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가 주는 즐거움은 다양하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새로움' 아닐까. 메시가 환상적인 드리블로 6, 7명의 수비수를 바보로 만들고 골을 만들어 내는 놀라운 광경을 본 적이 있나? 그 장면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동의할 것이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 중 하나가 새로움을 보는 것에 있다고 하는데, 스포츠는 그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좋은 도구다.

단순히 선수의 플레이만이 새로움을 선물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전술, 새로운 선수, 새로운 스토리 등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매 순간이 새로운 것이 스포츠다. 그래서 100년이 넘는 나이를 먹은 스포츠가 아직도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다.

LoL e스포츠가 줄 수 있는 새로움의 재미는 무엇이 있을까? 단언컨대, 다양한 픽의 재미가 그중 하나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챔피언이 픽창에 등장할 때면 사람들은 언제나 열광한다. 환호성이 방송으로 새어 나올 정도다. 신기할 정도로 새로운 챔피언에 대한 갈망이 큰 것은 역시 '새로움'을 기다리는 사람의 욕구 때문이다.

그 욕구를 가장 충족시키지 못하는 포지션은 현재 단연 원거리 딜러다. 다른 라인도 상황은 비슷하지만, 그중에서도 원거리 딜러가 도드라진다. 롤챔스 스프링에 출전한 57개의 챔피언 중 단 6개 챔피언만이 이번 시즌 원거리 딜러로 출전했다. 17개의 챔피언이 출전한 미드 라인과는 대조적이다. 6개의 챔피언 중에는 직스도 포함되어 있어 사실상 원거리 딜러로 설계된 챔피언은 단 5개만이 자신의 포지션으로 출전했다.



애초에 조촐한 식구들... 헌데, 가출까지... 19명? 아니 14명



원거리 딜러는 19명으로 처음부터 핵가족이었다. 미드 라인이 30명이 훌쩍 넘는 대가족인 것에 비하면 확실히 적다. 19명이라는 숫자를 유지하기라도 했으면 다행이다. 5명이나 되는 챔피언이 가출 중이다. 사실상 현재 남아있는 원거리 딜러는 14명으로 보는 것이 맞다.

일단 태생부터 OP, 사나이 중의 사나이 그레이브즈는 정글로 들어갔다. 정글이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곳이기는 하지만, 한때 그레이브즈는 원거리 딜러 하면 떠오르는 챔피언 1순위였다. QWR이면 상대 원거리 딜러가 사라지는 기적을 보여줬던 그레이브는 밸런스를 파괴하는 주범이었다. 그레이브즈도 결국 리메이크의 대상이 됐고, 완전히 변화했다. 리메이크된 그레이브즈의 평타는 무조건 자신 앞에 있는 대상만을 타격할 수 있게 됐다. 그 너머에 있는 대상은 타격할 수 없다. 원거리 견제가 수도 없이 일어나는 봇은 더 이상 그의 터전이 아니다. 그레이브즈를 원거리 딜러로 생각하는 사람은 이제 없다.

미드 라인으로 폭탄 배달을 간 코르키는 돌아올 생각이 전혀 없다. 코르키는 리메이크로 인해 물리공격과 마법공격이 혼재된 하이브리드형 챔피언의 특성이 더욱 강화됐다. 그때부터 코르키를 원거리 딜러로 보기가 어려워졌다. 원거리 딜러는 경기 후반 지속딜을 통해 탱커를 잡을 수 있어야 한다. 방어력를 뚫을 수 있는 최후의 속삭임 같은 관통 아이템이 필수적인데, 코르키는 효율이 많이 떨어진다. 앞으로도 코르키를 원거리 딜러로 볼 수 있는 일은 드물 것이다.

▲ 코르키 대신 들어온 폭탄맨이 있기는 하다...

퀸과 우르곳은 옥상(탑)으로 도망쳤다. 오랜 시간 고인으로 대우받던 두 챔피언의 최후 항전이었나... 퀸은 순간 화력과 로밍에 특화되어 있는 챔피언이다. 지속딜을 담당해야 하는 원거리 딜러의 특성과는 거리가 멀고, 사거리가 짧아 봇 라인전이 약하다. 하지만, 탑으로 갔을 때는 우월한 라인전과 기동성을 바탕으로 온 맵을 장악하곤 한다.

우르곳은 한때 봇 라인전 패왕이라는 소리를 들었으나, 여러 변화를 거쳐 이제는 그마저도 힘을 잃었다. 처음부터 가지고 있던 후반 화력의 약점은 그대로 남겨져 있어 봇에서 아예 자취를 감췄다. 우르곳은 고인이라 표본도 찾아보기 힘들지만, 대체로 탑이 그나마 낫다는 평가다.

마지막으로 서포터로 출전하는 최초의 원거리 딜러 미스 포츈이다. 미스 포츈은 e스킬의 우월한 사거리를 통해 서포터로 변신했다. 미스 포츈의 라인전 능력은 최상급으로 라인전이 중요시되는 현재 메타에서 주목받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후반에 아이템이 갖춰지면 궁극기를 통해 원딜 못지않은 화력을 과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원거리 딜러로는 대회에서 자취를 감췄다. 솔로 랭크 기준으로 원거리 딜러 승률 1위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향후, 거론된 5명의 챔피언 중에는 원거리 딜러 출전이 가장 유력하기는 하다.

연이은 가출로 인해 가뜩이나 부족한 인원이 단 14명으로 간추려졌다. 이 숫자도 그나마, 바루스와 이즈리얼이 집으로 돌아와서 유지할 수 있는 숫자다. 다른 라인에 비해 원거리 딜러는 기본적으로 다양한 챔피언을 볼 수 있는 기반조차 갖춰져 있지 않은 셈이다.




14명 중 5명... 후반도 문제 평타형 원거리 딜러



14명이라도 그 안에서 다양한 챔피언이 나온다면 충분히 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단 5개의 챔피언만이 이번 스프링에 등장했다. 케이틀린을 제외한 바루스, 진, 애쉬, 이즈리얼 모두 스킬에 중점을 두는 챔피언들이다. 왜 평타형은 등장하지 못할까?

현재 메타는 특정 부분만을 지나치게 강요한다. 라인전과 속도. 이 두 가지 사항에 발 맞출 수 있느냐 없느냐만이 현재는 원거리 딜러의 가장 중요한 덕목인 듯하다. 그래서, 강력한 CC기와 원거리 스킬을 가지고 있는 바루스(포킹), 애쉬, 진이 압도적인 출전 수를 기록하고 있다. 케이틀린이 모습을 드러내는 이유도 초반 라인전이 강하다는 특징이 힘을 얻은 것이다.

평타형 챔피언들이 현재 메타를 버티는 것은 너무 버겁다. 거센 라인전, 갱킹, 다이브를 견디기에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무기는 아직 간지럽기만 한 평타가 거의 전부니까. 그런데 단순히 초, 중반만이 문제일까? 피해를 최소화하고 후반에 이른다면 충분히 활약할 수 있는 걸까? 후반을 위해 설계된 그들의 문제는 '후반'에도 있다.

일단, '후반'이 예전보다 더 후반이 되어버렸다. 변화의 시작은 대규모 원거리 딜러 패치였다. 패치 전까지 평타형 챔피언이 힘을 얻는 시기는 3코어였다. 그런데 지금은 3코어를 갖춰도 영향력이 크다고 보기 어렵다. 3코어부터는 말 그대로 영향력만 행사할 수 있다. 3코어로 때려봤자 마오카이를 죽이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3코어 전까지 영향력이 거의 없다는 단점만큼 큰 보상은 결코 아니다.

▲ 징크스의 승률 그래프

솔로 랭크 기준으로 평타형 챔피언들의 승률이 껑충 뛰어오르는 시간은 대부분 40분부터다. 적어도 4코어는 나와야 영향력이 껑충 뛴다. 하지만, 지금 대회 기준으로 40분이면 대부분 경기가 끝났거나, 이미 돌이키기 어려울 정도로 기울어져 있는 상태다. 4코어 혹은 5코어가 나와봤자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후반에 갖는 위험 요소도 많아졌다. 4, 5코어가 나와도 방어 아이템 하나 섞을 수 없는 현재 메타에 후반만을 바라보는 평타형 챔피언은 위험성이 큰 도박이다. 예전과는 다르게 수호 천사 하나 살 여유가 없다. 모든 아이템을 공격 아이템으로 도배해야 후반에 위용을 뽐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동기조차 없는 평타형 원거리 딜러라면 제약은 더 크게 다가온다.


이제는 변화가 필요

챔피언 출시 기조를 바꾸는 것을 고심해봐야 한다. 가장 최근에 출시된 챔피언인 카밀을 놓고 보자. 팬들은 카밀의 출시를 놓고 개성을 찾아볼 수 없는 만능형 챔피언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기획자는 좋은 의도에서 카밀을 출시했겠지만, 긍정적인 효과를 낳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컨셉이 겹치는 챔피언들을 양산하는 모양새가 됐다. 팬들이 원하는 방향이 아니다.

이미 넘치는 다른 라이너의 출시는 우선순위에서 잠시 미뤄두고, 새로운 원거리 딜러의 지속적인 출시가 필요하다. 마지막 원거리 딜러인 진이 출시된 지도 어느새 1년이 됐다. 팬들의 갈증은 점점 깊어지고 있다. 앞으로 5번은 원거리 딜러만 출시해도 기껏해야 19개가 된다. 다른 라인과 비교해도 여전히 부족한 숫자다.

기존의 평타형 원거리 딜러를 위한 변화도 필요하다. 라인전과 속도의 무게를 덜어내야 할까? 선수들의 높아진 수준과 관객들의 재미 때문에, 라인전과 속도는 쉽사리 변화시킬 수 없는 부분이다. 평타형 원거리 딜러가 지금의 메타에 살아남을 수 있도록 변화를 주는 게 더 좋다. 그들의 후반이 더 빠르게 와야 한다.

탱커가 방어력 아이템을 겹겹이 두르고 있어도 치명타 아이템을 3개 가야 하는 비효율적인 현재 시스템을 재고해야 한다. 3코어로 방어력 관통 아이템 '도미닉 경의 인사'를 가는 것보다, 치명타 아이템을 가서 치명타율을 늘리는 게 더 좋은 선택이라니 앞뒤가 맞지 않다. 값에 비해 효율이 좋은 편도 아니다. 궁여지책인 셈이다.

그렇다면 조금 더 이른 시간에 효율이 나오도록 '도미닉 경의 인사'를 버프하면 될까? 치명타 아이템들의 초반 효율을 조금 높이면 될까? 그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다. 근접 AD 챔피언이 협곡을 삼켜버릴지도 모른다.

이제는 원거리 딜러 전용 아이템 출시가 고려돼야 할 시기다. 계속해서 AD 아이템 밸런스를 조절하는 데 실패한 원인은 서로 다른 역할을 하는 두 직군(근접, 원거리 딜러)이 같은 아이템을 공유해야만 하는 문제가 컸다. 두 직군을 아이템으로 확실히 갈라놓아야 한다. 얼어붙은 망치와 같이 근접과 원거리에 차별점이 있는 아이템이 있지만, 좀 더 확실한 효과 분화를 해줄 수 있는 아이템이 필요하다. 전용 아이템은 큰 부작용 없이 평타형 원거리 딜러의 활용 가능성을 높여줄 수 있다.

새로운 원거리 딜러의 지속적인 출시, 밸런스 조절로 다양한 원거리 딜러가 소환사의 협곡에 등장하기를 바란다. 그로 인해 파생되는 새로운 플레이, 새로운 전략이 스포츠 본연의 맛을 더 해주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