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31일 2018 LoL 챔피언스 코리아(이하 LCK) 스프링 스플릿 포스트 시즌 와일드카드전에서 SKT T1이 KSV를 세트 스코어 2:1로 꺾고 kt 롤스터가 기다리고 있는 플레이오프 1라운드로 향했다. 다시 한 번 통신사 라이벌전이 큰 무대에서 펼쳐질 예정이다.

패자인 KSV는 아쉬움을 삼켰고, 승자인 SKT T1은 기뻐했다. 선수들은 자신감에 찬 표정으로 결승까지 진출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기도 했다. 다음 상대인 kt 롤스터와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프리카 프릭스 모두 강력하지만, 그들을 모두 꺾고 마지막까지 간다면 정말 멋질 것 같다는 소감을 전한 선수도 있었다.

분명 와일드카드전에서 승리한 SKT T1은 정규 시즌에 보였던 단점 몇 가지를 해결한 듯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했다.


캐리력 복구 완료
명불허전 '뱅'과 각성한 '트할'



먼저 SKT T1은 정규 시즌과 달리 뛰어난 캐리력을 갖춘 라인이 두 곳 이상으로 늘어났다. 팀 입장에서 보면 정말 긍정적인 현상이다. 스프링 스플릿 들어 SKT T1은 '뱅' 배준식 혼자 분전하다가 패배를 당하거나 힘겹게 승리하는 패턴을 여러 번 보였기 때문이다.

SKT T1은 여전히 '뱅'의 캐리력이 건재하다는 걸 와일드카드전 내내 보여줬다. 단지 카이사를 선택해 화력을 뿜어냈던 1세트만 빛났던 건 아니다. 이즈리얼로 엄청난 대미지를 기록했던 2, 3세트에도 '뱅'의 캐리력이 빛났다. 2세트에 패배를 기록하고도 '뱅'의 이즈리얼은 노데스 플레이로 끝까지 좋은 활약을 펼쳤다.

1세트에서의 '뱅'은 두 말 말하면 잔소리일 정도로 경기를 캐리했다. 블루 진영 1픽으로 카이사를 당당하게 꺼내든 '뱅'은 케이틀린에 약하다는 세간의 평가에도 큰 어려움 없이 라인전에 임했다. 초반부터 단 한 번도 CS에서 밀린 적이 없었다. Q스킬 '이케시아 폭우'를 진화시킨 다음부터는 조금 더 적극적인 움직임으로 상대를 압박했고, E스킬 '고속 충전' 진화 시점부터는 상황을 주도적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두가 인상깊게 확인했던 카이사의 캐리력이 '뱅'의 피지컬을 만나 1세트 승리를 확정지은 트리플 킬로 완성됐다. KSV의 정글 지역에서 시작된 한타에서 기회를 엿보던 '뱅'의 카이사는 궁극기 '사냥본능'으로 순식간에 적진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탈진' 타이밍을 E스킬의 은신 효과로 잘 넘긴 뒤에 브라움의 방패를 피하는 '점멸'까지 활용해 눈 깜짝할 사이에 상대 셋을 쓰러뜨렸다. 몇 차례 돌려봐도 '뱅'의 순간적인 판단과 피지컬이 상황을 지배했다.


3세트에서는 이즈리얼로 왜 자신의 별명 중 하나가 '뱅즈리얼'인지 확인시켜줬다. 자크와 갈리오, 라칸의 이니시에이팅이 시도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뱅'의 이즈리얼은 상대를 끊임없이 압박했다. 정확한 스킬 적중률과 상대 체력을 갉아먹는 플레이로 KSV의 수비진을 계속 뒤로 물러나게 했다. 세트 MVP에 준하는 캐리력을 선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이었다.

여기에 '트할' 박권혁이 '뱅'의 무거웠던 어깨를 풀어주는 역할을 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트할'은 신인치고 꽤 준수한 경기력을 보였는데 기복이 있는 모습이 불안요소였다. 이번에도 여전히 그의 불안요소를 엿볼 기회가 나오기도 했지만, 1세트와 3세트에 꺼내 활약했던 탑 카시오페아가 '트할'의 새로운 친구 역할을 톡톡히 했다. 특히, '큐베' 이성진을 여러 차례 솔로킬했던 1세트에서 '트할'의 카시오페아는 '뱅'의 카이사 못지 않은 캐리력을 선보였다.

뿐만 아니라 폼을 잃은 듯했던 '블랭크' 강선구 역시 트런들과 자크로 팀의 선봉대 역할을 해주면서 준수한 모습을 와일드카드전 내내 유지했다. 특히, 3세트에는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로 자리잡은 자크로 과감한 이니시에이팅에 여러 차례 성공, 팀의 승리에 큰 힘을 보탰다.


하지만 여전히...
뼈아픈 실수들, 아쉬운 결과 만든 오더


하지만 SKT T1의 예전 포스나 경기력이 100% 부활한 것은 아니다. SKT T1은 와일드카드전에서 뼈아픈 실수를 여러 번 범했다. 그 실수들이 세트 패배로 이어지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시작은 '에포트' 이상호의 알리스타였다. 트런들의 '얼음 기둥'으로 킬 포인트를 올린 시점에서 '에포트'의 알리스타는 한 번의 킬을 더 원했다. E스킬 '짓밟기'를 활용해 가까이 있던 브라움을 기절시키고자 했다. '에포트'는 앞으로 들어갔고 아니나 다를까 상대의 CC 연계에 발이 묶여 옆에 설치됐던 상대의 제어와드만 때리다가 허무하게 쓰러졌다.

이는 정말 잘못된 선택이었다. 아군 쪽에는 알리스타의 CC기 이후에 연계를 해줄 챔피언이 없었고, 반대로 상대 쪽에는 브라움과 케이틀린이 있었다. 심지어 자신의 몸에는 이미 '뇌진탕 펀치' 스택이 쌓여 있었다. 모든 상황에서 '에포트'의 알리스타가 불리했는데 그는 큰 위기감 없이 움직였다가 봉변을 당했다. 속도를 올릴 수 있었던 SKT T1은 잠시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더 큰 문제는 그 다음에 터졌다. 알리스타가 쓰러진 뒤에 '페이커' 이상혁의 갈리오가 홀로 다이브를 노렸다. 저 멀리서 W스킬 '듀란드의 방패'를 켜고 '점멸'로 파고 들었다. 하지만 그 콤보는 실패했고, '페이커'의 갈리오는 일방적으로 얻어 맞다가 쓰러졌다.

갈리오가 상대 여럿을 도발하고 광역 대미지를 기록하면 상대 수비진을 물러서게 하고 안정적으로 타워를 파괴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KSV는 갈리오를 밀어내고 타워 수비까지 해낼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SKT T1의 나머지 선수들은 꽤 많이 남은 상대 타워 체력 때문에 섣불리 타워 다이브에 동참하기 힘들었다. 또한, 갈리오를 수도 없이 플레이했던 '페이커'가 스킬 사거리 계산 착오로 팀의 속도전에 큰 타격을 입혔다는 사실도 많이 아쉬웠다.


결국, '페이커'는 리스크가 큰 플레이로 소득 없이 전사만 당한 셈이었다. SKT T1의 실수 직후 KSV의 탑 라이너 '큐베'의 갱플랭크 역시 실수하지 않았으면 KSV가 주도권을 완전히 잡고 경기를 지배했을 것이다.

'페이커'의 갈리오는 1세트 내내 불안했다. 팽팽한 상황에서 바론 대치 구도가 이어졌는데 여기서 '페이커'의 갈리오는 이해하기 힘든 돌진으로 상대에게 '공짜 킬'을 헌납했다. 난데 없이 E스킬 '정의의 주먹'을 상대 쪽으로 활용했던 '페이커'의 갈리오는 상대의 화력 앞에 허무하게 쓰러졌다. 진형이 SKT T1에게 유리하지도, 갈리오가 상대를 물자마자 팀원들의 호응이 이어지기도 힘든 상황이었던 걸 생각하면 다소 납득하기 어려운 플레이었다.

▲ 갈리오님...?


크게 유리했던 2세트에도 실수로 흐름을 잠시 놓쳤다. '페이커'의 갈리오는 23분경에는 상대의 공격을 잘 흡수하고 빠져나갔지만, 상대 미드 2차 타워에 또 들어가다 허무하게 잡혔다. 이번에도 1세트 실수와 비슷한 실수였다. 상대 타워 체력이 적지도, 팀원들이 호응하기도 어려웠지만 '페이커'의 갈리오는 1세트와 마찬가지로 타워 안으로 들어갔고 1세트와 마찬가지로 킬 포인트를 쉽게 내줬다.

▲ 비슷한 실수가 또 나왔다(출처 : OGN 중계 화면)


SKT T1은 선수들의 실수들 뿐만 아니라 오더에서도 다소 의아한 판단을 내리기도 했다. 1세트에는 미드 1차 타워를 수비하는 과정에서 보여줬던 '에포트' 알리스타와 '페이커' 갈리오의 무리한 이니시에이팅을 꼽을 수 있다. 상대 케이틀린이 잘 성장해 탱커도 쉽게 녹일 수 있는 화력을 자랑했고, 이미 몇 차례 케이틀린의 막강한 대미지를 실감한 바 있었다.

하지만 SKT T1은 타워 수비에 급급한 나머지 알리스타를 다짜고짜 밀어넣고 갈리오의 궁극기를 덮으려는 생각만 했다. 당연히 알리스타는 들어가자마자 산화했다. '뱅'의 카이사가 광역 대미지로 상대를 녹여내지 못했다면 SKT T1이 큰 위기를 맞이할 뻔 했던 장면이었다.

유리한 상황에서도 SKT T1은 상황에서 살짝 빗나간 콜 플레이가 나왔다. 2세트에 바론 쪽 시야를 먹어두고 낚시 플레이를 했다가 통하지 않자 '순간이동'까지 활용해 싸우고자 했다. 하지만 KSV는 그쪽으로 이동하지 않았고 SKT T1은 운영의 턴을 사용해 상대에게 시간을 허용했다. 다음 턴에는 갈리오의 '도발-점멸' 콤보가 잘 들어가면서 한타 대승을 거뒀지만, 상위권 팀들이 모두 모인 포스트 시즌에서의 경기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전 장면이 많이 아쉽다. LCK의 상위권은 상대의 조그만 실수 하나에도 빠르게 역스노우볼을 굴릴 수 있다는 점을 떠올려야 한다.


3세트의 SKT T1
어쩌면 그들을 위한 해답이 아닐까


세트 스코어 1:1 상황에서 SKT T1이 저력을 발휘해 3세트에는 압승을 거뒀다. '블랭크'의 자크가 몸을 아끼지 않는 이니시에이팅으로 포문을 열었고 '페이커'의 갈리오와 '울프' 이재완의 라칸이 그 위를 궁극기로 포근하게 감싸줬다. 그러면 '트할'의 카시오페아와 '뱅'의 이즈리얼이 뒤에서 마음 놓고 스킬을 난사했다. KSV는 이를 막지 못한 채 무너졌다.

근래 SKT T1에게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속도전이 3세트에서 나왔다. 밴픽 구도를 보고 상상했던 흐름이 거의 적중했으며 SKT T1의 한타 파괴력이 자주 나왔다. 한 번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면 이를 끊임없이 굴렸던 과거의 SKT T1과 오랜만에 만난 느낌을 받았다.

사실 현재 LCK 포스트 시즌에 자리잡은 팀들은 모두 속도전과 스노우볼 굴리기에 능하다. 킹존 드래곤X야 말할 것도 없고 아프리카 프릭스와 kt 롤스터도 그렇다. 이들은 스프링 스플릿 정규 시즌 내내 이와 같은 운영과 속도로 LCK 상위권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현재 메타가 그렇기 때문에 이들도 그에 발맞춰서 자신들의 스타일을 바꾸거나 원래 그랬던 스타일을 더욱 발전시켰다.

KSV와의 3세트에서 SKT T1이 오랜만에 보여줬던 운영은 더 높은 곳을 원하는 그들에게 해답이 될 수 있다. 뚝심 있는 중후반 한 방을 대놓고 노리는 SKT T1식 조합과 운영에 대한 파훼법이 나온지 오래다. 3세트와 같은 변화가 필요하다. 만약 그러지 않은 채 정규 시즌이나 KSV와의 1세트, 2세트에 보여줬던 선수들의 실수까지 겹쳐진다면 SKT T1의 여정은 여기서 마침표를 찍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