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에 수많은 게임쇼가 있지만, 그 면면은 생각보다 모두 다릅니다.

전세계에서 아마 가장 유명할 게임쇼인 E3는 사실 그렇게 유저 입장에서 친절한 게임쇼는 아니에요. 실제로는 신작 게임을 처음으로 공개하거나 1년의 계획을 알리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고, 유저 개인이 참가하려면 100만 원 가까운 참가비가 드는데다, 각종 미디어 행사와 업무 미팅이 이어지는, 보다 언론과 업계에 치중한 게임쇼죠.

뿐만 아니라 게임스컴, 동경게임쇼, 지스타 등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게임쇼는 B2B(Business to business)와 B2C(Business to consumer)를 모두 병행하곤 합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그 규모나 명성에 비해 정작 유저가 느끼는 비중은 생각보다 적죠. 그런 면에서 PAX는 매우 특별합니다. 철저히 B2C 전용의, 유저의, 유저를 위한, 유저에 의한 게임쇼이기 때문이죠.

그동안 해외 게임쇼에 국내 개발자들이 참가한다는 소식들은 종종 들어왔지만, 이번 PAX EAST에는 조금 특별한 소식이 있었습니다. 지난해 부산에서 열렸던 BIC 페스티벌(Busan Indie Connect Festival)에 출전했던 게임들이 모여 PAX EAST의 인디 메가부스에 참가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국내 메이저 게임사도 출전을 고심하는 이 행사에 인디 게임 개발자들이? 처음엔 놀랐지만, 오히려 PAX EAST여서 가능한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게이머들이 직접 만드는 인디 게임만큼 이 행사에 적합한 게 없을 테니까요.

그렇게 해서 PAX EAST 폐막을 몇 시간 남긴 마지막 날, BIC 부스에 방문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래도 모두가 즐거워 보였습니다.

▲ 좌측부터 김광삼, 이세훈, 이득우, 이석호, 김인혜, 이정희




Q.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는 분도 있고 처음 뵙는 분도 계십니다. 한 번 간단하게 자기소개와 게임 소개를 같이 해주세요.

이정희 : 부부가 같이 게임을 개발하고 있는 21세기 덕스의 이정희, 김인혜입니다. 지금은 ‘레이서즈: 더트’라는 게임을 만들고 있어요. 레트로 그래픽의 레이싱 게임이지만, 플레이에는 물리 법칙 등을 적용해서 드리프트 같은 스킬이 필요한, 겉보기엔 단순하지만 쉽지 않은 플레이를 지향하고 있어요. PS4 와 스팀으로 올해 4분기에 출시할 예정입니다.

김광삼 : 안녕하세요, 청강문화산업대 교수 ‘별바람’ 김광삼입니다. 이번에는 ‘실버불릿’을 들고 참가했습니다. 지난해 모바일 버전을 출시한 게임인데, 버전 업해서 스팀 버전을 2주 전에 내놓았고, 여기선 스팀 버전을 시연중입니다.

이석호 : ‘블랙위치크래프트’를 만들고 있는 2인 개발팀 콰트로기어의 이석호입니다. 고딕 액션 RPG를 표방하고 있고, 올해는 GDC 이어서 PAX EAST에도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올해 안에 PS4와 Xbox One으로 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이세훈 : ‘서브터레인’을 만든 픽셀로어의 이세훈입니다. ‘서브터레인’은 하드코어 서바이벌 게임으로, 화성에서 이뤄지는 일들을 담고 있어요. 정식으로 출시한 지는 두 달쯤 되었고, 현재 스팀에서 콘텐츠 업데이트를 해나가면서 PS4나 Xbox One 등 다른 플랫폼으로 확장을 준비중입니다.

이득우 : 인디디벨로퍼 파트너스의 이득우입니다. 작년 BIC 페스티벌을 개최했고, 현재는 각종 매니징과 이런 행사 참가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올해 BIC 페스티벌 역시 준비하고 있어요.

▲ BIC 페스티벌 모습


Q. 이렇게 타지에서 뵙게 되니 정말 반갑네요. 그런데 사실 한국에서 PAX라는 행사 자체가 인지도가 높지 않은 편인데, 이렇게 나오셔서 꽤 놀랐습니다. 수많은 행사 중에 PAX를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이득우 : 지난해 했던 BIC 페스티벌은 개발자들의 행사를 표방했었어요. 요즘은 점점 개발자들을 중심으로 하는 행사들이 많아지고 있는 추세죠. NDC나 IGC, 유나이트 등등. 그렇게 BIC를 할 때 해외 개발자를 많이 초청했었고, 그때 이야기를 많이 나누면서 도움을 받았었는데, 모든 행사 중에서 PAX EAST에 대해서 굉장히 좋은 평가를 하더군요. 사실 인디 게임은 비즈니스적인 이야기보다는 유저들을 많이 만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발품을 팔면서 마케팅을 하는 느낌이 있는데, PAX가 거기에 적합해 보였어요. 그래서 많이 건의를 해왔었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지금 이렇게 참여하게 됐고,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석호 : 개발 초창기부터 이런 행사에 자주 참석하려고 노력해왔는데, 게임을 소규모로 만들다 보면 유저들에게 보여줄 기회가 별로 없어요. 유저들에게 최대한 보여주면서 피드백을 자주 받고, 계속 수정해 나가면서 완성하는 그런 식이 되는데, 특히 PAX는 철저히 유저 중심의 B2C 행사다보니 그런 면이 확실히 잘 부각돼요. 지난달에 참석했던 GDC에서는 개발자들의 시선을 많이 느꼈다면, 이번엔 유저들의 의견을 많이 받게 되어서 좋습니다.

이정희 : 사실 저희는 미국이나 서양 콘셉트에 맞는 그런 걸 좋아해서, 그런 취향을 노리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국내 쪽 B2B 중심의 행사에서는 그런 고민에 대한 피드백을 받기가 어려워요. 하지만 PAX EAST에서는 딱 우리가 원하던 방향의 피드백, 필요한 이야기들을 굉장히 많이 들을 수 있을 것 같았고, 실제로도 그랬어요.

김광삼 : 참가 하는 유저들이 전부 게임을 너무나 잘 해요. 아무도 키보드 마우스 안 쓰고, 패드로 하고, 설명해 줄 필요도 없고요.

이세훈 : 저는 사실 이런 행사에 참가해서, 직접 플레이어들에게 피드백을 받으면서, "나, 이 게임 플레이하고 있는데, 정말 재미있어!", "네 게임 잘하고 있어." 이런 말을 듣는 게 정말 도움이 되고, 세상 그 무엇보다 힘이 되는 느낌이에요. 재충전을 할 수 있달까. 특히 취향이 맞는 유저가 많아서, 우리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더 좋죠.

이석호 : 인디는, 저희는 개발은 쭉 해왔지만 마케팅을 하기가 어렵기 마련인데, 이렇게 꾸준히 행사에 참가를 하다 보니 게임을 알아보는 사람도 생기고 그런 점이 좋거든요. 특히나 PAX 는 B2C 중심이다 보니 그런 게이머들이 참 많이 옵니다. 전반적으로 게임을 즐기는 스펙트럼이 참 넓어요. 오직 하나의 취향, 하나의 방법만 있는 게 아니라서, 어떤 친구는 게임을 해보고 나서 내년에는 이 캐릭터의 코스튬을 입고 오겠다고 하더군요. 그것도 참 여기서만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하네요.


Q. PAX EAST의 인디 부스들은 ‘인디 메가부스’ 라는 이름으로 다 같이 중앙에 모여있는데요. 인디 개발자들끼리 교류가 좀 있었는지, 또 기억에 남는 게임이 어떤 게 있으셨는지 궁금하네요.

이득우 : 어제는 인디 개발자들끼리 파티도 했어요. 저희가 후원한 파티였는데, 이런저런 이야기, 서로 명함도 주고받고, 서로 돌아다니면서 해본 게임에 대해서 이야기도 해보고요.

이석호 : 사실 저희도 게이머이긴 마찬가지니까, 다른 게임 궁금한 게 생기고 하면 해보고 싶어서 조금 일찍 와서 후다닥 돌아다니면서 해보고 그러거든요. 저기 너머에 있는 배틀쉐프 브리게이드라는 게임을 킥스타터에서 후원했었는데, 가서 내 그거 후원했었어! 하면서 같이 이야기도 하고 그런 분위기에요. 개발자이자 게이머니까요.

이정희 : 개인적으로 ‘Pyre’가 많이 눈길이 가더라고요. 이거 대기선이 정말 길어서, 뭔가 싶어서 구경해보고 그랬거든요. 알고 보니 그 유명한 슈퍼자이언트가 만든 신작이더군요. 굉장히 기대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 외에는 ‘Below’ 라고 역시 기대가 높은 작품인데, 아직은 더 다듬어진 것 같았지만 역시 만듦새가 대단히 좋았어요.

▲독특한 콘셉트의 인디게임 'Pyre'

김광삼 : 저는 개인적으로 부스가 붐비기도 하고, 들고 온 게임 빌드가 전시용으로 쓰려면 좀 손이 많이 가서 다른 데는 별로 못 가봤어요. 결국 오늘은 빌드를 아예 새로 짜서 좀 편하게 전시하고 있긴 하지만요.

이석호 : 저는 저기 ‘아레나 갓즈’가 좋았어요. 작년 BIC에서도 본 게임인데, 정말 재미있게 한 게임이에요. 그리고 아까 말씀드렸던 ‘배틀쉐프 브리게이드’. 이게 아트가 정말 예쁜데, 과거에 디즈니에서 일하던 분들이 만든 거라 눈에 확 들어오거든요.

김광삼 : 그러고 보니 새삼스럽지만, 여기 출품한 게임들이 전반적으로 우리나라 게임들하고 정말 아트 스타일이 너무 달라서 놀랐어요. 이거 우리가 이제 갈라파고스 화 된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말이죠. 트렌드가 완전히 다른 것 같아요. 좀 걱정이 되긴 했습니다.

이세훈 : 저는 취향상 ‘오크 머스트 다이’ 같은 게임을 무척 좋아하는데, 이번에 새로운 버전을 들고 나왔더라고요. 이런저런 이벤트도 하고 재미있게 잘 꾸며준 것 같아요. 유쾌한 그 분위기가 참 마음에 듭니다.

▲심리전에 공을 들인 아레나 갓즈

Q. 역시 유저 기반 행사인지라, 게이머들이 가장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한국 게이머들과 비교해서 어떤 점이 다르던가요?

이석호 : 한국은 이러니저러니 해도 모바일 게임으로 게임을 처음 접한 사람이 무척 많아요. 훨씬 캐주얼 게이머가 많고, 온라인 세대라고 해도 하드코어 게이머라기보다는 자기가 하는 게임만 알고 좋아하는, 유저로서 깊이는 개개인 차이가 크달까요. 반면에 PAX EAST에 오는 사람들은, 행사 특성도 있고 전부 어렸을 때부터 게임을 오랫동안 해온 사람들이라, 그 게임 베이스 자체가 다르고, 깊이가 엄청 깊다는 느낌입니다. 하나하나가 모두 게임 자체에 있어서 지식이 대단히 많고 전문가에요.

이세훈 : 어렸을 때부터 게임을 하면서 자라는 게, 여기는 그게 하나의 문화였기 때문에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비디오 게임을 즐기는 게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고, 게임을 좋아하는 게 눈총을 살 일이 아니거든요. 우리나라에서는 “왜 게임을 해?” 같은 질문을 받기 일쑤니까. 그렇게 폭넓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있어요.

이정희 : 하나 재미있는 게, 저희 게임은 2인 플레이를 지원하다 보니 여러 명이 와서 하기도 하지만, 누군가 혼자 하고 있으면, 전혀 모르는, 뒤에서 기다리던 사람이 끼어들어서 같이 하고 그러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처음 보는 서로 모르는 사이인데도 같이 게임을 하면서 “이 루저야!”, “나 먼저 간다, 멍청아!” 같이 서로 놀리면서도 유쾌하고, 재미있게 같이 게임을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그동안 그렇게 누구하고나 같이 게임을 즐겨온거죠. 아주 자연스럽게 서로 같이 즐겁게 노는 문화가 자리잡고 있는 것 같아요.

김광삼 : 이 친구들은 전체적으로 전문가 같은 면이 있어요. 게임성을 좀 따진다고 할까. 그렇다고 무조건 부정적으로 까기만 하려는 게 아니고요. 우리나라에는 대세를 따르지 않으면 “왜 그런 걸 해?” 하는 식의 풍조가 있는데, 여기 친구들은 스펙트럼이 참 넓습니다. 게임 속에 들어가 있는 수많은 요소 중에 하나만이라도 좋고 마음에 든다면 그걸 진심으로 마음에 들어 하고, 여러 가지 분석을 해요. 하나의 강요된 스타일이 있는 게 아니라, 이런 게 있는데,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와서 즐기고, 아니면 다른 자기 취향에 맞는 걸 찾아가고. 있는 그대로 자기가 무엇을 즐길 수 있는지 찾아내는 사람들이에요.

이세훈 : 우리나라는 좀 캐주얼함을 강요당하고, 이것저것 하나의 풍조에 맞춰가도록 요구하는 것이 강해요. 하지만 여기 친구들은 게이머 풀이 정말 엄청나서, 어떤 타겟을 잡아도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요. 제 게임도 그런 면에서 걱정이 있는데, 여기는 모든 콘셉트가 받아들여집니다. 대세를 왜 따르지 않느냐고 태클을 거는 사람도 없고, 이 게임 자체를 좋아해 줘요.

김광삼 : 또 한가지 우리나라에선 절대 못보던 게 하나 있는데, 게임쇼에 아이를 데려오는 부모님들이 우리나라에도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여자아이를 게임쇼에서 보기 힘들어요. 아직 게임은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게이머들 사이에 남아있는 거죠. 하지만 여기는 남녀 구분도 없고, 노소 구분도 없어요. 결코 쉽지 않은 게임들인데 무척 어린 여자아이 게이머도 와서 재미있게 게임을 플레이하고, 엄청난 실력의 노년 게이머가 게임을 하기도 합니다. 이런 구분 없이 모두 즐기는 게 너무 좋습니다.

▲ 게이머의 축제 PAX! 기다리는 것도 즐겁다


Q. 여기서 다른 인디 개발자들하고 이야기도 나누면서, 인디 개발 환경의 차이나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신 게 있으신가요?

이석호 : 미국 쪽 개발자들은 확실하지 않은데, 캐나다, 유럽 쪽 개발자들하고 이야기한 것들이 아주 흥미로웠어요. ‘아날로그 : 헤이트 스토리’를 만든 친구가 캐나다 사람인데, 그 친구는 별다른 일 없이 최저생계비 지원 같은 걸로 생활하면서도 안정적으로 게임을 만들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훨씬 더 좋은 게임이 나올 수 있었던 거고. 게임 개발을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생활 수준이 아예 다른 느낌이에요. 그 친구들은 그렇게 말하더군요. 우리는 이렇게 게임을 계속 만들어도, 하나하나 좋은 게임을 만들어 조금씩 팔아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면서 산다. 하고.

이정희 : 예전에 화제가 됐던 ‘인디게임 더 무비’를 보면 무척 황당한 광경이 있어요. 거기서 인디 개발자들이 자기 힘들다고, 게임을 만드는 게 참 어렵고 여건이 잘 따라주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러면서도 아침에 일어나서 커피숍 가서 아침에 커피에 잘 챙겨 먹고, 할거 다 하고 살면서 게임을 만들거든요. 한국에서 인디는 ‘생존’이라는 단어랑 분리가 안돼요. 이게 같은 인디라고 해도 출발선이 많이 다릅니다. 업무 환경, 사회적인 조건 같은 것들 말이에요.

김광삼 : 이 친구들도 게임을 만드는 게 어렵다고 하는데, 어렵다는 단어를 써도 좀 느낌이 달라요. 여기 친구들은 정말 작품성, 게임을 어떻게 더 재미있게 만드냐 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더 큰거고, 우리는 힘들다 힘들다 하면 그게 대부분은 먹고사는 문제 자체에 대한 거죠.

이석호 : 그래서 그렇게 얽매여 있는 게 적어서, 좀 더 자유롭고 다양하게 만들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실패할 걱정이 상대적으로 적으니까. 우리는 인디 게임을 만든다고 하면 어떻게 먹고살지부터 묻는데, 이 친구들은 어떻게 만드는 게 재미있을까? 가장 큰 문제인 거죠.

이정희 : 국내에서는 인디 개발자들끼리 모여도 게임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어떻게 먹고 사니? 광고 수익을 어떻게 더 낼까? 이런 이야기가 먼저 나오게 돼요. 하지만 이쪽 친구들은 게임 자체에 대해서 우선적으로 접근할 여유가 있고, 어떻게 더 재미있게 만들까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죠.

김광삼 : 그래서 사실 이런 행사에 좀 더 자주 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것저것 많은 걸 보고 견문을 넓힌달까. 서로 다른 필드에서 뛰는 개발자들끼리 여러 가지 배울 것이 많아요.

▲ 무엇을... 쓰고 있는거니?


Q. 이번 PAX EAST 에서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이세훈 : 여기 와서 만난 사람이 있는데, 저희 게임을 크라우드펀딩 단계에서부터 도와준 아주 중요한 분이에요. 콘텐츠를 직접 만들어주기도 하고, 보이스 액팅, 번역 쪽으로도 도움을 준 사람인데, 같이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그러면서 참 이런 사람과, 이역만리 먼 이국 땅에 있는 사람과 같이 게임을 만들고 또 이렇게 후일담을 나눌 수 있다는 게 참 독특하고 멋진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또 그런 게임을 만들어야지! 하는 의욕 충전이 된다고 할까.

이석호 : 참 부러운 부분이에요. 저희는 아직 출시도 안 한 게임이니까. 그냥 재미있다고만 해줘도 정말 고마운데, 그런 경험은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김광삼 : 단연 굿즈가 정말 많다는 거? 우리나라는 사실 2차 창작이 크게 활성화되기엔 어려운 여건인데, 여긴 모든 굿즈샵마다 회사가 다르고 다 디자인이 달라요. 이렇게 활발한 2차 창작이 이루어진다는 게 참 놀랍죠.

이석호 : 행사장을 보면 인디 메가부스가 정 가운데에 있어요. 인디 게임이라는 것 자체가 하나의 동등한 카테고리로 인정받고 사회적으로 대우하고 있는 느낌이죠. 유저들도 관심을 많이 가지고, 인디라는 것이 페널티나 동정 요소가 아니라 독립된 파트인게 참 좋아요.

이정희 : 무엇보다 아이들이나 여성 게이머가 정말 많다는 것? 국내 행사를 다녀보면 게임에 해박한 여성 유저가 와서 게임을 전문적으로 즐기는 건 보기 힘들고, 더군다나 잘하는 걸 보기는 정말 힘듭니다. 이건 여성 유저들이라 게임을 못한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그만큼 우리나라에서는 게임이라는 문화 자체가 너무 한정적으로만 공유되고 있다는 거지요.

여기선 성별의 차이도 없고, 그냥 모두가 똑같은 하드코어 게이머에요. 우리 게임도 레트로 그래픽이어서 그런 추억이 있는 유저들만 할 것 같았는데, 어린 친구들이 와서 “와, 이거 귀여워!” 하면서 정말 좋아하는 걸 보니 참 새삼 대단하다 싶었어요. 또 게임이 쉬운 편이 아닌데, 어떤 이들은 자기가 몇 번 해봐서 못 깨면 그냥 포기하고 싫어하거든요. 하지만 여기서는 아기들도 게임을 보는 인사이트가 좀 깊고 관심이 많다고 할까. 어렵더라도 게임의 룰 자체가 재미있어 보이면 계속 시도하고 좋게 보아줍니다.

그래서 그럴 때 게임이 너무 어려운지, 그래서 난이도를 좀 조절해야 할지 물어보면, 게임이 어려운 게 아니라 내가 실력이 부족한 거고, 여기서 시간을 더 투자해서 익숙해지면 더 잘하고 진짜 재미있을 것 같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해요.

이석호 : 깊게 공감하는데, PAX EAST에 온 친구들은 정말 진득하게 게임을 붙들고 해요.

이세훈 : 한국에서 행사에 게임을 내보면, 아무래도 받아들여지는 주류가 정해져 있는 것 같아요. 하나의 취향으로 수렴되고, 뭔가 대세에 반하는 걸 하기 어렵고. 여기는 그런 게 적어요. 다양한 인종, 민족 등의 차원을 넘어서서, 그런 각종 환경의 차이를 넘어서서 게임이라는 매체로 하나가 되는 느낌이랄까요. 그런 공통된 관심사가 있고, 그러면서 동시에 스펙트럼이 넓고, 그래서 세계 어딘가에는 내 게임을 좋아하는 게이머가 분명 있겠구나, 하는 확신이 듭니다.

이석호 : 우리는 보통 게임 행사가 열리면, 좀 구분이 돼요. 행사를 진행하는 사람과 참가자가 분리되어서 소통을 잘 안 하죠. 하지만 여기는 다 같은 게이머에요. 격이 없이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같이 게임하면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죠. 차이가 없는, 게임이라는 동질감, 그런 동질감이 그 어떤 행사보다 강한 거 같아요.


▲ 전시장 한가운데를 차지한 인디 메가부스. 그 어느 부스보다 크다.


Q. 이런 게임쇼 문화, 시스템에 있어서 한국이 개선되었으면 하는 부분이 있나요?

이정희 : 우리나라에도 좀 더 찐득한 게임쇼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PAX EAST는 속된 말로 진성 덕후, 하드코어 게이머만 모이는 곳인데, 우리나라는 게임 관련 행사를 하면 항상 게임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 게임 경력이 얼마 없는 캐주얼 유저들이 대부분을 차지해요. 행사 자체도 그런 사람들을 주 초점으로 하고 있는 경우가 많고. 정말 필요한 환경, 도움을 마련하기보다는 좀 사무적이고 전시에 치중하는 면이 크지 않나 싶어요.

두 종류가 모두 있었으면 합니다. 좀 더 진득하니 하드코어 게이머들끼리 게임도 하고 피드백도 주고받을 수 있는 기회와, 대중적으로 사무적으로 필요한 일들을 할 수 있는 행사들 모두요. 다른 문화만 봐도 각종 서브컬처를 아우르는 서울 코믹 같은 유저 베이스 행사가 크게 있는데, 게임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행사는 없어요.

일동 : 유저들의 게임을 보는 마인드에도 변화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지금도 새로운 게이머가 항상 생겨나고, 점점 개선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게임을 진지하게 들여다보려는 노력이 적다는 생각이 듭니다. 진득하니 게임을 모두 파악하려 하기보다는 몇 가지 눈에 걸리는 것을 가지고 편향된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아요. 좀 더 긍정적이고 게임을 그 자체로서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하달까.

이를테면 그런 경우도 있죠. GTA5, 위쳐3 보다 못한 게임들은 전부 쓰레기다, 이런 식의 논리를 내세우는 경우도 가끔 있고요. PAX EAST의 게이머들은 모두 경력이 일정 이상 되다 보니 인사이트가 있어요. 뭔가 하나하나 좋고 나쁨을 가리고 명확히 자기 기준으로 평가하려고 하죠. 기본적으로 게임 개발자를 소통의 대상으로 여기고 이런저런 피드백을 직접 주고받으려 하고요. 게임을 대하는 자세가 정말 많이 다릅니다,

우리나라는 통일된 하나의 기준을 강요하는 게 좀 있죠. “어떤 게 좋은 것일까?” 라는 질문에 오직 하나의 답만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하지만 여기는 좀 달라요. ‘좋음’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사람의 수보다 더 많아요. 그런 분위기가 우리도 있었으면 합니다.

한국은 비단 게이머뿐만 아니라 개발자들도 그런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왜 굳이 그런 걸 만들어? 그냥 돈이 되는 걸 해. 하는 식으로 반응하는 개발자들이 무척 많죠. 자신과 맞지 않는 요소가 몇가지 있으면 그걸로 바로 논외가 되어버리고. 하지만 여기는 그렇지 않다는 걸 느껴요. 참 부러운 부분입니다.


Q. 마지막으로 PAX EAST에 참가한 소감 한마디씩 소회해주시는 것으로 마무리해보겠습니다.

이세훈 : 한마디로 하자면, 정말 오길 잘했다! 어썸! 이런 행사에 더 자주 와보고 싶어요. 이런 게이머들이 있고, 계속해서 내 게임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고, 계속 좋은 게임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의욕 충전이 됐습니다. 보람차네요.

이석호 : 일단 유저 피드백을 최대한 많이 듣는 게 우리의 목표였는데, 그건 충분히 달성한 것 같아요. 유저 의견을 들어가면서 만들어나가고, 좋은 피드백을 바탕으로 개선해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고딕 스타일이란 면에서도 취향에 대한 걱정이 많았는데,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고, 정말 참가하길 잘한 것 같아요.

김광삼 : 게임 시장이란 것이 국내에만 있는 게 아니고, 전 세계 게이머들은 모두 같은 게이머들인데, 너무 국내 쪽에만 관심을 두고 그 안에서 익숙해진 게 아니었나 하는 반성을 먼저 했습니다. 교수로서나, 게이머로서나, 개발자로서나 모든 면에서요. 제가 만든 게임이 어떤 면에서 사람들에게 어필하는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그런 것에 대한 새삼스러운 전환이 된 것 같아요.

이정희 : 다들 마찬가지이실텐데, 게임을 만들면서 항상 내가 가는 길이 맞는지 고민이 많이 들어요. 한국에서는 그런데 그런 고민을 풀어나갈 기회가 좀 적어요. 피드백을 주고받을 기회가 적고, 다른 신경써야할 제반 사항이 너무 많죠,. 그래서 사실 여기 오기 전까지는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여기 와서 다양한 피드백과 평가를 받고 나니 그 자체로 힘이 됩니다. 게임으로 소통을 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이런 기회가 와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득우 : 저는 행사를 공부하러 온 입장이기도 하고, 올해 BIC 페스티벌을 준비해나가고 있기도 하기에, 많은 배울 점을 얻어간다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우리나라 게임쇼들은 비즈니스에 치중되어 있는데, 보다 문화를 공유하고 기른다는 기본적인 것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것을 배워가서 올해 많이 반영할 계획이고, 깊이 있는 게임을 개발하고자 하는 인디 개발자들에게 어떤 것이 필요하고, 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많이 배워가고 얻어갑니다. 굉장히 도움이 되고, 저도 정말 오길 잘했다는 생각입니다.

올해 BIC는 이미 일정이 확정되었고, 여기서도 다양한 개발자들과 접촉하면서 올해 행사에 대한 계획을 하나씩 해나가고 있어요. 보다 발전한 모습을 보여드리고자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9월에는 부산에서 꼭 만나뵙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