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이하 히어로즈)은 2015년까지 세계의 벽을 넘지 못했다. 블리자드 최고의 행사인 블리즈컨 2015 히어로즈 월드 챔피언십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TNL이 아쉽게 결승에 오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팀들이 국내를 비롯한 해외 리그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지만, '히어로즈 월드 챔피언십 우승'이라는 타이틀이 없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2016년 봄, 그들의 아쉬움을 해소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가 찾아왔다. 전 세계 히어로즈 강호가 모두 한자리에 모여 2016 히어로즈 스프링 챔피언십(이하 HSC)을 펼치게 됐고, 그 현장을 확인하러 3일 동안 5천여 명의 관객이 모였다. 국내에서 첫 히어로즈 시즌 챔피언십이 열리는 만큼 한국팀의 행보가 주목받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HSC를 통해 확실히 한국의 히어로즈가 최강이라는 것을 전 세계에 알렸다. 중국팀들이 매서운 기세로 올라왔지만, 무실세트로 전승 우승을 기록한 MVP 블랙을 넘지 못했다. TNL은 비록 준우승팀인 EDG에게 패배했지만, 유럽 최강인 디그니타스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정상들을 꺾고 다시 한 번 세계 4강임을 입증했다.

최근 성적을 봤을 때, MVP 블랙의 우승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국내 리그를 봤던 유저라면 이번 우승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MVP 블랙이 상대한 세계 각국의 강호들 역시 자국 리그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자랑하는 팀들로 이번 HSC의 성적에 대한 자신감은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MVP 블랙은 세계 최강 중에서 최강이었다. 최고를 향한 MVP 블랙의 집념은 그들을 최강의 자리에 올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히어로즈 슈퍼리그, HSC 등 대회에서 우승 인터뷰를 할 때마다 자만하지 않고 자신의 플레이에서 아쉬웠던 점을 밝혔다. 다른 팀원들에 비해 조금이라도 부족하다고 느끼면 다음 경기에서 확실히 발전한 모습을 보여줘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이런 작은 발전이 쌓였기에 MVP 블랙이 지금까지 30세트를 넘게 연승할 수 있었다.





■ 진정한 팀이란? 최고가 될 수 밖에 없는 MVP 블랙의 숨은 힘


현재 히어로즈 '세체탱'으로 불리는 '사인' 윤지훈은 시작부터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아서스로 대변되는 TNL의 'sCsC' 김승철이 교전을 열고 끝까지 홀로 살아남아 경기를 캐리 했기 때문이다. 반면, 윤지훈은 요한나와 같은 단단한 영웅만 선택해 전선에서 상대의 공격을 받아냈다. 묵묵히 탱커 역할을 해왔고 자신이 돋보이기보다 다른 팀원들이 활약하도록 도왔다.

하지만 TNL에게 2015 히어로즈 슈퍼리그에서 패배한 후로 윤지훈은 달라졌다. 2016년 TNL과 첫 공식 대결에서 승리 후 "지난 시즌 결승에서 패배하고 한동안 밥도 못 먹었다"고 말할 정도로 패배에 대한 아쉬움을 밝혔다. 그리고 2016년부터 윤지훈은 단순한 탱커가 아닌 전투를 주도하는 전사로 거듭났다. 자신이 들어가 과감히 교전을 열었고 정교한 CC로 상대의 진영을 망쳐놨다. 윤지훈의 움직임 하나에 상대가 위축돼 버린 것이다.

남들이 한계를 지적한 전사 영웅도 자신만의 해석을 통해 완벽히 구사했다. HSC 결승전에서는 '빨간 머키'로 불리며 탱킹력이 아쉬운 디아블로로 대박을 쳤다. 8강에서 TNL과 대결할 때 시작부터 어그로를 끌어 4연킬을 만들었다. 파워리그 결승전에서는 '충'으로 불리는 아르타니스로도 승리해 도저히 영웅 폭을 가늠할 수 없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자신의 캐리력을 높였지만 팀과 호흡은 놓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리치' 이재원이 합류해서 새롭게 스타일을 맞춰가야 했다. 시즌 초기에 둘의 호흡이 맞지 않아 슈퍼리그에서 히어로, 영보스에게 세트별 패배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둘의 호흡이 맞기 시작하면서 MVP 블랙은 승승장구했다. 윤지훈은 형, 선배, 팀의 메인 전사였지만, 이재원에게 자신의 스타일을 강요하지 않고 서서히 맞춰나갔다. 그 과정에서 이재원은 잠재력을 발휘하기 시작했고 안정감까지 더 해져 둘은 최고의 앞 라인 시너지를 보여줬다. 자신만 주목받는 것이 아닌 팀원까지 빛나게 해줄 수 있다는 점이 MVP 블랙을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는 비결이었다.


'교차' 정원호 역시 팀 승리에 숨은 1등 공신이었다. 이번 HSC에서 역할이 적었다고 말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정원호의 활약은 대단했다. 팀 조합에 부족한 포지션이 있다면, 전사-지원가-전문가-암살자를 가리지 않고 선택했다. 해당 포지션 전문 선수에 비해 숙련도가 부족해 주목받기 쉽지 않지만, 팀의 승리를 위해 필요한 영웅을 선택했다.

정원호가 담당하는 밴픽 역시 다른 팀의 수준을 뛰어넘었다. 상대가 아무리 대세 OP 영웅을 가져가도 아랑곳하지 않고 카운터 픽을 준비했다. MVP 블랙의 경기는 승리 팀이 정해져 재미가 없다고 말하지만, MVP 블랙의 밴픽 구도로 보면 어떻게 OP 영웅을 박살 내는지 제대로 알 수 있다. 이번 HSC 결승에서도 정원호는 자신이 한 것이 없다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상대의 핵심 카드와 맵-전략을 밴해버리며 빈틈 없는 우승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메리데이' 이태준은 지원가는 '아군을 잘 살리기만 잘하면 된다'는 편견을 깨고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했다. 상대의 어그로를 끌고 티란데와 CC 연계와 카라짐의 '칠면 공격' 등을 자유자재로 활용한다. 패배의 위기 순간에는 최선의 판단과 오더로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TNL과 슈퍼리그 8강에서 팀원 모두가 공허의 감옥-게걸 아귀에 끊긴 상황, 파워리그 결승전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하지만 상황에 맞는 이태준의 오더로 30세트 넘는 연승 기록에 오점을 남기지 않았다.

주요 딜러인 이재원과 '사케' 이중혁은 경기 중 가장 돋보이는 딜러다. 많은 이들이 '안정적으로 딜을 넣는다'고 표현하지만, 자신만 안전할 뿐 상대방은 전혀 안전하지 않았다. HSC 결승전에서 중국의 매서운 공격에 팀원들이 사라지는 경기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이 두 선수가 과감하게 상대의 핵심 영웅을 끊어내고 불리한 상황을 극복할 발판을 만든 것이다.

지금까지 히어로즈에 영원한 강자는 없었다. MVP 블랙 역시 언젠가는 최고의 자리에서 내려올 것이다. 하지만 팀원 모두가 하나라도 더 발전하려고 했고, 자신의 노력을 경기력으로 확실히 보여줬다. 더 무서운 점은 세계 최강이라는 타이틀을 달았지만, 앞으로도 발전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MVP 블랙이 월드 챔피언십 첫 우승에 머무르지 않고 언제까지 강세를 이어갈지 지켜보도록 하자.



■ 세계 4강 입증한 TNL 변화에 적응하면 아무도 모른다?


TNL은 이번 HSC를 통해 세계 4강이라는 점을 확실히 보여줬다. 그동안 국내 팬들에게 MVP 블랙에게 패배하는 인상만 남겼지만, 세계 무대에서 디그니타스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팀을 꺾고 당당히 올라가며 강팀임을 입증했다.

비록 EDG전 패배로 아쉽게 4강에서 탈락했지만, 여전히 발전할 가능성이 남아있는 팀이다. 아직 스랄과 같은 대세 영웅을 잘 못 다룬 다는 점을 지적받았다. 하지만 대회 중에도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를 끊임없이 했다. HSC 개막전 첫 경기부터 TNL은 스랄-디아블로 등 평소 자신이 활용하지 않았던 영웅을 꺼냈다. 자신의 주력 영웅만큼 새로운 픽을 활용할 수 있다면, TNL 역시 어떻게 될지 모르는 팀이 될 수 있다.

TNL은 지난 2015 히어로즈 슈퍼리그에서 그런 저력을 보여준 바 있다. 당시 TNL 4강 패자조까지 떨어졌지만, 새로운 영웅 픽을 시도하며 경기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이번 히어로즈 슈퍼리그 시즌 중에 '노블레스' 채도준과 'sCsC' 김승철이 포지션을 변경하고 적응하는 기간이 길지 않았기에 TNL의 잠재력은 아직 남아있다.


'노블레스' 채도준은 지난 시즌까지 일리단이 주력 영웅이었다. 상대의 어그로를 끌고 과감히 들어가 딜을 넣는 역할을 했고 슈퍼 플레이와 최악의 플레이를 넘나들었다. 시즌 초에 포지션을 변경했기에 이전 포지션의 습관이 아직 남아있다. 무라딘 같이 과감하게 들어가서 교전을 열 수 있는 영웅은 잘 다루지만, 전사치고 체력이 낮은 영웅들은 쉽게 끊기는 장면이 자주 연출됐다. 기존 서브 탱커 겸 딜러의 공격적인 점을 살리되 안정적인 능력을 키운다면, 공격적인 전사로서 다시 활약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sCsC' 김승철은 안정적인 전사 영웅을 주로 해왔다. 자신의 상징했던 아서스로 상대의 기술을 회피하고 적절한 회복으로 교전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역할이었다. 그런데 이제 자신이 서브 탱커 및 암살자로 교전을 주도해야 한다. 죽지 않고 딜을 넣는 것보다 상대 핵심 영웅을 교전에서 확실히 끊어낼 수 있는 과감한 판단이 필요하다.

이번 시즌 김승철의 이번 시즌 근접 암살자 활용은 조금 아쉬웠다. 스랄은 '세계의 분리'를 활용해 상대에게 지독한 CC를 넣고 교전을 열어야 하지만, 매번 '광풍'이나 다른 기술과 뒤엉키며 애매한 장면이 연출되고 말았다. 제라툴은 자신이 캐리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공격과 성장 위주의 특성을 선택해 무리한 플레이를 시도하다가 오히려 끊기는 장면이 나왔다. 두 영웅 모두 안정감과 슈퍼 플레이의 중심을 잡는다면 충분히 캐리력있는 선수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TNL은 이번 시즌 승리할 때는 단단한 운영을 바탕으로 상대를 압도했지만, 패배할 때는 허무하게 한 명씩 끊기는 장면이 자주 연출됐다. '재현' 박재현이 지원가의 정석을 보여주며 아군 영웅을 최대한 살려내려고 했지만, 다수의 영웅이 위기 빠지는 장면이 자주 연출됐다. 그리고 TNL의 남은 발전 방향은 명확하다. 홀로 끊기는 실수를 줄이고 자신의 주력 영웅을 늘리는 것이다.

TNL은 다른 팀과 달리 스폰서가 없어서 힘들게 이번 시즌을 달려왔다. 숙소 생활조차 못 했지만, 이 정도 호흡을 자랑할 수 있는 팀은 흔하지 않다. 비록 HSC에서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TNL은 월드 챔피언십 2연속 4강에 빛나는 팀이다. TNL의 기록도 MVP 블랙을 제외한 팀들이 넘보기 힘든 꾸준한 기록이다. 아직 2016 히어로즈 글로벌 챔피언십이 끝나지 않았다. TNL은 MVP 블랙을 결승전에서 꺾어본 유일한 팀이다. 자신의 저력을 믿고 싸운다면 다음 시즌에도 좋은 성적을 거둘 것이다.



■ 시즌 챔피언십 이제 시작이다! 새 시즌 세계 강호들의 반격은?


지금까지 월드 챔피언십에서는 기이하게도 대회가 열리는 해당 국가의 팀이 모두 우승했다. 애너하임에서 열린 블리즈컨에서 C9이, 서울에서 열린 HSC에서 MVP 블랙이 각각 우승을 차지했다. 다음 히어로즈 월드 챔피언십은 유럽에서 열리며 이번 시즌 허무하게 탈락한 서구권 팀들이 칼을 갈고 나올 것이다. 아직 MVP 블랙과 월드 챔피언십에서 만나보지 못한 세계 강호들이 있다.

2015 히어로즈 월드 챔피언십 2위였지만, 이번 HSC 8강에 머물렀던 디그니타스. 인터뷰를 통해 "한국팀과 대결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한 만큼 새로운 모습으로 다음 시즌에 임할 것이다. 유럽 히어로즈의 자존심인 디그니타스가 'Bakery'의 카라짐 뿐만 아니라 자신들을 대표할 만한 영웅 폭을 점점 넓혀갈 것이다.

MVP 블랙에게 우승자의 자리를 빼앗긴 북미 최강 C9. 이번 HSC에서도 머키와 같은 독특한 픽을 활용해 승리를 거뒀고 'iDream'을 비롯한 선수 개개인의 캐리력은 아직 건재하다. 신규 영웅의 등장과 리메이크 패치가 끊임없이 이뤄지는 만큼 C9이 어떤 새로운 픽을 꺼내 들어 세계 무대를 놀라게 할지 아무도 모른다. 지난 2015 히어로즈 월드 챔피언인 C9은 아직 MVP 블랙과 월드 챔피언십에서 만나지 않았다. 다음 섬머 시즌에는 두 챔피언이 대결해 진정한 최강자를 가릴 수 있을까?

중국은 이번 HSC에서 뛰어난 교전 능력으로 4강에 두 팀이 올라왔다. MVP 블랙도 예측하지 못한 각도로 과감하게 들어와 교전을 주도할 정도로 위협적인 팀이었다. 이제 운영 능력까지 갖춘다면 더욱 무서운 팀이 될 것이다. 지난 2015 월드 챔피언십에서 이번 HSC까지 중국의 히어로즈는 엄청난 발전을 이룩했다. 다음 시즌에는 얼마만큼 더 발전할지 성장 속도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그 기세가 매섭다.

'사케' 이중혁이 우승 후 지난 시즌 우승팀인 C9에게 "Now, we are world champion"고 말했다. MVP 블랙이 새로운 챔피언이라는 사실을 알림과 동시에 다른 팀의 도전을 각오한 것이다. 세계의 강호들 역시 그 자리를 빼앗기 위해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HSC가 끝나고 곧 4월 14일의 중국 골드 리그를 시작으로 4월 30일 히어로즈 슈퍼리그를 비롯한 다양한 히어로즈 리그가 열린다. 다음 여름의 챔피언십에서 세계 각국의 팀들과 MVP 블랙이 어떤 경기력을 준비해올지 드림핵에서 열릴 2016 히어로즈 섬머 시즌 글로벌 챔피언십을 기대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