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간으로 7월 13일, 유비소프트의 배틀로얄 FPS '하이퍼 스케이프'가 오픈 베타를 시작했다. 안정된 걸음을 선호하는 유비소프트답게 장르 트렌드의 측면에서는 꽤 느린 편이다. 굳이 여기서 하나씩 말하지 않아도 이미 유수의 기업들이 만든 배틀로얄 게임만으로도 줄을 세울 수 있을 정도니까.

퍽 특이한 상황이다. 그간 유비소프트가 메인스트림으로 밀어온 게임들은, 다른 개발사의 게임에서 찾아보기 힘든 유비소프트만의 게임 요소가 얼룩덜룩 묻어 있었다. 'GTA'나 '어쌔신 크리드'나 똑같은 오픈월드 액션 게임이지만, 누구도 두 게임을 비슷한 게임으로 보진 않는다. 하지만, 누가 봐도 '하이퍼 스케이프'는 장르적 부분에서 타 게임사의 게임들과 차이가 없는 생짜 배틀로얄 게임이다.

하이퍼 스케이프의 어깨는 무겁다. 지금까지 유비소프트의 대표 게임들이 세계 구현과 볼륨, 고증 등 다른 개발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유의 강점을 내세웠다면, 하이퍼 스케이프는 개발력 대결을 위한 주자다. 배틀로얄 게임은 많지만, 살아남는 게임은 소수다. '하이퍼 스케이프'가 살아남으려면 배틀로얄 장르의 기본을 갖추되 타 게임에서 보기 힘든 매력을 변주해야 한다.

오늘 중점적으로 살펴볼 부분이 그것들이다. '하이퍼 스케이프'는 배틀로얄로서 가져야 할 기본적인 모습, 그리고 다른 배틀로얄에서 보기 어려운 매력을 갖추고 있는가?



가장 빠른 배틀로얄

'하이퍼 스케이프'의 특징으로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부분은 게임의 컨셉이다. 지금껏 성공적인 모습을 보여준 대부분의 배틀로얄 게임은 대부분 좁은 영역에 100여 명의 사람을 우겨넣고, 최후의 한 명이 살아남을 때까지 싸운다는 컨셉을 전제로 개발되었다. '포트나이트'는 다소 다른 모습을 보여주지만, 배틀그라운드나 에이펙스 레전드, 콜오브듀티: 워존 등의 게임들은 모두 그렇다.

중요한 건 '포인트'다. '누가 모두를 죽이냐'가 아니라 '누가 마지막까지 살아남느냐'가 앞서 언급한 게임들의 포인트다. 회복 키트나 구급약, 방탄판을 빽빽히 챙기고, 무작정 싸우기보다는 기도비닉을 유지하며 적의 위치를 파악하고, 최대한 소모품의 사용을 억제하면서 효율적인 움직임을 판단해야 승리가 보이기 마련이다.

▲ 일단 살아야 뭐든 하는 기존의 배틀로얄

'하이퍼 스케이프'는 다르다. 타 게임들이 게임을 길게 보면서 효율적인 생존을 추구해야 한다면, '하이퍼 스케이프'는 짧은 시간 내 효율적인 전투를 추구한다. 시작부터 싸운다고 해도 지지만 않으면 손해볼 일이 없다. 회복약이나 구급 키트 따위의 소모품은 아예 없다. 치료 능력으로 전투 중에도 실시간으로 체력 회복이 가능하며, 비전투시 체력은 자동으로 차오른다.

다른 게임들이 전투 후 상황(타 분대의 개입, 소모품의 과다 소모, 좁혀지는 전장 등)을 고려해 전투를 할지 말지 정해야 한다면, '하이퍼 스케이프'에서 고려할 건 이길지, 질지에 대한 가늠 뿐이다. 이기기만 하면 아무것도 손해볼 일이 없으며, 죽은 분대원도 상대만 처치하면 얼마든 살릴 수 있다. 본인이 싸움을 굉장히 잘 한다면? 뇌를 깨끗이 비우고 다짜고짜 싸우면 된다. 그러다 보면 이긴다.


▲ 생각 이상으로 빠른 전투 페이스. 뒤는 걱정말고 일단 싸우면 된다.

'하이퍼 스케이프'의 시스템 또한 전투 상황에 대한 스트레스를 줄이고, 부담 없이 전투 상황에 돌입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특수 능력인 '핵'은 기본 쿨다운이 매우 짧은데다 같은 종류의 핵을 습득해 강화할수록 더더욱 짧아지는데, 최종 강화시 10초가 채 되지 않는다. 활용도는 무궁무진. 회복 능력으로 전투 지속력을 높이거나, 장갑, 투명화로 전투 이탈도 가능하고, 충격파 능력으로 직접 공격을 가하거나 바닥에 사용해 엄청난 높이로 점프 후 고지를 선점할 수도 있다.

이러한 '핵' 덕분에 전투 돌입과 전투 이탈이 매우 용이하기 때문에 수틀린다 싶으면 바로 도망가 다른 기회를 노려볼 수 있다. 적이 계속 도망가서 짜증이 날 수도 있지만, 원래 그런 게임이다. 어차피 맵이 작아질수록 누군가는 반드시 탈락한다.


▲ 어떻게든 결국 승부는 갈린다.

전투 돌입, 이탈이 빠른 만큼, 전투 페이스도 타 배틀로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그나마 '에이펙스 레전드'의 전투 페이스가 이에 근접하긴 하지만, 이중 점프로 지붕 사이를 날아다니고, 십수 미터 단위의 점프를 쉴 새 없이 하는 하이퍼 스케이프의 속도를 따라가긴 어렵다.

이른바 '패스트 페이스(Fast-Paced)' 게임. 전투 속도는 매우 빠르지만, 요즘 게임답지 않게 TTK(Time to Kill: 전력으로 화력을 쏟아낼 시 상대 처치까지 이르는 시간)도 1초 내외인 타 게임에 비해 무척 긴 편이라 한번 전투가 벌어지면 수십 초는 쉴 새 없이 총알을 주고받아야 한다.

▲ 타 게임에 비해 TTK가 긴 편이다.

이런 부분들이 하나로 모여 '하이퍼 스케이프'만의 게임성을 만들어낸다. '뜬금사'를 당하는 경우도 적고, 마음만 먹으면 전투 이탈이 매우 쉬운데다 뒤를 생각할 필요 또한 상대적으로 적다 보니 큰 고민 없이 싸우고, 또 싸운다. 그러다 밀리면 도망쳤다가 또 싸우고.

이 과정이 맵이 좁아지며 누군가 끝장날 때까지 반복된다. 생존에 초점을 둬 정적이면서도 전술적인 움직임을 지향하는 타 배틀로얄 장르와의 차이. '하이퍼 스케이프'의 변주는 생각보다 꽤 쓸만하다.

▲ 길로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지붕이 곧 길


지금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앞서 말했듯, 하이퍼 스케이프는 다른 배틀로얄 게임들과 확실히 차별화된 면모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그 말이 곧 이 게임이 완벽히 성공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뜻은 아니다. 오픈베타 초기의 게임이 다 그러하듯, 하이퍼 스케이프 또한 아직 부족한 점이 여실히 보이는 게임이다. 현재 가장 논란거리인 핵(특수능력)과 무기 밸런스는 언급을 피하겠다. 이 부분은 계속해서 조금씩 조정해나갈 부분이고, 그렇기에 오픈 '베타'인 것이니까.

먼저, 맵 디자인이 퍽 단순하다. 기존 배틀로얄 게임들을 보면 알 수 있다시피, 배틀로얄 장르는 최대한 다양한 환경을 하나의 맵에 우겨넣기 마련이다. '배틀그라운드'에는 고산지, 시가지, 수풀, 황야, 그리고 지하 벙커와 강이 마련되어 있다.

▲ 게임의 무대인 '네오 아카디아'

'에이펙스 레전드' 또한 습지와 실내, 밀림에 이르는 환경을 구현했으며, 시즌3부터는 용암 지대와 빙설 지대까지 구현했다. 하지만 하이퍼 스케이프는 미래 도시 '네오 아카디아' 하나 뿐이다. 맵 갯수가 적다는 게 아니다. '네오 아카디아' 내부의 모든 건물과 시설들이 거의 다 비슷한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무중력(Zero G)'과 같은 특별한 기믹이 들어간 지형도 분명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전투는 그저 비슷비슷한 건물들의 옥상 위에서 벌어진다. 애초에 '패스트 페이스'를 기준으로 잡은 게임이다 보니 전술적인 침투나 은폐 등을 해야 할 필요가 적긴 하지만, 맵 전역이 모두 비슷한 모양새를 보이는 건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물론, 차후 게임이 성공적으로 서비스되면 맵이 더 추가되기야 할 것이니 일단 지금 시점에서 말하는 것이다.

▲ 달라 보여도 다 비슷비슷

두 번째는 '핵'에 대한 대응책의 미비다. 이제는 대부분 게이머가 FPS하면 핵은 어쩔수 없다고 생각하는 단계에 이르긴 했지만, 그렇다고 방치해도 될 문제라는 건 아니다. 비인가 치트 프로그램은 작게는 게임 한 판을 망칠 뿐이지만, 크게는 게임 자체의 흥행에 영향을 준다. 불쾌한 경험을 하게 된 게이머들이 게임사에게 품게 되는 불신은 또 별개의 문제다. 라이엇 게임즈가 '발로란트'의 서비스를 앞두고 '뱅가드'라는 초유의 무리수를 던진 것만 봐도, 핵에 대한 업계의 입장이 어떤지는 대충 알 수 있다.

13일, 하이퍼 스케이프가 오픈한 직후 인터넷에 검색해본 결과, 매우 쉽게 핵 판매자를 찾아낼 수 있었다. 꽁꽁 숨겨져 있지도 않았다. 오픈 베타 시작을 기점으로 안티 치트와 관련된 부분을 업데이트하긴 했지만, 아직도 몇 판을 하다 보면 한 번 정도는 치트 유저를 만날 수 있을 수준. 가끔은 건물 안에 있는데 총알을 맞는다거나, 닿지도 않을 거리에서 샷건을 맞추는 등 너무 티가 나는 치트도 보인다.

▲ 검색 한 번에 찾은 핵 판매 사이트

물론, 유비소프트가 이를 그냥 두고 볼리는 없다. 그들은 이미 '레인보우 식스: 시즈' 서비스 과정에서 치트 프로그램으로 오랜 기간 고통받았던 경힘이 있으며, 하이퍼 스케이프의 치트도 어떻게든 잡고자 하긴 할 것이다. 하지만, 기존의 방지 프로그램 '배틀아이'로는 한계가 보이고, 온라인 FPS엔 흔한 신고 기능도 아직 없는 상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빠른 대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유비소프트의 이자 도전


정리하자면, '하이퍼 스케이프'는 베타 단계에 있으며 부족한 점도 많은 게임이지만, 기존의 배틀로얄과는 다른 방식으로 풀어낸 배틀로얄이다. 빨간 국물들만 존재하던 찌개 시장에 갑자기 나타난 맑은 전골과 같달까.

퀘이크, 언리얼 토너먼트 등 아레나류 패스트 페이스 FPS가 모습을 감춘 이후에도, 빠른 페이스의 슈터 게임은 잊을만 하면 한 번씩 모습을 보였다. '에이펙스 레전드'의 전신인 '타이탄폴'이 그렇고, 리부트 후 인기를 끈 '둠' 시리즈나 한때 '국민겜'이었던 '오버워치'가 그렇다. 하지만, 그간 '배틀로얄'이라는 갈래에서 이런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 '에이펙스 레전드' 정도와 비교하면 안된다. 이전엔 없었던 속도감

애초에 패스트 페이스 슈터와 배틀로얄은 불협화음에 가깝다. 배틀로얄의 승자는 한 팀이고, 승리에 이르는 조건은 언제나 단기적 전투의 승리가 아닌, 생존에 있었으니까. 전투에 가용 가능한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정신 없이 치고받는 고속 슈팅 게임의 특징과 최대한 효율적인 소모를 해가며 훗날을 대비해야 하는 배틀로얄은 퍽 어울린다 보기 어려웠다.

'하이퍼 스케이프'는 패스트 페이스 슈터와 배틀로얄의 조화라는 물음에 대한 유비소프트의 답이다. 탄약을 제외한 모든 소모품을 없앴지만, 대신 무기와 능력을 반복 파밍해 강화할 수 있게 만들어 둠으로서 파밍의 필요성을 만들었다. 전투는 패스트 페이스 특유의 정신 없이 치고받는 그 감성 그대로 유지하되, TTK를 늘리고 전투 이탈을 쉽게 만들어 과도한 전투 스트레스를 줄였다. 그러면서도 맵은 점점 줄어들기 때문에, 결국 승자는 갈린다.

▲ '택티컬'에 익숙한 기존 배틀로얄 게이머를 잡을 수 있을까?

동시에, 하이퍼 스케이프는 후발 주자로서 배틀로얄 씬에 출사표를 던진 유비소프트의 도전이다. 기존의 익숙한 생존 공식보다 본능적 전투에 포커스를 둠으로서 차별화를 꾀했지만, 택티컬한 슈터를 선호하는 게이머들의 니즈 충족은 어렵다. 게임의 발전 가능성은 충분하지만, 기존의 공식에 익숙한 게이머들이 호감을 표할지는 아직 의문이다.

뒤 걱정 없이 신나게 싸울 수 있지만, 배틀로얄 특유의 쫄깃함이나 긴장은 다소 덜어낸 가벼운 부담의 배틀로얄. '하이퍼 스케이프'가 차지할 이상적인 포지션이다. 게임은 충분히 잠재력을 갖췄다. 이제 저 포지션을 위해 필요한 건, 유비소프트의 꾸준한 사후 업데이트와 게이머들의 관심 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