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창문 사이로 뜨거운 빛이 내리쬐던 6월 초. 무료한 주말의 시간을 달래기 위해 방바닥에 누워 인기 차트를 뒤적거리던 중, 하나의 게임을 발견했다. 보라색 해골 마법사 아이콘이 매력적이며, 유난히도 부제가 긴 게임이자, 전략 게임 카테고리 다운로드 순위 10위 정도에 머물던 게임, '배틀플랜스(Battleplans)'.

사실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고 게임을 시작했다. C4M이라는 개발사도 처음 봤을 뿐더러(나중에 알고 보니, 블루홀의 북미 지사, '엔매스 엔터테인먼트'가 퍼블리싱을 하고 있었다), 전략 시뮬레이션 자체를 선호하는 편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덤덤한 감정 상태로 게임을 시작한 지 10분여. 자세를 바르게 고쳐잡고 외쳤다.

"뭐야 이거? 생각보다 완전 괜찮잖아?


나름대로 다양한 장르의 모바일 게임을 즐기는 편이지만, 내게 있어 모바일 전략 장르는 참으로 입맛에 맞지 않았다. 게임 초반, 자신의 기지를 발전시키는 상황에서는 즐겁게 할 수 있어도, 일정 수준 이후부터 게임의 양상이 변하며 점차 흥미를 잃어갔다고나 할까?

이는 게임의 콘셉트가 '경쟁'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었다. 자원을 모아 기지를 발전시키려면 남의 기지를 약탈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했고, 끊임없이 상대를 공격하고 방어하는 상황들이 이어졌다. 분노와 복수. 그리고 성장과 경쟁에 대한 열망은 확실한 동기 부여로 작용하긴 했다. 하지만 잠깐 점심을 먹는 30분 사이에 내 기지가 침략자들에게 유린당하는 것을 지켜보는 경험이란... 썩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 그냥 밥만 먹고 왔을 뿐인데...

이와 같은 장르의 게임에서 끝없는 전투/약탈/복수 등이 재미 요소로 작용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자주 게임에 접속해야 하고, 바쁘게 진행되는 사이에 자신의 기지를 성장시키고 유저 간의 전투를 진행할 때의 쾌감이 있다. 하지만 이런 흐름을 따라가기 어려운 유저들은 해당 장르에 쉽사리 재미를 붙이기 어렵다. 자신보다 강한 자들은 얼마든지 있고, 이들이 언제 내 기지와 자원을 앗아갈지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결국, 유저들의 성향에 따라 소위 말하는 '육식'과 '초식'으로 나뉘게 된다. 약한 사람은 강한 사람의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는 약육강식의 규칙이 장르 대부분을 관통하고 있었다. 하지만 배틀플랜스는 경쟁의 의미를 조금 다르게 해석하며, 실시간 전투 시스템을 기반으로 자신의 색을 확실히 드러냈다.


배틀플랜스의 전투는 상대가 배치한 시설물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수립한 계획(PLAN)을 상대로 전투를 벌인다. 고정된 시설물을 파괴하고 최종적으로 상대의 자원을 약탈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고, 움직이는 적의 부대를 회피/요격하면서 점령지를 시간 내에 확보하는 것이 승리의 조건이다.

방어 시, 영웅들은 미리 세워놓은 계획에 따라 움직인다. 게임의 이름인 '배틀플랜스 (Battle + plans)라는 말 그대로, 방어/공격에 맞춰서 계획을 세우고 이를 통해 거점을 방어하는 것이 게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 공격은 실시간으로 조작, 방어는 미리 정해둔 '플랜'대로

게임 내에서 만나는 영웅들은 공격/방어에 따라서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이 달라지기도 한다. 공격 시에는 아군을 자신의 위치로 당겨오지만, 방어 시에는 지정된 위치로 순간이동을 하는 식이다. 상황에 따라서 사용하는 스킬이 달라지는 만큼, 적의 전략과 움직임을 확인하고 부대를 운용해야만 한다.

방어 계획을 세울 때에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다. 부대의 이동 경로를 지정할 수 있는 깃발은 움직이는 시기를 5초 단위로 지정하여 전략을 세워볼 수 있다. 점령지마다 달라지는 지형지물과 거점 위치, 영웅만의 특성을 고려하여 적의 이동 경로를 예측한 다음, 부대의 행동 시작 시간을 결정하는 전략적 묘미가 있다.

▲ 이동부터 마법 발동 시간까지 전부 5초 단위로 조절 가능

경로를 상세하게 설정할 수 없는 점과 행동 시작 시간을 5초 단위로만 조절할 수 있는 등 시스템 자체에서 일종의 한계를 둔 느낌이 강하다. 이 때문에 전력이 강한 유저라도 약간의 빈틈은 어쩔 수 없이 생기기 마련. '완벽한 방어 계획'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우니, 공격 측은 빠르게 빈틈을 파고 들어야 하고, 방어 측은 빈틈을 최대한 숨기거나 마법으로 보완하는 등 다양한 전략들이 탄생하기 마련이다.

상대의 부대를 전부 격퇴하는 것이 승리 조건이 아니므로, '전투에서는 이겼으나 전쟁에서는 패배하는' 상황도 자주 나온다. 상대의 거점을 은신 영웅을 한참 뒤에 이동시켜 되찾거나, 거점 하나만을 내주고 시간이 끝날 때까지 수성하는 등 유저에 따라 달라지는 방어 플랜들이 전략성을 높인다.

▲ 레벨과 리그 등급이 상승하면 전략의 선택폭이 넓어진다.



승자가 패자의 자원을 약탈하는 같은 장르의 게임과 달리, 전투에서 패배했어도 잃을 것들이 적다는 점이 눈에 들어온다. 배틀플랜스에서는 기껏 모아놓은 자원을 다른 유저에게 강탈당하는 상황은 나올 수 없다. 게임 전반적으로 상대와의 경쟁보다는 자신의 성취를 통해서 보상을 얻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꾸려뒀다.

일정 시간 진행되는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을 때의 보상이 0이고, 참여했을 때 추가적인 보상을 얻는 구조라 하겠다. 자신이 클리어한 지역 중 일부가 전장으로 변하고 이곳을 점령했을 때, 1시간마다 자원이 들어오는 시스템이다. 전투 결과는 점수로 환산되며, 종료 후에 추가적인 보상까지 지급된다. 이는 전부 기지에서 생산되는 것과는 별개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이다.

▲ 일정 시간마다 점수를 기준으로 보상을 지급하기도 한다

유저 간의 경쟁이 부담스럽다면 AI와의 대전을 진행할 수 있는 장소들을 공격하면 된다. 획득할 수 있는 자원은 적지만, 패배해도 점수가 떨어질 일도 없고 유저들보단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다. 새로운 유닛과 시설물을 얻으려면 반드시 시나리오를 클리어해야만 하니, PVE 콘텐츠를 이용할 이유는 충분하다.

게다가 유닛 및 건물, 영웅의 업그레이드도 특정 스테이지를 클리어해야만 개방되도록 제한을 걸어뒀다. 따라서 영웅을 강화하다 보면 자연스레 등급과 포인트가 올라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PVE 콘텐츠와 PVP 등급을 연계시킨 덕분에 항상 비슷한 성장 수준의 유저들을 만나게 되니, '일방적인 전투'가 벌어지는 일은 거의 없다.

▲ 굳이 사람과의 경쟁이 아니더라도 자원을 얻을 수 있는 곳은 많다

즉, 배틀플랜스에서는 많은 콘텐츠에 참여할수록 더 많은 보상이 지급되는 셈이다. 점수 구간도 꽤 여유로운 편이라, 대부분의 유저가 자신의 실력에 걸맞은 보상을 챙겨갈 수 있다. 자신의 영웅을 성장시키다 보면 자연스레 등급이 올라가기 마련이고, 항상 비슷한 실력대의 유저와 전투를 벌이게 된다.

경쟁에 참여하는 유저는 그만큼의 보상을, 참여하지 않는 유저라도 AI와의 전투에서 보상을 얻을 수 있는 시스템은 패배 시의 부담감을 크게 줄이는 데 일조한다. 유저는 오직 자신의 영웅과 기지를 성장시키는 것에만 집중하면 된다. 심지어 거점 방어에 성공했을 때엔 보상을 얻지만, 실패 했을 때는 아무런 손해가 없다. 리플레이를 확인하여 방어 플랜을 점검하면 그만이다.

▲ 상대의 약탈을 저지했을 때 보상이 들어온다. 실패해도 자원이 없어지지 않는다.

게임 전반적으로 패배에서 오는 리스크와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다른 이의 침략을 걱정할 필요없이 내 영웅과 유닛의 육성에 집중하고, 개발사가 준비한 콘텐츠를 하나하나 즐기며 성취감을 맛볼 수 있다. 다른 유저와 경쟁하는 것이 메인 콘텐츠이긴 하지만, 적어도 이를 '강요하지는 않는다.'고 정리할 수 있겠다.


배틀플랜스는 경쟁 콘텐츠를 내세우면서도 스트레스를 최대한 줄이는 데에 성공했다고 평하고 싶다. 그리고 유저들이 패배에서도 가치를 얻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현했다. 고정된 사물이 아니라 내가 수립한 전략에 따라 움직이는 부대들. 그리고 영웅들의 스킬 활용은 게임에 전략성을 한층 배가시킨다.

무엇보다 높게 살 만한 점은 '초식'과 '육식' 유저들이 몰입할 수 있는 중간점을 찾으려 했다는 것이다. 패배 시의 불이익을 크게 줄이고 승리 시에 보상을 주는 것에 집중했다. 기지 대 기지의 생존 경쟁이라기보단 점령지를 놓고 벌어지는 경기에 가깝다.

▲ 생존 경쟁보다는 점령지를 놓고 벌어지는 스포츠 경기라는 느낌을 받는다

패배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줄인 배틀플랜스는, 기존 작품의 아류작 같다는 첫인상을 뒤집고 자신만의 특징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패배해도 부담이 없으니, 초식 유저도 그럴싸한 방어 계획을 세워두면 충분한 이득을 볼 수 있다. 수많은 변수 속에서 자신만의 전략과 계획을 찾고, 이것이 그대로 맞아떨어지는 경험은 묘한 흥분감을 제공한다.

게임이 출시된 지 약 2주. 현재는 iOS에만 출시된 상태지만, 조만간 안드로이드는 물론 PC까지 출시될 예정이다. 승자가 모든 것을 가져가는 기존 모바일 전략이 부담스러웠던 유저라면 배틀플랜스에서 가치 있는 패배를 경험해보는 것은 어떨까? 부담 없는 패배 속에서 자신의 전략을 발전시켜나가는 고취감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 iOS는 이미 출시됐고, 곧 안드로이드로도 출시될 예정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