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넥슨 정상원 부사장

넥슨 정상원 부사장의 강연은 결론부터 말하면 실무와는 거리가 조금 먼 어쩌면 원론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내용이다. NDC2016의 슬로건인 DIVERSITY(다양성)라는 단어를 주제로 진행된 이 강연은 단 한 번도 다양성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았고 단 한 번도 다양성이 제시하는 미래에 대해 그리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다양성의 무거움을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정 부사장은 분자생물학 전공자답게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몇 개의 사례를 제시하고 최근 게임시장을 본인의 경험과 시각을 토대로 해석했다. 과거와 현재의 게임시장이 달라진 점을 돌아보고, 현상을 짚고, 현재 게임을 개발하고 있는 개발자에게 메시지를 전달했다.





"요즘 모바일 게임 개발하는 사람들 고민이 많다. 모바일 게임을 만들 때 문제가 되는 것은 BM(사업 모델)과 자동전투다. 적절한 BM을 짜고 디바이스 특성에 맞춰 자동전투를 삽입해버리면 게임이 갑자기 단순해져 버린다. 이런 상황에서 게임을 다양하게 만들기 어렵다. 또한, 대다수 사용자들이 모바일 게임은 킬링타임으로 접근하고 있기에 더욱 게임이 단순해지는 것 같다."



"과거에는 그랬다. 보통 개발자가 게임을 만들면 사업 영역에서 마케팅했다. 매출액 대부분은 차기작 개발이라든지 해서 대부분 다시 게임으로 돌아오고는 했는데 모바일 게임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상대적으로 모바일 게임은 개발팀의 중요도가 줄어들고 있고 사업 영역의 세력이 커지고 있다.

사람들은 '쥬라기 공원'을 누가 만들었는지 안다. 그러나 '초코파이'는 누가 만들었는지 모른다. 이처럼 게임이 공산품화 되고 있다."



"그래서 게임에 IP를 붙이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마트에서 설탕을 사는 것과 같다. 어차피 상품의 질은 큰 차이가 없으니 어디 브랜드가 유명한지, 어디에 진열됐는지로 팔리고 있다. 전체 현상은 아니지만, 이런 현상이 보인다. 또 다른 문제점은 과거보다 중간에서 가져가는 비용이 증가했다는 점이다. 플랫폼과 퍼블리셔 비용 등 중간 과정에서 빠지는 게 많다."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잠깐 이야기하려고 한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생식은 무성생식과 유성생식이 있다. 무성생식은 효과적이다. 호날두나 메시가 무성생식을 하면 똑같은 아들이 탄생한다. 매우 효과적인데도 하등 생물에서만 발견된다.

유성생식에는 들어가는 비용이 크다. 식물의 경우 곤충을 불러오기 위해 꽃을 만든다.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효과적이지 않다. 훌륭한 사람들끼리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도 훌륭하지 않을 수 있다. 반대의 경우도 발생한다. 그런데 왜 유전자는 유성생식을 선택했을까?

무성생식은 똑같은 게 반복된다. 반면 유성 생식은 유전자가 섞인다. 섞이면 생각지도 못한 결과물을 자식 대에서 볼 수 있다."



"적자생존은 환경에 살아남는 사람이 적자라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현재 환경에서 적자란 말이다. 환경은 매일 바뀐다. 환경이 바뀐 후에 적자가 과연 적자로 남아있는가 생각해보면 그건 또 아니다. 예로 공룡을 들을 수 있다. 공룡 멸망설은 여러 가지가 많지만 결국 망했다는 말로 대신할 수 있다. 바뀐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망한 사례다.

반면, 토끼는 엄청난 번식력을 자랑하며 호주에 널리 퍼졌다. 호주에 유입된 토끼는 천적이 없었기에 3억 마리까지 늘어났다. 생태계 교란 종으로 지정되기까지 했다. 일반적인 환경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게 분명한데 특정 환경이 되면 끝도 없이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현상이 어떤 제약점이 풀려서 그런 건지, 혹은 환경에 적응했는지는 다른 이야기다."



"바나나는 1960년대 이미 한 번 멸종한 적이 있다. 사람들이 먹는 바나나에는 씨가 없다. 모든 바나나는 뿌리를 잘라 키우기 때문에 전 세계의 모든 바나나는 하나의 유전자만을 가지고 있다. 1960년대 바나나에 자라는 곰팡이류가 발견됐으나 단 하나의 유전자만을 가진 바나나를 곰팡이에게서 구제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바나나는 멸종했다.

현재 우리가 먹고 있는 바나나는 이 곰팡이에 강한 다른 형태의 바나나다. 물론 이것도 단 하나의 유전자만을 가지고 있다. 이 역시 위험하다. 한 가지에 몰방(沒放)했을 때 훅 가는 예라고 볼 수 있다."



"또 다른 예로 말라리아를 들 수 있다. 매우 무서운 질병인데, 아프리카의 한 부족은 말라리아에 걸리지 않음이 확인됐다. 이 부족의 모든 사람은 '겸상적혈구 빈혈증'이라는 적혈구가 낫 모양으로 변형되는 질병을 앓고 있었다. 말라리아 매개체는 이 적혈구를 공격하지 못했다. 그래서 부족 원들은 면역이 됐다. 그런데 평소에는 이 질병 때문에 빈혈증세를 보인다. 하지만 이 덕택에 전 세계 인구가 전부 말라리아에 걸려도 이들만큼은 살아남는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이야기를 던졌는데 결국 화두는 이거다. 환경은 변하는 데 우리는 이에 대처하기 위해 어떤 것을 하느냐다.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이에 대처하기 위해 선택과 집중을 하느냐, 아니면 다양성을 챙기느냐다."


"우리의 상황은 한정적이고 모든 것을 전부 할 수 없는 처지기에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 이 맥락에서 예전에 벤쳐 캐피탈이 투자할 때 퍼블리셔들이 좋아하는 장르를 선택한다는 말을 한 적 있다. 이 말이 개발팀들에게 불만을 일으키기도 했다.

현재 모바일 게임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성적표가 매일매일 나온다는 점이다. 눈앞의 성과를 피해 게임을 만들기 어려운 환경이다.

모든 사람이 현재의 문제를 다 안다. 엄청나게 경쟁이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도 안다. 물론 이런 엄청난 경쟁에서도 우위를 잡을 수 있는 팀을 가지고 있으면 해볼 만한 게임이다. 그러나 이런 팀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그래서 이야기하는 것 중의 하나가 '포트폴리오'다. 포트폴리오란 뭐가 걸릴 줄 모르니까 여러 가지를 시도해보자는 의미다. 그런데 단순히 여러 개를 하는 게 포트폴리오를 뜻하지는 않는다. 넓은 저수지에 가서 10개의 낚싯대를 내 앞에 드리우는 게 포트폴리오라고 부를 수 있는 건지는 생각해봐야 한다.

생각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 이해가 되지 않아도 해야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런 게임을 만들려면 회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다양한 개발사가 여러 행동을 취하고 있다. 그중에 하나는 푸드코트처럼 입점한 사업체 하나하나가 최대한 경쟁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의 입맛에 맞추는 것이다. 각 입점사가 최고의 레시피를 제공하는 것이다. 다른 방법은 미슐랭 3스타 음식점처럼 재료부터 통제하여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방법이다. 이는 회사의 선택이다. 회사 차원에서는 푸드코트쪽이 좀 더 낫기는 하다."



"과거를 잠시 되돌아보면, 처음으로 시장을 선점하는 이점이 있는 회사는 매우 성공했다. '리니지', '바람의나라', '던전앤파이터' 그리고 중국에서 성공한 '크로스 파이어' 등이 그랬다. 모바일에서도 '모두의 마블', '블레이드', '세븐나이츠' 등이 그랬다. 이들은 나올 것 같다고 생각한 시장을 선점하고 이끌어왔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 같은 방법이 아니라면? 같은 장르에서 경쟁을 통해 일어서야 한다. 큰 개발비와 거대 홍보를 통해 승부해야 한다. 포트폴리오는 이 두 가지 방향에 맞춰 꾸며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거 패키지 게임 시절 복사 등으로 시장이 안 되고 있을 때 인터넷이 들어왔고 인터넷으로 게임을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다. 패키지와 콘솔 시장에 우위를 가지지 못했지만, 온라인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 반대로 온라인이 잘되고 있는 회사는 모바일이 태동할 때 모바일로 들어가기에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굳이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않아도 잘 먹고 잘사는데 지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럴 때일수록 세상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안테나를 켜고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냐고? 사실 나도 잘 모른다. 우리가 하는 게임 비즈니스는 흥행 산업이다. 그래서 잘 모른다.

이번 EPL에서 우승을 바라보고 있는 레스터 시티의 시즌 전 우승 확률은 1/5000이었다. 그런데 우승을 앞두고 있다. 이처럼 행복한 서프라이즈가 발생하는 것이 게임 회사인 것 같다.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새로운 성공을 찾을 수 있고 즐거운 서프라이즈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찌 됐건 우리는 결국 답을 찾을 거다. 그럼 그 답은 무엇일까. 바로 유저들이 찾고 있는 '무엇'을 찾는 것이다. 지금의 시장도 수성해야겠지만, 유저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무엇'을 찾아야 하는 게 답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