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에는 수많은 캐릭터가 등장한다. 일단 플레이어가 있으니 대립할 적이 있어야 할 테고, 그 적을 상대하는 일은 결코 쉬운 게 아닐 테니 나를 도와줄 조력자도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게임을 할 때마다 다양한 캐릭터를 만나서 도움을 받고 대결을 한다. 싱글플레이 게임에서 멀티플레이 게임, 온라인 게임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PC, NPC와 부대끼는 게 우리 일상이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플레이어를 도우라고 있는 조력자 캐릭터를 비롯해 분명 착한 우리 편인 것 같지만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캐릭터들이 종종 있다. 아니, 도움이 안 되는 걸 떠나서 아예 민폐 덩어리인 이들도 넘쳐난다. '영웅전설' 시리즈에서 이름만큼이나 전설적인 무 쓸모를 자랑하는 '알쳄', '바이오하자드4'의 '애쉴리'가 대표적인 사례다.

알쳄... 너는 존재 자체가 방해야

이런 이들은 너무나 많아서 모두 다 정리할 수는 없었지만, 제각기 다른 방법으로 트롤링을 일삼는 이들 캐릭터를 각 방법과 분야별로 나누어 6가지만 뽑아보았다. 가급적 차분한 환경에서 읽기를 권장한다.

* 게임이슈 '콕!'은 네이버 제휴 콘텐츠로 모바일 페이지 '게임·앱' 코너에 함께 게재됩니다.




전설의 티르 코네일 웨폰브레이커 - 퍼거스 (마비노기)



우리나라 게임 역사에서 '민폐' 하면 절대 빠지지 않는 인물이 하나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대단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무엇으로 만들어졌든지 간에 그의 손에서는 부서져버릴 수 있다. 그는 대장장이이지만, 파괴신이기도 하며, 행운의 강탈자이기도 하다.

인자한 표정에 속지마라!

'마비노기'에 등장하는 대장장이 NPC 퍼거스는 시작 마을인 티르 코네일에 자리 잡아 에린에서의 여행을 시작하는 플레이어들을 맞이해주는 착한 NPC 중 하나였다. 티르 코네일을 관통하는 강을 건너면 찾아갈 수 있는 그의 대장간에서 퍼거스는 그 누구보다 저렴한 가격에 모험가들의 장비를 수리해주었다. 그는 그런 자비로움 만큼이나 공명정대한 사람이었는데, 모든 장비를 90%라는 공평한 확률로 탕탕 두드려 고쳐준 것이다. 가히 현시대의 탕평책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탕평책의 원조인 영조 임금의 일대기에서 볼 수 있듯, 이는 결코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했으니... 싼 맛에 퍼거스에게 수리를 맡기곤 했던 유저들은 불후의 명대사 '어이쿠! 손이 미끄러졌군' 과 함께 무자비하게 박살 나는 내구도를 두 눈 뜨고 지켜봐야 했다. '마비노기'에서 수리에 실패하면 최대 내구도가 그만큼 깎여버리기 때문에 이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선사했다. 오죽하면 '웨폰브레이커' 라는 악명에서 시작해서 그의 업적을 기리는 팬아트, 노래까지 있을 정도다.

그의 평상시 모습을 그린 전설의 한장
(출처 : 마비노기 홈페이지 연재만화 게시판 '그래도청춘' 님)

그러나 무기를 몇 개를 깨 먹었는지, 그래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절망에 빠졌던지 간에 퍼거스는 '마비노기' 그 자체를 상징하는 캐릭터가 되어 차기작 '마비노기 영웅전'에서도 등장했다. 다행히도 이쪽의 퍼거스는 손에 뭘 발랐는지 더 이상 수리 쪽 업무에서는 미끄덩! 하는 불의의 사고는 없으니,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겠다. 오늘도 그의 망치질에 부서질 무기들의 명복을 빌어보자.




뇌없남에서 안습남으로 - 도미닉 산티아고 (기어즈 오브 워)



고전 택틱스 RPG 이래로, 주인공과 함께 싸우는 동료 캐릭터나 AI는 예로부터 좋은 이야기를 듣지 못 했다. 특히나 2000년대 들어 인기를 끌기 시작한 다양한 레일 슈터들, TPS 와 FPS에서는 매력적인 동료 캐릭터들이 필수적으로 등장했다. '콜 오브 듀티' 시리즈의 가격 대위, 고스트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솔직히 이때는 내손으로 쏴버리고 싶었다

더 이상 혼자서 북두무쌍을 찍을 수는 없으니, 다양한 슈터 게임에서 동료들이 등장했는데, 당대 최고의 그래픽을 자랑하며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 에픽 게임즈의 신작, '기어즈 오브 워' 도 예외는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아놀드 슈워제네거 급 근육질이 아니면 출연이 불가능한 이 게임에서 단연 돋보인 조연 아군은 '도미닉' 이었다. 하지만 그 돋보임은 긍정적인 부분이 아니라 그 반대였다.

적극적으로 플레이어를 도와 싸우면서 역경을 헤쳐나가도 모자랄 판에, 도미닉은 먼저 자리에 드러누워 부활을 기다리곤 하는 선구자적 모습을 보여줬다. 로커스트 한가운데로 샷건 하나 든 채 돌격하는 모습은 가히 카미카제랄까. 더군다나 도미닉이 죽어버리면 게임이 오버되기 때문에 수시로 뻗어버리는 도미닉을 살리기 위해 마커스를 조종하는 플레이어들은 고군분투를 펼쳐야 했다. 무슨 공주 구하기 게임도 아니고...

민폐남에서 안습남으로...

덕분에 얻은 명예로운 별명, '뇌미닉'은 도미닉에게 없는 뇌를 이름에나마 붙여주자는 좋은 취지에서 생겨난 별명이지만, 어느새 시리즈를 거듭하며 자라나는 수염만큼 지능도 자라났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스포일러'의 죽음을 통해 '기어즈 오브 워' 시리즈 최고의 안습남이자 세계관의 절망을 상징하는 슬픔 그 자체가 되었으니, 이제는 더 이상 그를 욕할 수 없으리라.




사건의 뒤에는 언제나 - 야하리 마사시 (역전재판)



법정이라는 전장을 무대로 펼쳐지는 배틀물(?) '역전재판' 시리즈는 기이한 전통이 있는데, 바로 캐릭터의 이름을 대충 혹은 이상하게 짓는다는 것이다. 주인공인 '나루호도 류이치' 부터가 '과연...' 이라는 감탄사를 이용한 이름이고, 이런 방식의 작명법을 이용해 라이벌 '미츠루기 레이지' 같은 이름들이 쏟아져 나왔으니...

이제보니 새삼 번역이 적나라하다

그 캐릭터들의 이름만큼이나, '역전재판'이란 게임이 원래 어딘가 나사 빠진 캐릭터들이 많이 나오는 게임이라고는 하지만, 그게 매력인 게임이라고는 하지만, 그중에서도 톱을 달리는 캐릭터가 하나 있다. 바로 야하리 마사시다. '역시 그럼 그렇지' 정도 따위의 의미로 볼 수 있는 이 이름만큼, '야하리'는 이 게임에서 만악의 근원이다. 이런저런 법정 사건에 끼어들어 없던 사건도 만들어내고, 쉽게 해결될 일을 더욱 꼬아버리기도 한다! 친구가 원수라는 말에 가장 어울리는 인물이 아닐까.

"사건의 뒤에는 역시나 야하리" 라는 문장이 그를 상징해준다. 일단 명목상 주인공인 '나루호도 류이치'의 친구이지만, 처음 그를 만나게 되는 것도 1편의 첫 번째 에피소드 '첫 번째 역전'에서 용의자로서다. 갑작스레 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된 '야하리 마사시'는, 사실 얼핏 보기엔 너무나 얼빵하고 모자라 보여서, 어떻게 살인을 저지르나 싶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쉽게 몰려버릴 만한 사람이다. 솔직히 변호인이 나루호도가 아니었으면 그렇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수도 있었다.

원래 모든 일은 사고치는 놈 따로, 수습하는 놈 따로...

사실 야하리 마사시는 작중 등장하는 미츠루기 레이지, 나루호도 류이치 등 주요 인물들과 학창시절을 같이 보낸 동창이며 이들에게 많은 동기를 부여해준 인물이기도 하지만, 당사자가 워낙 한심한 탓에 게임 시리즈 내내 감초로서 등장한다. 하지만 그런 허당 야하리라고 하더라도, '첫 번째 역전'의 누명을 벗고 나서 '역전, 그리고 안녕' 에피소드에서 나루호도를 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니, 다행히도 은혜는 갚았다고 해야겠다.




납치,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 피치 공주 (마리오 시리즈)



고전 게임 시절부터 내려오는 유구한 전통의 클리셰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을 꼽자면 '납치당한 히로인'이 아닐까? 이는 비단 게임뿐만 아니라 동화 '잠자는 숲 속의 미녀' 를 비롯해 동서양을 막론하고 '납치당한 히로인을 구하는 주인공' 구조를 띈 이야기들이 차고 넘친다는 점에서 그 오랜 역사를 알 수 있다.

공주님... 이제 제발 그만...

이런 '납치당한 공주님' 을 가장 적극적으로 잘 이용한 회사는 역시 고전 시절부터 게임의 명가로 군림해 온 닌텐도였다. 그중에서도 대표격인 두 공주님이 있으니, 바로 마리오 시리즈의 '피치 공주'와 젤다의 전설 시리즈의 '젤다 공주'다. '젤다 공주'는 항상 녹색 옷의 링크와 착각당하는 슬픈 전설이 있지만, 우선 그 이야기는 넘어가도록 하자.

그중에서도 레전드인 '피치 공주'는 이제 납치 중독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말았는데, 일단 단골인 쿠파가 납치해간 횟수부터 열 번이 넘어간다. 그쯤 되면 스스로 조심할 때도 되었건만... 그래선지 이제는 피치 공주가 납치당해도 아무도 당황하지 않는다. 오직 한 명, '마리오'를 빼고. 왜냐하면 항상 그녀를 구하는 건 '마리오'의 몫이기 때문이다. 원래 뺑이는 치는 당사자만 힘들고, 남들에겐 좋은 구경거리일 뿐이다. 버섯 왕국의 공인 팝콘 거리가 아닐까?

가소롭구나 스타 폭스여! 쿠파에 비하면 넌 멀었다!

다행히도 자신도 좀 깨달은 바가 있는지, '피치 공주'는 언젠가부터 직접 '스매시 브라더스' 시리즈에 출전, 막강한 격투 실력을 뽐내며 직접 쿠파를 발라버리기 위한 수련을 계속하고 있다. 드디어 '마리오'가 쉴 수 있는 날이 오는 걸까? 그들의 사랑에 평화로운 날이 오기를 빌어본다.




적이 하면 사기, 우리가 하면 사망 - 겐트위한 (오버워치)



팀이 뭉쳐서 협력을 해야 하는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흔히 겪는 일들이 있다. 과거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악명을 떨쳤던 마스터 이-티모-베인의 충 3대장 같은 존재들은 사실 그전부터 언제나 있어왔다. 물론 이 캐릭터들을 잡고도 잘하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잘하는 이들은 언제나 우리 팀이 아니라 상대편이라는 거다.

4충 일체...!

이러한 트롤링 챔프들의 역사는 하루 이틀이 아니었으니, 유구한 멀티플레이어 게임의 역사 동안 모든 게임에서 하나씩 있어왔다. 그만큼 요즘 최고의 인기를 끄는 게임, 블리자드의 '오버워치'에서도 이 슬픈 역사는 되풀이된다. 베타 시절부터 그 이름을 드높인 '겐트위한'의 네 영웅이 그렇다.

겐지, 트레이서, 위도우메이커, 한조 등 이 네 영웅은 사실 누가 봐도 매력적이고 멋진 요소로 가득하다. 트레이서는 시간을 가지고 노는 쌍권총의 프리티 걸이며, 최고의 피지컬을 뽐내는 위도우메이커는 일발백중 저격수다. 궁시의 민족 한민족에게 활을 쏘는 한조가 매력적이지 않을 수가 없고, 심지어 겐지는 사이보그 닌자다. 말이 더 필요한가? 그 누구라도 이 네 영웅을 한 번쯤 멋지게 플레이하고 싶기 마련이다.

이제는 전설적인... 퓰리처상 급 짤방

문제라면 이들 모두는 한결같이 높은 숙련도를 요구하고, 캐릭터를 자유자재로 다루지 못하면 1인분은 커녕 반그릇도 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이 부분은 뭐,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들 알 것 같다. 하루하루 게임 속에서 겪는 일들이니까. 매일매일 경쟁전에서 우리팀 '겐트위한'과 싸우는 플레이어들의 멘탈의 안녕을 빌 뿐.




"또다른 정착지가 당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오" -
프레스턴 가비 (폴아웃4)



현재 베데스다에서 개발해 유통하고 있는 전통 깊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게임 '폴아웃' 시리즈는 첫 작품부터 동료 캐릭터의 비중이 무척 높은 게임이었다. 물론 그 캐릭터들 하나하나가 모두 범상치 않았다. 악랄하기 그지없는 네이밍 센스의 '도그밋'을 비롯, 게임 내에서 가장 강력한 적들 중 하나인 뮤턴트를 동료로 쓸 수 있지 않나, 4편 들어서는 인조인간 사이보그들인 '신스'들까지도 동료로 들일 수 있었다.

"Another settlement needs your Help!"

그리고 시리즈 최신작 '폴아웃4' 에서는 선택지에 따라서 각 세력과 밀접한 관계인 캐릭터들을 동료로 쓸 수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 지금 소개할 프레스턴 가비 되시겠다. 황량하기 그지없는 이 커먼웰스 황무지에서 민병대를 이끌고 있는 남자, 그만큼 책임감도 능력도 출중하다. 성능도 그럭저럭 쓸만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그 책임감이 너무나 출중해서일까. 프레스턴 가비의 악명은 그 성능이 아니라 그가 우리에게 주는 무한 반복 퀘스트에서 왔다. 커먼웰스 민병대의 리더 격 답계 도움을 필요로 하는 황무지인들을 도무지 그냥 지나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들을 돕는 일을 직접 하지 않고 우리에게 떠넘긴다는 것. '다른 정착지가 당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오'는 그의 명대사이자 플레이어에게 노이로제를 일으키는 문구가 되어버렸다.

이정도 코스프레도 이제 예삿일이다

곧 '프레스턴 가비'는 2015년 출시 게임들 중 가장 핫 한 밈(Meme)이 되어서, 온갖 짤방과 에피소드를 만들어냈다. 누군가를 돕고자 하는 좋은 마음에서 발현된 행동이겠지만, 선의의 행동이라고 꼭 모두에게 행복한 결과만을 주지는 않는다는 교훈을 주는 사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