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페토'

실무자로 게임업계에 입문하기 전, 한 사람의 게이머로서 게임을 좋아하던 시절에도 '제페토'라는 세 글자를 들어본 적은 있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어떤 회사인지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는 일견 긴밀해 보이지만 그리 밀접한 관계는 아니니 말이다. 제페토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된 것은 기자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홍대 근처에 'ZPC'라는 이름의 피씨방을 개업했다는 소식에
심을 가졌고, 제페토가 어떤 회사인지 알아보았다.

제페토는 전형적인 수출형 게임사였다. 밀리터리 FPS 붐이 불 당시 게임을 만들었지만, 거칠기 짝이 없는 국내 시장에서 눈을 돌려 해외에서 성공을 거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알짜' 게임사 중 하나였다. 마치 중국에서 '크로스파이어'로 대박을 낸 '스마일게이트'나 '오퍼레이션7'로 중남미 시장에서 먹어주는 '파크 ESM'과 같이 말이다. 제페토는 '포인트블랭크'로 동남아와 중남미 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게임사다.

지스타2015에서 '제페토'와의 만나게 된 계기는 약간 뜻밖이었다. 게임시장의 대세인 '모바일'에
발을 담그게 되었다는 소식. 자체 개발 모바일 플랫폼인 '제페(ZEPE)'를 '배'로 삼고, 준비 중인 작품들을 '노'처럼 쥐어 파도가 넘실거리는 '모바일'의 바다에 뛰어들 준비를 마친 것이다.

'제페토'는 모바일에서 무엇을 본 것일까. 그들이 그리고 있는 제페토의 미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지스타2015'가 열리고 있는 부산 벡스코. 제페토의 부스를 방문해 김건우 모바일 사업 본부장과 대화를 나눠 보았다.

▲ 제페토 김건우 모바일 사업 본부장


궁금한 점은 많았다. 온라인 FPS를 주로 다뤄온 제페토가 어째서 '모바일'에 뛰어들게 되었는지, 어떤 전략을 세웠으며,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지. 머릿속에 수많은 질문이 맴돌았다. 이쯤 되니, 오히려 어떤 질문을 먼저 꺼내는 게 옳을지 혼동이 오기 시작했다. 수많은 인터뷰를 해 봤지만, 좀처럼 이런 적은 없었는데. 결국, 큰 그림을 먼저 그려보기로 했다. "제페토가 생각한 모바일 시장 전략은 어떻게 되나요?"

사실 좀 부끄러운 질문이다. 더 세부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었건만. 시작부터 너무 포괄적인 질문을 던진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김건우 본부장은 이런 나의 우려를 금방 잠재워 주었다. 그는 '제페토'가 모바일에 발을 담그게 된 과정과 앞으로의 목표를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포인트블랭크 스튜디오를 맡고 있었어요. 포인트블랭크를 서비스하는 도중, 알지도 못하는 개발사가 포인트블랭크의 스크린샷을 무단으로 따다가 모바일 게임을 만들었어요. 진짜 간단하고 낮은 퀄리티의 게임이었는데, 그게 2주 만에 100만다운로드를 기록했어요. 사실 어이가 없긴 했지만 그때 모바일 시장으로의 확장에 가능성을 보았고, 우리가 가진 IP를 이용해 모바일 게임 시장에 나서 보자고 건의했죠.

시작은 '시도'에 가까웠다. '모바일'시장의 특이점은, 게임의 퀄리티에 관계없이 엄청난 보급률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제페토는 그 사실을 알았다. 매우 간단한 게임일지라도 게임을 내려받아 보는 이는 많다. 해보고 재미가 없으면 지우면 그만이니까. 제페토는 박차를 가했다. 그들은 모바일 시장 진출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짜기 시작했고, 동시에 행동에 들어갔다.

구체적인 계획은 이러했어요. '포인트블랭크'의 IP를 사용해 다양한 작품을 만들되, 전부 다 다른 장르로 만드는 것이죠. 그리고 다른 작품을 낼 때마다 '포인트블랭크' 하지만 각각의 작품들이 다른 플랫폼으로 나올 경우, 작품 간의 연관성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작품 간 크로스오버를 고려해 '플랫폼'을 만들기로 했죠. 동시에 다른 파트너사들과 계약을 맺어 빛을 보지 못하는 그들의 작품도 퍼블리싱하는 방향을 생각했어요.

▲ 현재 개발 중인 '포인트블랭크'의 모바일 판

대답을 듣고 나니, 또 다른 의문이 생긴다. 처음 말을 들었을때만 해도, 자체 개발 작품들을 서비스하기 위해 모바일 게임 시장에 뛰어드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웬걸? 파트너사의 작품들을 서비스하는 것은 전형적인 '퍼블리셔'가 되기 위한 행보다.

'공생'을 위한 수단이기도 해요. 제페토는 처음부터 막대한 자본으로 손쉽게 개발에 전념해온 회사가 아니에요. 작품을 준비하면서도 동시에 자금이 모자라 외주를 맡기도 하고, 여기저기 자금을 빌리러 다니던 시절도 있었죠. 때문에 '개발에 전념할 수 없는 상황'의 서러움을 잘 알고 있기도 해요.

때문에 힘든 날을 보내고 있는 인디 개발사들을 많이 만나보았어요, 그 중 우리와 함께할 뜻이 있는 개발사들에게 개발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좋은 작품을 만들어낼수 있도록 배려하고 싶었어요. 사실 그들이 잘 되야 좋은 작품이 나올 것이고, 그래야 그 작품을 퍼블리싱할 우리에게도 좋은 일이죠. 아까 말한 '공생'이 여기서 나와요. 제페토는 영세 개발자들이 개발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춰주고, 그들은 좋은 작품을 만들어 세상에 선보이죠. 아직 구체적인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이 선순환은 계속 이어가고 싶어요.

물론 저희가 이런 제안을 할 때, 거절하는 분들도 적지 않아요. '퍼블리셔'의 횡포에 개발사들이 역량을 모두 발휘하지 못하고, 그 때문에 작품이 망해버리는 경우는 게임업계에서 매우 흔한 일이에요. 그런 상황이 올거라 생각하는 분들이 보통 저희 제안을 거절하시곤 했죠. 하지만 저희는 '개발'이라는 항목 내에서 절대로 개발사들에게 터치를 하지 않아요.


▲ 링크타운의 '데몽 헌터2'는 '제페'로 서비스되는 첫 외부 개발사의 작품이다.

실제로 그런 사례는 많았다. 해외 게임업계만 살펴봐도 줄줄이 나온다. Eat All이라 불리며 개발사의 무덤으로 통하곤 하는 'EA', 그리고 메탈기어 시리즈의 대미를 말아먹어버린 '코나미'까지. 인디 스튜디오들의 고충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제페토는 그 부분을 꼬집고 있었다. 능력있는 개발사는 제대로 된 투자만 받을 경우 충분히 그 역할을 해내곤 한다. 게임계 '먹튀' 중 하나로 불리는 '존 로메로'가 '이온스톰' 시절 유일하게 잘했다고 평가받는 것이 '아이도스'로 하여금 '워렌 스펙터'에게 투자하게 한 일이다. 막대한 자금을 지원받은 워렌 스펙터는 '데이어스 엑스'라는 희대의 걸작을 만들어냈고 말이다. 이쯤 되니 제페토가 그리는 길이 살짝 보이는 느낌이다. 이제 구체적인 부분이 궁금해진다. 제페토는 어떤 시장을 노리고 있으며, 그 시장의 현 상황은 어떤지, 그리고 준비는 되어 있는지 말이다.

일단 우리가 목표로 잡고 있는 시장은 '동남아'에요. 나아가 '포인트블랭크'의 인지도가 쌓여 있는 중남미와 터키 정도를 내다 보고 있죠. 한국 사람들은 동남아의 모바일 게임 시장이 굉장히 구시대적이고, 낡았을 거라 생각하곤 하죠. 사실 동남아 시장이나 국내 시장이나 차이는 크게 없어요. 차이점이라면, 국내는 굉장히 뛰어난 네트워크 인프라가 갖춰져 있기 때문에 균등한 모바일 게임 보급이 가능하지만, 동남아 시장의 경우 아직 그 정도로 강력한 환경은 갖추지 못했다는 점 정도겠죠.

하지만 동남아 또한 개인의 경제 수준에 따라 얼마든지 빠른 속도의 네트워크를 이용할수 있어요. 이 말은 곧, 아직은 미약하지만 더 좋아질 잠재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는 뜻이죠. 실제로 동남아 모바일 게임 시장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어요. 제페토가 가지고 있는 강점은 동남아 시장을 굉장히 잘 알고, 그 시장에서 오랫동안 서비스를 해온 경험이 누적되어 있다는 거에요.

또 다른 타겟인 중남미 시장의 경우 조금 달라요. '포인트블랭크'를 중남미에 서비스할 당시, 우리는 '개발사'의 일을 했고, 현지의 퍼블리셔가 우리 게임을 서비스했어요. 중남미 시장에서 우리가 세운 전략은 '잘하는 것을 한다'예요. 때문에 현지 퍼블리셔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조율해나가게 될 것인데, 아마 공동 퍼블리싱을 하게 될 것 같아요.

중남미의 모바일 시장 상황 또한 동남아와 유사한 환경이라 보면 될 것 같아요. 아직 완벽한 인프라가 갖춰진 것은 아니지만,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죠. 한국은 엄밀히 말해 아직까지 서비스 대상에 포함되어있지 않아요. 우리 회사는 전적으로 해외 시장에서 성공했고, 우리가 가진 장점도 해외 서비스에 많은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죠.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아직 국내 서비스는 예정되어 있지 않아요.


▲ 동남아와 중남미에서 '포인트블랭크'는 알아주는 IP다

어느정도 예상했다시피, 제페토가 노리는 주력 시장은 '포인트블랭크'가 어느 정도 인지도를 갖추고 있는, 국가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었다. 이렇게 되니 또 한가지 궁금한 점이 생긴다. 최근 글로벌 서비스를 진행 중인 다양한 모바일 게임들이 '글로벌 원빌드'를 시도하곤 한다. 모든 국가에 같은 빌드를 서비스함으로써, 비용 절감 효과를 노리는 법이다. 제페토는 어떨까?

글로벌 원빌드는 하지 않는 쪽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글로벌 원빌드 체제가 뚜렷한 장점이 있는 것은 공감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단점도 있어요. '비용'의 문제예요. 마케팅에 쓸 수 있는 자원은한정되어 있는데, 일견 같은 빌드를 많은 국가에 동시에 내놓는 것은 굉장히 멋져 보이지만, 그만큼 한정된 마케팅 자원이 나뉘어지게 되요. 결국 그만큼 마케팅과 서비스 품질이 분산되죠.

때문에 초기 매출이 하나의 국가에 집중하는 것에 비해 확연히 떨어지게 되고, 결국 이 때문에 개발사들이 고충을 호소하게 되요. 일단 소수의 국가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다음, 차근차근 시장을 넓히고, 동시에 국가의 특색에 잘 맞춘 현지화를 함께 진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제페토의 성공 전략 중 하나는 각국의 특성에 맞는 '현지화'에 있었다. 그리고 이에 대해 그들의 철학은 확고했다. 무리수 없이 차근차근 나아가는, 매우 안정적인 태도라 볼 수 있었다. 해외 진출 초기, 과한 자신감을 갖고 크게 일을 벌렸다가 접히는 시나리오는 게임업계에서 흔히 보이는 경우다. '제페토'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실수의 여지를 놔두지 않았다.

'제페토'가 바라보는 미래가 어느정도 눈에 들어왔다. 힘든 상황에 놓인 개발사들을 독려, 및 지원해 파트너십을 맺고, 그들의 게임을 자신들이 강한 시장에 서비스한다. 소규모 개발사로서 오랜 기간 고생해 결실을 맺은 그들에게는 이익을 창출함과 동시에 성공에 대한 사회환원의 의미까지 같이 갖고 있는 셈이다. 인터뷰는 길지 않았지만, 그들의 비전을 엿보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인터뷰의 끝, 김건우 본부장은 특유의 그 조용한 목소리로 제페토의 미래상을 이야기하며 대화를 마무리지었다.

우리가 원하는 모습이라면, '공생형 퍼블리셔'일 거에요. 동시에 동남아 시장의 1등 퍼블리셔가 되는 것이죠. 저희와 함께 발맞춰 나갈 수 있는 개발사가 있다면, 그 개발사에 지속적으로 게임을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 그것이 진짜 윈윈이면서 공생이고, 동시에 건강한 성장을 이루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