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0일부터 3일간 계속되어 온 오버워치 월드컵 조별 리그가 끝이 났습니다. 새벽부터 일어나 경기를 시청하고 출근을 하려니 좀 피곤했지만, 세계 여러 나라 선수들이 벌이는 명경기를 볼 수 있어 매우 즐거운 사흘이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이번 조별 리그는 다양한 볼거리들이 있었습니다. 애초 기대했던 것보다 더욱 뛰어난 기량을 보인 한국 팀이 조별 리그에서 핀란드마저 꺾고 3승으로 C조 1위를 차지한 것도 있고, 우승 후보로 지목되었던 북미나 유럽의 여러 강호 팀들 간의 명승부도 굉장히 재밌었습니다. 또한 예상외의 저력을 보여준 아시아 팀들의 모습도 인상 깊었죠. 전체적으로 이변도 많고 재미도 있었던 조별 리그였다 싶습니다.

하루에 8경기, 사흘간 총 24경기가 넘는 혈전이 벌어졌던 가운데, 특히 굉장했다고 느낀 장면을 모아보기로 했습니다. 이름하야 '월드컵 조별 리그 TOP5 명경기'인데요.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명경기와 비교하면서 보는 것은 어떨까요?

▲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나온 명경기, 명장면 TOP5를 소개합니다!



◆ 한국 팀이 보여준 깜짝 전략, 아이헨발데 수비 영웅 조합

조별 리그 경기에서 볼 수 있었던 가장 독특한 픽과 전략은 뜻밖에도 한국 팀에게서 나왔습니다. 본래 한국 팀은 윈스턴의 '미로', 자리야의 '준바', 아나의 '류제홍', 루시우의 '타이롱'이라는 탄탄한 탱커~힐러진을 토대로 겐지 위주의 딜러 '아르한'과 맥크리, 트레이서 위주의 딜러 '에스카'가 전방에서 활약하는 특색을 가진 팀입니다. 하지만 호주와 핀란드전에서 나온 전장 아이헨발데에서는 유난히 독특한 픽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바로 한조, 바스티온, 토르비욘 등의 수비군 영웅들을 기용한 것입니다.

호주와의 경기에서 아이헨발데 공격 진영이었던 한국은 아르한 선수가 한조를 기용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아르한의 한조는 방벽 싸움이 치열한 A거점 입구 아치형 다리 지역에서 상대 라인하르트의 방벽에 빠르게 피해를 누적시키며 적들의 방어선을 크게 후퇴시키는 효과를 냈습니다.

A거점 점령 후 아르한 선수는 한조 픽을 바스티온으로 변경했습니다. 화물을 미는 공격 진영에서 바스티온이라니, 뭔가 엉뚱한 느낌이 들었지만 한국 팀은 이를 전략적으로 잘 살려냈습니다. 화물 위 뒤편에 엄폐한 바스티온을 탱커진이 호위하고, 딜러들은 화물에 적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전방에서 적들을 교란시키면서, 결과적으로 바스티온이 경계 모드로 마음껏 딜을 퍼부을 상황이 만들어졌죠.

▲ 호주전에서 나온 공격 바스티온! 화물 위에서 포화를 퍼붓다 전차 모드로 마무리


공바스티온 전략이 성공한 후, 한국 팀이 수비할 차례가 되자 이번에는 아르한의 토르비욘, 준바의 정크랫, 타이롱의 시메트라라는 픽이 나왔습니다. A거점으로 향하는 입구 지역을 틀어막는 것에 모든 것을 거는 조합이었습니다. 항상 자리야를 해오던 준바가 시메트라의 보호막을 받고 입구 바깥으로 나가 유탄을 퍼부어대고, 타이롱의 시메트라에 나노 강화제를 투여해 한타를 감행하는 카오스(?)가 펼쳐졌죠.

아무래도 이런 전략은 호주 팀도 예상외였는지, 결국 한국팀은 A거점을 완방해내기 이르면서 호주에 2:0 승리를 가져갑니다. 심해 경쟁전이나 빠른 대전에서나 보겠다 싶은 픽과 전략이 월드컵 무대에서 실제로 먹히는 것을 보니 기묘한 느낌이 들긴 했습니다만, 꽤 신선하고 독특한 경기를 볼 수 있어 좋았다 싶었습니다. 게다가 프로들이 사용하는 만큼 뭔가 다른 듯한 인상도 있었기도 했고요.

실제로 호주 경기 이후 한국 대표 선수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아이헨발데에서 보였던 수비 영웅 위주의 플레이는 미리 준비한 것이며 실제로 실효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꺼낸 전략이었다고 합니다. 프로씬에서 잘 쓰이지 않는 수비 영웅들마저 전략의 일환으로 승화시킨 한국팀의 유연한 플레이가 빛을 발했다고 볼 수 있겠죠. 덕분에 한국을 상대해야 하는 해외 팀들은 많은 변수를 고려해야 할 처지에 놓였습니다.

▲ 난전 중 유탄을 마구 뿌려댄 후 체력 5를 남기고 살아남아가는 준바의 정크랫



◆ 위기의 핀란드를 캐리한 '세체맥' 타이무와 '로드호그의 신' 힘지

다음 명장면은 C조의 우승 후보 팀이자 '세체맥' '타이무'가 속해 있는 핀란드의 경기에서 선정했습니다. 핀란드는 스웨덴, 스페인 등과 함께 유럽의 유명 프로게이머들이 모인 드림팀 중 하나로 우승도 노려볼 수 있는 전력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첫째날 경기 상대였던 대만이 의외의 저력을 보이면서 핀란드는 약간 고전하는 모습을 보이고 맙니다. 대만은 '존다'의 리퍼와 '대니'의 메이가 대활약하며 핀란드를 상대로 첫 세트를 따내기까지 합니다. 핀란드가 궁지에 몰린다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 이를 타개해낸 것은 딜러 '타이무'와 로드호그의 신, '힘지'였습니다.

타이무는 세계 최고 맥크리다운 에임을 자랑하는 슈퍼플레이로 교착 상황을 여러번 풀어냈습니다. 대만이 끊임없이 작렬하는 대니의 눈보라와 존다의 죽음의 꽃을 기반으로 싸웠다면, 핀란드는 타이무 맥크리의 에임만으로 이에 비등하게 대응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 그랩에 끌려가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상대를 전부 잡아내는 타이무의 맥크리


힘지는 과연 로드호그의 신이라 불리울 만큼의 실력으로 경기 내내 의외의 변수를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힘지는 기묘한 판정으로 악명이 높은 로드호그 갈고리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선수로 유명한데, 이 경기에서도 몇몇 매직 그랩으로 적을 잡아내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죠.

경기가 과열되자 대만은 리장 타워 쟁탈전 3라운드에서 깜짝 바스티온 전략을 선보이기도 하는데요. 힘지의 로드호그까지 전체적으로 탱커 위주의 조합이었던 핀란드는 이에 초반에는 다소 밀리는 모습을 보였습니다만, 힘지가 픽을 겐지로 바꾸면서 대응했습니다. 핀란드 팀이 중력자탄에 묶여 바스티온의 경계 모드 프리딜을 받을 뻔한 위기에서, 힘지의 겐지가 나타나 바스티온을 끊어주는 장면은 이 경기 최고의 명장면이 아닌가 싶습니다.

▲ 대만의 최후의 공격을 막아내는 핀란드, 마지막 힘지의 기묘한 그랩이 인상적입니다


▲ 중력자탄에 바스티온 프리딜 상황을 막아내는 힘지의 겐지



◆ 미국 대장 시걸과 러시아 닌자 섀도우번의 치열한 수읽기 싸움

다음 명장면은 미국 vs 러시아 전에서 나온 '시걸'과 '섀도우번' 선수의 결투입니다. 시걸과 섀도우번 두 선수 모두 겐지를 극한까지 다룬 장인들로서 여태껏 많은 경기들을 캐리해 왔다는 점에서 닮은 점이 있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이번 미국과 러시아의 경기에서 시걸의 겐지와 섀도우번의 겐지 대결이 이뤄지지 않을까 하는 팬들의 기대가 있었습니다.

다만 미국 팀은 팀 라인업 구성상 시걸이 자리야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딜러를 하게 되더라도, 시걸은 겐지의 하향 이후 대회에서 겐지를 픽하는 경우가 줄고 대신 메이를 고르는 모습을 자주 보였죠. 때문에 팬들이 원하는 '닌자 대결' 매치업이 이루어질 확률이 그렇게까지 높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겐지 정상 결전은 1경기인 하나무라에서 바로 나왔습니다. 미국팀이 공격 진영일 때 시걸이 겐지를 꺼내어 든 것이죠. 양 팀의 나머지 선수들의 픽은 거의 대동소이한 상태로 겐지 대결이 곧 승부를 결정짓는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양 겐지들이 1:1대결에서 1승씩을 따내며 무승부를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이 하나무라 경기도 양팀의 치열한 공방에 조별 리그 사상 첫 무승부로 끝이 나게 됩니다.

▲ 한타 이후 벌어진 시걸 겐지 vs 섀도우번 겐지의 1:1 대결


이후로도 시걸과 섀도우번의 수읽기 싸움은 계속됩니다. 두 선수의 결투가 절정에 치달았던 것은 이후 연달아 있었던 쟁탈전 세트들이었는데요. 섀도우번의 겐지가 시걸 자리야의 중력자탄을 튕겨내고 용검을 꺼내들어 전원 처치를 하는가 하면, 섀도우번의 튕겨내기를 의식한 시걸이 중력자탄을 벽에다 쏘는 영리한 플레이를 보이며 한타에서 이기는 등 매 순간이 명장면의 향연이었습니다.

결국 양팀의 승부는 섀도우번의 용검 캐리로 끝이 납니다. 시걸은 절묘한 타이밍에 중력자탄을 사용하여 섀도우번을 빨아들이는 데 성공하지만, 섀도우번은 이에 당황하지 않고 튕겨내기로 모든 공격을 반사하고 근처에 있던 테일스핀의 트레이서를 벤 뒤 질풍참으로 빠져나와 미국팀을 전부 처치하고 마무리를 짓습니다. 관전하던 모두의 말문을 막히게 만든 명장면을 끝으로 결국 미국과 러시아의 혈투는 러시아의 승리로 끝이 납니다.

▲ 시걸은 섀도우번의 튕겨내기를 읽어내고 벽면에 중력자탄을 쓰는 플레이도 보였습니다


▲ 중력자탄에도 당황하지 않고 튕겨내기와 질풍참을 적절하게 사용한 섀도우번!



◆ 스웨덴과의 혈전 중 '각성'한 스페인의 딜러 브로마스의 대활약

다음 명장면들은 3일차에 있었던 스웨덴 vs 스페인 경기에서 나온 장면입니다. 두 팀 모두 쟁쟁한 라인업으로 우승 후보로까지 거론되는 팀인데다, 양 팀 모두 캐나다와 브라질로부터 2승을 확보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A조 1위를 차지하기 위한 자존심 대결로 관심이 높았던 경기였습니다.

하지만 스웨덴의 엄청난 공세로 1경기 도라도에서 스페인은 맥없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스웨덴이 보여준 엄청난 기량은 제 아무리 '무적함대'라 해도 꺾을 수 없는 것인가 하고 모두들 단념하고 있던 차였죠.

▲ 스페인의 마지막 방어를 차단해버리는 스웨덴, 트빅의 한조가 경기를 종결시킵니다


그런데 2경기 아누비스 신전에서 스페인의 메인 딜러 '브로마스'가 각성을 하기 시작합니다. 아누비스 B거점 수비에서 파라를 골라 막아내고 3세트를 가는가 싶더니, 3세트 리장타워에선 맥크리로 스웨덴 팀을 모두 제압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브로마스는 그야말로 '신들린 듯한' 에임으로 쟁탈전 힘싸움에서 연달아 큰 활약을 했습니다. 양 팀간의 궁극기 수싸움이고 뭐고 할 것 없이 그냥 모두를 씹어먹는 수준의 플레이였습니다. 3세트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브로마스의 맥크리는 명중률이 무려 64%에 육박할 정도였죠.

브로마스의 각성으로 스페인이 2라운드는 챙긴 후, 이후 스웨덴 또한 트빅 겐지의 활약으로 2라운드를 챙겨 2:2 상황, 마지막 한 라운드만은 남겨놓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스페인은 그간 트레이서를 플레이하며 다소 무리를 해오던 넵튜노를 맥크리로 바꾸고, 브로마스가 트레이서를 선택하는 도박 수를 놓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도박은 성공적으로 작용하면서, 스웨덴의 마지막 역전 기회를 두 딜러가 좌절시키며 마지막 세트를 가져가게 되었습니다.

▲ 섬광탄 하나로 트빅 겐지와 IDDQD의 트레이서를 잡는 브로마스!


▲ 최후의 공격 기회, 브로마스와 넵튜노의 대 활약으로 스페인이 거점 탈환에 성공합니다



◆ '행복 메타' 태국의 행복한 조별 리그 경기들

오버워치 월드컵 조별 리그의 마지막 명장면은 다른 여러 8강 진출팀들이 아닌, 무려 태국에서 선정해 보았습니다. 태국은 D조에서 프랑스, 중국과 함께 조별리그에서 2승 1패를 기록하며 최종 진출전을 치루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최종 진출전에서 태국은 중국과 프랑스에 아깝게 패배하면서 8강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태국 팀의 플레이 자체는 상당히 인상 깊었습니다. 특히 태국의 겐지 플레이어 '오푸토'가 눈에 띄었는데요. 오푸토는 이번 조별 리그 내내 맹활약을 펼치며 이번 조별리그에서 섀도우번과 함께 가장 주목받는 겐지 플레이어로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 태국의 섀도우번과도 같았던 오푸토의 겐지를 중심으로 싸웠던 태국 팀


하지만 태국은 조별리그 중에도, 최종 진출전 중에도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팀이 패배했을 때 전체적으로 암울한 분위기가 감돌았던 여타 다른 팀들과는 달리 태국 팀은 패배했어도 미소가 만연한 모습이었죠. 이 모습이 보기 좋아서였는지 팬들 사이에서 '행복 메타'라는 신조어가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조별 리그는 시청하던 팬들이 웃는 모습이 보기 좋았던 태국을 응원하기도 했죠.

태국의 '행복 전사'들은 조별리그에서 싱가포르에 승리한 뒤 패배한 싱가포르 선수들에게 다가가 따뜻한 포옹을 건네기도 했습니다. 비록 경기는 일방적이었지만, 태국 선수들의 싱가포르 선수들에 대한 최대한의 리스펙트가 느껴지는 장면이었습니다. 경기에서 진 싱가포르 선수들조차 얼굴에 화색이 만면하게 되면서 태국 선수들은 그야말로 '행복 전도사'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월드컵 조별 리그에서 태국 선수들의 행보는 정말 인상깊었습니다. 커리어나 상금에 얽매이지 않은 채 그저 해외 여러 선수들과 만나 게임을 즐기고, 승패에 상관없이 상대를 존중하는 모습은 어떤 의미 오버워치 '월드컵'의 본질과도 같은 부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 싱가포르에 승리한 후 선수들과 포옹을 나누러 간 태국 선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