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운터 스트라이크, 못다 핀 꽃 한 송이


1998년, 소규모 개발사 밸브(Valve)가 출시한 공상과학 FPS 게임 하프라이프(Half Life)는 탁월한 게임성과 탄탄한 스토리로 그 해 세계 유수의 매체들로부터 ‘올해의 게임상’을 거머쥐게 되었고, 그 이후 하프라이프 엔진을 사용한 멀티플레이 모드 ‘카운터 스트라이크(Counter-Strike)’가 유저들에 의해 제작되어 하프라이프 못지 않은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밸브는 아예 2000년 카운터 스트라이크(이하 카스)를 직접 인수하여, 정식 패키지를 출시하고 현재의 카운터 스트라이크 버전 1.6까지 지속적인 업데이트를 함으로써, 카스를 명실공히 세계최고의 FPS 게임으로 성장시킨다. 국내도 세계적인 카스의 흥행에 힘입어, 한빛소프트를 통해 패키지가 정식 출시되었고, 그 당시 국내 게이머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 내며 레인보우 식스(Rainbow Six) 이후 국내 멀티플레이 게임계를 거의 장악하는 수준까지 이르게 된다.



[ ▲ 카운터 스트라이크 오리지널 화면 ]




하지만, 온라인 퍼블리싱 시스템인 스팀(Steam)을 시작한 밸브와 국내 PC방 협회와의 요금제도와 관련한 분쟁으로 인해 카스의 빈 자리가 생기게 되었고, 그 틈을 타 카스와 흡사한 국내 게임 스페셜포스와 서든어택이 왕좌를 차지하게 위해 서로 경쟁해오다 결국, 국내 FPS 게임계는 지금의 서든어택 독주 체제로 굳어지게 되었다.


2005년 GNA 소프트가 밸브와의 분쟁을 일단락하고, 하프라이프2 소스엔진을 이용한 카스: 소스 버전과 함께 카스 시리즈의 새로운 국내 퍼블리셔로 나섰지만, 국내 게임시장에 별다른 이펙트를 주지는 못했다. 그러던 차에, 2007년 지스타에서 넥슨은 밸브 관계자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카운터 스트라이크 온라인(이하 카스 온라인)을 전격 발표한다.


넥슨이 약속한대로 카스 온라인은 2007년 12월에 1차 테스트를 완료했고, 지난 1월 10일 2차 테스트까지 진행하며 많은 국내 FPS 게이머들의 기대와 관심을 모으고 있는 중이다.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900만장이 넘는 패키지가 판매되었고, 지금도 매일 30만 명의 동시 접속자를 기록하고 있는 카스.


오직 국내에서만 ‘못다 핀 꽃 한 송이’로 남아야 했던 카스가 넥슨과의 만남을 통해 거의 10년에 가까운 공백을 메우고 예전의 찬란했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까?



[ ▲ 밸브가 감수하고, 넥슨이 개발한 카운터 스트라이크 온라인(카스 온라인) ]





카스 온라인, 넥슨과 밸브의 화려한 앙상블


넥슨과 밸브는 지스타 2007 간담회를 통해 카스 온라인의 1차적인 목표가 “아시아 시장을 겨냥한 새로운 카운터 스크라이크 시리즈의 개발”이라고 밝혔다. 기존 카스 오리지널의 게임성을 이어받아 유저의 저변층을 확대할 수 있는 FPS라는 것.


부연 설명을 덧붙이자면 카스의 장점인 타격감과 밸런스를 유지하면서, 랭킹과 클랜전 등의 시스템을 추가하여 커뮤니티 요소를 강화하고, 독립적인 네트워크 플레이 시스템을 구축해 해킹 걱정이 없는 안정적인 온라인 게임을 만든다는 것이 핵심이다. 카스 온라인이 최신 버전인 ‘소스’가 아니라 ‘카스 1.6버전’을 채택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오리지널 카스의 정통성 승계”말이다.


이번 2차 테스트에서는 정상적인 플레이를 방해하던 렉문제가 다소 해결되면서, 카스 온라인의 목표가 대부분 현실화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카스뿐 아니라 아직도 국내 FPS 게임들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폭파 미션을 비롯 인질구출, 요인암살 등 오리지널 카스의 다양한 미션을 도입했고, 타격감과 총기, 캐릭터의 밸런스도 카스 1.6 버전과 거의 흡사하게 구현했다. 사실, 오랜 시간 동안 카스를 플레이 하지 않았던 게이머라면 그 미세한 차이를 눈치채기 어려울 정도다.




[ ▲ 실제 화면 비교, 오리지널 카스(위)와 카스 온라인(아래) ]




'아즈텍, 더스트1,2' 같은 오리지널 맵에 추가로 신규 맵 4종을 도입했으며, 총기와 캐릭터도 각각 8종씩을 더했다 특히, '대한민국 707 특임대'와 '중국 마귀반' 같은 캐릭터는 카스 온라인이 아시아 시장을 가장 큰 타겟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 또한, 속도감 있는 진행을 선호하는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팀, 개인 데스매치'까지 지원해 국산 FPS만을 체험한 게이머들이 느낄 수 있는 카스 온라인에 대한 이질감을 최소화했다.


현재, 카스 온라인의 타격감과 밸런스, 그 외 추가된 컨텐츠들에 대해 FPS 매니아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게시판 응답률 100%를 보여준 운영팀과 게이머들의 의견을 대폭 수렴해 2차 테스트에서 OpenGL과 콘솔창을 도입한 개발팀의 근면, 성실함을 볼 때 추후 테스트를 진행해 나가면서 게이머들과의 최적의 합의점을 찾아나갈 것이라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 ▲ 테러리스트와 대테러리스트, 각각 4종의 신규 캐릭터가 추가되었다. 그림은 '대한민국 707 특임대' ]




아직 대부분 미구현인 상태로 남아있지만 게임모드, 맵, 인원 등을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깔끔한 대기실과 매칭 시스템 등, 초보들에게는 다소 난해했던 스팀 시스템을 대폭 개선한 인터페이스를 구축하여 대부분의 게이머들에게 익숙한 온라인 FPS 환경을 만들어 냈으며,


특히, 라운드별로 결과에 따라 일정 금액을 획득하고, 다음 라운드의 무기류를 구입하는 카스의 무기 구입 시스템 또한 아직 100% 만족할 수준은 아니지만 편리성을 더해, 자신의 획득한 금액과 무기 구입 전략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화는 상황과 그에 따른 전략, 전술을 구사하는 독특한 재미를 더 많은 게이머들이 체험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카스 온라인이 넥슨과 밸브, 그리고 게이머 모두가 만족할만한 수준까지 이르렀다고 보기는 힘들다.




[ ▲ 무기 구입 시스템과 대전방 인터페이스 ]





카스온라인이 해결해야 할 과제들


오리지날 카스 엔진을 그대로 사용한 카스 온라인. 마치 실사와 같은 차세대 그래픽으로 무장한 FPS 신작들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1998년에 발표한 하프라이프1과 큰 차이가 없는 카스 온라인의 그래픽 퀄리티는 많은 아쉬움을 남기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온라인 시스템을 기반으로 구현 되었기에 카스 매니아들이 즐겨 사용하는 개성 있는 스킨 적용도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10년 전 그래픽이라는 것은 곧 10년 전 컴퓨터에서도 충분히 구동될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넥슨은 카스 온라인이 펜티엄3 환경에서 지속적으로 테스트를 진행해 왔다고 밝히고 있다.



[ ▲ 누군가는 향수를, 누군가는 이질감을 느낄 일명 '코털 아저씨'의 외모 ]




카스만의 탁월한 게임성과 대부분의 게이머를 포용할 수 있는 낮은 사양이 10년 전 그래픽이 만들어 내는 색안경을 충분히 벗겨낼 수 있다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카스 온라인이 장기적인 서비스를 바라본다면 언젠가는 낮은 그래픽 퀄리티가 발목을 잡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같은 시기에 출시된 스타크래프트도 그래픽 엔진이 향상된 차기작이 곧 출시될 예정 아닌가.


또, 한가지 걱정되는 것은 초보유저와 기존 카스를 즐겨오던 고수 유저들간의 실력차다. 게시판을 둘러보면 현재 카스 고수 유저들이 카스 온라인을 일명 ‘양민’을 학살하는 스트레스트 해소용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카스 온라인은 초보유저들의 안정적인 진입과 실력향상을 봇 시스템을 도입해 해결하고자 했지만, 아직까지 봇들의 재생성 위치가 적절하지 못하고, AI가 크게 뒤떨어져 사실상 게이머와 봇 사이의 난사전 이상의 플레이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 ▲ 유저들의 의견을 수렴해 2차 테스트에 구현된 콘솔창과 OpenGL ]




봇 시스템의 지속적인 보완과 함께, 콘솔 사용법과 무기 구입 시스템에 따른 전략적인 부분 등 알면 알수록 카스에 빠져들게 되는 고급 정보들을 게이머에게 체계적으로 제공해줄 공식 홈페이지와 팬사이트 같은 커뮤니티의 역할이 중요해 보인다.


비단 기자뿐 아니라 카스 온라인을 바라보는 게이머 대다수가 가장 혼란스러워 하는 부분은 카스 온라인의 상용화 모델일 것이다. 오리지널 카스는 패키지를 구입하면 평생 무료로 플레이할 수 있지만, 카스 온라인은 패키지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적절한 서비스 모델을 찾아야만 한다.


넥슨은 아직까지 정확한 서비스 모델을 밝히고 있지 않기 때문에, 캐쉬 아이템으로 인한 밸런싱 붕괴를 미리 걱정하는 게이머가 늘어나고 있다. 카스의 가장 큰 장점 중에 하나인 밸런스가 무너지는 것은 카스 온라인의 존립 자체를 송두리째 위협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일부 비난은 있지만 지금까지 국내 게임계에 신선하고 획기적인 서비스 모델을 선보여온 넥슨에게 이번 카스 온라인은 매우 까다로운 도전 과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카스 온라인의 최고 경쟁 상대는 다름 아닌, 스팀에서 (스팀 가격 9.95달러, 한화 만원 상당의 패키지를 사면) 평생 무료로 제공되는 오리지날 카스다.



[ ▲ 수많은 게이머들을 바라보며, 과연 넥슨의 선택은? ]




장미빛 카스온라인, 그리고 두 가지 상상.


카스 온라인은 오리지날 카스의 게임성을 거의 완벽하게 구현하는데 성공했으며, 온라인적인 시스템을 강화해 전 세계 카스 게이머들을 한 데 집중시킬 수 있는 가능성까지 확인시켜 주었다.


지금까지도 오리지날 카스에는 스팀을 통해 수백, 수천 개의 개인 서버가 열리고 있으며, 특히 중국을 비롯한 대만, 홍콩 등 아시아 게이머들의 열기는 전혀 식을 줄을 모르고 있다. 또한, 세계적인 E-스포츠 대회에서 매번 빠지지 않고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는 게임이기도 하다.


이런 점을 볼 때, 파격적이고 신선한 시도는 배제되었지만, 안정적인 온라인화를 추구한 카스 온라인의 앞날은 기본적인 게임성을 뒤흔들 정도의 시행착오만 발생하지 않는다면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다.



[ ▲ 오후 4시 오리지널 카스, 플레이어가 있는 서버만 검색해도 무려 6000개 이상의 서버가 보인다. ]




그래서, 문득 두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일단 우울한 이야기부터 하자면, 카스 오리지날 이후 스페셜포스, 서든어택으로 이어져온 카스와 카스 워너비(Wannabe) 게임들의 릴레이가 앞으로 지겹도록 계속될지 모른다는 걱정이다.


지금까지 국내 게임사들의 '돈'되면 무조건 따라가는 개발 행태와 최근 일련의 변화를 꾀하고자 했지만 부족한 완성도에 결국 참패를 맛봐야 했던 FPS 게임들의 사례는 이런 우려를 증폭시킨다. 카스가 분명 훌륭한 게임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향후 수십 년간 카스 재탕 게임들을 만나야 한다는 것은 FPS를 즐기는 게이머 입장에서 전혀 반가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 생각은 네오위즈와 EA가 FIFA 온라인을 통해 시작했던 공동개발 프로젝트의 두 번째 단추를 카스 온라인이 성공적으로 채움으로써, 앞으로도 게임성이 입증된 게임들의 착실한 온라인화를 기대해볼 수 있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는, 이와 같은 공동개발 프로젝트가 지속적인 성공을 이루어 게이머에게는 양질의 게임을, 개발사에게는 지속적인 수익을 내준다면 침체된 국내 게임시장을 되살릴 수 있는 새로운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해외 게임의 게임성과 국내 온라인 기술력이 만들어 내는 시너지 효과는 썩어가는 고름까지 말끔히 치료하는 특효약이 충분히 될 수 있다.


한편으로 다행인 것은 현재의 카스 온라인이 우울한 상상 보다는 긍정적인 가능성에 자꾸만 관심이 쏠리게 하는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할지는 모르겠지만, 기자 또한 일단은 카스 온라인의 가능성에 깊은 애정을 보내기로 했다.



[ ▲ 팀포2 온라인은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 ]




Inven Vito - 오의덕 기자
(vito@inv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