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롤스터(이하 kt)와 삼성 갤럭시(이하 삼성)의 1세트 밴픽이 모두 완료됐다. 3강이라 불리는 팀 간의 첫 대결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긴장감이 흘렀다. 두 팀의 밴픽은 판이하게 달랐다. kt의 밴픽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고, 삼성의 밴픽은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kt는 리그 1위 팀답지 않은 모험수를 강행했고, 삼성은 본래의 색깔대로 정석적인 조합을 꺼내들었기 때문이다.

kt는 탱커가 하나도 없는 4AP 조합이었다. 원거리 딜러에는 직스가 뽑혔다. AD 챔피언이라고는 렝가 단 한 명뿐이었다. 게다가 미드 라인에는 그동안 거의 사용되지 않았던 아지르가 출전했다. 아지르는 몇 개월간 솔로 랭크 승률 최하위를 기록할만큼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챔피언이었다. 반면 삼성은 탑에 탱커인 뽀삐를 두고, 라인 별로 티어가 높은 준수한 픽들을 뽑았다. 밸런스가 잡힌 조합이었다. 언뜻 보기에는 삼성이 딱히 손해 볼 것 없는 밴픽 구도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kt가 삼성에 퍼펙트게임으로 승리를 거뒀다. 킬과 포탑 그 어느 것도 하나 내주지 않았다. 경기를 들여다보면, 이미 밴픽에서부터 승부가 갈리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삼성이 전술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kt는 이 경기에서 이번 시즌 가장 완벽하게 10밴을 구사했다. 어떤 점이 숨겨져있던 것일까? 당시 kt는 부스에서 어떤 시나리오를 짜고 있었을까?





1. 강요된 원거리 딜러 케이틀린, 정글 카직스의 약점


"원딜 다 밴하면 쟤네 할 거 케이틀린밖에 없어. 우리는 렝가 먹고 카직스 주자"

블루 진영이었던 kt는 노골적으로 진과 애쉬라는 원거리 딜러를 밴했다. '르렝카' 밴이 레드 진영에게 강요되는 메타이기에, 이렇게 되면 0티어 바루스가 산다. 하지만, 바루스를 주고 가져올 만한 원거리 딜러는 블루 진영이 모두 밴했다. 삼성은 바루스를 자르고 렝가를 열어줄 수밖에 없었다.

kt는 자연스럽게 렝가를 선픽했다. 이미 예상했다는 듯이 렝가 상대로 좋은 그레이브즈도 밴해뒀다. 삼성은 남은 원거리 딜러 중에 가장 좋다고 평가받는 케이틀린을 뽑았다. 뒤이어 렝가를 열어준 이유인 카직스도 선택했다. 카직스는 티어가 높았고, '하루' 강민승이 좋아하고 잘하는 픽이기도 했다. 렝가와 상대해도 큰 무리는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삼성으로서는 케이틀린과 카직스 외에는 뽑을 만한 픽이 딱히 보이지 않았다. 삼성은 선택권 자체를 박탈당한 듯 케이틀린과 카직스를 사용해야만 했다. 하지만, 케이틀린과 카직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kt는 그 약점을 정확히 노렸다.

"탱커도 없고 강제 이니시에이팅(cc)도 없어. 가둬놓고 멀리서 쏘자"

케이틀린은 진과 애쉬와는 다르게 CC가 매우 빈약하다. 진과 애쉬는 원거리에서 강제로 교전을 열 수 있는 챔피언이지만, 케이틀린 평타에 기반을 둔 캐리형 챔피언이다. 상대가 멀리서 때린다면 맞고만 있어야 한다. 많은 시간이 필요한 케이틀린에게 더 치명적으로 작용한다.

카직스도 비슷한 단점이 있다. 탱커도 아니고 CC가 없어서 카운터 정글과 소규모 교전을 제외하고는 상황을 만들어가기가 어려운 챔피언이다. 그러나, 카직스는 렝가를 상대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픽이 아니라 1:1, 소규모 교전 능력이 많이 퇴색된다. 렝가가 카직스만 제대로 견제해준다면, kt는 대부분 상황에서 특별히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 렝가를 잡은 선수가 '스코어' 고동빈이니 더욱 안심할 수 있었다.

환경이 만들어졌다. kt는 망설임 없이 직스를 뽑았다. 1승 4패라는 저조한 승률로 이미 원거리 딜러로는 사장된 챔피언이었지만, 아이템이 조금만 나오면 우월한 푸쉬력을 바탕으로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다. kt는 자이라까지 꺼내 들면서 라인전과 대치 구도에 힘을 더했고, CC까지 보완했다. 상대를 가둬놓고 계속해서 폭탄을 던질 수 있는 구도였다.

아직 상대의 의중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삼성은 케이틀린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카르마를 3픽으로 선택했다. 탑과 미드는 4, 5픽으로 감춰 놓는 게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카르마도 CC가 부족한 챔피언이었다. 가둬진다면 어려움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삼성은 점점 덫에 빠져들고 있었다.




2. 조합의 완성. 10밴 활용을 통한 럼블 픽과 조커 픽 아지르


"지금 럼블 좋다. 그러면 AP 너무 많은데? 마오카이 밴 고고"

가둬두려면 라인전이 강해야 하고, 쏘려면 원거리 스킬이 필요하다. 탑 챔피언으로는 이런 조합이면 역시 '럼블'과 '제이스'가 딱 맞다. 두 챔피언 모두 원거리 스킬과 라인전에서 뛰어난 장점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제이스는 밴을 당할 확률이 높았다. 라인전 최상위 픽으로 스플릿 운영을 잘하는 kt에게 쥐여주기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kt는 럼블을 사용하기 위한 밑 작업을 시작했다. 럼블을 선택한다면 AP가 너무 많아진다. 그렇게 되면, 하드 이니시에터에다가 대 AP전 최고의 챔피언인 마오카이가 너무 부담스럽다. kt는 고민없이 마오카이를 4번째 밴 카드로 사용했다. 이어서, AD로 갔을 때 라인전이 너무나 강하고 AP로 갔을 때는 뛰어난 이니시에이팅 능력까지 보유한 케넨도 잘라버린다. 완벽한 10밴의 마무리였다.

거짓말처럼 삼성은 제이스를 밴했고 kt는 럼블을 집어갔다. 남은 챔피언 중, kt 조합에 대항할 수 있는 챔피언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삼성은 밸런스가 잡혀있는 뽀삐를 선택했다. 무난한 선택이었지만, 번뜩이는 선택은 아니었다. 뽀삐는 럼블을 상대로 주도권을 가질 수 있는 챔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렇다 할 파괴력 있는 광역기가 없는, 1탱 뽀삐가 혼자 들어가 봐야 이미 뒤편은 불바다가 될 확률이 높았다.

"쟤네 많이 답답하겠지? 이거 풀려면 라이즈다. 아지르로 카운터 치자"

kt가 사이드에서 푸쉬력과 원거리 스킬이 좋은 픽을 고르자 삼성은 답답해진다. 코르키를 뽑아서 포킹으로 맞상대해봤자, 혼자서는 한계가 있다. 좋은 로밍 능력을 보유한 라이즈가 제격인 상황이었다. '크라운' 이민호가 좋아하는 픽이기도 하고, CC가 부족한 삼성의 조합을 보충해줄 수도 있었다.

kt는 라이즈의 대항마로 아지르를 꺼내 들었다. 초, 중반 단계에서 빈약한 딜링 능력으로 외면받은 아지르지만, 사거리가 짧은 라이즈라면 무난히 라인전을 풀어갈 수 있다. 갱킹 상황에서는 궁극기로 이동기가 없는 라이즈를 꺼내오기에도 좋다. 시간이 조금만 흐른다면 대치 구도에서 정점의 모습을 보이는 아지르이기 때문에, kt에게 이보다 좋은 미드 챔피언은 없었다.



결과도 시나리오대로




시나리오대로 kt는 상대를 가둬놓고 원거리 광역 스킬로 불바다를 만들어버렸다. 뽀삐 1탱이었던 삼성은 싸움을 열기 어려웠고, AP 비중이 높다는 상대의 단점을 파고들기도 어려웠다. 삼성의 사거리가 짧은 물 몸 챔피언들은 스킬만 피하다 게임을 끝내야 했다.

kt가 보여준 밴픽은 지금까지 나왔던 10밴 전략 중 가장 최상이 아닌가 싶다. 상대에게 거의 모든 선택을 강요시켰고, 그에 따라 확실한 비책을 숨겨두고 있었다.

선수들의 공도 크다. 탱커가 없는 조합은 실행하기가 쉽지 않다. 일단 라인전을 모두 잘 풀어가야 하고, 운영상에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된다. 조금이라도 빈틈이 있으면 밸런스 잡힌 조합에게 먹히는 게 딜러 조합이다. 하지만, 뛰어난 기량의 kt 선수들은 빈틈없는 경기를 선보였다.

kt 선수들의 넓은 챔피언 폭도 큰 몫을 했다. 특별한 조합에는 당연히 그동안 많이 사용하지 않았던 챔피언이 등장한다. 베테랑 kt 선수들은 높은 숙련도를 보여주며 최상의 전략과 전술을 최고로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