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게임이 확산되면서 게임전시회는 갈수록 하락중이다? 지스타나 E3, 동경게임쇼 등의 현재 모습을 살펴보면 그런 말이 나올 법도 하지만 ...

적어도 이번 독일 GC 2008 는 그 말을 정면으로 부정한 게임전시회였다. 해마다 방문자가 늘어 20만명을 넘었다는 점도 있었지만, 전시회의 전반적인 분위기, 전시회에 참가하는 게이머들의 모습, 그리고 게임사들의 전시 패턴을 보노라면 성공할만 했고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잘될 것 같다는 평을 내릴 수 있다.


  • GC 2008 을 통해 본 유럽의 게임 문화

    가장 먼저 게임을 즐기는, 즉 게임 문화의 차이에 대해 언급할 수 있겠다.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한국 사람들은 대체로 성질이 급하고 여유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예를 들어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하기 전에 달려가서 타는 사람, 커피가 아직 안나왔는데 벌써 컵을 들고 있는 사람들과 같이 말이다.

    그런 모습들을 찾아보기 힘든 유럽의 독일은 애초에 그나라가 가진 문화나 풍습들이 우리와 매우 다르기 때문에 한낱 게임쇼에서도 그런 차이를 느꼈던 것이 아닐까.

    게임컨벤션에서 공개된 게임들중 기대심리가 높은 게임들의 부스엔 발디딜 틈조차 허용되지 않았고, 신작 게임을 시연해보기 위해 길게 선 줄을 장장 3~4시간도 기다릴 정도였지만, 코쟁이에 평균 신장도 우람한 독일 사람들의 모습은 매우 여유로워 보였다.

    "게임 30분 하려고 3~4시간을 기다리다니 짜증도 안나나..." 실제로 기자가 몇몇 대작 게임을 시연해 보기 위해 줄을 기다리면서 외친 비명이다.

    게임을 할 수 있는 공간 역시 잘 구성되어 있었다. 선 채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부스들도 여럿 있었지만, 거의 눕다시피 한 상태에서 느긋하고 여유롭게 게임을 즐기고 또 그것을 바라볼 수 있는 시설과 공간의 배치가 돋보였다.

    타인의 시선보다는 등을 기대고 게임을 할 수 있게 마련된 자리에서 열심히 플레이하는 모습은 어느 부스에서나 마찬가지였고, 구경에 머물지 않고 직접 참가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배려되어 있었다. 보고 구경하고 선물받고 사진찍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직접 참가하고 직접 체험하면서 같이 즐거워하는 것이 모든 부스에서의 공통적인 모습이었다.





    [ 어느 부스에서나 일반적인 모습, 게임을 즐긴다는 GC 의 모토가 잘 살아 있다 ]


    그러나 같은 점도 있으니, 공짜 경품을 좋아한다는 것은 어디나 공통인 모양이다. 코나미, EA, ATARI 등 굵직한 게임들을 GC에 내놓은 개발사들간의 이벤트 상품 마케팅 전략은 매우 활발하고 활기가 넘쳤다. 줄서서 받는게 아니라 사회자가 모인 관람객들에게 무작위로 뿌리는 방식이었지만, 호응도는 매우 높았다.

    개별적으로 설치된 무대위에서 특별히 초청된 사회자들이 "티셔츠!" 를 외치면 주변은 모두 아수라장이 된다. 티셔츠를 받기 위해 유럽인 특유의 긴 팔을 이용하여 하늘을 찌르고 흔들면서 몸부림을 치는 그들의 모습은 어느 나라의 젊은 친구라도 좋아하지 않을까. 독일에서도 예외는 없다.

    게임 컨벤션이 열린 독일은 PC 온라인 부분에서 유럽 최고의 시장력을 가지고 있는 나라다. 여전히 MMO의 강세는 놀라울 정도로 확대되고 있으며 (WoW나 워해머) 인터넷 상황도 좋아지고 있어 PC 온라인 게임 이용자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이번 게임쇼에서 공개된 게임들을 크게 2가지로 나누자면 PC 게임과 비디오 콘솔 게임이다. 비디오 게임 상황은 이전에 비해 많은 변화가 있었다.

    2008년 초, 리서치 회사 Nielsen 과 Interactive Software Federation of Europe 이 공동으로 발표한 'Video Gamers in Europe – 2008' 이라는 유럽 게임 시장 리포트 자료를 보면, 2007 년까지는 비디오 게임 부분에서 단연 PS2가 독보적인 우위를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유럽 게임 시장은 가족 단위와 친구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플랫폼인 Wii 의 강세가 예사롭지 않다. 실제로 이번 GC에서는 함께 즐기는 게임 문화를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었고 특별한 장비 (하드웨어)가 필요한 게임들이 인기가 많았다.

    한국의 지스타에서도 자녀를 동반한 부부들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긴 하지만, 독일에서는 어린이들이 부모님들과 함께 온 가족단위의 관람객을 훨씬 더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자녀세대나 젊은 층만 게임을 알고 기성층은 부정적인 시각이 우세한 한국과는 달리, 가족이 함께 즐기는 놀이 문화로서의 게임은 유럽이 더욱 정착되어 있었다.

    지난 미국에서 열렸던 E3 게임쇼에서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 대작 기어즈 오브 워2를 알고 있을 것이다. 콘솔 매니아라면 모르는 유저가 없을 정도로 외국에서도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기어즈 오브 워 시리즈는 이번 독일에서 열린 GC에서도 기대를 모았지만 독일이란 나라는 게임 심의에서 성인 게임으로 분류된 게임들은 애초에 발매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볼 수 없었다.

    발매가 불가능한 게임들중 일부는 부스별로 소개가 되었지만, 성인등급으로 판정된 게임들은 성인들만 입장이 가능하도록 천막으로 가려진 채 비공개로 진행되기도 했다.



    [ 쉽게 만날 수 있었던 가족단위 관람객 ]


    그러나 가족단위로 즐기고 참가하고 체험하는 이런 게이머 문화와 유명 게임사들의 다량 출품이라는 충실한 컨텐츠만이 GC 의 성공요인은 아니다. 그런 문화가 가능하도록 다방면의 준비가 되어 있는 GC 2008 이기도 했고, 한국의 지스타가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꼭 참고하고 준비해야 할 사항들이기도 했다.


  • 개최 장소가 전시회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아니다

    전시회가 열린 라이프찌히는 구 동독지역으로 서독지역에 비해 아직까지 덜 발전된 곳이다. 독일은 인구가 상당히 분산된 편이라 3번째로 큰 도시가 인구 백만을 조금 상회하는 정도이고, 라이프찌히는 수십만에 불과하다. 숙박 시설이 충분히 갖추어져 있지도 않고 또 전시회장 역시 도심과는 좀 떨어진 벌판에 있다.

    지스타의 경우 항상 거리 문제가 단골 메뉴로 지적되는데, 지스타가 열리는 일산의 KINTEX 는 지하철과 도보 15분 이내 거리로, 라이프찌히 전시장에 비하면 오히려 대중교통이 더 잘 갖추어져 있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 게이머들의 참가는 매우 활발했다. 자동차의 나라답게 차를 이용한 참가가 대다수이고 주차장 역시 아주 널직하게 준비되어 있긴 하지만, 몇시간 이상 걸리는 먼 도시에서 단체로 타고 온 버스도 줄줄이 서 있었고 3박 4일을 위한 캠핑카 수십대도 곳곳에 주차해 있었다. 심지어 주차장 한켠에는 텐트를 치고 있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기자 역시 KINTEX 라는 장소가 지스타의 성공에 하나의 장애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이번 독일 GC 2008 을 보고 온 입장에서 장소 문제는 더 이상 논란거리가 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중요한 것은 전시회에서 내어놓는 컨텐츠와 그 컨텐츠들을 즐기는 게이머들이지, KINTEX 정도의 위치라면 장소는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 라이프찌히 메세 주차장 곳곳에 도열해 있는 캠핑카들, 심지어 텐트도 목격했다 ]


    (한국에 비해 상당히 싼 편이라 할 수 있는 독일 부동산 가격도 감안해야 하겠지만) 전시장 공간 자체의 크기도 상당했다. 2007년 지스타의 경우, KINTEX 2~4 홀을 전시장으로 활용하고 5홀을 프레스센터 및 비즈니스 센터로 활용했었는데, 약간의 과장을 보탠다면 전시장으로 쓰인 2~4 홀의 크기를 합한 규모가 GC 2008 의 홀 하나 크기에 해당할 정도이다.

    그런 규모의 홀이 총 4개가 전시장으로 쓰이고 있었고, 역시 그만한 크기의 홀 하나가 비즈니스 센터와 프레스 센터 등으로 이용되어 총 5개의 홀을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중간에 널직한 통로까지 마련되어 있었고, 그 통로에도 여러 개의 부스가 게이머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 여기는 단지 통로일 뿐 ... (어퍼덱의 WoW TCG 부스) ]



  • 유명 게임사들의 대거 참여, 국제 전시회로 거듭나다

    GC 2008 에서는 세계 유수의 게임사들이 대거 참가했다. 국내의 대기업들조차 참가를 꺼리고, 콘솔 시장이 협소하다는 이유로 해외 게임사들도 대부분 사양해서 해마다 게임사 유치에 애를 먹는 지스타와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온라인 게임 시장이 대부분이라는 특징의 한국과 아직까지 PC 와 콘솔이 다수를 점하고 있는 독일, 유럽 시장의 특징 차이도 하나의 원인으로 지목될 수는 있다. 그러나, 한국 지스타에 단 한번도 참가하지 않았던 블리자드는 물론이고, EA, 닌텐도, 코나미, 세가, Ubi 소프트, 소니, 캡콤, MS, 아타리, 스퀘어에닉스 등 세계 게임계의 대기업들은 거진 참가했다. 그만큼 가지고 나온 게임들이 많아 GC를 찾은 게이머들을 심심하지 않게 만들고 있었다.

    전시회의 메리트가 없으니 참가가 힘들고, 참가업체가 적으니 전시회의 메리트가 없다는 닭과 달걀의 악순환구조에서, GC 는 그 반대의 선순환 구조를 이루고 있었다.

    지스타를 준비하는 관계자들은, 두개 정도의 국내 대형 게임사 외에는 아직까지 참가가 확정되지 않았고 해외 게임사들의 참가 역시 지속적으로 접촉을 하는 중이라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한다. 오히려 같이 둘러보는 기자에게 GC 의 이런 모습을 잘 알려서 국내 게임사들 및 해외 게임사들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게끔 도와달라고 할 정도.



    [ 사람이 엄청 몰린 WoW 부스, 한시간 반을 버티다 결국 gg 치고 다른 부스 갔다 ... ]



  • 도시 차원의 지원

    라이프찌히의 GC 는 단지 GC 라는 행사 하나가 아니다. 라이프찌히라는 도시에서 상당한 공을 들이는 행사로, 도시 차원에서의 다양한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게임쇼를 맞아 많은 방문객들이 찾는 라이프치히 중앙역에는 게임 홍보를 위한 여러 부스가 설치되어 있기도 했고, 도시 곳곳에는 GC 홍보물과 플랭카드들이 걸려 있었다. 또한 라이프찌히 시내를 운행하는 전차는, GC 관계자, 미디어, 전시회에 참가한 게임사 관계자들이라면 행사 기간 내내 무료료 이용이 가능하기도 했다.

    GC 를 같이 둘러본 한국게임산업진흥원과 게임산업협회 관계자들 역시 라이프찌히시 차원의 이런 지원을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KINTEX 에서 지스타를 할 때 고양시에서 이런 지원을 해주고 분위기를 살려주기를 바라는 눈치였지만, 올해 지스타에서 라이프찌히와 같은 모습을 보기란 그리 쉽지 않은 듯 하다.



    [ 라이프찌히 시내 여러곳에 걸린 GC 플랭카드들 ]



    [ 라이프찌히 시내를 운행하는 전차, 관계자라면 무료 탑승 ]



  • 부스걸이 아닌, 말 그대로의 진짜 도우미

    한때 지스타는 걸스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레이싱 모델 등 사람들의 시선을 자극하고 끌어모을 수 있는 모델들을 내세운 부스들이 많았다. 해가 갈수록 이런 모습은 조금씩 줄어들었지만, 아직까지 한국에서 게임 관련 전시회를 한다고 했을 때는 레이싱 모델 등 인기 모델들이 총 출동하여 저마다의 몸매를 뽐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GC 에서는 이런 모델들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카지노 게임을 홍보하는 부스 몇군데에서 비키니 차림의 모델이 홍보를 하기도 했지만, 그 외의 모든 게임 부스는 게이머들의 게임 플레이와 진행을 도와주는 말 그대로의 도우미만 있었고, 캐릭터의 복장을 착용한 코스프레 모델들만 있을 뿐이었다. 익숙하게 보아오던 섹시한 부스걸의 존재를 찾기는 어려웠다.

    섹시한 모델들의 존재는 게임쇼 성공과 별반 관련 없다는 것을 보여준 GC 이기도 했다. 덕분에 게임전시회가 있을 때마다 국내 대다수 웹진에 고정처럼 올라오던 부스걸 미모 대결 시리즈 기사를 이번 GC 기사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 엔씨소프트의 아이온 마족과 천족 모델 ]



    [ 플로렌시아 온라인 모델, 이런 모델들과 도우미만 있었을 뿐 ... ]


    4회를 맞는 2008 년 지스타는 역시 일산의 KINTEX 에서 11월 13일부터 16일까지 4일간 개최된다. 두달 반 뒤에 열릴 지스타에서는 과연 무엇을 보고, 또 어떤 평가를 내릴 수 있을까 ?

    칭찬으로 도배된 이번 GC 2008 마무리 기사처럼 한국 게임쇼의 새로운 전망을 보았다는, 아니 욕심을 조금 낮추어 그처럼 될 수 있는 전환점을 만들기에는 충분했다는 평가를 내리고는 싶다. 그리고 그런 컨텐츠가 체계적으로 잘 갖추어진 전시회의 모습을 취재하고 싶은 것이 기자로서의 바람이다.


    Inven LuPin - 서명종 기자(lupin@inven.co.kr)
    Inven Beno - 홍성호 기자(beno@inv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