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게임은 그저 게임이었다. 단순히 단어의 이야기가 아니다. 20년 전, '게임'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은 단 하나였다. 세련되었지만 중독적인 놀이. 기성세대는 당연히 그 이상의 정의를 내리지 않았고, 젊은이들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넌 요즘 뭘 하고 노니?"라는 질문에 요즘이라면 구체적인 게임 이름을 말할 수 있겠지만, 그때는 그냥 '게임'이라고 말하는 정도였고, 질문한 이도 그렇구나 하면서 넘어갔다.

하지만 시장이 커지고, 개발 시장도 덩달아 커지면서 게임은 다양한 '레이어'를 보여주게 되었다. 단순히 몇 개의 단어와 수사만으로 설명하기에 게임은 너무 어려운 개념이 됐다. 그쯤부터는 게임의 '이름'이 중요해졌다. 전 같으면 그냥 '게임 한다'라고 퉁 쳤을 대화가 '스타 한다', '서든 한다' 정도로 구분되는 시대가 됐다. 그리고 동시에, 게임 하나하나가 특유의 '향기'를 갖게 되었다. 게임 이름을 들으면 딱 생각나는 것들이 생긴 거다.

게임 좀 했다 하는 이들이라면 '헬게이트'라는 단어에서 아마 많은 것들이 생각날 것이다. 빌 로퍼, 최고의 기대작, 그리고 허망한 몰락까지. '헬게이트: 런던'은 짧은 기간 동안 굉장한 인상을 남겼다. 그리고 '밈'으로 거듭났다.

이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가장 힘들었던 건 한빛소프트였을 거다. 불과 10년 전, 한빛소프트는 국내에서 가장 잘 나가던 게임사 중 하나였으니 말이다. 그러다 보니 '헬게이트 VR'의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한빛소프트가 가장 내세웠던 IP지만, 동시에 휘청이게 한 IP가 바로 헬게이트다. 당연히 다시 쓰이지 않으리라 예상했기 때문에 더 놀랐다.

궁금한 점이 너무나 많았기에 바로 연락을 시도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터뷰 자리를 만들 수 있었다. 물론 '헬게이트 VR'은 아직 개발 중인 작품인데다 공개할 수 없는 부분도 많으므로 자세한 정보를 얻긴 힘들었다. 하지만 한빛소프트가 어떻게 다시 이런 도전을 할 수 있었는지는 꼭 알고 싶었다. 구로역 근처 한빛소프트 건물 1층에 마련된 카페에서, 한빛소프트의 정진호 부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 한빛소프트 정진호 부장




Q. 만나서 반갑다. VR 콘텐츠 개발은 아마 이번이 처음일 텐데, 그 전에는 어떤 프로젝트를 해왔었나?

다양한 게임 개발에 참여했었다. 아직 서비스 중인 온라인게임 '위드'나 '에이카'의 개발 등에 참여했었고, '천지를 베다' 개발에도 참여했었다. 이후 몇몇 게임을 거쳤고, 지금은 VR과 AR 프로젝트에 집중하고 있다.


Q. '헬게이트 VR'을 개발하게 된 계기가 따로 있는 건가?

'천지를 베다'의 개발이 끝난 후, 다음 프로젝트를 시작할 즈음이었다. 원래 '헬게이트 VR'도 따로 팀이 꾸려져 시동이 걸린 상황이었는데, 사내에서는 이왕 만들 거면 제대로 팀을 개편해 퀄리티를 올리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래서 나 또한 헬게이트 VR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Q. 사실 지금도 VR 시장이 어떻게 풀릴 거라는 정답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당시는 더 막막하지 않았나?

물론이다. 하지만 언젠가 VR과 AR이 의미 있는 시장을 구축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 시점이 언제가 될지 확신을 내리지 못했을 뿐이다. 생각해보면 그리 어렵게 내린 결론은 아니었다. 모바일 게임만 해도 처음에는 다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이제는 코어 게임들이 난무하지 않나.

그 후, 실제로 개발 과정에 들어가니 확신이 더 강해졌다. 이건 진짜 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해야 하나. 이 게임을 통해 내가 어떤 것들을 표현할 수 있을지 느껴졌다. 조금 아쉽다 느낀 건 타이밍이었다. 아무래도 그 당시엔 VR에 관련된 어떤 이슈도 없이 그저 VR이라는 장비가 있는 정도였기 때문에 조금 시기상조가 아닌가 싶었다. 그마저도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딱 좋은 시기가 아닌가 싶다.


Q. 개발 과정에서 이전에 개발하던 작품에 비해 힘든 점은 없었나?

생각보다 제약이 꽤 심했다. VR이라면 당연히 그 공간 안에서 플레이어가 자유롭게 움직인다. 다른 게임이라면 카메라가 갈 수 없는 공간도 들여다보는가 하면, 당연히 신경 쓰지 않을 거로 생각한 부분도 살펴보는 플레이어가 생길 수밖에 없다. 디테일을 신경 써야 하는 거다.

또한, 같은 맥락에서 다른 게임이었으면 그냥 연출이나 스크립트로 때우고 넘어갈 부분을 VR에서는 일일이 하나씩 다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냥 연출로 때워버리면 십중팔구 멀미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 미처 놓치기 쉬운 부분들도 공을 들여야 한다.

'이동 방식'에 대한 고민도 생겼다. VR에서 가장 기초적인 문제가 바로 '이동'에 대한 문제다. 룸스케일 내에서의 움직임은 문제가 없지만 '장거리 이동'의 경우 필연적으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데, 일반적으로 패드나 컨트롤러를 사용해 이동할 경우 멀미가 난다. 시각과 신체의 움직임이 틀어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방법이 '로보 리콜'이나 '버짓 컷'같은 작품에서 활용되는 '워프'식 이동이다. 순간 이동 시스템을 통해 이동에 대한 문제를 아예 날려버리는 건데, 이거도 생각해보긴 했다. 근데 개발자로서의 욕심이 꿈틀대더라.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동할 방법을 고민 중이다.

그 외에 다른 점이라면 역시 그래픽 작업 문제를 꼽고 싶다. 그래픽 작업 방법도 예전과는 많이 다르고, 그러면서도 자연스러움을 포기하면 안 된다. 예전에는 그냥 '게임이니까'하고 넘어갔을 부분도 이제는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동시에 90FPS의 고정 프레임을 구현해야 하니 최적화 과정도 쉽지 않았다.


Q. 개발 파이프라인 자체도 다른 게임들과는 꽤 다르지 않나?

맞다. 테스트가 상당히 많이 필요하다. 개발 과정에서는 당연히 '될 거다'라고 생각했던 부분들도 실기해 보면 어지러움을 유발하거나 플레이할 수 없었던 적이 많았다. 결국, 지속적인 테스트를 할 수밖에 없었다.

'컨트롤러'도 뜻밖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부분이었다. 패드만 가지고 게임을 즐기면 전혀 VR 느낌이 살지 않기 때문에 컨트롤러도 지원해야 하는데 오큘러스의 경우 '터치'가 꽤 늦게 등장했다. 한편 PS VR은 정책상 모든 게임이 '듀얼쇼크4' 게임 패드만으로 플레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PS 무브'가 아닌 일반 패드에 맞는 시스템도 만들어야 했다.


Q. 일단 '슈팅'을 기반으로 한 게임일 것 같은데, VR 슈팅 게임은 현재 꽤 많이 등장한 상태다. 헬게이트 VR은 어떤 점이 다른가?

슈팅을 기반으로 하지만 게임 장르는 VR 슈팅이 아닌 그냥 'VR'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개발 과정에서 우리가 넣고 싶은 체감형 요소는 전부 다 집어넣었다. 어트랙션 라이딩, 슈팅을 포함해 VR에서만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들이 모두 들어 있다.

▲ 콘텐츠는 다양하게 구성될 예정


Q. 개발하는 과정은 충분히 즐거운가? 아무래도 전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 같다.

VR 개발은 상당히 재미있는 과정이다. 과거의 개발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고 해야 하나? 과거 온라인 게임을 만들 때는 엔진부터 다 하나하나 파서 만들어야 했는데, 이젠 그런 요소들이 모두 베이스로 깔렸으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퀄리티를 올려볼 수 있다.

하지만 완전 AAA급 콘솔 게임처럼 만들기는 힘들다 보니 그 부분은 약간 아쉽다. 앞서 말했듯 90FPS의 프레임 레이트를 유지하려면 퀄리티를 일정 부분 희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PC 게임을 만든다고 치면 60FPS를 지원하는 게임일 경우 중간마다 프레임이 30FPS까지 떨어져도 불편할 뿐 게임은 할 수 있다. 하지만 VR 게임에서는 프레임 하락이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라이팅이나 그림자 표현도 조금 아쉬울 수밖에. 하지만 이런 경험들이 다 노하우가 될 거로 생각한다.


Q. 현 단계에서는 멀미나 어지럼증을 많이 해결한 상황인가?

어떤 부분이냐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차량을 타고 이동하는 장면은 멀미가 거의 없다. 다른 부분은 차차 개선 중에 있다. 조금 다른 생각도 해 봤다. 처음에는 우리도 자체적으로 테스트하면서 꽤 심한 어지럼증에 시달렸다. 그리고 개선을 통해 현재는 그리 심하게 느껴지지 않는 단계가 되었다.

여기서 생각한 게, 시스템이나 디자인상으로 우리가 게임을 개선하면서 나아진 점도 있지만, 사람 자체가 VR이라는 환경에 적응한다는 것이었다. '헬게이트 VR'이 출시될 때면 이미 VR에 대해 유저들이 꽤 익숙해진 상황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고, 아마 그렇다면 어지럼증이나 멀미는 크게 없으리라 본다. 물론 여기에만 기댈 수는 없으므로 게임 디자인도 초반에는 다소 멀미가 덜한 정적인 콘텐츠로 구성했다. 게임이 진행될수록 더 역동적인 장면들로 이어지도록 말이다.

▲ 차량 씬은 멀미가 해결된 상황

단순한 순간이동보다는 직접 움직임을 구현하는 것이 더 나을 거라 생각하면서 개발 중인데, 이 생각 자체는 틀리지 않은 것 같다. 그냥 서 있을 때는 1인칭으로, 이동 시엔 3인칭으로 하는 방법도 생각했는데 이건 또 아닌 것 같고...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다른 작품들도 슬슬 직접 이동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볼 때 우리의 생각이 틀리진 않은 것 같다.


Q. 그럼 출시 시기는 대략 언제쯤으로 예상하나?

아마 올해 말쯤이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확정된 상황은 아니므로 언제든 바뀔 수도 있다.


Q. 현재 프로젝트 팀 규모는 어느 정도 되는 건가?

약 50명 정도 된다. 지금은 이 프로젝트가 한빛소프트의 메인 프로젝트다. 이미 다른 프로젝트는 나름대로 준비가 된 상황이기 때문에 지금은 개발력을 온전히 헬게이트 VR에 몰아주고 있다.


Q. 사실 '헬게이트'라는 IP자체에서 많이 놀랐다. 한빛소프트에게는 꽤 큰 의미의 IP 아닌가?

'애증'이 정확할 것 같다. 그래도 소재 자체는 나쁘지 않기 때문에 VR로 개발하는 것이 굉장히 이상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사내에서도 IP를 다시 회복시켜보려는 의지가 있다. 사실은 나도 더는 헬게이트를 소재로 뭔가 하진 않을 줄 알았는데 그 의지를 확인하고 놀랐다.

▲ 사실 다른건 둘째치고 일단 '헬게이트'라서 놀랐다.


Q. 국내 개발자가 보기에 현재 국내 VR 시장의 상황은 어떤 것 같나?

아마 VR을 개발하는 많은 개발사가 국내 시장을 염두에 두고 만들고 있지는 않을 것 같다. 기기 보급 대수도 그렇고, 세계 전체를 통틀어야 의미 있는 VR 시장이 형성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 세계를 대상으로 삼고 게임을 개발했고, 모바일을 제외한 모든 플랫폼에서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개발하고 있다. HMD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말이다.

결국 아직은 국내 시장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 물론 어디까지나 '현시점'에서 바라보고 내린 결론이기 때문에 나중에는 분명 다를 것으로 본다. 아마 다음 세대 HMD가 메인이 되는 시점 정도가 아닐까? 지금 VR 보급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라 비싼 가격이다. 2세대 모델이 나올 때쯤이면 가격대도 안정될 것 같다.


Q. 헬게이트 VR 출시 이후의 계획은 어떻게 되는가? 또 다른 VR 콘텐츠를 개발할 생각이 있나?

아마 '헬게이트 VR'의 콘텐츠를 계속 늘려나갈 듯 싶다. 에피소드 형태처럼 스토리가 이어질 수 있도록 말이다. VR 게임은 일반적인 PC나 콘솔 게임보다 플레이 타임이 다소 짧은 편이다. 작업량도 많을뿐더러 어차피 한 번에 플레이하는 시간 자체가 엄청나게 길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한 번에 많은 이야기를 담기는 다소 힘든데, 앞으로 추가 콘텐츠를 통해 이 이야기들을 이어갈 계획이다. '헬게이트 VR'은 이전 헬게이트의 프리퀄 작품이면서, 동시에 스토리 지향적인 작품이다. 즐겁게 플레이할 수 있을 것이다.

▲ 본작의 내용이 이어져 '헬게이트: 런던'의 이야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