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희권 우보펀앤런 이사


[인벤게임컨퍼런스(IGC) 발표자 소개] 정희권 우보펀앤런 이사는 엔텔리전트 게임기획 담당, 조아라 닷컴 이사, 인터파크게임즈 게임기획 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우보펀앤런에서 게임개발 팀 이사로 근무 중이다. 본 강연을 통해 정희권 이사는 보드게임에 대한 국내외 환경을 알리고, 인디 보드게임 개발을 꿈꾸는 개인이나 팀으로 하여금, 최선의 개발 및 생존 전략을 해외인디게임 개발자들의 사례를 중심으로 설명하고, 한국에서의 인디 보드게임 개발자들의 생존 방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보드게임 전문 개발사 우보 펀앤런 (UBO Fun&learn)의 정희권 이사는 6일 개최된 IGC 2016의 첫 날 행사에서 '세계 인디 보드게임 개발의 현황과 한국의 인디보드게임 개발자협동조합 운동에 대한 소개'라는 주제로 연단에 섰다. 이날 연단에 선 정희권 이사는 먼저 게임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정의에 대해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세계 보드게임 시장의 상황과 함께 신생 보드게임 개발자가 앞으로 겪게 될 문제들,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서의 인디 개발자 협동조합에 대해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 강연주제: 세계 인디 보드게임 개발의 현황과 한국의 인디보드게임 개발자협동조합 운동에 대한 소개


⊙ 왜 지금이 '인디'하게 보드게임을 만들기 좋은 시기일까?

점점 커지고 있는 오프라인 보드게임 시장

5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보드게임 시장은 '할리갈리', '젠가', '루미큐브' 이 3종의 보드게임이 전체 매출의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또한, '카탄'과 같은 세계적인 히트작조차 판매량이 수천 개에 그칠 정도로 국내 오프라인 보드게임 시장의 규모는 큰 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2016년 현재는 만 개 이상 판매된 보드게임 종류만 50종 이상일 정도로 그 수가 많아졌으며, 제작과 마케팅 양쪽 면에서 모두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는 중이다.

뿐만 아니라, 기존에 인기를 끌었던 퍼즐 장르 이외에도 추상 전략, RPG 등 다양한 장르의 히트작들이 출시되기 시작하면서, 오프라인 보드게임 시장은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추세이다. 정희권 이사는 또한 이럴 때일수록 명민하게 움직인다면 큰 리스크 없이 역량을 키워나갈 수 있는 환경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으며, 지금도 여러 성공사례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고 있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의 등장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의 등장과 대중화는 인디 보드게임 개발자들에게도 좋은 기회로 다가왔다. 아직 국내에는 크게 성공한 사례가 적지만, 해외에서는 크라우드 펀딩을 이용해 억 단위의 성공을 거두는 사례도 흔치 않다.


동북아 보드게임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

다른 문화권의 '참신함'을 엿볼 수 있는 보드게임들이 세계적인 관심을 얻고 있다. 압도적인 보드게임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독일의 추세는 현재 여러 게임 요소를 복잡하게 짜깁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시장 상황일수록 다른 게임에서 보기 힘든 '참신함'은 아주 강한 무기가 될 수 있다. 결국, 전혀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만들어지는 보드게임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는 것.

일례로, 한국인이 개발한 보드게임인 '고려'같은 경우 프랑스 보드게임 차트에서 1위를 기록한 적이 있다. 또한, 대만과 일본 등지에서는 소위 '스타 개발자'라고 불리는 보드게임 개발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하기도 했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 프랑스 보드게임 차트 1위를 기록한 '고려'


⊙ 인디 보드게임 개발자가 당면하게 될 문제들


유통사 위주로 편재된 대한민국의 보드게임 시장

국내 보드게임 시장은 보드게임을 만들고자 하는 개발사보다 보드게임을 팔고자 하는 유통사가 더 많은 구조를 취하고 있다. 또한, 외국의 경우 보드게임 제작과 관련한 실질적인 정보들을 자유롭게 입수할 수 있는 반면, 국내 보드게임 시장은 유통사들이 대부분의 게임 제작 경험과 노하우, 트렌드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는 보드게임을 처음 만들고자 하는 신생 개발자들에게 큰 벽으로 다가오게 된다.


테스팅의 부족, 그리고 제작의 문제

테스팅의 부족 또한 인디 보드게임 개발자가 겪는 문제 중 하나다. 정희권 이사는 '바퀴벌레 포커'를 예로 이를 설명했다. 바퀴벌레 포커는 기본적으로 쥐, 바퀴벌레 등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싫어하는 생물 8종의 카드 모음이다. 게임을 하는 규칙은 간단한데, 상대방에 특정 카드를 주면서 "이건 OOO야" 라고 말하기만 하면 된다. 예를 들면, 바퀴벌레 카드를 주면서 쥐 카드라고 거짓말을 할 수도 있고, 아니면 사실대로 이야기할 수도 있다. 카드를 받게 되는 상대방은 자신에게 카드를 주는 사람의 눈빛과 목소리 등으로 이 사람이 거짓말을 했는지 아닌지 알아맞혀야 한다.

이 게임의 기본적인 시스템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렸을까. 정희권 이사는 적어도 6개월, 길게는 1년 정도의 기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많은 테스트를 통해 게임 시스템이 확고해지면, 보드게임의 테마를 설정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제작의 문제 또한 장벽으로 다가온다. 이미 확고한 시장을 이룩한 독일과 같은 경우는 보드게임 내의 세부 요소 하나부터 열까지 제작해주는 공장이 여러 곳에 존재한다. 따라서 보드게임을 만들고 싶다면 한 공장 안에서 말부터 주사위, 보드를 전부 만들어 포장까지 가능하게 된다. 독일 정도는 아니지만 일본 같은 경우도 소량에 한해 보드게임을 제작해주는 시스템이 자리하고 있는데, 국내는 이러한 시스템이 아직 자리 잡혀있지 못하다. 따라서 처음 보드게임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모든 요소들을 각기 다른 곳에 제작을 맡겨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시장 상황에서는 무작정 보드게임을 출시하기보다는 프로토타입 수준에서 게임 시스템의 완성도를 더욱 높이는 작업이 좋은 전략이 될 수 있다.


생태계의 미성숙

정희권 이사는 좋은 제품을 만들면 누군가가 알아주고, 자연스럽게 팔리게 되는 시장을 두고 '성숙한 시장'이라 말한다. 그가 말하는 성숙한 시장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먼저, 건전한 비평이 활성화되어야 하고, 시상 제도에 객관성과 권위가 보장되어야 한다. 또한 유통사와 콘텐츠 개발사의 협업 모델이 뚜렷하며 신생 개발자의 안전한 참여가 가능한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어야 한다. 물론, 이 모든 조건들은 하루아침에 저절로 생겨나지 않는다.


조제남조

이것은 앞서 말한 크라우드 펀딩이 되려 단점으로 다가오는 사례다. 해외에서 몇몇 개발자들이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상당한 성공을 거둔 사례가 있긴 하지만, 크라우드 펀딩 제품이 실제로 유통되는 비율은 10에서 20퍼센트 사이를 오가고 있다. 따라서 크라우드 펀딩에 대한 좋은 사례만을 좇으려는 것은 지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 함께 문제를 해결하기 - '사부작 협동조합'

위에서 확인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해결해가면서 굳이 게임을 만들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정희권 이사는 그러한 이유 대신, 상업적인 목적만을 가지고 만들어진 게임이 띄게 될 모습을 이야기했다. 우선, 기존의 게임 시스템에서 벗어나지 않는 게임이 만들어질 것이고, 포장이나 외형만을 과장해 비싸게 팔 수 있는 게임이 만들어질 것이다. 또한, 개발사 및 개발자에게 로열티를 줄 필요가 없는 게임, 유저들을 학습시킬 필요가 없는 게임, 규격화되고 표준화된 기존의 구성물을 최대한 활용하는 게임이 만들어질 것이다. 이렇게 다섯 가지 예시 만으로도 상당히 좋지 않은 결과가 나타나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지만, 문제는 이러한 전략으로 만들어진 게임들은 Me to 제품을 주로 생산하는 유통사와 경쟁이 불가능하다는데 있다.

그렇다면, 시장 논리에 떠밀려가는 게 아니라 개개인의 다양한 시도들이 지속되게 할 수 있는 방법이란 것이 존재할까? 정희권 이사는 자신이 시작한 인디 보드게임 협동조합을 일례로 들었다.


인디 보드게임 협동조합을 설립한 계기는 신생 개발자들이 굳이 경험하지 않아도 될 실패를 겪고, 보드게임 개발을 포기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부산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부작 협동조합을 통해, 신생 개발자들이 생전 처음 낸, 혼자 간직하고 있었던 아이디어를 검증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치게 하고 있다. 이를 통해 혼자서는 부족할 수 있는 게임에 대한 테스트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공동 마케팅과 공동 생산으로, 이는 정희권 이사가 일본 개발사들의 사례에서 착안했다. 일본의 보드게임 시장은 말하자면 '게임 만드는 사람들'이 살아나는 시스템이다. 언제나 새로운 아이디어에 목말라 있고, 새로운 개발자들을 반기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는데, '게임을 판매하려는 사람들이 더 많은' 국내 보드게임 시장에서는 신생 개발자들은 모두 기존 유통사들과 대립하게 되는 것과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인디 보드게임 협동조합은 이러한 신생 개발자들과 함께 게임쇼에 참가해 참관객들의 반응을 살펴보는 등의 활동을 해오고 있다.


공동 생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국내에서는 스스로 품질 높은 보드게임을 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있지 않다. 따라서 협동조합의 이름으로 재료를 주문해 단가를 낮추는 방식으로 신생 보드게임 개발자들을 돕는 사업을 구상 중에 있다.

정보의 공유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신생 개발자들에게 세계 보드게임의 트렌드 및 각종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현재 사부작 협동조합에서는 독일에서 '바이블'이라고 일컫는 교재에 대한 번역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교재는 올겨울 중 텀블벅 등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출시될 전망이다.

마지막으로 정희권 이사는 인디 보드게임 개발자 협동조합이 개인의 만족과 이익을 넘어, 게임이 사회에 주는 가치를 지역 게임 디자이너들과 함께 고민하는 단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현재 번역 작업 중인 '보드게임 개발자를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길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