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 오브 레전드가 한국에 출시된 지 근 5년이 다 돼간다. 세계 최강의 리그인 롤챔스도 마찬가지다. 2012년 1월 20일 LoL 인비테이셔널로 시작해서 어느덧 2016년 롤챔스 스프링 시즌이 시작됐다. 우리가 e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크게 봤을 때 그 답은 하나로 귀결된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자연스럽게 해내는 선수들의 신기에 가까운 플레이를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끼기 때문이다.

소름이 돋는 판단력. 동물적인 반응속도. 챔피언과 혼연일체가 된듯한 움직임. 내가 전혀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경외감'을 심어준다. 그로 인해 프로들에 대한 동경이 생기고, 우리는 그들의 플레이를 보며 감탄과 환호를 토해낸다. 롤드컵 시즌2 준우승을 시작으로 한국 롤은 3년 연속 세계 최강의 자리에 올랐다.


당연히 최강의 리그는 롤챔스라는 인증도 공식적으로 받아냈다. 꽤 긴 휴식을 가진 롤챔스의 스프링 시즌을 맞이해 자랑스러운 한국 프로게이머들의 슈퍼 플레이를 재조명하는 새 코너를 기획했다. 이름 하여 '돌슈리(돌발 슈퍼 플레이 리뷰)'.

오늘 다시 조명해 볼 플레이는 2016 롯데 꼬깔콘 LoL 챔피언스 코리아 스프링 시즌의 개막전 첫 경기였던 SKT T1 vs CJ 엔투스의 1, 2세트에서 나왔다. 세체미 '페이커' 이상혁의 슈퍼 플레이를 낱낱이 분석해보도록 하겠다. 옆의 독수리 그림이 어딘가 익숙하다면, 기분 탓이다.




[Super Play 1] - '페이커' 이상혁의 거부할 수 없는 제안





1세트에서 '페이커' 이상혁이 미드 코르키로 보여준 과감한 앞 발키리 진입을 프로게이머들에게 재현해보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지척에 자신을 보호해 줄 수 있는 렉사이와 쓰레쉬가 있고, 상대의 가장 위협적인 연계 '박치기-분쇄-마법의 수정화살'은 봇 듀오의 콜로 없다는 정보를 얻었다. 트위스티드 페이트는 전사한 상황이며, 마오카이가 오더라도 정화와 점멸로 생존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슈퍼 플레이냐? 이 모든 판단을 3초 안에 해내는 선수는 몇 없으니까.

사실 알리스타가 '박치기'로 코르키를 밀어내고 후퇴했다면, 이상혁의 슈퍼 플레이는 미수에 그쳤을 것이다. 그러나 CJ 엔투스의 상황은 알리스타에게 후퇴를 종용할 수 없었다. 라인전 단계에서 로밍을 통해 이득을 취해야하는 트위스티드 페이트는 라인전 단계가 끝나가는 동안 1번의 유효타 밖에 기록하지 못 했다. CJ 엔투스는 반전을 위해 뭔가 시도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온몸을 짓눌렸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코르키가 생존기 하나를 포기한 채 넝쿨채 굴러들어왔다. 이상혁의 제안은 거부할 수 없는 마력을 품고 있었다. 트위스티드 페이트가 전사했다는 점은 CJ 엔투스의 머리에 떠오를 수 없었다. '페이커' 이상혁은 아마 대부분을 계산했을 것이다. 본능적으로. 아니, 연습을 통해 학습된 본능으로. 진입한다면 CJ 엔투스는 자신을 노릴 것이고, 그 싸움의 승리는 SKT T1의 대승으로 끝날 것이라는 걸. 이 한타로 CJ 엔투스는 회생 가능성을 모두 잃었다.




[Super Play 2] - 궤를 달리하는 이상혁의 '시선'





1세트의 코르키 플레이가 제한만 없다면 프로게이머들이 따라 할 수 있었다면, 2세트의 '페이커' 이상혁의 플레이는 따라 하는 것조차 버겁다. 자신의 활약 여부에 따라 승패가 갈리는 그 순간 '페이커'는 이름에 걸맞은 플레이를 선보였다. 통상 불리한 팀의 빅토르는 상대의 CC기가 확정적으로 빠지기 전에 '죽음의 광선' 최대 사거리를 유지한다. 자신이 죽으면 팀의 패배가 턱밑까지 다가오기에.

상대도 프로게이머인 만큼 억지로 이니시에이팅을 열지 않는다. 유리한 팀은 굳히기 위해서, 불리한 팀은 확실한 승리를 위해서. 두 팀의 이익이 맞물릴 때 장기전이 발생한다. '페이커' 이상혁은 달랐다. 자신의 죽음이 팀에 치명적으로 작용하는 상황에서 그는 앞으로 나섰다. 이기기 위해서 '페이커'는 리스크를 짊어졌다. 정면 한타가 자신 있는 CJ 엔투스는 알리스타와 마오카이로 이상혁을 집중적으로 노렸다. 틈이 보였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이상혁이 틈이라고 생각하게 만든 함정에 걸려들었다.


▲ 이상혁이 앞무빙으로 내준 '틈'은 함정이었다.


순간 이동을 사용할 때 빅토르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도착하고나면 이상혁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알리스타의 진입을 이끌어냈을때도 마찬가지다. 알리스타는 점멸을 사용할 때까진 분쇄와 박치기로 토스를 할 수 있는 각이라 판단했다. 마오카이가 전면에서 시선을 끌어주고, 시야가 없는 곳에서 분쇄-박치기는 프로게이머에게 식은 죽먹기다. 알리스타는 자신의 플레이가 팀의 승리에 기여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 점점 더 멀어지나봐 ♪


그런데 진입을 하고 나니 굴절의 법칙이라도 적용된 듯 빅토르는 닿을 수 없는 곳으로 이동했다. 알리스타와 마오카이는 순식간에 적진 한복판에 떨어졌다. 이 두 번의 사례는 이상혁이 보는 '죽음의 선'이 여타 프로게이머들과 궤를 달리했다는 증거다. 미세한 차이가 승부를 가리는 프로의 세계에서도 이상혁의 '선'은 저 너머에 있었다. 이상혁이 만든 기회를 SKT T1이 놓칠리가 없었고, CJ 엔투스가 언제 유리했느냐는 듯 SKT T1에게 주도권이 넘어갔다. 다시 CJ 엔투스는 고민에 빠졌다. 빅토르의 유일한 대항마 르블랑은 SKT T1의 화력에 선진입 할 수 없었고, 빅토르는 쉬지 않고 레이저를 그렸다.


▲ 이상혁이 진입을 허용할 때는 이유가 있다.


마오카이와 알리스타는 점점 더 빅토르를 잡아야만 역전이 가능하다는 관념에 얽매였다. 결국, 1세트와 마찬가지로 미드 라이너가 없는데도 이상혁을 물고 말았다. '매드라이프' 홍민기는 진입하고 나서야 르블랑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빅토르가 공중에 떴지만 유일한 딜러인 루시안에게 미는 것은 패배의 지름길이라는 걸 알았을 땐 늦었다. 르블랑이 도착해 이상혁을 암살하려 했으나, 빅토르는 쓰러질 것 같은 체력으로 살아갔다. 승리를 갈망한 킨드레드는 순진하게 이상혁의 뒤를 쫓았다. 도착한 그곳엔 승리가 아닌 죽음만 존재한다는 걸 모른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