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홍 숭실대학교 / 교수

[인벤게임컨퍼런스(IGC) 발표자 소개] 이재홍 숭실대학교 교수는 숭실대 예술창작학부 문예창작전공 교수이자 스토리텔링학회 부회장이기도 한 이재홍 교수는 2015년 게임학회장에 취임한 이후 게임사전을 발간하는 등 한국 게임산업 발전의 선두에 선 인물로 꼽히고 있다.

올해 여름은 정말로 뜨거웠다. 날씨뿐 아니라 포켓몬GO라는 걸출한 게임의 등장으로 온 나라가 뜨거워졌다. 포켓몬GO 덕분에 융합기술의 위력을 본 정부와 업계는 앞 다투어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다.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함부로 재단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앞으로 게임 산업에서 이런 기술들이 주요한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는 것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는듯하다.

하지만 정부나 업계는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AR) 기술에만 열광할 뿐 그 안에 내제된 다른 요소들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하다. 하지만 기술만으로는 게임이 나오지 않는 법. 바로 그 점을 짚어주기 위해 숭실대학교 이재홍 교수가 ‘AR시대를 위한 스토리텔링의 필요성’을 주제로 IGC 연단에 섰다.


■ 강연주제: AR시대를 위한 스토리텔링의 필요성: 포켓몬GO를 중심으로


⊙ 게임 산업의 위기, 새로운 도전으로 풀어가야

세계적으로 게임의 역사를 살펴보면 1958년부터 시작되지만, 한국 시장에서 게임이 활성화된 것은 70년대 중반부터이다. 그리고 96년 최초의 온라인게임인 ‘바람의 나라’가 태동하면서 급물살을 타면서 게임 산업이 확산되었다. 이재홍 교수는 “2000년부터 지금까지는 우리 게임 산업의 영욕의 시기이다. 최고점을 찍고 지금은 곤두박질치고 있다”는 표현으로 현재 한국 게임 산업의 현실을 날카롭게 진단했다.

게임 산업 총체적 위기는 어떤 이유 때문일까. 이재홍 교수는 그것을 “정부와 소비자, 제3그룹, 그리고 결정적으로 업계의 문제”라 말하며 각자의 문제를 짚어냈다.

정부는 거시적 안목에서의 정책을 세우지 않았고, 각 부처 간에 비효율적인 규제 정책을 두어 업계를 옭아맸다. 이에 더해, 19대 국회에서 게임 산업을 지나치게 탄압함으로써 성장을 어렵게 했다.

제3그룹은 보수언론이나 학부모를 의미한다. 보수 언론은 다양한 사회적 이슈의 이유로 게임을 거론하며 게임에 대한 인식을 부정적으로 담아냈다. 여기에 학습 과열 학부모들의 게임에 대한 두려움과 증오심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소비자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만연한 공짜풍토는 확률형 아이템을 낳고 키웠다. 또한, 국내 유저들이 역동적인 게임을 좋아하다보니 스토리나 텔링을 무시하고 가는 풍토가 형성되었고, 그러다보니 게임이 가지는 진정한 휴식성이나 예술성이 상실되었다.

그중에서도 업계의 문제가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다. ‘리니지’라는 게임에서 탄생한 역동성이 바로 한국형 게임 분위기를 완전히 정착시켰고, 지금도 그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래픽이나 서버 등 기술적인 부분들은 최고의 수준이지만, 너무 그것에만 몰입한 것도 문제이다. 확률형 아이템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도 큰 문제 중 하나이다.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융합기술에 대한 고민과 함께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는 회사가 없다. 심하게 말하자면 정부의 돈줄만 생각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총체적인 위기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 시점에서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을 게임에 적용해야한다. 그리고 그 뉴딜정책은 스토리와 스토리텔링에 있다.



현재 돌파구를 찾기 위해 새로운 무언가를 기대하고 꿈꾸는 것이 VR(가상현실)이나 AR(증강현실)로 대표되는 융합기술을 활용한 게임이다. 하지만 포켓몬GO가 최초의 AR게임은 아니다. 국내에서도 과거 2011년에 KT에서 ‘올레 캐치캐치’라는 게임을 제작한 바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는 그 가치를 몰랐고, 그에 대한 정보도 거시적인 안목도 없었다. 그 결과 지금 융합 인프라가 형성된 그 순간까지도 VR에만 몰입을 하고 있다.

강연에서는 AR과 VR을 비교한 내용도 들을 수 있었다. 이 둘은 어찌보면 비슷하다 볼 수 있지만 깊게 들여다보면 서로 낯선, 거리가 먼 기술이다. 먼저 가상현실(VR)을 보면, 일단 개발자는 물론 콘텐츠가 없다. 개인적으로 즐길 수 있는 것은 앉아서 감상하는 것뿐이다. 또한 VR은 기본적으로 싱글 게임, 고독한 게임이다. 물론 VR만의 세계가 있겠지만 게임이 인류의 놀이라는, 그리고 개인의 휴식의 도구라 생각하는 입장에서는 VR의 한계가 드러난다.

반면 증강현실(AR)은 현실감과 사실감과 실재감이 뛰어나다. 시각적인 측면에서 훨씬 매력적이고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 말하자면 고독한 게임이 아니다. 가상의 정보를 현실에 덧씌워 필요한 정보를 중첩할 수 있고, GPS를 활용할 수 있는 것은 물론 핸드폰만 있다면 어디서나 즐길 수 있다. 때문에 AR이 할 것이 많고 우리의 곁에 있는 기술이다. 그 둘을 비교하자면, 증강현실은 현실성이 더 강하고 가상현실은 가상적인 요소가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이재홍 교수는 포켓몬GO를 ‘융합형 AR RPG’라 칭하면서 포켓몬GO는 증강현실, 위성항법(GPS), 스마트폰 기술과 지적재산권(IP)가 융합된 콘텐츠라 설명했다. 그리고 단순히 AR 기술에 대한 입장에서 보기보다는 20년 동안 갈고닦은 걸출한 IP인 ‘포켓몬스터’ 그 자체를 핵심이라 보았다. 현재의 게이머들은 포켓몬과 함께 성장했고, 40~50대는 자녀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말하자면 모든 연령층이 다 빠져있는 IP라는 것이다.




⊙ 진정한 스토리텔링이란?

이재홍 교수는 스토리텔링에 대해 “시나리오만 있는 것이 스토리텔링이 아니다. 인물, 사건, 배경, 거기에 게임에는 매개체라는 4번째 요소까지 포함해 어떻게 하면 각 요소들이 유기적이고 밀접하게 움직일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스토리텔링”이라 말했다. 단순히 각각의 요소들이 있다고만 생각할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사건과 최적화된 매개체를 넣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배경과 세계관에 어울리는 캐릭터를 형성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캐릭터에 어울리는 사건을 넣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강연에서는 포켓몬GO에서 이러한 스토리텔링을 어떻게 했는지를 볼 수있었다. 포켓몬GO에는 장소의 무제한성, 캐릭터의 커스터마이즈나 포켓몬의 다양성이 있고 스토리부터 이벤트까지 모든 것을 총칭하는 ‘사건’에 있어서는 포획을 하는 스토리에 더해 도감을 완성하거나 체육관 쟁탈전을 벌이거나 자신이 직접 찍은 베스트 샷 자랑할 수 있다. 그리고 아이템이나 퍼즐, 음악을 의미하는 ‘매개체’ 역시 잘 짜여져 있다.

포켓몬GO의 세계관, 배경은 현실의 세계와 가상의 세계가 혼합된 듀얼리즘, 믹시즘(Mix-ism)이라 말할 수 있다. 현실의 세계에서 스마트폰 카메라를 통해 가상의 세계를 체험할 수 있다. 그를 통해 원시시대 사냥 문화가 현대적으로 재현된다. 화면 안에는 도로나 빌딩 등 현실의 공간이 가상에 합쳐진다. 가상세계는 포켓몬의 1세대 스토리를 가져왔기 때문에 일본 관동지방과 현대 시간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결국 시간적, 공간적 배경 모두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세계관을 스토리텔링하고 있다 말할 수 있다.

사건은 1세대 포켓몬 게임의 대표 스토리를 따라가고 있다. 개별 에피소드의 서사구조는 단순하지만, 7세대까지 이어지면서 창의적이고 흥미로운 사건들이 다수 발생하고 각 시리즈별로 새로운 등장인물이 독자적인 서사체를 형성한다. 포켓몬의 게임성이나 사건은 역시 잠재된 사냥꾼의 본능을 표출하고, 가상세계의 꿈을 대리 수행한다는 것에 있다.

캐릭터는 굉장히 다양하다. 1세대 기준 151마리의 포켓몬이 7세대에서는 720가지로 늘어났다. 그러기 위해서 닌텐도에서 개발한 포켓몬은 5,000여종이다. 그리고 그 많은 캐릭터를 깊게 봤을 때 포켓몬의 진가를 느낄 수 있다. 그건 바로 일본에서 ‘센가이교’라 번역해 자신들의 문화로 끌어들인 ‘산해경’에 나타나는 캐릭터들이 많이 활용됐다는 것이다. 이건 우리가 가진 숙제이자 역사 속에 나타난 문화콘텐츠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예이다.



다음은 매개체이다. 아이템은 스마트폰이면서도 PC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아이템 세팅이 있다. 게임은 얼마든지 즐길 수 있으면서도 자기만족을 위해 포인트를 사용할 수 있는 구조이다. 퍼즐은 미션 해결용 퍼즐이나 아이템 강화 퍼즐이 존재한다. 음악도 굉장히 활동적으로 걸어다니고 뛰어다니고 해야 하기 때문에 경쾌하고 웅장하고 빠른 템포로 만들어져 게임과 잘 어울린다.

이런 것이 스토리텔링이다. 요소들이 있다고만 생각할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사건과 최적화된 매개체를 넣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배경과 세계관과 어울리는 캐릭터를 형성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캐릭터에 어울리는 사건을 넣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스토리텔링이다. 최상의 콘텐츠를 만들어가는 과정. 과거에는 연출이라 이야기했지만, 지금은 스토리텔링이라는 용어로 매진해야 한다.




⊙ 우리가 가진 역동성에 서사를 더해야 할 때

강연의 말미에 이재홍 교수는 “한국의 게임 산업은 수렁에 빠졌다. 이제는 역동성만으로는 힘들다. 서사성이 필요하다. 이 순간에도 전 세계의 유저들이 월드오브워크래프트(WoW)를 플레이하는 이유는 역동성에 서사성이 깃들어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AR과 VR 역시 기술만 있고 스토리가 없으면 안 된다.”는 말과 함께 앞으로 한국 게임 산업이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이에 더해 “아직도 AR이라 하면 포켓몬GO에 대한 미련만 있어 보인다. AR을 보고 포켓몬GO와 같은 게임만 만들겠다고 하면, 아직도 옛날과 똑같은 게임만 만들겠다고 하며 죽 쑤고 있는 지금의 현실과 같아진다. 새로운 방법론과 새로운 기술력,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지고 덤벼야 한다.”며 새로운 도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중국은 이미 우리를 다 따라왔다. 과거 온라인 게임의 영화만 생각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이제는 새로운 것을 창출해야 하고, 고퀄리티의 게임만이 나아갈 방향이다. 우리 역사에 내제된 숱한 사건과 캐릭터와 세계관을 끄집어내야한다. 그래서 정통 IP를 발굴해야 한다.

그동안 외면했던 스토리에 조금 더 매진해야 하고, 스토리텔링 기법을 가지고 퀄리티를 높여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주도권을 쥘 수 없다. 우리에게는 그래픽과 프로그래밍에서 뛰어난 기술력이 있다. 거기에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콘텐츠를 탑재하는 것이다. 지금 IoT라던지 AR, VR, 웨어러블 컴퓨팅, 클라우드 컴퓨팅 등 융합 인프라가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데, 이를 제대로 알고 따라가지 않으면 문화콘텐츠에서는 갈 길이 없어진다. 진정한 세계시장을 본다면 서사성을 제대로 생각하고 퀄리티를 높여야 한다. 그게 바로 게임 산업이 다시 살아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