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에서 만끽하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모험의 재미


수많은 이들이 여행을 떠나고, 모험과 탐험에 가슴설레는 이유는 그것이 지금껏 경험해본 적 없는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 나서는 여정이기 때문일 겁니다. 누구나 마음속으로는 세상 근심 다 털어버리고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그 어떤 곳으로 떠나고 싶은 마음들을 은연중에 가지고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있어 가슴설레는 모험이 가득한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여행을 계획으로만 끝내지 않고 실행으로 옮길 수 있는 굳은 의지와 충분한 체력, 그리고 여행에 할애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나 경제적인 부담도 무시할 수 없겠죠. 오늘은 꼭 여행을 떠나고 말겠다는 굳은 의지로 운동화끈 질끈 조여 매고 길을 나선다 하더라도, 시간과 자금이 충분치 않으면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미지의 영역은커녕 아스팔트 깔린 번화가를 벗어나기 힘든 것이 현실이죠.

'큐리어스 익스페디션2(Curious Expedition 2)'는 이처럼 여건상 어디론가 떠나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모험이 주는 스릴을 포기할 수 없는 이들에게 제격인 게임입니다.

게임명 : 큐리어스 익스페디션2
장르명 : 어드벤처, 턴제 전투, 로그라이트
출시일 : 2021.01.28.
개발사 : Maschinen-Mensch
서비스 : Maschinen-Mensch
플랫폼 : PC(Steam) PS4/5, XBO/S/X, NSW



모험의 배경은 19세기 중순, 모험가들의 도시 '파리'


큐리어스 익스페디션2(이하 큐리어스2)는 19세기 중순의 파리를 배경으로 하는 턴 기반 탐험 로그라이크 게임입니다. 유저는 탐험가 클럽 소속 탐험가가 되어 미리 준비한 자원, 그리고 함께 모험에 나선 대원들의 정신 건강을 관리하며 탐험 목적을 성공적으로 완수해야만 합니다.

큐리어스2의 모험은 단순히 오지를 탐험하며 해당 지역에 서식하는 몬스터를 사냥하면 성공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실제로 모험길에 오르기 위해 필요한 사전 준비를 갖추는 것부터 시작하여, 신대륙에 도착한 탐험가들이 마주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과 사건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특징이죠.

술집에서 함께 여행을 떠날 동료를 모집하고, 마침 근처에 있던 자본가와의 협상을 통해 더 높은 후원금 지원을 보장받고, 새롭게 모집한 동료들을 위한 장비를 암시장 밀매꾼을 통해 구입하고, 파리 시내에 있는 3개의 대형 모험 클럽 중 하나를 선택하여 물자를 보급받으면 본격적인 모험 준비가 끝납니다.

모험 준비 과정에서는 가끔 시세보다 저렴하게 나온 물건들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이러한 물건들을 미리 구매한 뒤 탐험 중에 만날 수 있는 현지 원주민들과 거래하면 생각지도 못했던 보상을 얻게 되기도 합니다. 차익거래 방식의 교역이나 각기 다른 성격과 능력을 지닌 동료 모집 과정에서는 마치 '대항해시대' 시리즈를 플레이하는 것 같은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협회에서 요구하는 임무에 따라 모험의 목표는 항상 정해져 있지만, 그 목표에 이르기 위해 나아가는 길은 매번 달라집니다. 그곳에서 어떤 새로운 만남과 발견, 사건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결코 예상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모험의 묘미거든요.

▲ 동물로만 파티를 구성할 수도 있고

▲ 동료와 사랑에 빠질 수도 있다.

▲ 정해진 공식 없이 나만의 모험을 꾸며볼 수 있는 것이 '큐리어스2'의 매력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아주 차분한 여행


큐리어스2는 미지의 세계를 향한 모험을 주제로 하는 게임이지만, 격렬한 액션이 주가 되는 게임은 아닙니다. 오히려 차분하고 정적인 게임이죠. 주사위를 굴려 다음 행동을 정하고, 게임판 위의 말을 움직이는 보드 게임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갖가지 위협이 도사리는 미지의 섬을 탐험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적과 싸우지 않을 수 있을 정도이니, 플레이할수록 손에 착착 감기는 컨트롤의 재미나 화끈한 액션을 기대하는 유저들에게는 다소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게임의 기본적인 흐름이 정적일 뿐이지, 게임 속에서 유저가 맞이하게 되는 상황들은 결코 차분하지 않습니다. 한 칸 잘못 움직였을 뿐인데 애지중지 키워왔던 사냥개가 전염병으로 유명을 달리하기도 하고, 사랑을 약속할 정도로 가까워졌다 생각했던 동료 캐릭터가 새벽 사이에 소중한 모험 물자를 전부 챙겨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물론 마냥 절망적인 일들만 있는 것은 아니죠. 전염병으로 모든 동료를 잃고 여행을 포기해야 하나 고민하던 순간에 여행 초반에 파티를 이탈했던 동료가 다시 돌아온다든지, 별생각 없이 도와줬던 원주민이 잊을만한 참에 은혜를 갚겠다며 찾아오는 일도 있었거든요. 마치 재치있는 던전마스터가 주도하는 클래식 RPG를 혼자서 즐기는 것 같다고나 할까요?


복잡한 조작 없이 누구나 자신의 페이스대로 느긋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것은 분명 매력적인 부분이지만, 자칫 잘못하면 게임의 템포가 한없이 늘어져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전작에선 이러한 부분이 단점으로 지적되기도 했죠.

큐리어스2는 게임이 한정 없이 늘어지게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불가사의한 안개' 시스템을 적용했습니다. 동료들의 멘탈을 유지하기 위해 폭포 아래에서 휴식을 취할 때도, 맵에 등장한 물음표 표식을 확인하기 위해 잠시 한눈을 팔았을 때도, 이 불가사의한 안개는 계속해서 숨통을 조여오듯 맵 전체를 잠식해나갑니다. 결국엔 맵 전체를 가득 메워 모험의 끝을 알리는 이 보라색 안개는 책을 읽는 것처럼 담담하게 진행되는 탐험 속 조미료가 되어 게임의 긴장도와 스릴을 높여주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탐험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도시로 돌아오면 보상으로 세 가지 특성 중 하나를 선택하여 캐릭터를 성장시킬 수 있는 로그라이트 요소가 등장합니다. 등장하는 선택지는 매번 달라지므로, 모험을 계속 반복하더라도 매번 다른 방식의 여정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결국, 큐리어스2에서는 격렬한 액션 요소 없이도 탐험가의 특성과 한정된 자원, 시간, 동료들의 상태를 함께 고려하며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모험을 즐기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순발력이나 복잡한 컨트롤을 요구하는 액션 게임에 지친 이들, 그리고 '엑스컴' 시리즈처럼 매턴 전략을 고민해야 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이들에게 있어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어떤 특성을 골라야 더욱 편안한 모험길이 될 수 있을까?

▲ 맵 타일의 대부분이 보라색 안개로 뒤덮인 상황,
다시 도전하기가 없는 '철인 모드'로 시작했다면 심장이 벌렁거릴 타이밍입니다



단조로운 전투, 보람 없는 클럽 대회 시스템은 아쉽다


큐리어스2의 개발사가 '완전히 새로운 전투 방식'이라며 소개하고 있는 전투는 클래식 RPG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주사위 굴리기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캐릭터별 직업과 레벨, 착용하고 있는 장비에 따라 빨강, 초록, 또는 파랑 주사위가 주어지고, 이를 턴마다 굴려 나온 주사위 눈 만큼 행동을 결정할 수 있는 방식이죠. 캐릭터 레벨이 낮은 초반엔 비어있는 눈이 포함된 주사위를 굴리는 일이 많다 보니, 상황에 따라 주사위를 다시 굴릴 수 있는 아이템을 함께 활용하는 등 전략적으로 임해야 합니다.

분명 공들인 티가 여실히 느껴지는 독특한 방식의 전투인 것은 분명하나, 큐리어스2의 전투 시스템은 입에 발린 말로도 재미있다고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시너지를 갖는 파티 구성원이 어느 정도 갖춰져 있지 않으면 전투지체가 길게 늘어져서 그런지, 게임을 지속하면 할수록 가능하다면 전투에 돌입하는 상황 자체를 피하고 싶어질 정도입니다. 파티원으로 최신 학설처럼 깃털 공룡으로 묘사된 '벨로시랩터'가 함께하는데도 전투가 재미없을 수 있다니, 이만하면 정말 말 다했죠.

한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전투가 항상 필수인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매번 투닥대는 라이벌 일행과 만나 일촉즉발인 상황에도 주사위 굴리기로 전투를 회피할 수 있고, 우호도 점수가 낮아 공격적인 반응을 보이는 원주민들과 맞닥뜨렸을 때도 소정의 선물을 주는 것으로 전투를 대신할 수 있습니다. 피하려면 피할 수 있으니 구체책은 마련된 셈이나, 전투 보상을 더욱 크게 하는 등의 업데이트를 통해 전투 행위 자체에 대한 흥미를 끌어올릴 필요가 있어보입니다.


싱글 플레이 중심의 게임 속 유일한 멀티 요소인 '탐험가 클럽 대회' 시스템도 아쉽게 느껴진 부분 중 하나입니다. 클럽 대회는 파리 시내에 본부를 둔 세 곳의 대형 클럽 중 하나를 선택하여 기여도를 쌓고, 가장 많은 기여도 포인트를 모은 클럽이 보상을 받는 시스템인데요. 1위 클럽에만 보상이 몰리니 자연스레 특정 클럽 하나가 압도적으로 우세하는 모양새가 계속 유지되고, 다른 클럽은 말 그대로 방치됩니다. '1위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접전' 같은 건 애초에 성립하지도 않죠.

만약 뭣도 모르고 최하위 클럽을 선택했다면, 일찌감치 클럽 대회 같은 건 머릿속에서 지우고 얌전히 도전 과제나 찾아 플레이하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습니다. 이러다보니 클럽 합산치보다 개개인의 기여도에 더 비중을 두고, 이에 맞춰 보상과 시즌별 기념 아이템을 지급했다면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클럽 대회가 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남기도 했습니다.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온라인 콘텐츠를 추가할 수도 있겠죠. 현재 게임이 정식 출시된 상황이지만, 개발사가 직접 대규모 콘텐츠 업데이트를 준비 중이라고 밝혔으니, 추후에 추가될 추가 콘텐츠를 기대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 자신이 언더독을 응원한다면, 에디봇이 이끄는 '럭스 연구소' 클럽은 피하십시오





'큐리어스 익스페디션2'는 호불호가 분명히 갈릴 것으로 보이는 게임입니다. 평소 턴제 방식으로 진행되는 느긋한 게임 플레이를 선호한다면, 또 카툰 감성의 비주얼에 거부감이 없다면 한 번쯤 관심 있게 지켜보시길 바랍니다. 머나먼 이국땅인 독일의, 그것도 인디 게임 개발사가 전편에 이어 두편 연속으로 높은 수준의 한국어 자막을 지원하고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거든요.

개인적으로는 모험을 하면 할수록 인간 불신은 심해지고, 믿을 건 소중하고 귀여운 강아지들밖에 없다는 생각만 깊어졌습니다. 모험을 떠날 때 가장 먼저 챙기는 것 1순위도 강아지들의 질병을 치료해줄 충분한 수의 치료약이 되었죠. 여러분은 초반 객기로 '철인' 모드로 시작했다가 열 시간 분량의 소중한 기록을 한순간에 날리는 아픔을 겪지 마시고, 부디 안전하고 즐거운 모험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