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정상급 게임인들이 한데 모이는 초대형 컨퍼런스 행사 'GDC 2017'도 어느덧 개막 3일 차를 돌파했습니다. 인벤에서는 현지에 특파팀을 보내 GDC 2017의 이모저모를 기사로 전달하고 있는데요. 올해 GDC는 조금 특별합니다.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VRDC(VR Developer Conference)가 어마어마하게 커진 것이죠.

강연 수만 무려 50. 작년보다 두 배로 커졌습니다. 그리고 이런 흐름을 의식하기라도 한 걸까요? 세계 각지의 VR 관련 기업들과 국내 기업들이 GDC 현장을 '데뷔 무대'로서 활용하고 있습니다. 정상급 관계자들이 모이는 자리이니만큼, 여러 과정을 거치지 않고 한 방에 자신들의 작품을 어필할 수 있기 때문이죠.

▲ 취재를 위해 그들이 왔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아직 며칠이 더 남은 GDC 2017임에도 벌써 다양한 VR 소식들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한 번쯤 정리의 자리가 필요할 정도로요. 그래서 정리해 보았습니다. GDC 2017에서 들려온 VR 이슈들.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밸브', 새로운 '아이트래킹' 기술 발표


'스팀'으로 유명한 북미의 개발사 '밸브'는 일찍부터 VR에 관한 연구를 이어왔습니다. 2015년 GDC 당시 '스팀 VR'을 발표한 이후 꾸준히 VR에 관련된 기술들을 선보여왔죠. 그리고 그 정수들은 HTC와 협력해 개발한 HMD인 'HTC VIVE'에 꾸준히 녹아들었습니다.

▲ 밸브와 HTC의 합작품 'HTC VIVE'

그리고 GDC 2017에서, 밸브는 '아이 트래킹' 기능을 HTC VIVE의 새 모델에 탑재할 거라고 밝혔습니다. 그럼 이제 '아이 트래킹' 기술이 뭔지 한번 알아봅시다.

한국어로 '시선 추적'. 말 그대로 사용자가 어디를 보고 있는지 인식하는 기술입니다. 물론 기존에도 사용자가 바라보는 지점을 추적하고 포인트화시키는 기술이야 존재했습니다. HMD 내부의 자이로스코프와 동작 인식 센서를 이용했죠. 그렇기에 시선을 통해 포인팅을 하기 위해서는 안구가 아닌 '고개'를 돌려야만 했습니다. 사실상 내가 바라보는 방향이 아닌, HMD가 향하는 방향이었죠.

하지만 '아이 트래킹'은 이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기술입니다. 안구의 움직임을 잡아내기 때문에 굳이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되고, 눈만 움직여 주면 되죠. 그래서 HMD를 개발한 업체들은 전부터 이 기술에 큰 흥미를 보이곤 했습니다. 'Fove VR'은 유사한 기능인 'Foveated Rendering'에 11만 달러를 투자했고, '오큘러스'는 최근 이 기술을 연구하던 덴마크의 'Eye Tribe'를 인수했죠.

▲ 아이 트래킹에 열정을 보였던 'Fove VR'

이 소식은 단순히 '새로운 기술 도입'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VIVE 측은 이 소식에 곁들여 새로운 모델의 HMD를 발표한다고 말했고, '오큘러스'도 기술 습득 이후 잠잠하지만 많은 이들이 새로운 모델의 HMD를 조만간 공개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아직 정식 발표는 없었지만, 조만간 소식을 알릴 HMD들도 존재하는 상황이고요.

누구도 승리를 거두지 못한 1세대 경쟁을 뒤로하고 2세대 HMD 경쟁의 신호탄이 쏘아 올려진 격입니다. 그 말은 곧, 앞으로 더 흥미있는 소식들이 많을 것이라는 뜻이겠죠.



LG, 밸브와 파트너쉽 체결, 새로운 고성능 VR HMD 공개


어쩌다 보니 또 밸브 관련 소식이군요. 내심 궁금했습니다. '삼성'이 오큘러스와 함께 '기어 VR'을 개발하고 성과를 거두는 동안, 당연히 VR이라는 먹거리에 흥미를 보일 것 같았던 'LG'는 다소 조용했거든요. 물론 작년에 출시한 스마트폰 'G5'의 프렌즈 액세서리로 'LG 360 VR'을 공개하긴 했지만, 사실 큰 인상을 남기진 못했습니다. 저 또한 'G5'유저기 때문에 알고 있습니다(ㅜㅜ).

▲ 작년에 선보인 LG 360 VR

하지만 LG는 충분한 잠재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뭐니뭐니해도 '디스플레이'라는 분야에서 LG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기업이고, HMD에는 뛰어난 디스플레이 기술이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GDC 2017. 기대하던 소식이 난데없이 알려졌습니다. 일단은 'LG's Steam VR'로 불리고 있는 이 물건. 스펙부터 살펴보지요.

카탈로그 스펙상의 성능은 훌륭합니다. 안구당 하나씩 두 개의 패널로 이뤄진 디스플레이는 각 안구당 1440 x 1280의 해상도를 지원해 1080 x 1200의 'VIVE'보다 더 높은 해상도를 보여줍니다. 당연히 패널에는 엘지의 OLED 기술이 쓰였지요. 주사율도 낮지 않습니다. 90Hz의 주사율은 일반적인 최고급 HMD에서 쓰이는 수치와 같습니다. FOV(Field of View: 시야각) 또한 110도까지 지원하기 때문에 딱 적당한 수치라 할 수 있지요.

말 그대로 '하이엔드'급 HMD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직접 써 봐야 더 자세히 알겠지만, 저도 아직 체험은 해본 바가 없으니 상세한 부분에 대해서는 말씀드리기가 힘들군요.

▲ 이번에 공개된 프로토타입 모델은 이렇습니다(사진 출처: UploadVR)

궁금한건 '왜 이제야?'입니다. 현장에서 공개된 LG HMD의 모습은 말 그대로 '완전판'입니다. 스펙상으로 현재 등장한 모든 VR 콘텐츠를 소화할 수 있고, 'VIVE'의 그것과 흡사한 완성된 형태의 컨트롤러도 이미 존재합니다. 'VIVE'와 '오큘러스' 모두 현재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개발 상황을 공개하고, 새로운 기술이 도입될 때마다 알리는 등 인지도를 쌓아 왔습니다. LG HMD는 그야말로 난데없이 나타난 강자인 거죠.

뭐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 분야에서 국내 최대 맞수라 부를만한 '삼성'이 모바일 VR에 만족하는 사이 개발을 마쳐 기습을 가하는 걸 수도 있고요. 하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좀 미리 알려졌다면 콘텐츠 개발사들도 흥미를 보였을 테고, 출시가 이뤄지는 시점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마련할 수 있었을 테니 말이죠. 결과적으로는 좋은 소식입니다만, LG의 대외 정책은 가끔 신기한 구석이 있습니다. 이 경우에도 마찬가지네요.


오큘러스 리프트, 가격 대폭 인하... '위기감' 느꼈나?


한편, 새로운 기술과는 조금 다른 소식도 있습니다. 그간 소비자와 소통 없이 폐쇄적 정책으로 일관해온 '오큘러스'가 자사 제품들의 가격을 대폭 인하하기로 한 것이죠. 당초 '오큘러스 리프트'는 799달러라는 거금을 들여야 장만할 수 있었습니다. 한화로 90만 원이 넘는 돈. 여기에 관세랑 배송료 등이 달라붙다 보면 사실 100만 원은 있어야 구할 수 있었죠. 설상가상으로 오큘러스는 정식 발매도 이뤄지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 브랜든 아이리브(Brendan Iribe) 오큘러스 공동 창업자

경쟁사인 'HTC'의 'VIVE'보다는 다소 싼 가격이었지만, 애시당초 이 정도 가격대가 형성되는 판국에 크게 차이 나지 않는 소비자 가격은 큰 의미가 없었습니다. 어차피 VR을 구매하기로 마음먹은 이들이라면 몇백만 원의 돈 정도는 지출할 각오를 한 이들이었기 때문에 '룸스케일'을 통해 제대로 VR 느낌을 내주는데다 더 구하기 쉬운 'VIVE'를 선택했습니다.

물론 '오큘러스'도 룸스케일을 지원하는 기기이지만, 그리 널리 알려진 사항은 아닙니다. 애초에 룸스케일을 무기로 들고 나온 VIVE에 비해 오큘러스는 "룸스케일은 개인 단위로 이용하기엔 불편하다."라면서 '앉아서 즐기는 VR'을 추구했거든요. 하지만 간과한 점이 있었습니다. 어차피 저 돈을 쓸 정도의 사람들이라면, 공간의 제약 따윈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계층이라는 것이었죠.

결국 오큘러스는 2016년 한 해 동안 'VIVE'에 크게 밀렸고, 겨우 체면만 건진 정도의 판매고를 올렸습니다. 가격을 내리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 하지만 오큘러스의 앞날은 다소 어두운 편입니다. '저렴한 가격'을 표방하던 초기 공약과 다르게 HMD는 전혀 저렴하지 않았기에 게이머층의 빈축을 샀고, '제니맥스'는 기술 무단 사용을 언급하며 법원에 오큘러스의 판매 중지 신청서를 제출한 상황이죠.


결국 GDC 2017에서, 오큘러스 측은 '오큘러스 리프트'와 컨트롤러인 '오큘러스 터치'를 합쳐 598달러의 가격으로 판매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순식간에 200달러가 내려간 셈이죠. 한 때는 업계를 선도하는 이미지를 보여주며 부상했지만, 위기를 맞은 오큘러스. 뒤늦게나마 가격 인하를 통해 경쟁력을 갖추려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죠.


뜻밖의 엔씨소프트?!, 'B&S 테이블 아레나' 발표


마지막 소식은 더 의외입니다. 얼마 전, 위클리 VR 뉴스를 통해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VR 콘텐츠를 공개하고 있다고 말하며 '좋은 소식'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중견 기업들이 VR 콘텐츠에 도전하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거든요.

그리고 '엔씨소프트'가 나섰습니다. 그간 조용히 진행하던 프로젝트를 GDC2017에서 터뜨린 것이죠. 물론 아직 '첫 단추'인 만큼, 눈에 띌 정도로 도전적인 작품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래야 할 필요는 없죠. 덩치가 클수록 한 걸음 한 걸음을 조심히 걷는 것이 낫거든요.


엔씨소프트가 발표한 '블레이드앤소울 테이블 아레나'는 흔히 볼 수 있는 방식의 테이블 탑 게임입니다. 물론 게임 내부로 파고들어 가면 이 작품만의 독창적인 매력이 있겠지만, 일단 겉으로 보기엔 그렇단 말이죠. 이런 '테이블 탑'류 VR 게임의 장점은 '안전하다'라는 겁니다. 급격한 시선 이동도 없고, 실제로 테이블에 앉아서 게임을 하듯 즐기면 되기 때문에 안전 문제가 불거질 일도 없죠. 첫 발걸음으로는 적합한 움직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로서 국내의 대기업들도 VR 콘텐츠를 눈여겨보고 있다는 것이 입증되었습니다. 사실 전부터 그러리라 미루어 짐작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미공개 프로젝트에 관한 건은 알 수가 없으니 심증만 있는 상태였거든요.


참 인상 깊었던 건 현장에서 진행된 개발진과의 인터뷰 도중에 들은 말이었습니다. "게임을 개발해도 아직 즐길 사용자가 많지 않을 것 같다"는 기자의 질문에 개발팀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앞으로도 VR 시장은 계속 커질 것이고, 저희 게임이 시장과 함께 성장하며 더욱 확대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런 말을 듣고 나면 VR 시장의 미래가 더욱 기대될 수밖에 없습니다.



GDC 2017은 아직 진행 중이고, 더 많은 소식이 알려질 겁니다. 일단 오늘은, 지금까지 공개된 이슈 중 흥미롭거나 놀라운 소식들을 정리해 둔 것뿐이죠. 앞으로 이어질 GDC2017에서의 VR 소식은 다음 주 '위클리 VR 뉴스'를 통해 한 번 더 정리할 예정입니다. 제가 미처 다루지 못한 소식은 그때 확인하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