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인디'라는 단어를 접한 건 음악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한때 인디 음악은 유행에 민감하다는 청년들에게 강하게 어필했고, 3대 방송사에서 인디 음악을 틀어주던 시절도 있었다. 아는 사람이라면 다 아는 불미스러운 사건 때문에 다시 그늘 속으로 들어가버리긴 했지만.

사실 그때만 해도 '인디'라는 단어가 어떤 뜻인지 정확히 정의할 수는 없었다. 뭐라 딱히 단정 짓기 어려운 사회 반항적 리듬과 강력한 메시지. 그리고 어딘가 소박해 보이는 부정형의 어떤 것이 뭉쳐 만들어진 개념. 그것이 내 머릿속에 자리 잡은 '인디'라는 것이었다.

세월이 지나면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1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인디'라는 단어는 내게 모호하기만 했다. 머리가 굵으면서 자연스럽게 '인디'가 무엇인지 말할 수는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누군가와 이야기할 때 '인디'와 관련된 주제가 나오면 말을 아끼게 되었다. 잘 몰랐으니까.

그 부족했던 인식이 채워진 건 '인디 게임'을 알게 되면서였다. 게임이라는 문화를 밥벌이로 살아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디 게임'과도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 뭔가 반항적이고, 소수이고, 거침없다고만 느꼈던 '인디'라는 개념. 게임을 통해 알게 된 '인디'의 참모습은 거칠고 사납기만 했던 내 마음속 이미지와는 꽤 많이 달랐다. 드넓은 광야에 스스로 피어나는 새싹.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일어나는 이들이 바로 진짜 '인디'였다.

'인디디벨로퍼파트너스'의 이득우 대표는 오랜 기간 인디 게임의 부흥을 위해 투신해온 사람이다. 굿 게임쇼, 게임 잼, 그리고 부산 인디커넥트 페스티벌(BIC)까지, 그는 늘 인디 게임 개발사들과 인디 게임의 부흥을 위해 힘써 왔고, 적잖은 성과를 내고 있었다. 9월 9일부터 2박 3일간 진행되는 BIC 2016. 현장에서 그를 만나는 것은 부산에 온 순간부터 정해져 있던 순서였는지도 모르겠다.

▲ 인디디벨로퍼파트너스 이득우 대표

알려진 수단과 방법은 다 동원했죠. 부대 행사도 어떤 것을 할지 고민했고…. 쉽지는 않았어요.

그는 겸손하게 말했지만, 행사 규모만 보면 딱히 겸손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보통 야외에서 하는 소규모 게임 행사에 방문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애초에 행사 방문을 위해 오는 사람의 수도 많지 않고, 지나가다 잠깐 들러 행사를 보는 이들만이 때때로 싸늘한 부스를 덥혀주곤 한다.

하지만 BIC는 달랐다. 부산 영화의 전당 앞마당을 널찍하게 차지한 부스에는 줄이 빼곡히 서 있었고, 푸드 트럭은 몰려드는 손님 덕분에 정신없이 음식을 만들어냈다. 행사장 뒤편에 마련된 무대에서는 부대행사가 진행 중이었고, '레트로 마켓'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벼룩시장에서는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클래식 콘솔과 게임들이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누가 봐도 큰 행사다.


"작년에 처음 행사를 짤 때는 개발자들을 대상으로 짰어요. 일반 참관객들을 위해 이것저것 준비하긴 했지만, 결국 중심은 개발자들이었죠. 하지만 막상 그렇게 행사를 치르고 나니 조금 아쉽더라고요. 다들 힘들게 부산까지 내려와서 부스 만들고, 행사 준비하는데 그게 결국 우리만의 무대라고 생각하니 아쉬웠던 거죠.

그래서 올해부터는 제대로 사람들도 끌어오고, 널리 알려 보려고 했어요. 부대 행사도 많은 이들이 참여할 수 있게 짰고, 야간에도 행사를 즐길 수 있도록 야간 행사도 기획했죠"



이득우 대표의 노력이 헛된 것 같지는 않았다. 행사장에는 발걸음도 혼자 떼지 못하는 어린아이부터, 중고등학생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이 모여 인디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어린 시절의 추억 한 조각이 인디 게임에 대한 '첫인상'이 되고, 나아가 이 모든 사람이 인디 게임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리라.

작년에 비해 달라진 것은 행사 자체의 규모뿐만이 아니었다. '엔터 더 건전'과 '아이작의 번제'.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유명한 해외 인디 게임들도 BIC 2016의 한쪽을 차지하고 있었다. 참가작들의 풀 자체가 굉장히 넓어졌다. 참가 신청을 했던 작품도 적은 수가 아니었을 거다.

"280개 업체 정도가 출품했어요. 그 중 80개 게임을 선정해야 했는데 여기서 막히더라고요. 원래 보통 이런 행사 작품을 선정하게 되면 심사위원들이 모여서 의견을 모아 정하잖아요? 근데 '인디'라는 게임을 다루는 과정에서 과연 그게 올바른 선정 방식이냐 하는 의문이 생긴 거죠"

이득우 대표는 다른 방법을 택했다. 대기업의 직원부터, 사업가, 그리고 일반 게이머와 게임 개발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심사위원들을 선발해 각각 개별적으로 심사를 부탁했다. 280개나 되는 작품을 모두 심사할 수 없기에 각 심사위원에게 적절히 겹치게 게임을 배정하고, 오로지 그 사람의 의견만으로 순수히 게임을 평가할 수 있게 만들었다.

"중요한 건 심사위원끼리의 대화를 단절시키는 것이었어요. 게임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대세'에 휩쓸리지 않고 순수하게 게임을 바라볼 수 있도록 서로 게임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게끔 하였죠"

BIC 2016에 참가한 80종의 작품은 그렇게 선발되었다. '인디'는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영역이고, 모든 도전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이득우 대표는 '대세'라는 흐름에 그 하나하나의 게임이 존중받지 못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소 복잡하지만, 치밀한 심사 시스템을 도입했고, 이를 통해 게임을 선별했다.

허락된 시간은 짧았다. 바쁜 일정 중에 약간의 짬을 내 만난 자리. 이득우 대표는 '다들 잘하고 있지만, 그래도 계속 돌아다니면서 미진한 부분은 없는지 확인해야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그만큼이 행사 하나하나가 그에게, 그리고 인디 게임 업계에는 중요한 일일 테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더 묻고 싶었다. 내년에도 계속 인디 게임을 위해 노력할 것인지.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가 생각하는 바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아무래도 저 혼자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죠. 이번 BIC 또한 많은 분이 도와주셔서 함께할 수 있었어요. 내년에는 더 크고, 더 조직적으로 행사를 준비해 봐야겠죠. 부산시와도 잘 얘기하고 있고요.

그래도 작년 BIC에 비해 올해 BIC의 전체적인 작품 수준이 굉장히 올라갔어요. 국내 인디 개발사들이 꾸준히 더 나은 게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죠. 사실 우리가 하는 일은 그저 판을 깔아주는 일에 불과해요. 작게는 아직 개발에 전념하고 있는 개발사들이 BIC라는 행사를 일종의 나침반으로 삼기 바라고 있고, 크게는 BIC를 지나간 업체들이 크게 성공하기를 바라고 있죠.

한 가지 더 바라는 마음이라면, 일반 대중들에 대한 '인디 게임'의 인식을 바꾸는 거에요. 메이저 개발사들의 대작들은 게이머들의 머릿속에 깊게 각인되어 있어요. 게임을 직접 해보지 않아도 이름만 들어도 어떤 게임인지 머릿속에 떠오르잖아요? 그에 반해 인디 게임에 대한 개념은 아직 대중 사이에 정립되지 않았어요. 인디 게임을 돕다 보면, 항상 바라마지않는 일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