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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사: 플레이데드 ⊙장르: 플랫포머 ⊙플랫폼: PC, XBOX ONE
⊙발매일: 2016년 6월 29일(XBOX ONE), 7월 7일(PC)

"홀로 쫓기고 있는 소년은 어두운 프로젝트의 한복판에 휘말리게 된다."

세상엔 우리가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참으로 많다. 사실 세상의 모든 것을 하나하나 따져본다면, 아직도 우리가 이해하는 것보다는 전혀 알지 못하는 것들이 수두룩할 것이다.

사람들은 종종 "알지도 못하면서 그래" 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좋아하고, 감동을 받은 수많은 것들은 생각보다 우리의 이해에서 벗어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고 연애를 하고, 우주를 보면서 신비로움과 동시에 막대한 호기심에 빠진다.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무엇인가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과 그게 대단한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은 좀 다른 이야기라고.

'림보'로 일약 스타가 되었던 인디게임 개발사, 플레이데드의 신작 '인사이드'의 엔딩을 보고 난 후 든 생각이 그러했다. 누군가 나에게 '인사이드'가 어떤 게임이냐고 물었을 때, 딱 두 마디의 말을 했다. "끝내줘. 꼭 직접 해봐." 듣는 쪽은 보다 상세한 설명을 요구했지만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이 게임에 대해서 딱 잘라서 사실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굳이 하나가 있다면, 이 게임의 유일한 공식 설정인 시놉시스 한 줄을 말해 줄 수 있겠다. 그렇다. 이 게임은 거기서 출발하고, 더 많은 정보는 필요도, 소용도 없다.






말이 아닌 감각으로 전달하는 내러티브


시놉시스를 제외하고 '인사이드'를 하면서 마주치는 글씨는 딱 두 문장뿐이다. 처음 실행 화면에서 나오는 '플레이데드 제작, 인사이드' 와 '로딩중' 이 다다. 게임 전체의 색감도 일관되어 있다. 완전한 흑백은 아니지만 회색 톤의 그래픽은 '림보' 때와는 또 다른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많은 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여진다.

소년은 추격자들로부터 도망치면서 계속해서 오른쪽으로 향한다. 소년을 계속해서 앞으로 인도하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뒤에서 그를 추격하는 적들, 그리고 도대체 이것이 어떻게 된 영문인지에 대한 의구심이다.

'인사이드'의 공간은 일종의 무대다. 연극 무대에서 배우의 움직임은 종축보다 횡축에서 더 확연히 드러나기 마련이다. '인사이드'를 플레이하면서 보게 되는 화면의 깊이는, '배경' 이라는 역할에 매우 충실하다. 그리고 그 배경은 이 게임에서 내러티브를 진행하는 가장 큰 축이 된다.


영화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미쟝센' 이라는 기법이 있다. 간략히 요약하자면 '화면 안의 모든 것이 연기를 한다'는 개념으로,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철저한 안배 하에 배치된 배우 외에 각종 기물들, 배경이 모두 어우러져서 하나의 복합적인 씬을 만든다. 때문에 관객은 하나의 같은 장면을 보더라도 어느 것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거시적으로, 혹은 미시적으로 보느냐에 따라 매번, 매사람마다 조금씩 다른 장면을 보게 된다. 한마디로 관객이 '찾아서 봐야 하는' 장면을 만드는 기법이다.

'인사이드'의 내러티브는 그런 '미쟝센' 을 기반으로 한다. 캐릭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퍼즐을 푼다. 그리고 그동안 무대 위에 올려져 있는 다양한 배경과 오브제가 우리에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들이 말을 할 수는 없기에 명확하게 전달되지는 않지만, 게임 내에서의 흐름은 일관되고 설득력 있으며, 그 느낌은 굉장히 독특하다. 솔직히, 다른 게임의 것으로 쉽게 대체가 불가능한 부분이다.


게임이라는 미디어가 발전해오면서, 전달 매체로서 여러 가지 방식이 시도되어 왔고, 또 실패해 왔다. 그런 점에서 플레이데드는 매우 영리하다. 이 내러티브가 얼마나 독보적인지, 전작인 '림보'가 어째서 그렇게 대단한 평가를 받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현존하는 게임 개발사 중에서 최고로 스타일리시한 이들이 됐다.





퍼즐과 플랫포머, 전통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더하다


플랫포머와 퍼즐은 가장 역사와 전통이 깊은 게임 중 하나다. 그만큼 다양한 시도가 이뤄져왔고, 어느 정도 '왕도'가 정해져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게임에 멋진 퍼즐을 넣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어떤 장르든 간에 퍼즐이 게임 전체의 맥락과 맞아떨어지게 들어가 위치해 있어야 한다. 또 퍼즐은 저마다 다른 법칙을 가지고 있기에 그 법칙을 빠르고 쉽게 인지시킬 수 있어야 하고, 그러면서도 엔딩을 볼 때까지 그 퍼즐이 지루해지거나 질려서는 안된다. 마지막으로, 그 퍼즐이 기발하면서도 재미있어야 한다. 이 모든 조건을 만족하는 퍼즐을 찾기란 쉽지 않다. 우주 명작으로 일컬어지는 '바이오쇼크' 1편의 경우도 해킹 퍼즐의 퀄리티가 본편만 못하고, 맥락 없이 너무 잦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기도 한다.

예상보다 자주, 우리의 실수로 인해
소년은 아주 끔찍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하물며 퍼즐이 주된 재미요소가 될 수밖에 없는 플랫포머 어드벤처라면 더더욱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보통 퍼즐을 중심으로 하는 게임들의 경우, 단계 별로 새로운 스킬이나 아이템을 해금하는 방식을 쓰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왜냐하면 그렇게 구성하는 게 만들기 용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거기에 타당한 이유가 없다면 시작부터 차, 포 떼고 게임을 하는 것 같은 불합리한 느낌을 받게 된다.

'인사이드'가 퍼즐을 구성하는 방식은 굉장히 거시적이면서 동시에 섬세하다. 퍼즐은 모두 쉽게 적응할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일부분씩 획기적이다. 이러한 점은 자칫 난해해질 수 있는 게임의 스타일을 '익숙하지만 때때로 낯선' 수준으로 맞춰줌으로서, 게임 플레이 전체의 밸런스를 잡는다.


단연 가장 기억에 남는 퍼즐.

가장 감탄을 쏟아낸 부분은 게임의 중간 지점에서 마주친, 문을 열기 위해 20명의 일꾼을 모아오는 퍼즐이었다. 우선 그 규모가 굉장히 거대했다. 3개 층에 걸쳐 양옆으로 긴 맵 전체를 활용해야 하며, 거대한 하나의 퍼즐을 풀기 위해서 하위에 배치된 여러 개의 소소한 퍼즐을 풀어나가야 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시작점은 한 곳으로 정해져있고, 그 이후의 퍼즐 순서는 플레이어의 마음대로 구성할 수 있기 때문에 굉장히 자유롭게 퍼즐을 푼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가장 큰 퍼즐까지 풀고 나면 상당한 뿌듯함이 몰려왔다.

플레이데드의 이런 퍼즐을 구성하는 능력들은 게임 내내 정말 기가 막히게 발휘된다. 사실상 긴 하나의 맵으로 연결되어 있는 구조이고, 3시간 남짓의 플레이 타임은 누군가에겐 굳이 다채롭게 구성할 필요가 없는 것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인사이드'의 퍼즐은 주기적으로 구성 자체가 바뀌고, 잊을만하면 이전의 퍼즐이 다시 나온다. 간단히 점프와 밀고 당기기로 구성되는 퍼즐, 인부들을 조종하는 퍼즐, 잠수정을 타고 하는 수중 퍼즐, 와이어 퍼즐, 마지막에 형언할 수 없는 어떤 퍼즐까지. 각각의 퍼즐은 단순히 한두 가지 변수를 추가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다른 방식의 재미를 준다.


'퍼즐'이라는 게임의 핵심은 규칙이고, 그 규칙을 얼마나 잘 세우느냐에 재미가 달려있다. 그리고 플레이데드는 단순히 규칙을 잘 세우는 것을 넘어서서, 그 변주를 아주 훌륭하게 만들어낼 줄 안다. 심지어 이 퍼즐이 내러티브에도 영향을 주는데, 게임의 마지막 부분에 돌입했을 때 기자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엔딩까지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내러티브 상에서도 충격적이면서 동시에 게임 플레이도 확연히 변화하는 부분이기 때문이었다.




창작자에게 있어 최고의 무기는 바로 자신만의 스타일



'인사이드'는 우리에게 완벽히 이해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아름다운 것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그만큼 이해와 감각은 꼭 공존하는 개념은 아니다. 그 이면에서 드러나는 논리구조가 오직 실루엣 뿐일지라도, 이 명확한 감각이 전달하는 느낌은 특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제 게임 화면을 떠나, 소년은 누구인지, 프로젝트의 정체는 무엇인지, 엔딩은 무엇을 시사하는지, 수많은 추론과 사고의 확장을 펼치면서 우리는 또다시 이 게임을 즐기고 있다.

올해 E3의 가장 충격적인 한방, '데스 스트랜딩' 트레일러

난해함은 그것이 철저히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 있다면 그 자체로도 특별한 아름다움을 가질 수 있다. 최근 E3 2016에서 공개된 코지마 히데오의 신작 '데스 스트랜딩'의 트레일러가 또 다른 좋은 예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지만, 그 특유의 감각만큼은 독보적이다. 그리고 플레이데드 또한 아주 영리하게도 그런 점을 파고들었다.

21,000원의 가격에 3~4시간의 플레이 타임은 아쉬움이 남을 수도 있지만, 시간대비 비용으로 따져보았을 때, 현재 AAA 타이틀의 공식인 시간당 5달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자는 이 게임이 더 이상 첨삭이 의미가 없는, 이미 완성된 하나의 완전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내러티브와 퍼즐의 균형

만약 '인사이드'를 구성하는 커다란 두 축, 내러티브와 퍼즐 중에 하나라도 부족했다면 이 게임은 그렇게 높은 평가를 받기 어려울 수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두 가지에 집중하고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많은 부분을 덜어낸 게임이었고, 그 덜어낸 부분 중에는 플레이 타임과 멀티플레이, 대사 전달 같은 요즘 게임에서 흔한 요소들 역시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위험부담도 있었던 게임이지만, 플레이데드는 완벽하게 선택과 집중을 해냈다.

덜어냄의 미학이 돋보이는 이 게임은 플레이데드라는 개발사가 가진 미적 역량이 얼마큼인지를 보여주는 최고의 시그니처가 됐다. 굳이 다른 게임들처럼 풀 프라이스를 받으며 10시간 이상의 플레이 타임을 보장하지 않아도, 정형화된 리얼리즘 3D 그래픽에 FPS나 액션 RPG 같은 주류 장르를 택하지 않아도, 이들은 최고의 게임을 만들 수 있다. 이 부분이 무척이나 중요하다. 이것은 그들이 이뤄낸 성공에 더욱 높은 값을 매기게 하는 가산점이 되기 때문이다.


덧붙이자면, 게임도 이제는 표현 기법에 대한 이론적 정리가 필요한 시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에디슨이 발명한 재미있는 장난감에 불과했던 텔레스코프가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산업이자 최고의 종합 예술인 '영화' 된 과정에 다양한 실험과 실증에 힘입은 이런 '이론적 정리'가 큰 역할을 했듯, 게임 역시 연출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정리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

한 분야에서 검증된 지식이 축적되어갈수록, 발전을 더욱 빨리 이루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인사이드'는 게임을 만들고 플레이하는 이들뿐만 아니라, 게임을 비롯해 그 어떤 예술, 혹은 문화적인 활동을 하는 이들에게 하나의 교본이 될 수 있는 게임이다. 플랫포머, 그리고 퍼즐이라는 게임 사상 가장 오래된 장르를 가지고도 새로운 아이디어와 완벽에 가까운 디테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걸 증명했으니까.


'인사이드'를 통해, 플레이데드는 자신들이 어떤 게임 개발사인가를 게임계 전체에 각인시켰다. 마치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한 뮤지션들이 앨범을 거듭할수록 익숙함 속에서 새로움을 더하듯, 그들은 이제 자신들의 확고한 영역 내에서 새로운 시도를 계속해나갈 수 있다. 다만 바라는 것은, 그들이 좀 더 빨리, 더 많은 작품을 만들어주는 것뿐이다. 달려라, 플레이데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