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워치 리그 시즌2에 새롭게 합류한 밴쿠버 타이탄즈의 우승이 주는 의미는 남다르다. 새 시즌이 시작하자마자 탄생한 '로열로더'가 전승 우승이라는 기록까지 세웠기에 더 그렇다. 메이저 대회라고 할 수 있는 오버워치 월드컵과 리그만 봤던 해외 팬과 매체라면, 이런 현상이 더 신기하게 다가올 것이다.

사실, 밴쿠버가 리그 우승 이전까지 내세울 건 컨텐더스 우승이라는 타이틀밖에 없었다. 이미 세계 여러 지역에서 컨텐더스 우승팀이 나왔기에 리그 입장에서 밴쿠버의 경력이 크게 눈에 띄진 않을 수 있었다. 컨텐더스 출신이 리그에서 활약하는 경우 역시 드물었으니까. 오버워치 월드컵에서도 개인 기량으로 가능성을 보여주며 리그에 합류한 선수들도 있었지만, 좋은 리그 성적까진 보장하지 못했다. 밴쿠버 역시 리그로 올라오면서 기존 컨텐더스 출신 선수들에 대한 편견을 넘어서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밴쿠버는 보란 듯이 그런 편견을 넘어섰다. 막상 리그가 시작되자 세트 득실까지 벌리는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연승을 이어갔다.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는 시즌1의 슈퍼스타, 국가대표가 없는 팀이 리그를 휩쓴 것이다.

그들에게 주어진 무기는 단 하나,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팀원들과 함께 올라왔다는 것. 새로운 팀원과 호흡을 맞추기 시작한 다른 팀원과 유일하게 다른 점이었다. 그리고 확실한 밴쿠버 타이탄즈만의 무기로 오버워치 리그 스테이지1의 타이틀을 차지할 수 있었다.


1인 '캐리'보다 빛난 6인 '시너지'
한 팀으로 컨텐더스-OWL 우승, 결국 호흡


첫 시즌을 돌아보면, 오버워치 리그는 '슈퍼스타' 한 명을 만들어내는데 전념해왔다. 인터뷰부터 하이라이트, 금주 TOP5, 최고의 선수를 뽑는 영상을 보면 에임 좋은 선수가 등장해 상대를 멋지게 휩쓰는 장면이 나왔다. 위도우메이커, 트레이서, 겐지, 파라와 같은 화끈한 딜러가 중심이었던 시기는 특히 그랬다. 그동안 강팀에 슈퍼플레이를 펼치는 선수가 많았던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으니까.

그런데 이번 시즌2 스테이지1은 달랐다. 하이라이트 장면에 잘 노출되지 않은 곳에서 묵묵히 팀플레이를 해왔던 밴쿠버 타이탄즈가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것이다. 그대신 오버워치에서 팀 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면서 말이다.

결승전에서 밴쿠버의 이런 능력이 결국 한 세트 차이를 만들어냈다. 상대인 샌프란시스코는 개인 기량의 정점인 선수들이 모여있었다. 월등한 딜량 1위에 궁극기 채우는 속도를 자랑하는 '시나트라'의 자리야-엄청난 대지분쇄 적중률을 자랑하며 P.O에서 각성한 '슈퍼' 라인하르트는 결승전에서도 위협적이었다.

▲ '슈퍼' 대지분쇄에 쓰러진 아군 살리는 '짜누' 디바

그렇지만 그들의 슈퍼플레이는 밴쿠버의 합에 막히고 말았다. 위 장면처럼 아군이 대지분쇄에 쓰러졌을 때, '짜누' 최현우의 디바가 상대를 밀쳐내며 보호해주는 플레이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반대로, 샌프란시스코의 중력자탄이나 대지분쇄가 제대로 적중했음에도 킬을 못내는 장면에서 밴쿠버와 합의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공격에서는 '학살' 김효종의 브리기테가 뛰어난 플레이로 칭찬을 한몸에 받았다. 핵심을 공략하는 정확한 판단으로 찬사를 받았지만, 브리기테 혼자 만들어낼 수 있는 그림이 아니었다. 방패 밀쳐내기로 무장을 해제한 상대에게 순간적으로 팀원들이 딜을 제대로 넣어야만 킬로 이어낼 수 있다.

팀원과 콜, 포커싱이 밑바탕에 깔려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보면 된다. '슬라임' 김성준 루시우가 먼저 들어가 소리파동으로 무장을 해제시키면서 들어가는 플레이. 다소 무리하게 진입하는 '범퍼' 박상범의 라인하르트 역시 마찬가지다. 핵심 딜러라고 할 수 있는 자리야를 맡은 '서민수'는 어그로를 끄는 '범퍼'가 있었기에 자신이 활약할 수 있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밴쿠버 역시 국내 리그를 봐왔던 팬들이라면 개인 기량이 떨어지는 팀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초창기 러너웨이 시절부터 이름을 날렸던 '학살'의 겐지, 둠피스트를 비롯한 딜러로 APEX에서 이변을 만들어낸 '서민수', 여전히 강력한 힐러진까지 많은 팀원들이 하이라이트 장면을 욕심낼 만한 기량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아군의 포커싱에 더 집중하고, 위험한 아군을 살리는 데 힘을 써냈기에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

슈퍼플레이가 없는 3탱-3힐 메타가 재미없다는 말은 예전부터 나오곤 했다. 승리 공식과 개인의 캐리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결승전에서 그들이 추구한 합이 무엇인지 드러나면서 긴장감 넘치는 장면을 완성했다. 서로를 케어해 가까스로 살아남은 팀원들이 의외의 결과를 만들어내면서 그동안 가려졌던 팀 합이 잘 드러나는 경기를 만들어냈다. 결국, 오랫동안 국내 오버워치 APEX-컨텐더스 시절부터 함께 해왔던 그들의 합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 '학살-짜누' 칼 같은 자폭 연계 (출처 : Overwatch League Youtube)



컨텐더스 출신의 대반란!
컨텐더스 KOR 어디까지 갈지 모른다

▲ 현 샌프란시스코 쇼크 '라스칼' 김동준

오버워치 리그가 개막하기 전 콩두 판테라의 '라스칼' 김동준은 "오버워치 리그에 참가하면 현재 팀원들과 함께할 수 없다는 게 아쉬워요. 리그에 참가하기 위해서 새로운 팀을 꾸려야 하잖아요. 다른 팀과 비교해보더라도 우리 팀 전력이 강하다는 자신감이 있는데, 팀원들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다른 팀 전력을 보강해주고 싶지 않아요"라는 말을 남긴 적이 있다. 이후, '라스칼'은 런던 스핏파이어에서 시작해 댈러스 퓨얼-샌프란시스코 쇼크로 이적하면서 1년 만에 힘들게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많은 팀들이 시즌1부터 새 팀원 영입과 리빌딩에 나서면서 로스터가 바뀌었다. 국내 무대에서 활동하던 팀이 주전 선수 그대로 리그에서 활동하는 경우는 없었다. 다만, 선수 중에는 계약에 따른 변화보다 '라스칼'처럼 기존 팀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시즌2에 와서 밴쿠버의 우승으로 컨텐더스 팀이 리그로 가서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는 선례가 나온 것이다. 컨텐더스부터 함께 해온 팀이 리그로 갈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줬다. 예전에는 오버워치 리그로 합류하기 위해 개개인이 눈에 띄는 플레이를 보여줘야 했다면, 이제 한 팀의 호흡 역시 기량을 보여줄 수 있는 지표가 된 것이다.

지금도 많은 컨텐더스 선수들이 경기에 나서고 있다. 모두가 매번 최고의 성적으로 주목을 받을 순 없는 상황. 그렇지만 누군가는 이 팀과 함께 끝까지 가더라도 리그에 올라가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4회의 준우승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러너웨이 1기, 밴쿠버 타이탄즈가 보여준 결과처럼.

나아가, 올해부터 리그의 주목을 받을 만한 컨텐더스 최상위권 팀 간 세계 대회가 열린다. 지역 쇼다운인 '퍼시픽 쇼다운-아틀란틱 쇼다운'에 이어 마지막 단계인 '건틀렛'까지 컨텐더스 팀들이 전 세계에 자신의 기량을 뽐낼 만한 기회가 생긴 것이다.

앞으로도 컨텐더스와 리그 사이의 변화는 계속 일어날 예정이다. 변화의 중심에는 밴쿠버 타이탄즈가 있다. 리그에서 남은 시즌2를 어떻게 보내느냐 역시 컨텐더스에 큰 영향을 줄 것이다. 오버워치 리그 시즌1을 돌아보면, 절대 강자는 없었고 스테이지마다 메타는 계속 변했다. 변화 속에서도 밴쿠버 타이탄즈가 컨텐더스때부터 다져온 자신들만의 무기를 잘 살릴 수 있을까. 밴쿠버의 행보는 앞으로도 많은 컨텐더스팀의 본보기가 될 것이다.



이미지 출처 :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