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저가 만들어 나가는 게임쇼, PAX EAST가 3일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했습니다. 다양한 게임쇼를 다녀봤지만, PAX EAST만큼 별천지는 없었던 것 같아요.

다양한 코스튬 플레이부터 시작해서, 어느 게임사 부스를 가든 가득가득 들어찬 게임 시연대와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길고 긴 줄, 늘어서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도 많았죠. 어딜 가던 애정이 느껴지는 게임 관련 물품들을 팔고 있었고, 퀄리티도 하나같이 대단했어요. 누군가는 보드게임을 몇 개씩 싸 들고 와서 바로 플레이 존으로 직행하기도 하더군요.,


그만큼 '게임'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도 이 수많은 사람들이 제각각 그걸 즐기는 방법은 모두 달랐습니다. 누군가는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을 계속하는 걸로 만족하고, 누군가는 캐릭터를 재현하여 뽐내고, 누군가는 그냥 앉아서 친구와 잡담만 하기도 해요. 그 모든 게 '게임'이라는 이름 하나 안에서 모두 묶이는 게 정말 신기했습니다.

PAX EAST가 진행된 지난 3일 동안, 기자가 돌아다니며 기록했던 것들은 조금씩 담아와서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우리만의 축제가 아닌 모두의 축제


▲ 보스턴 공항에 걸려있던 환영 메시지. 이때부터 기분이 좋아졌다.



▲ 긴 줄 속에서도 웃음을 유지하고,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는 사람들


처음 PAX EAST 행사장에 도착했을 때 느낀 건 긍정적인 경악이었어요. 정말 숫자도 엄청나게 많고, 그런데도 질서를 잃지 않는 것도 대단하더군요.

사실 보스턴은 몇 년 전 보스턴 마라톤 테러라는 끔찍한 사건으로 인해 여러모로 치안이 강화된 상태였습니다. 어디라도 사람이 일정 수 이상 모이는 곳에는 까다로운 검색대가 마련됐고, 출입할 때마다 통과해야 했죠. 그럼에도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어요. 정말 무지막지하게 긴 줄이 만들어져도, 그 안에서도 서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게임기를 꺼내 맞대면서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직도 생각이 나는데, 우버를 타고 행사장으로 가던 길에 기사인 여성분이 "너도 팍스에 가는 거 맞지?" 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렇다하니, "그런데도 넌 평범한 옷을 입었네. 왜 더 즐기지 않아?" 라는 말을 했습니다. 겉보기에 참 우스꽝스러울 수도 있는 광경인데도, 이미 문화적으로 충분히 받아들여질 수 있는 풍토가 조성되어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실 그랬어요. 공항에서도 입국 심사를 할 때 PAX에 간다고 하니 고개를 끄덕이고, 여기저기에 PAX EAST 방문객을 환영한다는 메시지가 붙어있었죠. 단순히 몇몇 취미인들에게만 의미 있는 행사가 아니라, 지역사회 전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느낌이 좋았습니다.




다 같이 어울려 노는 즐거움



▲ "오 마이 갓..."



▲ 행사 대회가 참 많았다.


PAX EAST에서 게이머들은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모든 놀이터는 다같이 어울려 놀 것을 상정해두고 있었어요.

그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댄스 센트럴'을 틀어놓고 누구나 무대에 올라서 춤을 출 수 있었던 스테이지인데, 정말 부끄럽게도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니는 입구 옆에 있어서 눈에 정말 잘 띄었고, 심지어 앞에 앉아서 지켜보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그런데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많은 이들이 무대로 뛰어올라 부끄러워하면서도 재미있게 춤을 췄습니다. 단지 그것 하나만으로도 주변에 있던 모든 이들 입에 절로 미소가 걸리고 훈훈한 분위기가 만들어지더군요.

인디 게임 존에 있는 '아레나 갓즈' 라는 게임은 이 분야에서 아주 핫한 게임이었습니다. 4인 플레이 결투 게임인데다 워낙 다양한 변수가 만들어지는 게임이다 보니, 한 판 한 판 하고 있으면 이곳저곳에서 몰려온 구경꾼들로 둘러싸이기 일쑤였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순간마다 터져 나오는 환호성과 탄식... 다 같이 게임을 한다는 게 이런 거였지, 하고 추억들이 새삼스레 돋아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항상 같이 게임을 할 사람이 고팠고 항상 좋은 파티원이 필요했죠. 여기서는 모두가 그랬습니다. 거대한 하나의 파티였어요.



비디오 게임만 있는 게 아니다! 다양한 취향존중의 장



▲ 테이블탑 미니어처 게임도 있었다.


▲ 전체 플레이 존 중에서도 아주 일부의 모습.


'게임'이라는 카테고리는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넓었습니다. 우리가 막연히 떠올리는 비디오 게임들 뿐만 아니라, 보드 게임, 테이블탑 미니어처, TRPG 등 온갖 종류의 게임들이 다 있었습니다.

전시보다 게임을 하는 게 더 좋은 유저들을 위해서 전시장 바깥쪽에는 하루 종일 콘솔을 붙잡고 게임을 할 수 있는 플레이 룸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었어요. 어떤 이들은 자기 조이스틱을 챙겨들고 이곳저곳 다니며 도장깨기를 하기도 하더군요.

인상 깊었던 것은 전체 전시장의 1/3을 차지했던 자유 플레이 존인데, 각각의 게임들을 위한 다양한 사이즈의 테이블들이 못해도 수백 개는 놓여있었고, 중앙에는 자유롭게 가져다 할 수 있는 보드게임들이 쌓여있었어요. 또, 그 게임들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가져온 보드 게임이 있다면 얼마든지 놀이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거기다가 혹시나 같이 플레이할 사람이 없다면 매칭을 잡아주는 센터까지 있어서, 정말 몸만 간다면 누구와 무엇이든 하고 놀 수 있는 게임 그 자체의 장이었어요. 그 다양성이 참 부러워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열정이 무대를 만든다, 게이머가 만드는 게이머의 놀이터


▲ 너무 멋진 뒷모습에 사진을 청하자 포즈는 저절로 나왔다.


▲ 단연 최고의 인기를 자랑했다.



달리 또 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PAX EAST는 손님들도, 손님을 맞이하는 이들도, 모두가 게이머였습니다. 모두가 주인공이고 모두가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열심이었죠.

코스튬 플레이어들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요청할 때마다, 그들은 환하게 웃으며 저를 반겨줬고, 제가 찍은 사진을 어디서 볼 수 있는지 이야기를 나누거나, 자신이 만든 명함을 제게 건네주기도 했습니다. 또 어떤 이는 코스프레를 한 채 직접 만든 쿠키를 팔며 자선모금을 펼치기도 했죠.

자신은 그저 이미 열리고 있는 행사에 놀러 온 이방인이자 손님에 불과한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이 이 행사를 더 즐겁게 만들고, 다른 이들에게 재미를 주겠다는 그 의지와 마음이 참 멋졌습니다. 모두 자신이 어떻게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다른 이들이 어떻게 그걸 즐겁게 받아들일지 고심한 흔적이 역력했어요.

PAX EAST에서는 정말 모두가, 한 명 한 명이 멋졌습니다. 그 누구와 함께하더라도 즐거울 것 같은 게임쇼였죠. 만약 누군가 제게 유익함이나 신선함을 떠나서 가장 '즐거울' 수 있는 게임쇼가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이제 주저 없이 PAX라고 대답할 것 같습니다. 부디 앞으로 한국에서도 이런 유쾌한 게임쇼를 만나 볼 수 있길 기대하면서, 여기서 PAX EAST를 마칩니다. 모두 즐거운 시간이셨나요? 그랬길 바랍니다.



누구보다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졌던 쿠키 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