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리치 히트더사골?


하나의 게임 시리즈가 4-5편을 넘어가기 시작하면 우려낼대로 우려냈다는 의미로 '사골'이라는 우스게소리를 붙여서 부르기도 한다. 예를 들어 본편, 외전, 플랫폼을 넘나들며 수많은 작품을 선보인 '진삼국무쌍' 시리즈의 경우 '진사골무쌍'이라 부르는 것 처럼 말이다.


블리치 히트더소울은 일본의 인기 애니메이션인 '블리치'를 원작으로 하는 대전액션게임으로 매해 한 편씩 숫자를 더해가고 있는 시리즈물이다. 그리고 지난 5월 15일 6번째 작품인 블리치 히트더소울6가 발매되었다. 원작 애니메이션 하나로 6편이나 찍어냈으니 '블리치 히트더사골'이라고 불리는 것도 이해가 간다.


대전액션게임이 시리즈물로 계속해서 발표되는 것이 이상할 것은 없지만, 별다른 변화 없이 새로운 넘버링으로 신작을 발표했던 블리치 히트더소울을 '대전액션게임의 명작'이라 부르기엔 조금 어색하다. 매년 신작이 발매될 때마다 독특한 시스템이 추가되고, 원작의 스토리 진행에 따라 새로운 캐릭터들이 등장하면서 점차 완성도가 높아져가고 있지만 객관적인 평가는 그리 높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래서 '사골'이라는 그다지 좋지 않은 어감의 표현으로 부르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원작인 '블리치'를 좋아하는 유저들에겐 원작에서 등장하는 캐릭터들을 직접 움직여 플레이를 할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충분히 가치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블리치가 뭐야?'라고 질문을 던지는 유저들에겐 그냥저냥한 대전액션 게임 중 하나일 뿐이랄까.



[ 블리치 히트더소울 시리즈 6번째 작품 ]




그런데 '블리치 히트더소울6'를 단순히 캐릭터 몇 개가 추가된 신작이라고 평가하기는 곤란하다.


일반적으로 콘솔 게임의 인기도는 판매량에 비례한다고 하는데, 지난 15일 발매된 블리치 히트더소울6는 일본 주간 판매량 1위(41,000개 판매)를 기록하며 성공적인 출발을 했다. 또한 해외의 여러 리뷰 평가에서도 시리즈 중 최고 점수를 받으며 '완성도 높은 대전액션게임'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중이다. 지난 1, 2, 3, 4편까지가 실험버전이었다면 5편에서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고, 이번 6편은 안정화, 수준 높은 시나리오 구현, 신규 컨텐츠로 그야말로 '재미있는 게임'이 되었다는 평가이다.



■ 시리즈를 집대성하는 개념작



뭐라고 해도 블리치라는 원작을 얼마나 충실히 구현했느냐가 중요하지 않을까. 그런면에서 블리치 히트더소울6(이하 블리치HTS6)는 꽤나 개념작이다.


현재까지의 원작 시나리오에서 선보인 대부분의 캐릭터가 게임에서 구현되었다. 총 56명의 캐릭터를 조작할 수 있고, 이 중 '만해', '호로화', '레스렉시온'이라는 이름으로 변신하는 캐릭터까지 생각하면 총 74명의 캐릭터가 등장하고 있다.


밸런스를 생각하면 대전액션게임에서 캐릭터가 많다는 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니겠지만, 원작의 장점을 살려주는 개성있고 다양한 캐릭터들은 분명 큰 강점이 된다. 각 캐릭터들의 기술과 각종 필살기의 연출효과를 감상하는 것도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더군다나 블리치HTS5에서 태그팀을 만들 수 없었던 특정 캐릭터들도 이제는 모두 태그팀을 이룰 수 있다.




[ 56명의 캐릭터, 변신까지 생각하면 총 74명의 캐릭터 ]




[ 극장판에서 등장했던 다크루키아도 선택할 수 있다. ]




블리치HTS6에서 빠뜨릴 수 없는 부분이 스토리 모드이다.
블리치HTS6는 역대 시리즈 중 가장 완벽한 스토리 모드를 제공하고 있는데, 일본에서 2004년 10월부터 TV 방영하기 시작한 애니메이션의 모든 스토리와 극장판 애니메이션들의 스토리를 빠짐없이 담고 있다. 각 캐릭터들의 음성과 컷씬으로 몰입도를 선사하는 스토리모드는 원작을 이미 다 봤던 유저들에게도 '블리치 처음부터 한 번 더 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게끔 한다.





[ 블리치의 스토리가 집대성된 스토리모드 ]





■ 블리치 HTS6의 최대 변화, 소울코드를 모아서 강력해져라.



시리즈를 거듭해 나갈수록 새로운 시스템을 선보였던 블리치HTS는 6편에 와서 굉장히 매력적인 시스템을 선보이고 있다.


일반적으로 대전격투게임은 각각의 캐릭터들이 가진 콤보와 필살기를 조합해 상황에 맞는 대처를 잘 해 상대를 쓰러뜨리는 것이 목표가 된다. 그러나 이 콤보와 필살기라는 것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캐릭터간의 상성이 발생하고, 밸런스 문제가 나오고,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쉽게 질린다는 단점을 가지게 된다.


블리치HTS6는 캐릭터의 특징을 변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인 '소울코드'를 추가했다.


게임 모드 중 챔피언십이나 아케이드 모드에서 소울코드를 얻을 수 있는데, 이 소울코드는 캐릭터의 능력을 강화시켜 준다. 가드를 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가드가 되는 오토가드, 상대의 공격에 대미지를 입더라도 대미지모션이 나오지 않는 슈퍼아머, 상대의 파워업 상태를 강제 해제하는 소울리버스 등 다양한 형태의 소울코드가 존재한다. 이 소울코드를 어떻게 셋팅하느냐에 따라 같은 캐릭터도 완전히 다른 전투 양식을 구사하게 되는 것이다.


특정 미션을 클리어하여 얻을 수 있는 오리지널 소울코드에 추가로 다양한 미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60여종의 소울파츠 조합까지 추가되기 때문에 전투스타일은 그야말로 다양하게 분화된다. 일반적으로 대전액션게임의 고수와 하수간의 차이가 컨트롤 실력에 좌우되는데, 블리치HTS6는 여기에 캐릭터의 성격 자체를 변화시키는 소울코드가 추가되면서 전략적인 요소까지 승패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 각종 미션을 통해 소울코드나 소울파츠를 얻게 된다. ]




[ 소울파츠를 모아 커스터마이징을 통해 자신만의 소울코드를 만들 수 있다. ]




■ 태그팀과 싱글팀의 밸런스 격차 줄이기 성공, 혹은 역전?



전작인 블리치HTS5가 두 명의 캐릭터가 태그팀을 이뤄 2VS2 형식으로 전투를 하는 것이 기본이었고, 1VS2 대전은 불가능했다. 상식적으로도 두 명이 한 명이랑 싸우면 유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블리치HTS6에서는 싱글팀과 태그팀의 전투시스템에 차별을 둬 2VS1에서 오는 밸런스 문제를 해결했다.


소울 게이지가 모두 찼을때 사용할 수 있는 파워업 시스템에서 그 성능적인 차이가 있고, 싱글팀일 경우에만 사용할 수 있는 캔슬기도 추가되었다.


조금 웃긴 것은 싱글VS태그 대전을 위해 추가된 시스템들이 오히려 싱글 캐릭터의 능력을 너무 올려버려 밸런스가 역전되는 일도 있다는 것이다. 모든 캐릭터가 그런것은 아니지만 싱글 캐릭터의 캔슬기는 활용여부에 따라 정말 사기적인 콤보를 만들어낸다.


이렇게 약간의 삐걱거림은 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1VS2 대전이 가능하다는 것은 굉장히 멋진 변화이다.



[ 싱글 또는 태그, 어떻게 출전해도 좋다. ]



[ 1:2 대전도 가능해졌다. ]




■ 난이도 개선은 합격점, 그러나 아직도 밸런스는..



전작인 블리치HTS5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치명적인 문제점이라 느꼈던 것은 '바보같은 AI'였다. 난이도를 최고로 올려도 특정 기술을 사용하면 100%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는 어이없는 경우가 많았다. 휴대용 게임기인 PSP용 게임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네트워크 플레이가 제한적이라 컴퓨터와 대전을 하는 일이 많은데, 난이도 문제가 있다고 하면 그것만큼 재미 없는 경우도 없다.


다행히도 블리치HTS6는 AI가 대폭 개선되었다. 최소한 전작처럼 특정 공격 패턴 하나에 무너지는 일은 없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소울코드라는 새로운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후반으로 갈 수록 그 응용방법이 다양해지면서 AI가 이를 따라오지 못하는 경우를 발견할 수 있었다. 대전액션게임에서 가장 치명적이라 할 수 있는 것 무한 콤보와 같은 기술도 가능한 것이 확인됐다.


또한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블리치HTS6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70여개가 넘는 다양한 캐릭터는 밸런스에서 역시나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흔히 사기 캐릭이라고 불리는 성능 좋은 캐릭터도 있고, 반대로 너무나 답답한 약체 캐릭터도 있다. 2인조가 되는 태그팀으로 경기를 하거나, 소울코드를 이용해 이런 상성 문제를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지만, 수십명의 비주류 캐릭터들이 벤치를 지키게 되는 것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물론 전작에 비해 캐릭터들의 밸런스 문제는 크게 격감했지만, 여전히 주인공인 '이치고'를 비롯한 주연급 캐릭터들은 최상위권 밸런스를 자랑하고 있다. 원작에서 강력한 캐릭터와 약한 캐릭터가 공존하고 있다고 대전액션게임에서까지 원작의 밸런스까지 닮아간다는 것은 조금 이상한 일 아닌가.





■ 정발은 했지만 한글화는 없다.



블리치HTS6를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코리아에서 정식 발매를 한다고 발표했을 때, 한글화를 기대했지만 역시나 일본어판 + 한글 매뉴얼 형태로 발매되었다.


일반적으로 대전액션게임에서 언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그리 높은 편은 아니지만, 블리치HTS6는 원작에 따른 시나리오 모드가 게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다른 대전액션게임류에 비해 언어장벽에 따른 영향은 크다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블리치HTS6의 핵심 시스템이라 할 수 있는 소울코드, 소울파츠 조합은 일본어를 모른다면 이해할 수 없는 시스템으로 전락하고 만다. 한글 매뉴얼을 제공하고 있지만, 소울파츠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찾아볼 수 없다. 최소한 한글 자막, 문자 번역 정도라도 지원했다면 게임이 훨씬 재미있었을 것이라 확신한다.



[ 일본어로 뭐라고 하고 있군... -_-; ]




일부에서는 '한국 콘솔게임 시장의 규모를 생각하면 정식 발매만 해줘도 고맙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장 상황은 조금 다르다고 해도 닌텐도 코리아가 Wii나 NDS용 게임들을 발매할 때는 100% 한글화 정책을 사용하고 있는 것과 비교해보면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의 정책에 아쉬운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 6년째 우려낸 사골, 점점 더 진해지고 있는 국물



휴대용 게임기라는 PSP가 가지는 한계를 생각하면 블리치HTS6는 굉장한 수작이라고 평가한다.


많은 대전액션게임들이 PSP용으로 이식되고 있고, 그 중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게임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아케이드용으로 디자인되어 출시된 게임들이 그대로 PSP에 적용되는 것이 과연 옳바른 이식일까라는 회의적인 생각이 들곤 한다.


예를 들어, 대전격투게임의 ↓↘→ + P 라는 그 흔한 커맨드도 PSP에서 사용하려면 손가락이 꼬이고,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는 컨트롤은 포기할 수준이 되어버리기 일수이기 때문이다. 물론 PSP로도 온갖 현란한 손놀림을 보여주는 괴수들도 있지만 일반적인 이야기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블리치HTS는 시리즈는 대전액션게임치고는 굉장히 쉬운 조작이 가능하다. 단지 타이밍에 맞춰 버튼을 누른다거나, 방향키와 버튼을 누르는 간단한 조작만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대전액션게임에서 쉬운 조작이 장점이라 말하긴 곤란하지만, 휴대용 게임기라면 이것은 분명한 장점이 된다. PSP라는 플랫폼에 최적화된 대전액션게임이라는 느낌이랄까.


물론 '블리치' 라는 원작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게임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고, 비한글화 문제로 게임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일본어로 표시된 용어들을 찾아보는 등의 추가적인 수고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블리치HTS6는 원작을 집대성한 스토리모드, 가장 많은 캐릭터, 태그팀과 싱글팀의 매칭 문제, 설정된 캐릭터의 한계를 넘어서는 소울코드 시스템 등 가장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돌아왔다고 말할 수 있다. 1,2,3,4편보다 5편이 좋았고, 5편보다 6편이 더 좋아졌다. 시리즈를 거듭해 나가면서 점차 나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우려낼수록 진한 맛을 주는 사골같다는 느낌이랄까.


아마도 내년 이맘때에는 블리치 히트더사골7이 나올 것이다. 또 한번 우려냈다는 평가를 받을수도 있겠지만 난 그 국물맛이 좋다. 제발 7편은 한글화되어 정식 발매되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