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2017 LoL 월드 챔피언십(이하 롤드컵) 그룹 스테이지 마지막 경기가 종료된 후, 한국 팬들의 우려가 현실로 일어났다. 바로 롱주 게이밍(B조 1위)과 삼성 갤럭시(C조 2위)가 맞붙게 된 것이다. 한국팀들의 대결에 많은 이가 안타까워 했고, 삼성 갤럭시가 패하지 않겠냐는 의견이 많았다.

그로부터 4일 뒤,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롱주 게이밍의 실수가 있었으나, 삼성 갤럭시는 할 수 있는 최선의 플레이를 준비했다. 예를 들어 '앰비션' 강찬용은 신예 '커즈' 문우찬을 부지런히 찾아다니며, 이전 그룹 스테이지 경기와 전혀 다른 적극적임을 보였다.

여전히 '크라운' 이민호는 라인전에서 고전하면서도 팀플레이에 초점을 맞춘 움직임으로 큰 도움이 됐다. '룰러' 박재혁과 '코어장전' 조용인의 잔실수도 크게 줄어든 모습이었다. '큐베' 이성진은 두말할 것 없이 삼성 갤럭시의 '믿을맨' 역할을 소화했다. 과연 4일 동안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 불타는 향로 올인? 먼저 포기한 삼성 갤럭시

분명 롤드컵 개막 전부터 삼성 갤럭시가 불타는 향로 메타에 맞춰 집중 연습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승리할 수 있는 최고의 지름길이 불타는 향로였으니, 삼성 갤럭시 입장에서 굳이 포기할 이유는 없었다. 소문처럼 삼성 갤럭시는 본선 무대에서 '앰비션'의 카직스와 '큐베'의 카밀 정도를 제외하면 꽤 정석적인 조합을 구성했다.

대체로 삼성 갤럭시의 경기 패턴은 비슷했고, RNG에 2패를 당하면서 질타를 받았다. 분명 그룹 스테이지 경기력과 결과만 놓고 봤을 때, 롱주 게이밍을 꺾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8강전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정통 향로 서포터'(잔나, 룰루 등)를 나눠 가졌던 이전 경기와 달리, 삼성 갤럭시가 잔나를 고정밴 리스트에 올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2티어 향로 서포터로 선택지가 넘어가는데, '유사 향로 서포터'(잔나-룰루에 비해 효율이 떨어지는 챔피언)인 타릭과 라칸이 바통을 이어받는다.

여기서 삼성 갤럭시의 준비성이 돋보인다. 지금이야 트리스타나가 확실하게 1티어 원거리 딜러로 평가받지만, 이전까지는 '룰러'나 '프레이' 김종인 모두 바루스를 함께 사용하는 쪽이었다. 그러나 삼성 갤럭시는 상대에게 자야, 룰루, 탈리야-바루스를 내주면서 트리스타나를 먼저 골랐다.

덤으로 세주아니와 자르반 4세를 나눠 가지는 구도를 만들어 탱커 역할의 챔피언도 일찌감치 확보했다. 이렇게 봇 라인(트리스타나+유사 향로 서포터)을 구성해 상대 자르반 4세나 혹은 정통 향로 서포터에 대한 부담감을 줄이고, 안정적인 후반 조합을 갖춘 것이다.



■ '앰비션'이 제시한 신예 정글러 레시피

삼성 갤럭시는 원하는 조합을 짰고, 플레이로 그 이유를 보여줬다. 3연속 세주아니를 고른 '앰비션'은 집요하게 '커즈'를 찾아다녔다. 봇 라인전은 쉽게 개입하기 어렵고, 단순 2:2로 승부를 보기 어려운 현 메타다. 그럼 정글러-미드 라이너의 다이브 설계가 이뤄져야 한다.

자연스럽게 두 정글러의 시선은 탑과 미드 라인으로 향하기 마련, '앰비션'이 노련함을 보여준다. '비디디' 곽보성이 '크라운'을 상대로 솔로 킬에 대한 욕심을 부리고, 그걸 보기 좋게 받아쳤다. 롱주 게이밍 입장에서는 불필요한 데스였고, 이로써 삼성 갤럭시는 정글러-미드 라이너가 함께 움직일 수 있는 타이밍을 벌었다.

'크라운'의 말자하는 다소 수비적인 움직임이었고, 궁극기 또한 반격용으로 쓰였다. 그러나 이후 경기부터 탈리야-리산드라로 '앰비션'과 함께 상대 봇 라인을 압박했다. 여기에 쉔과 타릭의 궁극기가 덮이면서 롱주 게이밍의 '프레이'-'고릴라' 듀오는 마치 2:5를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설사 '칸'-'커즈'-'비디디'의 지원이 있다 하더라도 삼성 갤럭시가 수적 우위를 점하기 수월한 조합이었다.

롱주 게이밍이 발 빠른 운영이라면, 삼성 갤럭시는 상대의 보폭을 맞추기 위해 챔피언 조합을 준비했다. 국내 프로게임단에서는 리산드라를 CC기(군중 제어기술)만 가지고 있는 존재로 치부해왔다. 삼성 갤럭시는 리산드라로 하여금 '크라운'이 한타에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보조 역할을 부여했고, 합류에도 용이한 점을 살렸다.



■ 작은 변화 속, '큐베'의 변함없는 캐리력

어떤 팀이건 짧은 시간에 변화를 주면 불협화음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운영 역시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큐베'는 변함없이 팀을 지탱했다. '칸' 김동하는 대개 공격적인 동작을 취한다. 심지어 챔피언 숙련도 역시 그쪽으로 치우쳐 있다. 반대로 '큐베'는 공수 밸런스가 탄탄한 쪽이고, 팀 상황에 따라 챔피언을 달리한다.

롱주 게이밍을 상대로 '큐베'가 수행해야 할 역할이 무척 많았다. 우선 삼성 갤럭시는 '칸'의 챔피언을 확인한 뒤, '큐베'의 챔피언을 선택했다. 1세트에서 잭스를 상대로 꺼내 든 케넨은 스플릿 푸쉬로 넘어가기 전까지는 분명 유리한 위치다. 그러나 '큐베'는 상대 정글러의 움직임을 의식해 적극적인 견제를 펼치지 않았다. '칸'의 잭스는 무난하게 성장하면서 탑 구도만 보게 될 경우, 롱주 게이밍이 좋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두 팀의 운명을 가른 것은 탑 라이너들의 순간이동 활용이었고, 한타에 집중한 삼성 갤럭시가 조합 우위와 더 좋은 집중력으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내리 쉔을 고른 2, 3세트도 '큐베'는 상성과 상관없이 개인 기량으로 라인전을 풀어갔다. 그와 동시에 궁극기로 팀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면서 사실상 팀 승리의 주역이 됐다. 이렇게 다재다능한 '큐베'의 활약이 컸기에 롱주 게이밍을 3:0으로 완파할 수 있었고, 만약 조금이라도 어설픈 플레이를 했다면 삼성 갤럭시가 준비한 전술과 운영이 쉽게 발휘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올해 롤드컵에서 삼성 갤럭시는 상대적으로 다른 한국팀들에 비해 강한 전력으로 평가받지 못했다. 그리고 언제나 단단하다는 평가가 그들의 스타일을 대변했다. 하지만 8강전에서 보여준 그들의 모습은 단단함이 아닌, 팀원들이 함께 서로의 단점을 보완한 끈끈함의 승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