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브레이커즈' 공식 트레일러

'게이머'라면 누구나 어렸을 때부터 자신을 키웠다고 생각하는 게임이 있기 마련이다.

기자에겐 '클리프 블레진스키'의 게임들이 그랬다. 도스를 다루던 국민학생 시절 '재즈 잭래빗'을 미친 듯이 플레이했고, 중학생 시절 '언리얼 토너먼트'로 '슈터'라는 장르에 눈을 뜬 기자는, 곧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되어서 '기어즈 오브 워'를 플레이하기 위해 Xbox360을 마련하는 슈터 게임 마니아가 됐다. 그동안 플레이해 온 수많은 게임 중에서도 본 기자를 키운 것의 2할은 클리프 블레진스키가 만든 게임들이었을 것이리라.

하지만 영원히 전설적인 게임을 만들어 낼 것 같았던 그가 에픽 게임즈를 퇴사했다는 소식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이제 더이상 그가 만든 게임을 만나지 못할 것 같아 큰 상심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에픽을 나온 지 2년, 새로운 회사를 설립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리고 또 다른 슈터 게임을 만든다는 것도.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 게임은 '로브레이커즈' 라는 이름을 부여받고 넥슨 아메리카에서 퍼블리싱을 담당하게 됐다.

보스키 프로덕션의 PAX EAST 참가가 확정되고 '로브레이커즈'의 영상이 공개되었을 때부터 심장이 마구 뛰었다. 어렵사리 PAX EAST 현장에서 만난 클리프 블레진스키는 마치 어렸을 적 같이 놀아주곤 했던 삼촌을 보는 듯 친숙했다. 만나서 악수를 하고,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간단히 인사를 했다. 'I'm your huge fan.' 이라고.

클리프 블레진스키 (Cliff Blezinski)




Q. 2012년에 에픽 게임즈를 떠났고, 그러다 2014년에 보스키 프로덕션을 설립했고, 넥슨 아메리카와 계약을 맺어 올해 '로브레이커즈'를 드디어 공개했다. 에픽 게임즈를 떠난 이후 있었던 이 일련의 일들이 어떻게 이루어지게 된 건가?

블레진스키 : 일단 에픽을 나와서는 정말 쉬기만 했다. 술도 엄청 먹어서 배도 나오고, 놀러 다니고, 쌓아뒀던 책도 모조리 읽고, 정말 놀기만 했다.

그러다 왜 보스키 프로덕션을 설립했냐 하면, 일단 결혼의 안정을 위해서라고 할까(웃음). 일을 안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게 한 6개월 쉬다가 다시 게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인력을 모아서 회사를 차렸다. 게임에 대한 아이디어는 굉장히 많았다. 언제나 어떤 걸 만들까 늘 생각하고 있었고, 노는 중에도 똑같았다. 그러다 다시 실행에 옮긴 게 2014년 즈음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Q. '로브레이커즈'가 내세운 핵심 요소로 '중력에 반하는' 슈팅과 전방위 전투가 있다. 이런 요소를 핵심으로 두고 게임을 만들게 된 이유가 따로 있는지?

블레진스키 : 이를 생소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잊고 있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런 중력을 가지고 노는 슈팅은 있었다는 것이다. '언리얼 토너먼트'에서도 우주를 배경으로 한 무중력 맵도 있었고, 그런 중력을 조작하고 공중을 날아다니는 슈팅을 이미 해왔다. 거기서 이미 토대는 마련되어 있었다고 생각한다.

중력에 반하는, 혹은 중력을 가지고 노는 것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있던 꿈 중 하나였다. 어렸을 때는 내가 거대한 적과 싸우면서 중력을 뒤집고 노는 상상을 하기도 했었다. 또 요즘은 특수한 비행기를 이용해서 한 40초 정도 무중력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 그것도 직접 해봤고, 항상 내가 관심을 두어 왔던 것이었다.

그리고 '로브레이커즈' 라는 게임에서 그런 요소를 만들어내려면 좀 더 특별한 능력들이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지금의 모습이 갖춰졌다. 또 거기에 더해 좀 더 화끈한 어른들의 게임, 연령대가 좀 있는 맛깔난 게임을 만들고 싶었다. 그게 '로브레이커즈'를 만들어낸 근간이다.


Q. '언리얼 토너먼트'의 팬으로서 충분히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게임들의 경우 난이도가 너무 높아서 진입장벽이 높고, 슈퍼맨끼리의 리그가 되는 일이 생기곤 했는데,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블레진스키 : 타당한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이 게임이 매우 높은 스킬 캡, 숙련 요구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오늘 부스에서 '로브레이커즈'를 플레이할 때 다른 사람들을 학살하고 다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평균적인 게이머고, 만약 같은 서버에 당신 같은 플레이어가 있다면 빡종(Rage Quit) 해버릴 거다.(웃음)

항상 난이도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결국, 멀티플레이어 게임이기 때문에 게이머 간의 밸런스가 중요하다. 현재 베타 빌드인 게임이고, 변수가 아직 많다. 새로운 맵과 새로운 콘텐츠가 투입될 거고, 밸런스 쪽 변화도 주시하고 있다.

결국, 궁극적인 답이자 해결책은 매치메이킹이다. 올바르고 적절한 매치메이킹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Q. 중력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예를 들어 '언리얼 토너먼트' 에서는 아예 무중력인 맵도 있었고, 맵에 배치된 다양한 점프 패드 같은 오브젝트를 활용하거나, 맵에 숨겨진 리디머 같은 엄청난 무기도 사용할 수 있었다. '로브레이커즈' 에서도 그런 맵 별 변수를 볼 수 있을까?

블레진스키 : 당연하다. 우리가 만든 레벨 디자인 성서에 그렇게 쓰여있다.(웃음) 모든 맵에는 조금씩 각기 다른 요소를 품고 있을 것이고, 중력은 그중 일부다. 미래에 나올 맵마다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고, 우리가 굉장히 기대하고 있는 부분 중 하나다.

리디머 같은 최종병기도?

블레진스키 : 글쎄, 잘 조정한다면 안 될게 있나? 모든 종류의 것이 들어갈 수 있다. 과거, '언리얼 토너먼트' 시기에는 이게 정말 당연한 것이었다. 모든 맵은 단순히 동선 구조 외에 다른 요소가 굉장히 많았다. 하지만 요즘의 FPS들, 밀리터리 실사 풍 FPS 이 유행하면서 많은 이들이 잊고 있는 부분인 것 같다. 과거의 맛을 다시 볼 수 있을 거다.


Q. 예전 게임들은 플레이어가 맵에 떨어진 무기를 획득해서 모든 무기를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로브레이커즈' 에서 4가지 클래스 등으로 무기와 스킬 등을 세분화한 이유가 무엇인가?

블레진스키 :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오늘 게임을 할 때 어떤 클래스로 플레이했나?

뱅가드를 했다. 정말 마음에 들더라. 기관총과 애프터버너의 조합, 특히 궁극기가 마음에 들었다.

블레진스키 : 바로 그런 부분이다. 일단 과거 게임들은 어디서 스폰되고, 어떤 무기를 먹는가가 운의 요소로 작용했다. 그런 것 없이 모든 유저들을 수평적으로 동등한 위치로 만들고 싶었던 것도 있고, 그러면서도 개성 강한 캐릭터들로 제각각 플레이어들이 식별 가능할 만큼 독특한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또 그런 느낌을 받도록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작위적인 설정의 클래스를 넣고 싶진 않았다. 배경설정 등에서도, 현실에서 봐도 법 집행기관들도 FBI, 마약단속국, 경찰 등등 다양한 종류가 있고, 범죄조직들도 야쿠자, 마피아, 삼합회같이 저마다 다른 느낌을 준다. 그런 식으로 현실적이면서도 재미있는 개성을 부여하고자 노력했다. 더 다양한 캐릭터를 준비하고 있고, 많은 것이 가능할 것 같다.



Q. 요즘 출시되는 멀티플레이 중심의 FPS 들은 재미가 있음에도 콘텐츠, 뒷심 부족으로 오래 인기를 끌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부분은 어떻게 방지하고자 하는지?

블레진스키 : 물론 아직 런칭 전이기 때문에, 전체의 양을 벌써 가늠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도 굉장히 많은 콘텐츠를 제공하고자 노력하고 있고, 당연히 새로운 캐릭터, 새로운 맵을 포함해 다양한 종류의 신규 콘텐츠들이 지속적으로 추가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우리는 다른 게임들처럼 수백 종의 캐릭터를 추가하고 이런 타입은 아니다. 상대적으로 수는 적겠지만, 각 캐릭터의 깊이가 더 깊고,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면서도 마스터하기 위해선 많은 노력이 필요한 컨셉이다. 게임 하다가 지치면 쉬고, 그러다 보면 다시 하고 싶어서 열중하게 되고 그런 게임을 만들고 싶다.

기존에 그런 콘텐츠 부족 문제를 지적받은 게임들의 문제는 가격정책이나 플랫폼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60달러라는 풀프라이스를 받고 패키지로 팔면서 오직 멀티플레이어 게임만 있다면 당연히 불만이 생긴다. 그런 게임들은 디지털로만 출시하고, 지속적인 DLC 투입으로 장기적인 계획을 가져가는게 맞다고 생각한다. 개발과 판매 전략 부분에서 많은 고민과 공조가 필요한 게 사실이고, '로브레이커즈'는 초창기에만 반짝하고 매출을 올리는 게임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Q. 올해 E3 2016에 출품할 계획과 함께 새로운 콘텐츠를 예고하기도 했는데, 어떤 것인지 살짝 힌트를 줄 수 없나?

블레진스키 : 왜 안 되겠나? 바로 새로운 캐릭터다.

'툼스톤' 이라는 90년대 영화가 있는데, 거기에서 발 킬머가 연기하는 모습과 비슷하다. 알콜릭이면서 여러 가지 개인적인 문제를 품고 있는 캐릭터지만, 멋지게 쌍권총을 난사하며 스타일리시한 전투를 보여주는 배드애스 캐릭터다. 특유의 대사도 있고. 그런 느낌을 생각하면 될 것 같다.


Q. 많은 개발자들이 장르를 바꿔가면서 이것저것 시도해보곤 하는데, 계속해서 슈터를 만들어내는 이유가 무엇인가?

블레진스키 :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잘하는 거니까(I'm good at.)

그 외에도, 총을 쏜다는 건 어쩌면 굉장히 상징적인 행위다. 나는 굉장히 다양한 총기를 직접 사격해봤고, 그게 주는 느낌이나 쾌감을 알고 있다. 하지만 영화나 TV 매체 등에서는 이것이 안 좋게 쓰인 부분이 부각되고, 좋지 않은 쪽으로 비치는 게 강하다.

하지만 게임에서는 직접 총을 쏘고, 어서 처치해 마땅한 적을 내가 조준해 쏴서 물리쳐버리는 그런 과정에서 오는 희열감이 있다. '기어즈 오브 워'만 해도 랜서로 적을 쏘고, 전기톱으로 조각내버리는 게 폭력적이면서도 굉장히 쾌감을 주지 않는가. 그런 게 표현하고 활용하기에 따라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Q. e스포츠화 가능성은 얼마나 보고 있나? 제작사 차원에서 추진할 계획이 있는지.

블레진스키 : 물론 가능할 수도 있다. 개발자들 마음속에는 항상 자신의 게임이 e스포츠로 널리 즐길 수 있는 문화가 되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각자 게임을 플레이하고 즐기는 방법이 있는 거고, 그걸 어떻게 하라고 우리가 강요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억지로 우리가 먼저 e스포츠화를 하려고 이것저것 추진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멋진 게임을 먼저 만든 다음, 자연스럽게 플레이어들에 의해서 e스포츠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e스포츠를 먼저 상정하고 추진한다고 해서 되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지금은 게임의 세계관, 게임 플레이 요소들을 디자인하는 데 더 집중하고 게임을 만드는 것 자체에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 물론 당연히 욕심이 있고,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한다. 항상 재미있고 보는 맛이 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었고, 도전하고 있다. 당장 이번 PAX EAST에서도 시연대에서 이루어지는 플레이 하이라이트를 모아서 틀어주고 있는데 반응이 괜찮기도 하고.


Q. 전작인 '기어즈 오브 워'는 그 스토리 자체나 내러티브가 대단해서, 마초스러운 게임임에도 수많은 사람들을 울려버린(?) 전적이 있다. 기자도 눈물 찔끔한 기억이 있고. 그런 스토리텔링을 '로브레이커즈'에서도 기대할 수 있을까?

블레진스키 : 정말 그렇게 눈물이 날 정도였나? 고맙다.

'로브레이커즈'에도 당연히 스토리가 있고, 우리는 스토리텔링이 중요하단 것도 알고, 자신도 있다.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중이기도 하고. 하지만, 확실한 건 싱글 캠페인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현재 이 게임의 멀티플레이에 집중하고 있고, 그 안에서 충분한 내러티브와 스토리텔링이 가능케 하려 한다. 스토리를 따라 진행되는 별도의 캠페인이 없이도, 게임 속 다양한 환경적인 요인들이나 캐릭터의 대사 등에서 충분히 깊이 있는 스토리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보자. '기어즈 오브 워'의 마커스 피닉스의 아들 이름이 J.D. 다. 여기서 D가 무엇을 뜻하는지 아는가?

혹시, 도미닉?

블레진스키 : (웃으며)난 그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하지만 방금 당신처럼 유추해서 그 속의 스토리를 알아낼 수 있다. 이것저것 여러 가지 간접적으로 드러나는 요소들, 게임 외의 설명 요소들, 또 CG 컷신 등 다양한 수단이 있고, 이걸로 스토리를 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나는 이 게임을 싱글 패키지로 만들 생각이 없다. 디지털 전용의 온라인 게임이 될 것이고, 그 플랫폼을 최대한 활용할 것이다.




Q. 짧은 시간인데 많은 이야기를 들려줘서 고맙다. 기자를 비롯해 한국에 있는 팬들을 위해 한마디 남겨달라.

블레진스키 : 먼 이국 땅에서 내 게임을 플레이해주고 좋아해 주는 팬들에게 항상 고맙고, 넥슨 아메리카와의 연으로 여러분에게 또다시 게임을 선보이게 되어 기쁘다. 넥슨 쪽에서 서양 느낌이 물씬 나는 게임을 원했던 것 같고, 그게 이런 결과로 좋게 만들어진 것 같다.

한국 게임 팬들에게 아주 놀라운 게임을 선보이고 싶다. 마치 야구 배트로 머리를 맞은 것처럼 충격적인 느낌의 게임을 말이다.(웃음) 항상 기대해주셔서 감사하다. 좋은 게임을 선사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