상대 조합의 핵심은 칼리스타를 물기 좋았다.

야스오의 W스킬인 '바람 장막'은 활용도에 따라 엄청난 '사기 스킬'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민호의 야스오는 이를 경기 내내 입증했다. 첫 시작은 3분 10초쯤에 상대의 갱킹을 노련하게 피하는 장면이었다. '트릭' 김강윤의 니달리가 좋은 타이밍에 미드 라인 갱킹을 시도했다.

▲ 위협적인 갱킹에도 유유히 빠져나가는 야스오

하지만 야스오는 당황하지 않았다. '바람 장막'과 E스킬인 '질풍검'을 적재적소에 활용해 유유히 갱킹을 피했다.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갱킹을 피하는 모습 때문이었을까. 김강윤은 그 이후부터 미드 라인에 별다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이미 챔피언 상성 상 라인 주도권이 야스오 쪽으로 흘러가기 시작한 시점이었기에, 룰루 입장에서는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 이 격차는 경기 내내 좁혀지지 않는다

아무리 그래도 야스오는 성장이 필요한 챔피언이다. 그리고 그 성장력은 넓은 활동량에서 나오게 마련이다. 이를 위한 초석은 빠르게 라인전을 끝내는 것. 그리고 이민호의 야스오는 '큐베' 이성진의 마오카이 덕분에, 그 타이밍을 빠르게 앞당길 수 있었다.

▲ '큐베' 이성진의 전매특허

7분 20초경. CJ 엔투스가 탑 라인에 빠르게 뭉쳐 '3인 다이브'를 시도했다. 하지만 이성진이 누구인가. 수많은 타워 다이브 상황에서 엄청난 모습을 자주 보였던 선수가 아닌가. 이번에도 이성진의 타워 다이브 수비는 깔끔했다. 무려 1:3 상황이었음에도, '헬퍼' 권영재의 쉔을 먼저 쓰러뜨렸다. CJ 엔투스의 예상보다 마오카이는 시간을 잘 끌었고, 이를 확인한 삼성은 빠르게 상대 미드 1차 타워를 파괴, 야스오의 활동 반경을 넓혔다.

라인전을 일찌감치 끝내며 성장 기반을 빨리 마련한 야스오. 룰루 혼자로는 이를 막기 힘들었다. 그 단적인 예가 경기 시작 이후 약 12분 35초에 나왔다. 라인을 정리하던 야스오가 갑자기 미니언을 타고 룰루 쪽으로 빠르게 접근했다. 이미 룰루는 체력도 적고, 마나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뒤로 점멸을 활용해 빠져나갈 수밖에 없었다.

▲ 룰루로는 야스오를 막을 수 없었다


■ 발이 풀린 야스오의 선택 '룰루를 막아라!'

상대 미드 1차 타워를 빠르게 파괴한 야스오는 발이 풀리기 시작했다. 상대 룰루를 지속해서 압박하기 위해 라인도 빠르게 밀고, 상대 정글 몬스터도 빼앗았다. 야스오가 먼저 로밍을 시도할 수 있는 상황을 스스로 만들어내자, 삼성은 마음 놓고 이니시에이팅을 시도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봇 라인 한타 대승을 통해 승기를 잡기 시작했다.

▲ 팀원들의 운영을 위해 룰루를 전담 마크하는 야스오 (미니맵 참고)

물론, 실수도 있었다. CJ 엔투스가 삼성의 봇 1차 타워를 강하게 압박하던 15분 8초경, 야스오가 룰루에게 일기토를 신청했다. 이로 인해 상대 봇 라인 압박 과정에서 활용됐어야 했던 쉔의 궁극기가 룰루에게 강제됐다. 봇 라인을 압박하던 CJ 엔투스의 나머지 선수들도 압박을 풀고 미드 라인으로 향했다.

목적을 달성한 야스오는 이제 후퇴해야 했다. 하지만 킬 욕심이 났던 모양이다. 룰루를 빠르게 제압하기 위해 앞으로 점멸을 활용했던 것이 실수였다. 당연히 야스오도 쓰러지고, 삼성의 미드 1차 타워도 파괴됐다. 그래도 괜찮은 플레이였다.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상대의 전략을 카운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뛰어든 시도는 칭찬할 만하다.

▲ 야스오의 과감함에 봇 라인 압박을 풀고 마는 CJ 엔투스 (미니맵 참고)


■ 주인공보다 조연을 선택한 야스오의 무서움

삼성이 조금씩 승기를 잡아가던 24분 50초경. 드래곤 근처에서 대규모 한타가 열렸다. 삼성이 먼저 상대를 물었다. '레이스' 권지민의 브라움과 이민호의 야스오가 궁극기 콤보를 작렬했다. 일찌감치 칼리스타를 잃고 패색이 짙어진 CJ 엔투스가 잘 반격해 비슷한 상황이 전개됐다. 상대 쉔을 쫓아간 야스오의 선택이 살짝 아쉬웠다.

▲ CJ 엔투스의 저력

하지만 실수는 만회하면 되는 법이다. 야스오는 이를 제대로 해냈다. 26분 8초쯤에 또 한 번의 드래곤 지역 한타가 열렸다. 이미 드래곤을 가져간 CJ 엔투스는 다소 위험한 위치에 있던 상대 야스오를 집요하게 노렸다. 여기서 야스오의 '바람 장막'이 신의 한 수로 작용했다.

▲ 잘 보이진 않지만... 절묘한'바람 장막' 활용

절묘한 위치에 생성된 '바람 장막'이 상대 대미지를 모두 받아내는 사이, 삼성의 나머지 팀원들이 CJ 엔투스의 챔피언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심지어 야스오는 끝까지 살아남으며 한타 승리에 힘을 제대로 보탰다. 이미 야스오에게 주력 스킬을 모두 사용한 CJ 엔투스는 한타에서 대패하고 말았다.

▲ 적은 체력으로 살아가는 야스오

위에서 언급한 한타에서 대승을 거둔 삼성이 경기를 끝내려 했다. 34분 33초에 마지막 한타가 시작됐다. 야스오는 상대의 이니시에이팅에도 침착하게 상황을 지켜봤다. 그리고 적절한 시기에 상대 칼리스타와 룰루 앞에 '바람 장막'을 생성했다. 이는 CJ 엔투스의 딜로스로 이어졌고, 칼리스타와 룰루는 장막이 없는 곳으로 이동해야 했다.

▲ 룰루와 칼리스타를 방해하는 '바람 장막'

하지만 이는 야스오의 설계였다. 상대 주력 딜러를 자신이 원하는 위치로 옮기는 데 성공한 야스오가 순식간에 파고들어 칼리스타를 공중에 띄웠다. 그리고 칼리스타는 공중에서 야스오에게 심각한 대미지를 한 번 더 입었다. 칼리스타를 잃은 CJ 엔투스에게는 대미지를 넣어줄 딜러가 없었다. 결국, 삼성이 한타 대승과 함께 달콤한 승리의 단맛까지 손에 넣었다.

▲ "소리에게 돈!"


※ '크라운' 이민호의 야스오, 무엇을 잘했나?

1. 상대 조합상 룰루는 한타에 참여해야 했다. 룰루의 역할은 칼리스타에게 버프를 걸어줘서 한타 캐리력을 급상승시키는 것이었다. 이를 잘 알고 있었던 이민호의 야스오는 경기 내내 룰루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이로 인해 룰루는 합류해야 하는 타이밍에 아군들 쪽으로 가지 못했고, 삼성은 마음 놓고 원하는 운영을 할 수 있었다.

2. 아무리 좋은 스킬이 있는 챔피언이라고 해도, 그 활용도가 좋지 않다면 무용지물이다. 하지만 이민호의 야스오는 매번 적절한 스킬 활용을 선보였다. 특히, '바람 장막' 활용이 정말 좋았다. 상대 딜러 세 명이 모두 멀리서 무언가를 던지는 챔피언이었다. 이를 막기에 야스오의 '바람 장막'만큼 좋은 것이 또 어디 있겠나.

3. 아무리 캐리력이 좋은 야스오도 혼자 뭔가를 하려고 하면 망하기 쉽다. 이민호의 야스오는 이를 잘 알고 있었다. '구' 삼성의 두 미드 라이너처럼 야스오로 뭔가를 화려하게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민호는 주인공보다 조연이 되길 원했다. 비록 몇 번의 실수는 있었지만, 필요한 순간마다 팀원들을 돕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대부분의 사람은 캐리력이 출중하고 스킬이 화려한 챔피언을 잡으면 캐리 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이민호도 분명 욕심이 있었을 것이다. 본인 손에 들려 있는 챔피언이 화려함과 캐리력의 상징, 야스오였다. 심지어 '다데' 배어진과 '폰' 허원석이 야스오로 경기를 캐리한 적이 많았다. 하지만 이민호에게는 개인 욕심보다 팀의 승리가 우선이었다. 화려하진 않았지만, 정확한 움직임과 스킬 활용으로 팀원들을 제대로 도왔다.

- 경기 화면 출처 : OGN 방송 화면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