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벤 게임 컨퍼런스의 대미를 장식한 김형태 대표의 강연은 정말 깔끔했습니다. 오히려 마지막 강연이라 조금은 더 길어질 것 같기도 했는데, 너무 깔끔하게 마무리되어서 좀 신기했죠. 그런데 웬걸요. 강연에 끝에서 그는 해맑게 웃으며 "전 이런게 좋더라고요. 그래서 이 시간을 좀 길게 잡아달라고 했어요."라며 QnA시간이 시작됐습니다.

마지막 시간임을 이용해 그는 청중들에게 다양한 질문을 받고, 거기에 성심성의껏 답변했습니다. 강연이 종료된 후에도 정말 긴 시간동안 진행된 QnA였지만, 많은 청중들이 남아있었죠. 그리고 질문해준 유저들에게는 이벤트로 화집을 선물하기도 했고, QnA가 끝난 후 청중들에게 사인을 해주기도 했고요.

유익한 내용이 많았던 QnA, 김형태 대표가 강연 후에 진행한 일문일답을 정리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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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프트업의 김형태 대표


Q1. 저는 일러스트를 공부하는 학생입니다. 일러스트레이터로서 항상 활동하는 중에 좌절했을 때의 이야기가 궁금해요.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그런 계기라던가, 그런 게 따로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이제 대표가 되셨는데, 게임 개발에 대해서 참여하시는 부분도 알고 싶습니다. 혹시나 그래픽 디자이너나 일러스트레이터가 여기 참여하는 건 월권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요.

=음, 첫 번째 질문에 답변을 드리면...슬럼프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슬럼프가 오는데...이건 누구나 다 올 거에요. 프로그래머나. 기획도요. 일단 업계에 발을 들여놓았으면 프로잖아요? 그러면 습관을 들이시는 게 중요해요. 슬럼프에 빠져도 손을 멈추지 않는 습관이 아주 중요해요. 그림을 계속 그리거나, 그래픽 디자인을 계속하는 거죠. 전 작품으로 해소가 되는 게 슬럼프라고 생각해요. 손을 놓지 않는 버릇을 들이는 게 제일 중요하고요.

두 번째 질문은 월권이라…그래픽 디자인하면서 월권 아니냐 하는 거죠? 아주 중요한 질문이에요. 그래픽 디자이너가 창업을 못하는 이유는 바로 개발에 대해서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것 때문이에요. 하지만 그래픽 디자이너도 엄연히 개발자입니다.

게임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여러 가지 직군이 있겠지만, 개발에 대한 이야기를 남의 얘기라고 생각하지 않는 게 훨씬 중요해요. 월권이라고 생각하면 안돼요. 내 게임에서 이렇게 돼야 하지 않나? 게임은 이래야 하지 않을까? 내가 만든 캐릭터는 이렇게 디자인 된 건데, 이런 행동을 하는 게 맞지 않나? 하는 질문요.

물론 커뮤니케이션의 방법도 중요하죠. 절대로 화를 내지 말아야 하고요. 내가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해야 해요. 제작 당시의 의도는 무엇인가? 그걸 내가 훨씬 더 좋게 만들어주겠다. 이런 식으로 대화를 많이 해야 해요.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주로 작업할 때 혼자서 하시잖아요?

전 강연에서 이상균 디렉터님도 커뮤니케이션을 이야기했잖아요. 그건 되게 자주 일어나는 거에요. 그래픽 디자이너는 커뮤니케이션이 적어요. 그걸 극복하는 게 숙명이자 영원한 숙제입니다. 더욱 게임에 대해서 이해를 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요. 그게 도움이 많이 됩니다.


Q2. 지금 개발 중인 게임 언제 나와요?
=아, 게임이요?! 음. 대단히 중요한 질문이죠. 다른 강연에서는 마지막에 게임을 짤막하게 홍보도 하시더라고요. 어…저희는 아직 홍보할 만큼 완성이 되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늦지 않게 소식을 알려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늦으면 연말, 빠르면 이번 달 정도요? 어떻게든 소식을 알려 드릴 수 있도록 할게요. 아 참, 아까 PPT에서 보여 드린 캐릭터들이 다 게임에 나오는 캐릭터들이에요.

...저런 부담스러울정도로 매력적인 다리를 가진 녀석이 나오는 게임?!

Q3. 전 이제 게임 쪽에서 창업에 대해 많이 고민하는 상태입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는 매출이 게임 내에서 이뤄지는 게 대부분이기 때문에 경제적인 위기나 그런 비슷한 위기가 많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게임 외적인 상품이나, 오프라인 이벤트라거나. 관련 굿즈를 만들어 판다거나 하는 등 다른 방식의 수익창출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요즘 스타트업의 화두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잇는 시장의 개척. 이게 요즘 벤처 기업들의 화두에요. 게임 업계는 거기서 아주 열외 되어 있죠? 게임은 오프라인으로 갈 껀덕지가 없잖아요. 온라인 플레이에서 경험부터 보상까지 모든 게 끝나죠. 이런 상품들을 머천다이징이라고 하죠?

게임에 관련된 여러 가지 상품을 개발하는 것에 필요성을 느끼고 있지만, 그걸 전문으로 소비하는 유저층과 생산하거나 개발하는 업체들이 아쉽게도 아직 우리나라에는 적어요. 대부분 어린이, 유아용 정도에서 한계가 나오죠. 그런 경우는 일본이나 미국이 좀 부러워요.

하지만 그것만 기대해서 매출을 기대하긴 힘들어요. 저희도 지금 게임을 만들면서 이게 다른 형태로 어떻게 시장을 형성할 수 있는 물건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요. 게임 나올 때 그런 부분을 챙겨보려고 좀 더 노력하고 있어요. 제가 해보지 않아서 이야기는 힘들지만, 가능성은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의존하기는 어렵죠. 메이플스토리 같은 사례는 좀 특이한 것 같아요. 저는 수익 의존은 게임 베이스를 가지고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 때 상품에 코드를 넣어 아이템을 획득하는 방식의 모델이 유행했었죠? 게임 내에서 바꾸는 쿠폰같은거요. 그런 방식도 약간 화두에요. 좀 네거티브 하지만. 스토어안에서 파는 재화를 구글이나 애플을 거치는 게 아니라 외부를 통해 들어오잖아요. 그런 경우는 수익률 배분 같은 부분에도 문제가 있어서…애플은 그런 상품에 엄청 큰 태클을 걸었죠. 최근에 '몬스터 스트라이크'가 그거 때문에 한동안 마켓에서 제품이 내려간 적이 있어요. 이런 것들은 조심해서 풀어나가야 할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Q4. 계약서 내용에 따라서 게임이나 회사의 주식 독소조항을 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주의해야 될 내용이 대단히 많은데……한 100개쯤 들어 있어요. 저는 어떻게 했느냐면요. 지금 모두 아시다시피 저희는 넥스트플로어와 퍼블리싱 계약을 맺고 있어요. 저희한테 우호적인 투자를 해주셨고요. 제가 하는 제안을 거의 다 받아주셨죠. 가장 쉬운 건 계약서를 얇게 만드는 거에요.

내가 모르는 말이 쓰여있는 걸 줄이는 게 중요해요. 나중에 작성해도 될 부분은 과감히 빼요. 이해할 수 있는 부분만 남겨두고 먼저 계약을 하고 디테일한 계약을 잠시 보류하는 거죠. 투자 및 퍼블리싱같은거는 퍼블리싱은 추후에 논의한다. 이런 식으로 줄이면 변호사 비용이 적게 듭니다.

주의해야 할 부분은, 음…개발 기간이 초과되는 때의 부분이에요. 개발기간이 초과되면 퍼블리셔는 이미 자금과 시간도 다 치렀잖아요? 그러면 오히려 퍼블리셔 측에서 요구하는 게 많아요. 근데 그건 개발사가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돼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개발기간이 늘어나면, 그 비용은 퍼블리셔와 개발사가 공동으로 부담한다라던가, 다시 논의한다는 식으로 써 보시는 게 어떨까요? 잘못해서 개발 기간이 넘어가면 수익을 제하는 예도 있어요. 그런 계약서도 있어요. 그런 것들을 조심해서 빼야 돼요. 게임 개발은 정말 유동적이니까요.

그리고 음...타이틀 IP에 대한 소유권이라든지, 문제가 생겼을 때 그걸 해결하는 주체에 대해서도 명확히 할 필요가 있어요. 어떤 계약서에는 트러블이 생겼을 때, 퍼블리셔 측에서 그 IP를 만들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다. 조항도 있었어요. 그리고 작은 부분에서 도움 주는 계약서였는데 그것으로 상품에 대해 운영권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계약서도 나올 수 있어요. 그런 걸 조심해야겠죠.

다시 한 번 계약서가 정말 중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Q5. 이것만큼은 기획자가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제안할 때 피해야 한다. 혹은 조심해야 한다는 그런 몇 가지 팁이 있을까요?
=기획자가 일러스트레이터에게…음…그런 거는…음…뭐, 예를 들면 그 사람이 뭘 그리는지. 무엇에 자신이 있는지 파악해서 전혀 상관없는 일을 맡기는 거만 피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이거도 프로그래머와의 관계와 비슷해요. 캐릭터 원화를 다 그렸어하고 드렸는데, "오! 이거 얼굴 각도가 45도 돌아갔으면 좋겠는데요?" 하면 그림 그리는 사람은 그냥…빡도는 거죠. 3D도 아닌데.

차라리 작품의 의도를 설명하고, "중간에 언제 한 번 보여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이야기해보세요. 다 작업을 하고 고치게 되는 걸 막는 게 중요해요. 그리고 전혀 엉뚱하게만 요구하지만 않으면 될 것 같아요.


Q6. 이제 사장이시면서 그래픽 디자이너시잖아요? 다른 분야에 대해 공부를 하더라도 프로페셔널한 분들보다 정보량이 부족한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같은 그래픽 하는 사람들이 모델링과 원화의 트러블이 많다고 듣기도 했고요. 그런 의견 차이가 어떻게 풀어나가시나요? 아니면 이런 트러블이 일어나지 않도록 작업에 신경 쓰시는 부분이 있나요?
=음, 전문성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자면요. 음 만약에 내가 AD가 되고 싶다고 한다면 관련된 대부분의 정보량에 대해서는 뒤지지 않게 습득하는 게 중요해요. 내가 만약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고 싶다 하면 일러스트레이터로서 확실하게 입증할 수 큰 기둥을 만들어야 해요. 그런 게 있다면 나머지가 안되더라도 신뢰를 줄 수가 있어요. 내가 하나 확실하게 꽉 잡고 우산 펼치듯 다른 분야의 지식도 높여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 전문 분야가 아닌 부분에서 부족한 건 상대방도 이미 알아요. 내가 모르는데 우기면서 맞다고 주장할 필요는 없죠. 솔직하게 난 이거 잘 모른다, 설명 좀 해달라. 이렇게 설득을 하는 게 중요해요. 그림 그리는 사람도 게임 개발에 깊이 관여하고 싶다면 중요한 건 커뮤니케이션스킬이에요. 거짓말할 필요가 없어요. 모르는 건 모른다고 하고 도움받을 건 도움받으면 돼요.

게임 개발하는데 자신이 개발하는 것 말고 모르는 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 됩니다.


어…트러블에 관해서도 질문하셨죠? 그건 음…그 자리에서 곧바로 대답하지 않는 것? 어떤 부탁을 했을 때 그림 그리는 사람이 곧바로 어렵다고 말하면 다음부터는 부탁하기가 어려워요. '어렵겠지만 생각해볼게요' 처럼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는 게 중요해요. 그래야 다음에도 부탁하죠. 저 사람에게 부탁해서 일이 되진 않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할 테니까 한 번 다시 부탁해보자. 이렇게 되겠죠.

그런데 그냥 바로 "이건 어렵겠는데요. 폴리곤이 어쩌고저쩌고…"이러면서 거절해버리면 그다음부터는 부탁하기가 어렵죠. 그런 부분들을 즉답으로 거절하지 않고 커뮤니케이션하는게 중요합니다.

모르는건 솔직하게 인정하고 도움을 받읍시다!

Q7. 창업에 대한 부분이 궁금합니다. 일러스트를 그리는 입장에서 창업을 하실 때, 기획자나 프로그래머가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러스트레이터로 창업하면서 다른 프로그래머나 기획자와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 궁금해요. 그리고 일러스트레이터가 창업을 할 때 어떤 장점이 있는지도요.
=아쉽게도 창업을 할 때 가장 불리한 게 그래픽 디자이너죠. 왜냐면 음…아까 말했던 것처럼 솔로로 작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요. 동종 직군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이 강한 경우가 많아요. 외주도 있고 하니까 직접적으로 게임을 만드는 게 연관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그 부분은 아쉽게도 직군상 불리한 거죠. 그건 인정을 하고요.

어느 순간 깨달음을 얻게 돼요. 지금은 5년 차 정도다? 하면 내 직군에서 능력을 키우는 게 우선이고요. 내 분야가 아닌 곳에서도 커뮤니케이션을 해보세요. 아까 말했던 것처럼 주인 의식을 심어줄래도 안면이 있어야 하잖아요? 아는 사람들을 만드는 것도 중요해요. 우리나라는 게임 업계는 회사를 한 두 번 옮기다 보면 다시 많이 만나요.

저도 처음에 그게 괴로웠어요. 저도 말없이 그림 그리는 스타일이었거든요. 메일로만 진행하다가 후회한 적도 많이 있죠. 더 커뮤니케이션을 해볼걸. 친분을 쌓아둘 걸 하고요. 그게 힘들다고 하면 지명, 액면으로 드러나는 실력을 키우는 게 좋죠. 같이 하고 싶은 사람이 되는 거겠죠? 그러면 같이 할 수 있겠죠. 어느 쪽도 쉽다고 할 수 없지만 선임자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습득하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자신이 누군가와 같이 일하고 싶다면, 스스로가 누군가가 같이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해요.


Q8. 아트디렉터로서 많은 경력을 쌓으셨잖아요? 창업을 하시면서 와닿았던 일이나 슬럼프도 있으셨을 텐데, 너무 힘들다 했을 때 극복할 수 있었던 계기가 있을까요?
=제가 업계 들어온게 96년도에요. 98년도에 소프트맥스에 들어갔어요. 그때는 진짜 코찔찔이 철부지였죠. 그렇지만 그림을 미친듯이 그리던 시절이에요. 당시에 좋은 인상을 받았던 분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최근에 그분이 15년 동안 다른 곳에서 일하시다가 저희 회사의 부사장님이 되셨거든요. 저도 그런 인연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우연한 인연이 우연한 계기로 다시 만나서 큰 기여를 해주시거든요. 그런 분들이 되게 많아요. 다른 곳에서 기획자로 만났던 분이 어쩌다보니 우리 회사에 들어와있어! 무, 물론 그 당시 제가 나쁜 짓은 안했으니까 저를 다시 보셨겠죠?

초반에 만난 인연도 정말 소중해요. 그런 인연들이 아주 소중하니까 인간관계를 잘 쌓는 게 좋아요. 예를 들면 그런 거 있잖아요? 그, '블라인드' 앱을 볼 때 자주 나오는 말이라고들 하더라고요. 전 못봤어요. 엔씨소프트를 나오고 나서 알아서요. 회사 메일로 보내야하더라고요. 그곳에서는 누군지 모르니까 막 남이야기를 쉽게 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너무 당연하지만, 앞에서 못할 이야기는 뒤에서 안하는게 좋습니다.

가장 기본적인걸 지키면서 관계를 무너트리지 않으면 초반에 잠깐 만난 인연도 나중에 엄청난 힘이 될 수 있어요. 그게 제가 극복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된 것 같아요.


Q9. 기획자입니다. 회사를 차리면서 디렉팅도 관여하신다고 하셨는데, 저는 실무를 하면서 그래픽 디자이너가 직접 관여를 하는게 와닿지가 않아요. 리뷰 회의나 여러 가지 개발 단계, 기획 단계 등 모든 단계에 관여를 하시는 지 궁금해요.

그리고 어느 정도 관여하시는지, 아니면 특정 단계만 관여하시는지 궁금해요. 일정 같은 부분도 관리하시는 지도요.

=처음에는 사람이 없으니까 모든 것에 관여를 하게 돼요. 그런데 이게 계속 관여를 하게 되면 문제가 생겨요. 대표 혹은 특정인이 계속 관여하면 그, 보틀넥이라고 하죠? 콜라병의 윗부분 같은거요. 그렇게 일이 몰려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처리속도가 늦어지죠. 흔히 일을 먹고 안 뱉는다고도 해요. 일이 느려지고…그런 게 되기 쉽거든요.

너무 많이, 모든 걸 관여하면 위험합니다. 저도 처음에 그랬다가 사람들이 생기고 나서는 일들을 나눠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어떻게 참여하는지 상상이 잘 안 가신다고 하셨잖아요? 저도 자연스럽게 된 거라 설명이 좀 어렵네요. 음…

그것도 역시나 이야기로 시작해요. 개발자나 기획자가 기획서를 들고와요. 예를 들어 얼음 동굴 만들어야 한다, 얼음 동굴이 인스턴스던전이고 이거 그려주세요 하고 가져오면 저는 기획 회의를 하자고 해요. 그리고 이야기하다 보면 현실적으로 여기는 이거 가져다 써서 리소스를 절약하고. 이거는 새로 만들어야 하는 게 몇 개다. 이 설정이 있으니까 재미있게 디자인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식으로 같이 만들어나가는 분위기를 만들면 다음에 또 쉽게 이야기할 수 있거든요.

블소 처음 만들 때도 제가 처음 4인 중 하나였어요. 자연스럽게 기획을 할 수밖에 없었죠. 설정 일부, 시나리오나 전투 시스템 이런 데 총괄적으로 관여했으니까 나중에도 그런 부분에 참여하기가 쉬웠던 겁니다. 좀 더 회의해서 의도를 파악하고 의도 속에서 더 발전시킬 수 있는 걸 제안하는 식으로 커뮤니케이션을 만들어나가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Q10. 기획자 지망생입니다. 두 가지만 질문해볼게요. 가지고 있는 게임의 철학. 그리고 그림의 철학이 어떤 건지 알고 싶어요.
=철학이요?!

어…저, 저는…저는 얄팍한 철학을 가지고 있어요. 저는 남이 보고 칭찬해줬으면 좋겠다. 그런 그림을 그렸어요. 그러면서 여자친구가 없는 설움을 극복하고 싶었고요. 그래서 여성분들 많이 그렸죠. 음…그래서…철학은 깊이 없는데, 요즘은 좀 다른 생각을 해요.

다른 사람과 공감대를 이룰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나 혼자 보고 즐겁기보다는 남이 보고 즐거워했으면 좋겠다. 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다. 사람을 제가 주로 그리는데 그걸 보고 보는 사람도 상상하고 내가 보는 사람이 더 상상했으면 좋겠다 하고요. 그런 생각으로 그림을 그려요.

게임에 철학으로 가면 어려운 문젠데…저 같은 경우는 좀 옛날 세대에요. 솔로잉 게임을 많이 즐겼어요. 그래서 모험이 있고, 끝이 있는 게임에 대해 동경이 있습니다. 지금은 끝이 있는 게임을 만들 수 없으니까, 모험과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 꿈을 꿀 수 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다. 그런 게 철학까지는 아니고 목표라고 할 수 있겠네요.?

요즘 게임들은 시스템만으로 이뤄진 게임들이 많잖아요. 미니멀리즘으로 가져가서 시스템만 짜여 있는 게임들. 전 여기에 내러티브를 좀 추가하고 싶어요. 게임을 깔고 몇 번 좀 플레이하다가 시스템에 질리면 그만두는 게 아니고, 그 이야기가 더 나한테 와 닿을 수 있는. 그런 게임을 만들고 싶다. 그게 제 짧은 철학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Q11. 프로그래머로 시작해 기획자를 꿈꾸는 학생입니다. 게임을 만들어 보려고 세 명이 모였어요. 그런데 다 프로그래밍만 할 줄 알지 그림을 못 그렸거든요. 제가 코딩 실력이 그나마 좀 떨어지는 제가 그림을 맡게 됐고, 그러다 보니 세 명이 원하는 퀄리티는 안 나오고 감정만 쌓여서 안 좋게 헤어졌어요. 일러스트레이터로서 프로그래머가 꼭 필요할 타이밍에 사람을 못 구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그리고 저한테 조언도 좀 부탁드립니다…
=ㅇㅏ……이건 정말 어렵네요.

일단…힘내시고요. 그리고 뭐, 프로그래머 세 분이 모였다면 그거 자체가 좀 아쉽네요. 저도 그랬어요. 저도 주변에 다 그림 그리는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왜냐면 그림 그리는 사람이 말이 잘 통했으니까요. 그래픽 하시는 분들까지도 이야기가 잘 통했죠. 그분들하고는 이야기는 잘 통하는데, 기획이나 프로그래머분들과는 공감대를 형성할 일이 많지 않았어요.

저도 비슷했죠. 그런 분들을 알았어야 하는 깨달음을 좀 일찍 얻었어야 하는데.

지금 제일 활약해주시는 프로그래머는 제 아내인 꾸엠님이 지인으로 소개해주셔서 알게 됐어요. 저도 솔직히 말하면 여기 대답할 수 있는 위인이 못됩니다. 그냥 게임을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이 있으니까요. 공개된 장소에서. 게시판이라거나 그런 곳에서 사람들을 찾고, 그림 그리는 분들께 메일을 보내보세요. 같이 게임을 만들어보고 싶다. 우리는 이런 걸 만들고 싶고, 같이 만들 사람을 모집한다. 요즘은 인터넷이 잘 발달해서 사람만나는 게 쉽잖아요.

솔직히 말하자면요. 현실적으로 가능한 건 회사에 들어가는거에요. 거긴 게임을 만들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잖아요? 거기서 관계를 쌓아서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시작하는거죠. 회사에는 좀 안된 일이지만...그것도 나름 회사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해요.


Q12. 대학생입니다. 취업에 관련된거랑, 그림에 관련된 것. 커뮤니케이션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습니다. 대학생이라서 곧 2년 정도 후에 졸업 작품을 앞두고 있습니다. 원래 계획은 홀로 모바일 게임 프로토타입을 만들어보자는 계획이 있었어요. 그런데 좀 의문이 들었어요. 둘 다 해도 괜찮을걸까? 하고요.

지금 회사 대표님 입장에서 보기에는 취업을 하러 누군가 왔는데, 원화나 일러스트만 정말 잘하는 사람이 더 좋을지, 아니면 원화도 할 줄 알고 프로그래밍도 알고 두루두루 아는 사람이 좋을지…그게 궁금합니다.

=능력이 편중된것이 좋은지, 아니면 여러가지를 가진 사람이 좋은지는 어느 쪽도 정답이라고 할 수 없어요. 예를 들어서 테크니컬 디렉터. AD, 이런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전문성이 깊다기보다는 모든걸 아우를 수 있는 사람이 중요해요. 하지만 모델러, 원화가는 그 능력에 특화된 사람이 중요하겠죠?

다행히도 모바일 시장에서는 이것 저것 다 할 수 있는 사람이 좋은편이에요. 지금은 정답이 없어졌어요. 블소를 개발할때라면 더 명확하게 말씀드릴 수 있겠는데…지금은 좀 더 광범위하게 아는 사람이 취업이나 게임을 만드는데 유리한 상황이 됐어요.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겠네요.

누구나 게임을 만들수 있는 시대가 지나가면 그 중에서도 잘 만든 사람이 대박나게 되어있어요. 다시 조금 시간지나면 날카로운, 뾰족한 사람이 더 필요한 시대가 올 것이다고 예측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만약에 내가 그래픽을 하는데, 프로그래밍 능력이 있고 거기에 이해가 있어. 이러면 이건 정말 대단한 무기가 됩니다. 구현해야 되는 이유는 정확히 설명할 수 있고, 프로그래머의 답변에 대해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거든요.


Q13. 저는 그림을 그리면서 계속 기획을 했었는데, 전 프로그래머를 못 구해서 그걸 직접 공부하겠다고 마음먹었거든요. 프로그래머들이 모여있는 공개된 커뮤니티나 게시판 같은 곳을 아신다면 좀 알려주세요.
=프로그래머라...그건 제가 답변을 드리기 어려워요. 제가 PGR 같은 커뮤니티는 좀 다니긴 했는데, 제가 관련된 부분이 별로 없어서 활동을 거의 안했거든요. 아까 그, 프로그래머 세 분 모이셨던 그분께 여쭤보시는게 더 나을 것 같아요. 음…이렇게 서로 인연이 되는 거겠죠? 그러면 같이 게임도 만들고 하는거죠.


Q14. 색감을 표현할 때 어느 걸 보고 색감 연습을 하시는지 노하우를 좀 알려주세요.
=색감이라…음, 색감같은 경우는 좀 뜬금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색을 할 때 보통 빨간색 다음 주황, 뭐 이런 경우가 많이 있잖아요. 색은 옆으로도 펼쳐지지만 위아래로도 펼쳐진다는 게 중요해요. 한 색만으로 컬러풀하게 그릴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달까요? 명도 차이로 색을 표현할 줄 아는게 정말 중요합니다.

색을 두가지 이상 사용할때는 근접색, 보색, 근접보색 이런 걸 연구해보세요. 전 색의 온도 차이라고 생각해요. 보통 이런건 영화에 많이 쓰이죠? 이런 부분은 영화에서 감정적인 것을 표현할 때 많이 쓰여요. 그런 색감을 보고 배우고, 좋은 색감들을 자신의 그림에 적용해보는 건 어떨까요?


Q15.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창업을 한다고 했을 때 주변의 시선은 어떠셨나요? 부정적으로 보시는 분들이 있지는 않았나요?
=누구도 그런 말은 안 할거에요. 창업하지 말란 법은 없잖아요? 단지 일러스트레이터나 그래픽 디자이너의 창업 사례가 많지 않을 뿐이죠. 전 좀 더 그들이 창업할 수 있는 업계가 되면 좋겠어요. 그림을 그리는 분들이 더욱 전선에 나서서 게임을 개발했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이 개발자는 소신을 가지고 게임 개발에 관여하고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하면 좋겠어요. 그래픽하는 분들은 이직이 쉽잖아요? 그러니까 약간 잘 안되면 이직을 빨리하는 경우가 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그렇다고 이직을 빨리하지 말란 이야기는 아니고요.

게임에 좀 더 책임감을 가지고 하면 창업에 도움이 될 겁니다. 그래픽 디자이너나 일러스트레이터도 창업을 하기 어려운 시대도 곧 지나가지 않을까요? 저는 그럴 것 같다고 생각해요.


Q16. 저는 이제 막 일러스트를 배우게 된 입장인데요, 처음에 그림 그릴 때 도움이 될만한 경험이나 노하우 같은 걸 듣고 싶어요.
=그림을 시작한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이야기라. 음…뭐 너무 쉬운 이야기를 하자면 그림을 그릴 때 끊임없이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부끄러운 이야기인데, 전 괴롭다고 생각한 적이 별로 없어요. 단 한 번도 없던 건 아니지만. 필사적으로 뭐 그림을 밤새 연습하고 공부하고 뺨 때리면서 잠 안 자면서 그리는 건 없었어요. 그냥 그림을 그리다 보니까 늦게까지 안 자게 되고, 항상 재미있게 그렸던 것 같아요. 하지만 모든 게 즐겁진 않았겠죠.

그래도 어떤 경우일지라도 재미있게 그리는 게 중요하고요. 음, 이건 너무 쉬운 이야기네요.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요?

제가 그림을 그릴 때는 "이번 그림에서는 저번 그림에서 해보지 않았던 걸 해보자" 하던 때가 있었어요. 전에 하지 않았던 시도를 반드시 해보겠다. 그리고 다음 작품은 또 다른 시도를 하고. 예를 들어 노인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으면 그려보고, 그다음에는 여성 노인을 그려보고. 이번에 그리면서 역광을 시도해보자. 그려보고 역광이 재미있으면 좀 더 다양한 광원을 그려보고요. 그렇게 여러 가지 목표를 두며 그렸던 게 도움이 많이 된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그림을 보면서 많이 따라 그렸어요. 유명 작가분들의 컬러링을 보고 벤치마킹도 해봤고요. 얼마 전에 그 작가분을 만나서 제가 예전에는 선생님의 작품을 따라 그렸다니까 정말 좋아하시더라고요.

교과서라고 할까요? 좋아하는 사람들의 그림이나 다른 사람의 그림이요. 우리는 현실의 빛과 사람을 흉내 내서 그리잖아요? 그런 것 중에 정답만 모아놓은 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그림이라고 생각해요.

도용은 좋지 않지만 따라 그려보는 건 좋은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과정은 즐겁고 좋으니까요. 내가 좋아하는 걸 그려보니까. 그리고 그림을 그리다가 벽에 부딪히는 일이 있어요. "여기부터는 미술의 영역이다!"는 느낌이 오는 거죠. 그러면 그때부터 미술을 공부하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