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시장은 빠르다.'

이제 안정되었다고 말할 수 있음에도, 많은 개발자 및 업계인들, 그리고 나조차도 모바일 시장을 논하면서 항상 하는 말이다. 게임 기자로 일하다 보면 하루에 수십 통의 이메일을 받게 된다. 새로운 업데이트, 이벤트, 매일 게임업계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새로운 소식들이다.

그리고 그중에는 하루에 적어도 하나 이상의 신작 모바일 게임 출시 소식이 포함되어 있다. 참으로 빠르다. PC 온라인 게임이 주 시장을 이루던 시절, 새로운 게임의 출시는 그 하나하나가 대단히 크고 뜨거운 이슈였다. 하지만 모바일이 새로운 시장의 주류가 되어버린 지금, 새로운 게임의 출시는 딱히 놀라울 것 없는 수많은 뉴스 중 하나일 뿐이다.

물론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작용했을 거다. 유행에 민감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게이머 층의 변화, 빠른 변화에 순응하듯 적응한 시장 구조. 어느 순간부터인가, 대부분의 모바일 게임이 빠르게 뜨고, 또 빠르게 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게 모든 상황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모바일 게임 중에도 오랜 기간 수많은 게이머 층을 확보한 채 '롱 런'하고 있는 게임들이 분명히 있다. '크루세이더 퀘스트'나 '세븐나이츠', 해외로 나가면 '클래시 오브 클랜'도 이에 해당할 거다.

GDC2016의 첫날, 굉장히 흥미로운 제목의 강연이 눈에 띄었다. '모바일 게임의 함정'. 유저들이 대거 빠져나가는 모바일 게임들이 저지르는 실수에 대한 분석과 고찰이다. 연사인 마이클 메이스(Michael Mace)는 '유저 테스팅'의 모바일 부문 부사장직을 맡고 있는 인물이었다. 오랜 기간 그는 모바일 게임에 대한 자료를 수집해 왔고, '롱 런'하지 못하는 모바일 게임들이 어떤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지 분석해 왔을 터였다. 오랜 기간 IT 및 게임업계에서 일해온 그가 말하는 모바일 시장의 함정. 흥미롭지 않을 수 없었다.

▲ 마이클 메이스(Michael Mace), '유저 테스팅' 모바일 부문 부사장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도입부

마이클 메이스는 모바일 게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제점을 다섯 가지로 분류해서 설명했다. '어리둥절한 도입부', '알 수 없는 조작', '앱스토어 문제', '동기 부여의 문제', 마지막으로 '되먹지 못한 첫 플레이'가 그것이었다. 마이클 메이스는 그 중, 도입부에 관련된 문제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 마이클 메이스의 다섯 가지 주제

그가 말하는 게임 도입부의 문제는 세 가지였는데, 처음은 '게임을 하는 방법을 알 수 없는 경우'였다. 보통 모바일 게임을 처음 시작하게 되면 게이머들은 게임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갖게 된다. 말 그대로 게임을 시작하는 순간인데, 이때부터 난해한 게임들은 성공하기 어렵다고 봐도 무방하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뭘 해야 할지 모르는 게임'이 되고, '이 게임을 내가 해야하나?' 하는 의문을 품는 단계로 나아간다. 마이클 메이스는 이 정도까지 오게 되면 성공은 글러 먹은 게임이라고 역설했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다양하다. 설정과 스토리 시놉시스가 형편없다던가, 캐릭터가 전혀 매력이 없다던가, 그도 아니면 그냥 게임이 재미가 없을 수도 있다.

▲ 뭘 해야 하는가?

마이클 메이스는 예시로 일본의 애니메이션인 '블리치'를 소재로 한 게임을 북미 게이머가 플레이하는 장면을 뽑았다. 해당 게이머는 이 게임이 무엇을 나타내는지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이는 '문화의 차이'가 빚어낸 문제점이지만, 결과적으로 이 '문화의 차이'는 게이머에게 어떤 핑계도 되지 못했다.

이렇듯 도입부를 망쳐놓은 게임을 하게 되면 플레이어는 '내가 이 게임을 더 해야 하는가?'하는 자신의 물음에 부정적인 답변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당연히 몇만 다운로드를 기록하든지 플레이 유저는 급속도로 빠져나갈 수밖에 없다.

▲ 문화적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상황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조작법

마이클 메이스가 지적한 두 번째 문제는 '조작법'이었다. 모바일 환경에서 가능한 조작법은 굉장히 제한적이다. 드래그, 터치, 그리고 꾹 누르기. 모든 조작법이 이 세 가지와 그 응용에서 머물다 보니 이 안에서 온갖 창의적인 조작법들이 탄생하기 시작했다. 아마 조작법에서라도 차이점을 만들고 싶은 개발자의 욕망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이 새로운 타입의 조작법들이 항상 직관적이지는 않다는 것이다. 설명해준 대로 조작을 해도 내 마음대로 조작이 안 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어떤 경우는 조작법 자체를 알려주지도 않는다. 기능적인 부분과 아트워크 요소가 서로 어긋나면서 조작법이 베일에 싸이는 경우도 있는가 하면, 조작 감도가 너무 높아 조금만 조작해도 캐릭터가 휙휙 움직이는 등, 조금만 조절해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 때문에 외면받는 게임들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 왜 내가 시키는대로 움직이질 못하니

가장 큰 문제는 조작이 아예 먹히질 않는 경우였다. 이를테면 이런 경우다. 적을 터치해서 공격해야 하는데 적 캐릭터의 히트박스가 너무 작아 아무리 터치해도 인식을 못 한다든지, 드래그를 통해 이동해야 하는데 영역이 너무 좁아 화면 밖으로 드래그해야 할 때 같은 경우다.

마이클 메이스는 이런 비직관적이고 비효율적인 조작법이 유저를 화나게 만들 수 있다면서, 확실히 더 개선된 방법이 아니라면 창의적인 조작법보단 친숙한 조작법이 더 유용하다고 말했다.

여기에 그는 AR 게임의 문제점을 덧붙였다. '포켓몬 고'와 같은 AR 게임들을 플레이할 때 게이머는 필연적으로 GPS를 이용하게 된다. 하지만 마이클 메이스는 GPS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플레이어의 방향과 현재 위치를 정확히 잡아내지 못하는 경우가 자주 생기는데, 이런 문제들이 모바일 게임에서 조작법 때문에 겪는 문제들과 비슷한 성격을 띈다고 말했다.

▲ 기기가 따라주지 않으면 증강현실도 뭐 없다.



이 게임이 이거 맞아요?

세 번째로, 마이클 메이스는 '스토어'에서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그가 말한 '스토어'의 문제는 일반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상점 페이지에서 생기는 문제'와는 조금 달랐다. 그는 판매자가 상점에 애플리케이션을 등록할 때 게시하는 내용이 문제를 일으킨다고 말하고 있었다.

▲ 다 만들어도 문제다

가장 잦은 경우는 스크린샷 등으로 보이는 게임 장면과 게임을 설명하는 텍스트가 상반된 모습을 한 경우다. 예를 들어 텍스트 내용으로는 '매력 넘치는 캐릭터들의 강렬한 액션'을 말하면서 스크린샷에는 SD 캐릭터들이 투닥거리는 장면이 나와 있다든가, '숨막히는 생존 경쟁'을 표방하는 그림 맞추기 퍼즐 게임들이 이에 해당한다.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니다. 스토어에 예시로 걸려 있는 게임 이미지가 인 게임 스크린하고는 괴리감이 있을 정도로 동떨어져 있는 예도 있으며, 나아가 도대체 무슨 게임인지 알 수가 없는 설명으로 게임을 묘사해놓은 예도 있다.

마이클 메이스는 구매자가 게임을 구매할 때 가장 먼저 보게 되는 페이지를 소홀하게 만드는 것은 절대적으로 좋지 않다고 말하며, 게임을 구매한 유저들이 배신감을 느끼게 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동기 부여의 문제

마이클 메이스가 말한 네 번째 문제는 비단 모바일 게임만의 문제점이라곤 할 수 없는 '동기 부여'에 대한 것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동기'는 게임을 계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을 말한다. 대부분 게임은 일정 시간 이상 플레이하게 되면 '벽'을 만나게 된다. 왜 이 게임을 아직 하고 있는지 알 수 없고, 이렇게 게임을 해서 얻게 되는 무언가가 더는 큰 의미가 없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

이에 많은 게임이 지속적으로 게이머에게 게임을 하게 만드는 동기를 부여할 장치들을 마련해 놓는다. 장치는 여러 종류다. 더 높은 단계의 아이템이 될 수도 있고, 칭호나 장식 등의 '명예' 소품일 수도 있다. 보통 가장 많이 쓰이는 장치는 친구들에게 자랑해 우월감을 느낄 수 있는 경쟁적 요소들이다.

하지만 여기서 게이머들이 들이는 노력과 얻게 되는 보상의 균형이 어그러진다면 이 문제는 바로 수면 위로 떠오른다.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더 이상의 동기를 주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게임 자체를 재미있게 만드는 것이다. 게임 자체가 너무나 재미있다면 대부분의 사람은 동기 부여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도 게임을 즐긴다. 하지만 게임을 재미있게 만드는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모든 개발자가 짊어지고 가는 평생의 숙제나 다름없다.

오히려 가끔은 역으로 이 의욕을 깎아 먹는 게임들도 있다. 예를 들면 효과음이 너무 형편없어서 게임을 하다 보면 짜증이 날 정도라던가, 성우의 더빙 질이 너무나 떨어져 게임 자체에 대한 불신이 생기는 경우처럼 말이다.


되먹지 못한 첫 경험

마지막으로 마이클 메이스는 '첫 유저 경험(FTUE: First Time User Experience)'에서 생길 수 있는 문제들을 논했다. 게임이 재미가 없다든가 하는 '디자인'의 측면이 아닌, 프로그래밍 부분에서의 문제였다. 그는 어떤 모바일 게임을 하는 한 유저의 코멘트 영상을 보여주었다.

게임이 모두 설치되고, 게이머는 게임을 시작했다. 그런데 로딩이 너무나 느리다. 게다가 로딩 바조차 없어 얼마나 로딩이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오랜 기다림 끝에 로딩이 끝났는데, 끝나자마자 업데이트를 시작했다. 업데이트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린 게이머는 '빠른 시작'을 눌러 게임을 시작했지만, 여기서 또 로딩이 걸려 버렸다. (심지어 그 로딩을 기다리고 시작한 게임은 재미있지도 않았다.)

▲ 첫 플레이에서 희비가 갈린다.

여기서 중요한 건 게임의 디자인도, 최적화의 결함도 아니었다. 게이머가 게임을 하게 되는 과정까지 이르는 길이 전혀 바람직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모바일 시장에서 대부분의 게이머는 PC, 콘솔 게임처럼 등장할 게임을 미리 알고 기다리지 않는다. 냉정히 말해 '사전 등록'도 '할 지도 모르니까' 하는 경우가 많을 뿐, 내가 이 게임을 무조건 해야겠다 하고 기다리는 유저들은 많지 않으며, 있다 해도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제 갓 출시된 게임에 게이머들이 충성하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라는 뜻이다. 그런 상황에서 짜증을 유발하는 첫 게임 경험이 얼마나 큰 악영향을 끼칠지는 딱히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훤히 보인다. 반면 이미 성공하고 있는 게임들 또한 더 나은 방법으로 개선할 여지가 있다. 마이클 메이스는 세계적으로 성공한 '클래시 오브 클랜'을 플레이하며 어려움을 느끼는 유저를 예로 삼아 더 나은 초반 플레이를 보여줄 수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 COC도 더 나을 수 있었다.

역으로 생각하면, 좋은 첫 플레이를 제공하는 게임은 그만큼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는 국내 개발자들 사이에서도 흔히 들을 수 있는 이야기다. '게임 시작 후 30분 동안 재미가 없으면 그 게임은 망한 거다.'와 같은 이야기. 말하는 이들에 따라 시간은 1시간이 되기도, 10분이 되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같다. 첫 플레이에서 느끼는 감정, 즉 '첫인상'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이야기다.


마이클 메이스의 강연은 약 40분간 이어졌다. 오랜 시절 업계에서 일한 그답게 말을 더듬는 일도 없었고, 때로는 꽤 강한 수준의 독설도 거침없이 구사했다. 한 걸음 옆에서 지켜보면, 그의 강연은 매우 기본에 가까운 일반론이라 볼 수도 있었다. 내용 하나하나가 한 번쯤 생각해봤던 내용이었고, 업계에 종사하는 이들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내용일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모두 지키지 못해 무너지는 게임들도 분명히 있었다. 적당한 운동, 골고루 먹는 것. 모두 건강을 위한 일반론이지만 생각보다 지키는 건 쉽지 않다. 어쩌면 마이클 메이스는 다들 알지만, 생각처럼 잘 지켜지지 않는 사안을 짚고, 기본을 잊은 개발사들의 각성을 바란 것일지도 모르겠다. 강연 내내 그는 냉소적인 태도와 강한 어조를 유지했지만, 틀린 말은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더불어 그의 '염려'가 느껴졌다. 모바일 게임 시장이 과도기를 넘어 안정권에 이르렀다고 평가받는 지금이지만, 여전히 많은 게임이 빛을 보지 못한 채 어둠으로 빠져들곤 한다. 물론 그의 강연이 정확히 어떤 것을 노렸을지는 그만 알고 있는 것이겠지만, 노년에 접어든 베테랑 업계인의 눈에서 업계의 앞날에 대한 염려가 느껴진 것은 우연이 아니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