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훈 Pixellore / 대표

[인벤게임컨퍼런스(IGC) 발표자 소개] 총 16년차 게임 개발자이자 3년차 인디 게임 개발자. 마이크로소프트 게임즈 스튜디오에서 테크니컬 아트를, 쿠노 인터렉티브에서 아트 실장을 맡은 바 있다.


'Never give up. Never surrender'

멘탈은 개발자는 물론 누구에게나 중요한 문제다. 몸이 아무리 건강하더라도 멘탈이 약하다면 작은 문제에도 흔들릴 수 있다. 6일 진행된 IGC 첫날 행사에 Pixellore의 이세훈 대표가 '인디 게임 멘탈 관리'에 대한 주제로 연단에 섰다. 강연은 이세훈 대표가 '쿠노 인터렉티브'를 나와서 인디 게임을 선택한 계기를 시작으로 2년 넘게 몰두한 서브터레인을 개발하면서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시기를 이겨내고 자신만의 답을 찾은 것에 대한 경험을 차근히 이야기했다.


■ 강연주제: 인디 게임 개발 멘탈 관리

⊙ 인디 게임을 만들게된 이유. 그리고 인디 게임의 현실

'쿠노 인터렉티브'를 나와서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던 중 인디 게임 개발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른 회사에 들어가 다른 게임을 만드는 것과 인디 게임을 만드는 것을 두고 생각해보니 10년, 20년이 되었든 둘 사이에 큰 차이가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2년 넘게 서브터레인을 개발했고 2월 초에 정식 론칭되었다.



오늘 강연은 게임 홍보를 위해 나온 것은 절대 아니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인디 게임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느꼈던 점을 소개하고 싶어서다. 강연에 대한 제의가 들어왔을 때 정말 많은 고민이 되었다. 소위 대박을 친 게임도 아니고 특별한 기술력으로 다른 이에게 도움이 될 게임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내가 인디 게임을 만들면서 무엇이 가장 힘들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머릿속을 스친 생각이 멘탈 관리였다. 다른 힘든 것도 많았지만 특히 정신적인 부분이 가장 힘들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에 이런 주제를 선택하게 되었다.

처음 인디 개발을 시작했을 때는 마치 한 계단씩 목표를 달성하면서 꾸준히 해 나가다 보면 나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다. 그런데 현실은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 같았다. 언제 다 만들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걸 다 만들면 어떻게 될까라는 불안감도 생겼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걱정과 무엇인가 나의 꿈이 멀어져가는 기분이 들었다.

개발을 하다 보니 시간도 없고 돈도 없고 인력도 없고... 없는 것투성이였다. 그렇다고 앞만 보며 달려가다 잠시 뒤를 돌아보면 마치 절벽 같았다. 경제력에 대한 압박감도 생겨나고 가족 부양에 대한 심각한 걱정도 있었다. 그 외부에서 오는 정신적인 어려움이 있었다. 주로 주위의 시선들이었다. 이 사람이 회사를 그만두고 인디 게임을 개발하는 데 성공을 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그렇게 주시하고 있는 부분. 그리고 SNS나 지인을 통해 들려오는 것을 보면 어떤 분들은 어떻게 성공을 했더라, 많이 팔았더라,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더라, 이런 것들이 잡음이 되어 정신적인 압박감으로 돌아왔다.





이런 부분으로 너무 힘이 들었을 때는 모니터에 코드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개발에만 집중해야 잠을 잘 수 있는 상황도 많았다. 그런 어려운 시간이 지나가고 작년 4월 즈음에 스팀 얼리엑세스로 출시하게 되었다.

※ 스팀 얼리엑세스 : 스팀이라는 PC 플랫폼 마켓에 완성되지 않은 게임을 미리 출시하여 유저들의 피드백을 받아 게임을 완성해 나가는 프로세스

론칭하고나서 기대를 많이 했다. 4일 만에 그린라이트로 선정되었는데 이 게임이 스팀에서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게임이라는 자신감을 얻었다. 하지만 결과는 8억이 아닌 80. 스팀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안 팔린 수치다. 이 때문에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여러 감정이 복받쳐 오르는 상태가 계속되다 끝내는 드러눕고 말았다.

약 2주 동안 일을 할 수 없는 정도였는데, 팀원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기대도 컸지만 1년 동안 열심히 했는데도 막상 이런 결과를 받으니 너무 두렵고 같이 한 팀원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한 두려움과 왜 인디 게임을 만들려고 했는가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다. 그리고 어떻게 수습하지라는 생각에 멘탈이 부서져 내렸다.







⊙ 인디 게임을 만드는 이유 'WHY!'

그런 중에 게임을 구입한 유저로 부터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이 메일이 정말 큰 힘이 되었다. 무엇인가로 머리를 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서 내가 이러고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과 더 힘을 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발할 때 팬들의 팬심이 큰 힘이 된다는 것을 경험했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현재는 서브터레인의 개발을 마치고 차기작을 준비하는 과정에 있는데, 다시 또 맨땅에 헤딩 해야 된다는 상황이 되었다. 처음 개발할 때는 깡으로 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이었는데 두 번째는 무서웠다. 처음 인디 게임 개발을 시작했을 시절보다 더욱더 정신적으로 힘든 상태에 있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질문들은 던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나는 왜 이 짓을 왜 하고 있는 것일까? 인디 게임을 왜 만들려고 하는 것일까? 회사에 잘 다니고 있었으면 안정적인 생활은 물론 걱정 없이 하고 싶은 프로그래밍이나 아트를 할 수 있었을 텐데. 나는 왜 인디 게임을 계속 만들고 싶은 것인가? 그런데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하고는 싶다는 점. 근데 왜 하고 싶은가에 대한 이유는 찾지 못했다. 그래서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개발이라는 행위 자체가 좋은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3D 아트로 일을 했을 때 회사에서 모델링 했던 것을 집에 와서 복습할 때보다 부드러운 움직임을 보였을 때 느껴졌던 희열. 그리고 프로그래밍을 배울 때 어제는 A = A + 1만 알았는데, A += 1을 알게 됐을 때 느꼈던 닭살 돝는 소름. 발전된 모습을 스스로 느끼면서 거기에서 오는 만족감. 이런 개발이 주는 중독성에 빠져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런 개발이 주는 중독성에 빠져있고 이런 판타지 세계에 계속 살고 싶은 개발자였다. 한국에서 말하는 개발자는 보통 프로그래머를 가르키지만 여기서 이야기하는 개발자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것이다. 그리고 개발자는 개발할 때 가장 행복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개발한 게임이 대박이 나거나 하고있는 프로젝트가 잘 되어서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사는 것도 좋지만, 그것이 따라오더라도 개발자가 더는 개발을 할 수 없다면 그것도 생각을 해봐야 하는 문제지 않겠냐는 생각을 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이기적이다. 하고 싶은 것을 즐기고 이런 것들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다른 많은 것들을 희생시켜가면서 개발을 하고 있는 거라고 말할 수 있다. 심지어는 가족들까지도. 그렇게까지 생각을 해보니 내가 하는 프로젝트의 결과가 좋지 않아도 그것을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상기시키면서 살아가면 혹시 보이지 않는 미래가 있고 경제적인 압박과 현실적인 어려움이 다가와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정신력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대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주 기본적이고도 개발자가 가지고 있어야 하는 그런 코어 밸류 그것이 내가 찾은 답이다. 여러분들에게도 그런 것이 하나씩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만약에 없다면 그런 것을 찾아서 내가 평생 가져가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찾는다면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그것이 힘이 되어서 놓치지 않고 잡아주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 인디 게임 개발은 목적지를 모르는 여행을 떠나려는 것과 같다.

서브터레인을 제작한 3년간의 시간을 정리해보면 잃은 것도 있고 얻은 것도 있다. 돈도 잃었고 시간도 잃었고 안정된 직장, 머리까지 잃었다. 그리고 얻은 것이 있다면 빚도 얻었고 뱃살, 주름살, 나이 그리고 픽셀로어의 팬들도 얻었고 회사도 2개나 생겼다. 그리고 딸이 4학년이 되었다. 그 외에도 쓰지 않는 여러 모니터와 잡동사니, 많은 인디 게임 개발자 친구들이 생겼고 다른 분야에서 일을 같이했던 옛 동료들에 대한 존경심도 생겼다.


서브터레인은 약 2만 2천 카피가 팔렸고 90% 정도의 퍼센트 리뷰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들은 그동안 개발하면서 즐거웠던 나날들이다. 엄청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지금의 상황을 알고도 다시 인디 게임을 개발하겠느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주저하지 않고 그렇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지금 이 상황에서 돈이나 다른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데, 가장 아쉬운 것은 시간이다. 시간을 어떻게 최대로 활용해서 내가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겠느냐고 생각했을 때는 당연히 인디 게임을 만드는 것이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훨씬 더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되기 때문이다. 확실히 회사에 다녀서 성장하는 양과 인디 게임을 개발하면서 성장하는 양의 시간 대비 효율이 인디 게임을 개발하는 것이 높다. 그 때문에 당연히 자신을 던지고 싶은 그런 마음이 든다.

혹시 인디 게임을 만들고 있거나 만들고 싶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Never give up. Never surrender'이다. 포기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정신적으로 힘들고 현실이 어렵더라도 포기해 버리면 실패했을 때 그대로 실패로 남는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그 실패가 꿈에 다가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단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인디 게임을 만든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즐거운 여행을 하는 것과 같다. 처음에는 인디 게임이라는 기차를 타려고 기차역에 가면 낯선 사람들과 환경 그리고 종착역을 모르는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불안감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같은 기차를 타려고 같은 역에 모이는 친구들이란 걸 알 수 있다. 나는 그런 그들과 함께 이 기차를 타고 즐거운 여행을 한 거라고 느끼고 있다.

예를 들면 이번에 BIC 행사에서 전시 위원회로 참여해 다른 인디 개발자들과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만남을 통해 좋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었고 결코 외롭지만은 않았다.





언젠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서브터레인을 언급할 수 있는 날이 오면 꼭 이 말을 하고 싶었다.

"가장 힘들었을 때 나의 힘이 되어준 서브터레인 팬 여러분. 여러분은 얼리 엑세스를 하면서 게임 기획의 절반을 해 주셨고. 모든 버그 테스팅과, 모든 로컬라이징을 무료로 해 주셨고, 1045번 이상의 업데이트를 하면서도 이상하게도 짜증 한번 내지 않았습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서브터레인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2년 동안 즐거운 여행을 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