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소재로써 임진왜란이 가지고 있는 매력은 보드게임으로도 이어졌다. 그것도 먼 대만의 개발사를 통해서 말이다. '임진1592'라는 대만의 보드게임은 대만 개발자가 만들어낸 임진왜란 소재의 게임이라는 점에서 우리를 한 번 더 놀랍게 한다. 심지어 개발팀의 이름도 '임진 크리에이티브(Imjin Creative)'다.
대체 어떻게 해서 대만의 보드게임 디자이너가 임진왜란 소재의 게임을 만들게 되었을까? 그리고 어떻게 해서 크라우드 펀딩을 성공하고 해외로 판매를 시작할 수 있었을까.
성공적인 크라우드 펀딩으로 임진 '임진1592'를 만들어 냈고, 최근에는 대만 역사를 기반으로 한화 2억 원 규모의 성과을 거둔 개발자 '알란 왕(Allen Wang)'. '2017 보드게임 디자인 라운드테이블 인 부산'의 첫 강연에 자리한 그는, '임진1592'를 개발하며 있었던 일화를 담담히 풀어내기 시작했다.
알란 왕은 먼저, 자신이 보드게임 디자인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과정에서의 어려움에 대해 운을 띄웠다. 그가 처음부터 보드게임 디자인을 시작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전부터 보드게임에 관심이 많았던 알란은 500개가 넘는 보드게임을 즐겨왔으며, 보드게임 카페를 운영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보드게임을 추천하며 가르쳐주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나도 내 게임을 만들어보고 싶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언급했다.
보드게임 개발을 생각할 때쯤, 임진왜란을 다뤘던 한 권의 책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임진왜란이 일어났던 시기는 1592년이었고, 개발 생각이 들었던 것이 마침 2012년 임진년이었다. 같은 임진년에 관련된 책을 읽게 된 것이 인상 깊었다고 회상했다. 자금 문제 때문에 즉시 개발에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이후 2015년부터 본격적인 보드게임 개발에 착수하게 된다.
개발을 결심하고 나서는 일단 게임의 컨셉을 잡는 것부터 시작했다. 이미 2012년부터 임진왜란 소재의 게임을 제작하고 싶었기에, 컨셉 부분에서 있어서는 큰 걸림돌이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컨셉을 살리는 데 필요한 역사적인 사건들과 실제 기록들이었다.
그는 자료를 모으는 것이 중요한 일이 될 것이라고 봤다. 자료를 모아서, 게임과 역사 간의 상호 연결성을 발전시킬 수 있고, 소재로 활용하여 게임에 넣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확보한 자료들은 하나의 데이터베이스를 만들려는 계획이었다. 이를 위해 역사 전공 대학생의 도움을 받았고, 결과적으로는 역사가 잘 반영된 게임을 만드는 데에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컨셉과 자료라는 기본 재료를 갖춘 뒤에는 본격적인 보드게임 제작에 들어갔다. 그리고 '어떻게 승패를 결정할까'를 먼저 신경 썼다. 구체적인 승패의 룰과 목표를 만들어야만 유저들에게 직관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고민 끝에 소재가 임진왜란인 만큼, '누가 더 많은 땅을 가져가는가'가 승리의 조건으로 정해졌다.
재료와 승리 조건까지 정해졌다. 그렇다면 다음 단계에서 신경 써야 될 것은 '구체적인 시스템'과 '제품의 디테일'이었다. 이전까지 기본적인 뼈대와 살을 구성했다고 한다면, 본격적인 살을 붙이고 묘사를 해야 되는 시점으로 넘어간 것이다.
알란은 이 단계에서 어려운 점도 많았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스스로 많은 보드게임을 했던 경험치가 축적되었던 점이 도움이 됐다. 다른 보드게임을 플레이하면서 느꼈던 좋은 점들을 자신의 게임에 적용해 보고, 단점이 있었다면 반면교사로 삼았다. 세부적인 시스템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각 게임의 장점을 배우고, 자신의 게임에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뒀다.
시스템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테스트도 몇 번 진행했다. 스스로 마음에 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이 어떻게 판단하고, 어디에서 어려움과 재미를 느끼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테스트를 많이 진행할수록 좋은 게임을 만들 수 있다고 봤다. 4개월간 진행된 테스트는 1주에 1~2회 진행됐다. 짧지 않은 테스트 기간이었던 만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테스트를 진행하는 동안, 플레이어들에게 받은 의견은 개발 피드백으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알란은 이를 통해서 게임에서 개선해야 하는 부분들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러한 담금질을 거치면서 게임은 점차 개선되었고,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자 '상품화'를 고민했다.
상품화 시키는 것은 혼자서 할 수 없기에,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기도 했어요.
지금부터는 이 부분들을 설명해 드리려고 합니다."
알란은 본격적인 상품화에서 중요한 것이 '아트워크'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보드게임의 디자인은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는 상태. 그렇기에 게임을 실감 나게 만드는 것을 중요시했다. 그래서 디자인을 하는 회사에 찾아가 '임진1592'의 디자인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서 알란이 신경 쓴 것은 '조선, 일본, 명나라'의 느낌을 다르게 취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게임 내 사건 카드에 사용한 일러스트레이터를 나라마다 별도로 기용하여, 서로 다른 느낌을 주고자 했다. 일본은 약간 애니메이션 풍으로, 조선은 한이 서린듯한 느낌으로, 명은 비장미가 있는 식으로 3국의 화풍과 분위기를 다르게 구성하려 했다.
일반적인 보드게임이 일러스트레이터를 한 명만 사용한 것과 달리, 총 세 명의 일러스트레이터를 사용했다. 어찌 보면 무리한 선택이었을 수도 있었다. 당시에는 다른 이들의 반대도 많았고, 한 게임에서 그림 스타일이 달라지는 부분을 지적하는 사람들도 나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원하는 것'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확고했다.
이러한 결정이 결과적으로는 '임진1592'만의 독특한 특징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자신의 원칙을 버리지 않고 결정하고, 만드는 것이 어려웠다고 언급했다.
상품의 형태가 갖춰지는 시점이 되자, 이제 '돈'이라는 문제가 대두했다. 스스로 게임을 좋아하긴 하지만, 결국에는 돈을 벌기 위해서 만드는 것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잘 보이게 할 수 있으면서도 적당한 가격과 재질을 결정하는 과정이 이어졌다. 나무 재질의 카드를 만들기 위해서 다섯 개가 넘는 공장을 방문하기도 했고, 상품화 시에 어떤 가격으로 판매할지도 결정해야 했다.
하지만 곧 위기가 찾아왔다. 일러스트를 맡기느라 개발 자금이 바닥나기 시작했던 것. 게임 제작은 일시 중지되려 했다. 알란은 이 위기를 크라우드 펀딩 방식으로 돌파해 나갔다. 물론, 이 과정에서 단순히 모금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크라우드 펀딩에서 '괜찮게' 보일 수 있도록 고민했고, 홍보영상을 멋지게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다. 이와 함께 크라우드 펀딩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마케팅도 시도했다. 라디오에 어렵사리 들어가서 게임을 홍보했고, 이후 언론의 취재를 이용해서 게임이 대중에게 노출됐다. 그 결과, 투자자들이 늘어났고, 대만 시장에서만 한화 3,000만 원이 넘는 돈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후에는 다양한 나라들을 다니면서 경험을 쌓았다. 부산 보드 게임 페스티벌이나, 에센 보드게임 박람회를 다니면서 아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다른 나라의 보드게임 디자인도 경험할 수 있었고, 부스를 다니며 홍보 방법을 배우기도 했으며, 장점을 찾아 이를 적용할 수 있게 됐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과 경험으로 게임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이러한 경험들이 퍼블리싱으로도 이어졌다.
개발부터 출시까지의 이야기를 마친 알란은 "대만은 2007년부터 보드게임이 알려지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전체적인 시장의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고 말하며, 앞으로도 더 성장할 것이라는 예측을 남겼다. 또한, 자신과 같이 보드게임 디자인이 성과를 거두는 방법이 될 수 있다며, 지금까지 설명한 경험이 보드게임을 제작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당부의 말로 강연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