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전 세계 최강의 하스스톤 선수를 뽑는 하스스톤 챔피언십 투어(이하 HCT) 월드 챔피언십이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경합을 펼친 결과, 우승컵은 대만의 'tom60229'가 차지하게 됐다. 한국의 'Surrender' 김정수는 비록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지만, 4강까지 진출하는 과정에서 놀라운 집중력과 뛰어난 경기력을 선보이며 전 세계 하스스톤 팬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이번 HCT 월드 챔피언십은 '운' 적인 요소로 승패가 정해진 경우보다 선수들의 '실력'에 의해 승패가 정해진 경우가 많아 더 의미가 깊었다. 한때, 실력에서 앞서도 운에서 밀리면 지기도 했던 하스스톤이지만, 적어도 지금 메타에서는 그런 경우가 많지 않다. 하스스톤에서 운과 실력의 비중은 메타에 따라 확연하게 다른데, 과거 요그사론 메타에서 운이 실력을 초월했다면, 지금 컨트롤 덱이 대세가 된 메타에서는 실력의 비중이 더 커졌다.

물론, 아무리 컨트롤 덱이 대세가 됐어도 카드 게임인 하스스톤에서 운은 중요한 요소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단순히 운이 없다고 해서 쉽게 항복 버튼을 누르는 것보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묘수를 찾으려고 노력한다면 충분히 다른 결과를 만들 수 있다. 'Surrender' 김정수가 보여준 것처럼 과정을 침착하게 설계하고 승리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계산한다면 불가능해 보이는 역전도 충분히 가능하다.

HCT 월드 챔피언의 여운이 가시기 전에 이번 대회에서 'Surrender' 김정수가 보여준 명장면을 되짚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 16강 'Surrender' vs 'FrOzen', 시작부터 끝까지 설계! 라이라가 불러온 기적



하이랜더 사제를 꺼낸 김정수는 평범한 플레이로 비취 드루이드를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듯 시작부터 과감한 판단을 내렸다. 그는 하이랜더 사제의 핵심 콤보를 담당하는 광명의 정령을 초반부터 필드에 꺼냈다. 대부분 광명의 정령을 끝까지 아끼며 예언자 벨렌과 함께 사용하지만, 김정수는 달랐다. 드루이드의 높은 방어도 때문에 '원턴킬'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서 필드 싸움으로 주도권을 잡으려는 의도였다.

광명의 정령을 먼저 필드에 꺼내 놓은 덕분에 김정수는 다음 턴에 등장한 판드랄 스태그헬름을 하수인 교환을 통해 효과적으로 제압할 수 있었다. 광명의 정령을 아꼈다면, 판드랄이 계속 살아남아 주도권이 'FrOzen'에게 넘어갔을 가능성이 높았다.

경기가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두 선수의 의도가 명확해졌다. 'FrOzen'의 승리 플랜은 단순했다. 7턴에 역병의 드루이드 말퓨리온으로 변신해 매턴 3씩 방어도를 쌓으면 무조건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FrOzen' 입장에서 단순하면서 가장 승산이 높은 방법이었다. 사제가 뿜어낼 수 있는 딜은 한정적인 반면, 드루이드가 쌓을 수 있는 방어도는 사실상 무한이기 때문이다.


반면, 김정수는 탄환으로 사용할 수 있는 주문 카드를 최대한 아낀 것으로 미루어 볼 때, 태양의 후예 라이라를 통해 변수를 만들겠다는 의도가 다분해 보였다. 태양의 후예 라이라로 변수를 만들지 못하면 승산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김정수는 잘 알고 있었다. 김정수의 판단은 정확했다. 라이라를 통해 싸이클을 돌리며 변수 카드인 호박석 속의 괴수와 금단의 창조술을 확보한 것이다.

하지만, 이미 드루이드의 체력과 비취 골렘의 스택은 충분히 쌓인 상황이었기 때문에 여전히 승산은 희박해 보였다. 호박석 속의 괴수로 뽑은 알렉스트라자가 제압당했고, 상대가 필드를 먼저 전개해서 갈림길 킬각을 의식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승부의 분수령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김정수는 또다시 과감한 결단을 내린다. 갈림길 킬각을 피할 수 있도록 수습생을 정리한 뒤, 10코스트 그대로 금단의 창조술을 사용했다. 보통 10코스트 함정 카드가 많기 때문에 10코스트로 금단의 창조술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 않지만, 김정수는 승리하기 위해서 10코스트 최강 하수인을 소환해야 이길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김정수의 이유 있는 도박은 결국 통했고, 10코스트 최강 하수인 데스윙을 소환하는 데 성공했다.


'FrOzen'은 마지막까지 평정심을 유지하고 상대의 수를 예측했다면, 이길 수 있었지만, 상대의 용 숨결 물약을 배제하면서 결국 역전을 허용하고 말았다. 역병 구울로 사제의 본체를 치지 않고 만찬의 사제를 쳐 놓거나, 도발 벽을 세운 뒤 하수인 버프를 통해 용 숨결 물약 각을 피했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평정심을 잃으면서 결국, 역전을 허용하고 말았다.

김정수가 역전하는 과정에서 라이라를 통해 호박석 속의 괴수와 금단의 창조술을 얻은 것은 분명히 '운'이라고 볼 수 있지만,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승리로 향하는 길을 설계한 것은 김정수의 '실력'이었다. 놀라운 집중력과 설계를 통해 김정수는 난적 'FrOzen'을 꺾고 8강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는 데 성공했다.



■ 8강 'Surrender' vs 'ShtanUdachi', 예언자 벨렌 없이 100데미지 넣기 성공!



8강 'ShtanUdachi'와 김정수의 대결에서도 김정수의 '묘수풀이'를 볼 수 있었다. 보통 하이랜더 사제 플레이어들은 예언자 벨렌을 끝까지 아끼지만, 김정수는 예언자 벨렌을 미리 꺼내는 과감한 승부수를 던졌다. 빈 필드에 잿멍울 괴물과 함께 꺼냈기 때문에 쉽게 잡히지 않을 거라는 판단이었지만, 예언자 벨렌이 '천벌-휘둘러치기' 콤보에 제압당하면서 김정수의 승부수가 실패로 돌아갔다.

벨렌이 제압당한 순간, 하이랜더 사제와 드루이드의 대결은 이미 드루이드 쪽으로 크게 기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김정수의 손에는 16강에서 기적을 만들었던 태양의 후예 라이라가 존재했다. 벨렌에게 제압기가 빠지자 김정수는 고민 없이 태양의 후예 라이라를 꺼냈다. 하지만, 'ShtanUdachi'가 극적으로 오른쪽에서 하급 벽옥 주문석을 뽑으면서 유일한 희망이었던 라이라까지 허무하게 제압당하고 말았다.


벨렌과 라이라가 제압당하자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김정수의 패배를 확신할 정도로 김정수의 패색이 짙어졌다. 김정수만 유일하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벨렌이 제압당한 상황에서 유일한 승리 플랜은 필드를 끝까지 지키는 것뿐이었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김정수는 필드를 최대한 지키는 방향으로 운영하며 상대의 방어도를 깎았다.

필드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지키며 딜 누적을 하자 드루이드의 체력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김정수는 드루이드가 올릴 수 있는 방어도와 자신이 뿜어낼 수 잇는 데미지를 완벽하게 계산한 듯 딜 템포에 박차를 가했다. 결국, 불가능할 것 같았던 일이 현실이 됐다. 김정수가 시작부터 끝까지 넣은 총 데미지는 100이었다. 뛰어난 판단력과 포기하지 않는 근성을 보여주며 4강에 오른 김정수는 전 세계 하스스톤 팬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사진 출처 : 트위치TV 방송 화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