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게임산업협회가 주최하는 게임문화포럼 제 1회가 6월 4일 엔씨소프트 R&D센터 오디토리움에서 열렸다. 게임산업 종사자들에게 게임제작에 필요한 아이디어로서의 인문/문화/과학 분야의 시각을 제공하고 게임인력의 문화적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마련된 이번 포럼의 첫 회는 ‘예술, 놀이, 상상력’이라는 주제로 진중권 중앙대학교 겸임교수가 강연을 맡아 특유의 화법을 선보였다.





진중권 교수는 '미래는 상상력이 생산력이 되는 시대' 라면서 상상력을 키우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말로 강연을 시작했다. 진교수는 진지함과 하릴없음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 상상력이며, 사물을 인식하고 파악하는 뇌의 영역이 놀고 있는 상태가 상상력이 발휘되는 때라면서 청소년을 놀게 하지 않고 점수 받는 기계로 만드는 것은 산업화 시대의 사고방식으로 정보화 시대와는 맞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최근 직접 칼라TV를 통해 생중계하고 있는 촛불시위의 예를 들어, 투쟁의 정치, 생존의 정치, 저개발의 정치 문화에서 요즘의 시위는 축제처럼 변화했다며 농담과 같은 구호들을 보면 모든 것들이 엔터테인먼트로 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미래사회의 블루칼라는 피시방에서 게임을 통해 반사신경 훈련을 하고 있는데, 컴퓨터로 일하고 컴퓨터로 노는 즉 과거와는 달리 노동수단과 오락수단이 일치하는 것이 정보화시대의 특징이라는 것.


"애들을 못놀게 하고 고생시키자나요. 대통령도 하루에 4시간 밖에 안 자는 걸 자랑하고. 산업화 시대와 정보화 시대는 다른 건데 말이죠."


특히 그는 인문, 예술, 과학의 통합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가상세계의 실체는 떨어지는 문자로 표현된다는 예를 들면서 문자로 그리는 그림 즉 디지털 이미지 정보들이 물질적인 팩터가 되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게임 아이템이 현물로 거래되는 물질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 요즘의 시대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시대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문자를 읽는 능력이 아니라 문자에 얹혀진 이미지를 읽는 능력, 문자를 통해 이미지를 실현시키는 능력, 디자인 능력이라는 것. 그러나 미래의 생산자들인 아이들의 교육은 여전히 과거의 틀에 얽매여 있고, 예술가가 공학자, 인문학자와 상호이해되는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기능올림픽 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것이 기술 1위 국가를 뜻하는 것은 아니고, 창의성 없는 기술은 금방 중국에서 따라한다는 것이다.


"황우석 사태 때 젓가락 이야기. 젓가락을 잘 다루면 아무래도 유리하겠죠. 하지만 과학은 언제 어디서 누가해도 동일한 결과가 나오는 재현성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오로지 한국에서 가능하면 과학이 아닌거죠. 오히려 그 사람들은 기술자라기 보다는 인간문화재가 아닌가..."


그러나 상상력은 알고리즘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가르쳐줄 수 없는 것이 문제. 답이 없지는 않다. 진교수는 '놀게 하라'고 처방했다. 어릴 때는 팔만 벌리면 비행기가 되고 작대기를 집으면 총이 되는 '둔갑'이 가능했는데 그런 부분이 요즘은 없다는 것이다. 또 하나로 예술에서 영감을 얻으라고 주문했다. 서양예술사에서 굉장히 창조적인 부분들은 대게 주사위놀이나 미로놀이, 종이접기 등 놀이에서 파생된 상상력이라는 어휘의 산물이다.


예를 들어 종이접기 하나를 봐도 각자의 영역에서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 패션디자이너는 접어서 모양을 내는 복식을, 인테리어 디자이너는 수납공간의 아이디어로 활용할 수 있다. IT 에서는 통합기기의 영감을 얻을 수도 있고, 실제로 한 건축가는 종이를 접어서 건물을 만들기도 한다. 좀 더 깊이 들어가면 나노물질을 접는 기술이 개발되기도 했다. 나노 입자를 접어서 새로운 물질을 만든다거나 이를 이용해 회화를 그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네티즌들이 개새 만들고 포토샵으로 하는 것 있죠. 잡티제거 하는 건 고전주의 거든요. 팔등신으로 만들고. 이런 것들은 1930년대에 예술가들이 이미 한 것들이에요."


즉 상상력이란 미처 누가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만드는 것 - let see -, 없었던 것을 있게 만드는 것 - let be - 이다. 그리고 주어진대로 활용하지 않고 다른 놀이를 생각해내는 예술가들의 상상력 풍부한 활동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기술 개발에 영감을 준다. 게임에서 예를 들자면, 어떤 예술가들은 게임 플레이는 하지 않고 게임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어 내는데 이런 예술가들의 활동이 이 게임의 버전2에 영상 녹화 강화 기능을 넣어준다든지 하는 상상력이 기술개발을 주도하는 시대라는 것.


진교수는 이어서 아나그람이나 아나몰포시스처럼 유희를 예술로 승화시킨 서양 예술작품을 짚어보고, 현대 예술가들이 어떻게 테크놀러지를 활용해 예술작품을 만들어 내는지에 대해 강연을 이어갔다.





한 시간 가량의 강연이 끝나고 참가자들의 질문시간. 정해진 시간을 조금 넘겨야 할 만큼 수강자들의 열기는 뜨거웠다. 개인적인 부분부터 시사와 정치에 관한 내용까지 질문의 폭은 넓었고 그에 대한 진교수의 답은 깊었다. 그러나 대부분 게임업계 종사자들이다보니 상상력과 예술을 어떻게 게임 개발에 접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이 빠지지 않았다.


이번 강연은 사실 '게임'과 딱 들어맞는 내용은 아니었다. 현재 국내 온라인 게임들이 과연 예술적 감수성을 고양하고 창의적 상상력을 배양시키는 권장할만한 '놀이'문화인지는 물음표인 상태다. 진교수는 본인이 직접 게임을 하는 것보다는 게임을 하는 것을 지켜보는 쪽을 더 좋아한다면서 단순히 반사신경을 높이는 게임 보다는 세컨드라이프나 심시티 시리즈와 같이 창조성을 드러낼 수 있는 쪽에 관심이 있다고. 게임을 즐기는 이들이 얼리어댑터처럼 각각의 게임을 비평가로서 즐기게 한다면 게임이 가지는 유해성 부분이 큰 문제는 안될 것이라고 답했다.


또 바쁜 직장인들이 상상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스스로가 디씨인이라면서 인터넷을 보라고 힌트를 주기도 했다. 수많은 정보들이 쌓여있는데 단지 문제는 이런 정보들을 어떻게 선별하느냐 하는 능력의 여부라는 것. 새로운 내러티브나 캐릭터 창조의 어려움을 토로한 질문자에게는 기존의 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의 방법론의 문제라면서, 십자말 맞추기 놀이를 집필에 응용한 본인의 사례를 자세히 설명해주기도 했다.


또 해외 게임이 국내에 와서 신통한 성적을 거두지 못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인터넷 문화가 해외와 다르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런 차이를 잘 설명한 책으로 월터 웅의 '구술문화와 문자문화'를 읽어보길 권하면서 이런 문화적 차이가 위키디피아와 네이버지식인의 차이로 극명하게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본인의 정치참여에 대해서는 앞으로 스페셜리스트로는 살아남을 수 없고 제너럴리스트가 되어야된다면서 정치가 결코 철학과 무관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노무현 정부 때 정치권 입문의 제의를 받은 적이 있다고 밝히면서도 '국회의원은 300명인데 진중권은 1명이라 손해보는 것'이라고 정치권 입문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음을 재확인했다. 언변이 좋기로 비교되는 손석희씨에 대해서는 '속내를 절대 내비치지 않는 대단한 프로. 우리편인지 아닌지 헷갈린다'고, 유시민씨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타협이 필요한 것이 정치인데, 정치인 하길 잘했다'고 평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국내 예술가들이 테크놀러지를 가지고 노는 것이 뒤떨어져있다며 예술가, 인문학자, 공학도가 함께 읽을 수 있는 총서, 미디어 미학, 컴퓨터 아트 등을 정리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런 작업이 어느 정도 되면 다시 철학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희망도 비췄다. 개인적으로는 취미생활인 비행기 조종에서 곡예비행을 하는 것과 아프리카 대륙을 비행기를 타고 횡단하는 것이 꿈이라고.


총 3회로 기획된 이번 게임문화포럼의 2회는 문화 파트에서 ‘예술과 놀이’라는 주제로 6월 하순경 한국예술종합학교 이동연 교수가, 3회는 과학 파트에서 ‘게임과 과학의 세계’라는 주제로 KAIST 정재승 교수가 7월 10일 강연을 이어간다.



[ 진중권 교수의 저서를 준비해온 참가자들이 줄을 서서 싸인을 받고 있다 ]



Inven Niimo - 이동원 기자
(Niimo@inv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