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리는 2016 롯데 꼬깔콘 LoL 챔피언스 코리아 스프링 시즌 결승전에서 ROX 타이거즈와 SKT T1이 맞붙는다. 작년과 똑같은 대진이지만, 과정은 확연히 달랐다. 위태롭지만 한 걸음씩 걸어온 한 팀, 들판의 불길처럼 질주한 한 팀. 이제 그들은 한 가지 목표를 위해 달린다.



■ 짝수해 징크스? 보란 듯이 극복해낸 SKT T1



작년 한 해 세계에서 가장 빛난 팀은 모두가 알다시피 SKT T1이다. 모든 메이저 대회를 석권. 유일한 준우승인 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도 뛰어난 성과다. 그런 SKT T1이 2016 LCK 스프링 시즌을 제패할 것이란 예측은 당연했다.

하지만 SKT T1의 출발은 불안했다. 한 걸음 한 걸음 '결승'이라는 목표를 향해 전진했으나, 위태로워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항간에는 SKT T1의 부진에 어떤 이는 '짝수해 징크스', 어떤 이는 '롤드컵 징크스'라고 일컬었다. 실제로 역대 모든 롤드컵 우승팀이 그러했고, 14년도의 SKT T1도 그 미신을 피하지 못했다.

그래도 올 해의 SKT T1이라면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마린' 장경환, '이지훈' 이지훈 같은 걸출한 두 명의 이탈에도 여전히 무너지지 않는 철옹성으로 남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이번 시즌이 시작되자 그 예상은 보란 듯 빗나갔다. SKT T1의 1라운드 성적은 5승 4패. SKT T1의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부진이었다.

누리꾼들은 SKT T1의 부진에 대해 새로운 탑 라이너 '듀크' 이호성, 정글러 '블랭크' 강선구가 문제라 말했다. 호흡을 맞춰가는 단계였던 두 명의 경기력이 불안정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원인은 메타의 흐름을 좇지 못한 SKT T1의 밴픽이었다.


'더 정글'이라는 별명에 걸맞은 실력을 갖춘 배성웅. 그의 실력엔 전혀 문제없었다. 베테랑다운 판단력, 날카로운 갱킹 하지만 그도 챔피언이 가진 상성을 뒤집진 못했다. 1라운드에서 배성웅은 렉사이, 이블린, 엘리스를 주력으로 삼았다. 대부분의 LCK 정글러들이 니달리, 그레이브즈, 킨드레드라는 신 챔피언을 활용했지만, 기존 챔피언을 고수한 배성웅은 한발 늦을 수밖에 없었다.

정글러가 흔들리자 그 진동은 모든 라인으로 퍼져 나갔다. 당연한 일이었다. 정글러간의 정면 교전에서 승리할 수 없는 상성은 SKT T1의 유려한 시야 장악에 제동을 걸었고, 모든 라이너가 소극적인 딜 교환으로 손해를 봐야 했다. 라이너들의 소극적인 딜 교환은 정글러에게도 악재로 작용했다. 악순환의 반복이 계속됐다. SKT T1은 개인 기량과 한타 집중력으로 5승을 따냈지만, 만족할 수 없는 성과였다. 이때 SKT T1의 롤드컵 징크스와 짝수해 징크스가 수면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SKT T1은 IEM 월드 챔피언십을 기점으로 변화했다. '블랭크' 강선구가 니달리, 그레이브즈, 킨드레드를 사용하면서 라이너들에게 힘이 실렸다. 미드와 봇 라인에서도 이즈리얼, 빅토르와 같은 한타 지향형 챔피언을 지양했다. SKT T1이 메타에 어느정도 적응했음이 눈에 보였다.

IEM 월드 챔피언십 우승 이후 시작된 SKT T1의 2라운드는 화사했다. 중후반 한타 시너지 픽을 중시했던 SKT T1이 두꺼운 겨울옷을 벗고, 초중반 주도권을 잡는 픽으로 날씨에 맞는 봄옷을 입었다. 그럼에도 SKT T1의 포스는 작년 같지 않았다. SKT T1은 리그제 개편 이후 한 번의 패배를 내주지 않았던 kt 롤스터에게 일격을 맞았다. ROX 타이거즈는 SKT T1의 변화에도 상관없다는 듯 무난하게 승리를 가져갔다. 모든 팀이 입을 모아 SKT T1은 여전히 강팀이지만, 작년보다 그 벽이 높지 않다고 평했다.

SKT T1은 그 평가에 대한 답을 포스트 시즌에서 보여줬다. 준플레이오프에서 SKT T1은 강팀의 반열에 오른 진에어 그린윙스를 1:3으로 제압했다. 이어서 결승으로 가는 마지막 고비였던 kt 롤스터를 전승으로 눌렀다. 다전제의 절대 강자였던 SKT T1이 다시 한 번 모든 팀에게 자신들의 강함을 선포한 것이다. 모든 관문을 통과한 SKT T1의 앞에 최후의 결전만이 남았다.



■ 더 강해진 봄의 맹호



사실 이번 시즌 ROX 타이거즈의 상승세는 예측 범위를 뛰어넘었다. ROX 타이거즈는 봄의 맹호, 스프링의 제왕이라는 타이틀을 가졌으나, 그보다 부각 되는 타이틀은 '무관의 제왕'이다. '피넛' 윤왕호를 영입한 ROX 타이거즈의 시즌 초는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윤왕호는 나진 시절부터 기대받던 유망주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데뷔 당시 롤챔스의 메타가 뛰어난 메카닉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플레이를 선호하는 윤왕호에게 맞지 않았던 것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정노철 감독은 윤왕호를 "이호진과 김태완의 장점만 섞어 놓은 정글러"라고 극찬하며 윤왕호에 대한 신뢰를 드러냈다.

시즌이 시작됐고 윤왕호는 그 신뢰에 보답했다. 정글 캐리 메타에 딱 어울리는 선수. ROX 타이거즈의 메타 적응력은 작년부터 검증됐지만, 이번 시즌은 유독 빨랐다. 가뭄으로 메마른 땅이 물을 흡수하듯 ROX 타이거즈는 메타를 빨아들였다.

정글 캐리 메타, 4딜러 메타, 라인 주도권을 바탕으로 한 빠른 운영까지 현재 LCK의 주류 메타는 모두 ROX 타이거즈가 창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연히 성적도 잘 나왔다. 1라운드 전승이라는 위업을 가볍고, 압도적이게 달성했다. 15년도의 SKT T1이 태산 같았다면 16년도의 ROX 타이거즈는 폭풍이었다. 약간의 빈틈을 비집어 적을 무너뜨리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도록 공세를 퍼부었다.

그런 ROX 타이거즈가 자체 연승 기록을 경신할 것은 당연해 보였다. 한국 최고의 탑솔러라 불려고 이상치 않은 '스멥' 송경호, '고릴라' 강범현과 '프레이' 김종인의 완벽한 봇 라인, 다양한 카드로 밴픽 전략의 윤활유가 되는 '쿠로' 이서행, 그 모두를 케어해주는 '피넛' 윤왕호. 5명의 합이 완벽한 ROX 타이거즈의 연승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끊어졌다. 중위권 팀으로 평가받는 삼성. 그들이 ROX 타이거즈의 연승을 저지했다.

▲ 삼성전의 패배는 어울리지 않는 탑 정글 챔피언 선택에서 비롯됐다.

ROX 타이거즈가 삼성에게 패배한 표면적인 이유는 '앰비션' 강찬용의 하드 캐리였다. 그레이브즈와 킨드레드로 정글 주도권을 잡은 강찬용은 윤왕호를 짓눌러 ROX 타이거즈 전체를 무너뜨렸다. 하지만 ROX 타이거즈가 삼성전 패배의 핵심 요인은 '자승자박'이었다. 엘리스, 킨드레드, 그레이브즈와 같은 윤왕호가 잘 다루는 픽들이 여럿 존재했지만, ROX 타이거즈는 그라가스를 선택했다. 상향 패치로 뜨거운 감자였던 그라가스를 시도한 것엔 문제가 없었다.

다만, 이전까지의 ROX 타이거즈의 성향과 그라가스는 어울리지 않는 픽이었다. 주도권을 잡아 폭풍처럼 몰아칠 수도 없고, 오히려 상대에게 주도권을 내줘야 했다. 무엇보다 조합의 시너지를 낼 수 없었던 것이 패인이었다. '스멥' 송경호의 탑 그레이브즈는 라인을 밀어야 주도권을 가지는 챔피언. 당연히 갱킹에 노출될 수밖에 없고, 삼성의 탑-정글 조합이 2:2 교전에서 훨씬 강력했다. 삼성전의 패배로 ROX 타이거즈는 '밴픽'의 중요성에 다시 깨달았다.


그 후 ROX 타이거즈는 연전연승에 돌입했다. kt 롤스터를 만나기 전까지. 정노철 감독은 kt 롤스터와의 경기 패배 요인에 대해서 "변명 아닌 변명이지만, 선수 대부분이 감기에 걸려 컨디션이 좋지 않아 전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 덕분에 ROX 타이거즈는 '컨디션'의 중요성도 깨달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가끔 너무 당연해서 소홀해질 때가 있다. ROX 타이거즈는 두 번의 패배로 기본을 놓쳐선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스프링 시즌을 16승 2패라는 압도적인 전적으로 마무리한 ROX 타이거즈. 작년처럼 스프링 시즌의 끝에 흔들리는 모습도 없었다. 쾌도난마로 LCK란 정글을 질주한 그들의 앞에 단 한 가지 목표만 남았다. 과연, 무관의 제왕이 우승컵을 들고 왕관을 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