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LCK 스프링 스플릿은 '역대급'이다. 이는 중-하위권에 있는 '동부' 팀들이 의외의 경기력으로 상위권 팀을 상대로 이변을 일으키면서 나온 말이다. 하위권 팀이라도 자신 있는 한 방을 욱여넣을 저력을 갖춰, 이전만큼 상위권과 하위권 팀 간 격차가 크게 벌어지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 속에 LCK 플레이오프(PO)로 향할 동부 최고의 팀을 가려야 하는 시기가 찾아왔다. LCK PO 방식이 올해부터 바뀌면서 6위까지 PO 출전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됐다. 이전까지 후반부에 기세를 끌어올렸더라도 PO에 탈락하면서 스프링을 마무리해야 하는 팀이 있었다면, 이제는 한 팀이 남은 한 장의 티켓과 함께 기회를 이어갈 수 있게 됐다.

LCK PO 티켓을 두고 경쟁을 벌이는 팀은 농심 레드포스-리브 샌드박스-KT-프레딧 브리온이다. 이번 시즌 다른 분위기 속에서 달려온 네 팀은 장점-단점-스타일까지 각양각색이다. 올라갈 확률은 농심 레드포스가 가장 높아 보이지만, 다른 팀들이 상위권 팀을 상대로 보여줬던 반전이 PO를 앞두고 다시 나올 가능성 역시 존재한다.







농심 레드포스 - 현 6위

최근 경기 - vs AF 2:0 승, DWG 0:2 패, DRX 2:1 승

남은 경기 - vs KT, BRO

핵심 전력 - 봇 듀오 '덕담-켈린' + '피넛' 다이브

보완점 - '리치-베이' 라인전

위 이미지에서 볼 수 있듯이, 스프링 PO 진출 확률이 가장 높은 팀은 단연 농심 레드포스다. 다른 팀들이 간신히 한 자릿수에 머무를 때, 당당히 70%에 육박하는 진출 확률을 보여주고 있다. 네 팀 중 유일하게 자력 진출이 가능하다는 점 역시 유리하게 작용한다.

남은 대진 역시 농심 레드포스에게 웃어준다. 타 팀들이 상위권인 '서부' 팀들과 대결을 앞두고 있지만, 농심은 '동부' 팀과 대결을 기다리고 있다. 농심은 상위권과 대결에서 이변을 만들어내지 못한 팀이다. 그렇지만 이전까지 중-하위권 팀을 상대로 꾸준히 승리를 쌓아오며 6위 자리를 사수할 수 있었다.

특히, 최근 '동부' 팀을 상대로 보여준 농심 레드포스의 경기력은 압도적이었다. '덕담-켈린' 듀오가 강한 라인전 능력을 바탕으로 판을 만들어 놓으면, 정글러 '피넛' 한왕호가 초반부터 과감하게 다이브를 시도한다. 해당 봇 다이브 상황에서 농심의 합은 칼 같았다. '켈린' 김형규가 포탑과 상대 딜을 끝까지 받아내면서 살아남고, 그 사이에 '덕담-피넛'이 실수 없이 킬을 올린다. 손해 없는 순도 100% 이득을 취하는 장면이 나왔을 때, 경기는 깔끔하게 농심의 승리로 이어지곤 했다. 라인전이 강한 상위권 팀을 상대로 해당 전략이 막히기도 했지만, 중-하위권 팀을 상대로 승리 보증 공식으로 자리잡고 있다.


'하체'가 튼튼한 농심의 탑-미드는 상대적으로 부실하다. 15분 간 상대와 골드 격차 지표를 보면, 라인전 단계에서 '리치-베이'가 얼마나 고전하는지 알 수 있다. '리치' 이재원은 12명의 탑 라이너 중 11위로 상대보다 600 골드나 뒤쳐진다. '베이' 박준병은 711 골드 격차가 나면서 미드 라이너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이는 시즌 초반부터 이어져온 탑-미드 라이너의 약점이라고 할 수 있다.

다행인 건 두 선수 모두 최근 경기에서 나아지는 흐름 속에 있다는 점이다. 탑 라인에 주로 탱커가 자리잡으면서 '리치'가 활약할 수 있는 구도가 나오고 있다. 딜러 메타보다 탑 탱커의 죽음이 경기 흐름에 영향이 크지 않을 뿐더러, 탱커를 제압하는 아트록스가 부활한 상황은 '트록스왕'에게 반갑다. '베이'는 '피넛'과 함께 봇 다이브에 힘을 실어주고, 세트에 이어 세라핀으로 한타 때 제 역할을 해주기도 했다. 라인전 단계를 무난히 넘겼을 때, 충분히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팀이 농심이다.





리브 샌드박스 - 공동 7위

최근 경기 - vs BRO 2:0 승, HLE 1:2 패, GEN 2:0 승, KT 2:0 승

남은 경기 - vs AF, DRX

핵심 전력 - '상체' 3인방

보완점 - '에포트' 로밍, '프린스' 캐리력

리브 샌드박스의 이번 스프링 행보는 막판 스퍼트, 9회말 2아웃 홈런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팀이다. 아직은 스프링 PO 진출이라는 승리를 거두진 못했지만, 경기력만 놓고 봤을 때 1R와 같은 팀이 맞나 싶을 정도로 매서운 기세를 자랑하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역시 봇 듀오다. 2R 초반만 하더라도 '에포트' 이상호가 홀로 무리한 플레이를 시도하다가 끊기면서 흐름을 상대에게 자주 내주곤 했다. '프린스' 이채환이 맡은 원거리 딜러 포지션과 '크로코-온플릭'을 번갈아 기용했던 정글 역시 뒤늦게 자리 잡았다. 그런데 한 번 자리를 잡기 시작하니 젠지 e스포츠와 한화생명e스포츠와 같은 2-3위권 팀을 상대로 경기를 주도할 만큼 단단해졌다.

최근 샌드박스 경기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협곡의 전령 전투다. 라이너의 주도권과 합류가 중요한 전투에서 리브 샌드박스는 앞서 언급한 상위권 팀을 상대로도 승리를 이어갔다. '에포트' 이상호가 의외의 타이밍에 나타나 상대를 끊어주는 플레이를 펼쳤다. 예전처럼 쉽게 쓰러지지 않고, 한타에서 살아남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그러자 1R부터 심상치 않은 지표를 보여줬던 '상체' 삼인방의 진가 역시 제대로 나오고 있다. 탑 라이너 '서밋' 박우태는 15분 간 상대보다 평균 골드 479골드를 앞서가며 해당 지표 1위를 차지했다. 나아가, 샌드박스는 경기 평균 1.26개의 협곡의 전령을 확보했는데, 이는 오랫동안 해당 지표 1위를 유지해왔던 담원 기아(1.23개)의 기록을 넘어섰다.


이런 샌드박스의 경기 흐름은 라이너들의 활약으로도 이어지곤 했다. '서밋-페이트'의 꾸준한 활약은 물론, '프린스'까지 동참하고 있다. '프린스'는 최근 경기에서 캐리력을 끌어올리며, 단독 주전이 된 이유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트리스타나를 상대로 꺼낸 이즈리얼 플레이가 가장 눈에 띄었다.

샌드박스의 현 분위기는 PO 진출 경쟁팀 중에 최고라고 할 수 있지만, 아쉬운 건 뒤 늦게 속도가 붙었다는 점이다. 남은 경기에서 모두 승리하더라도 자력 진출이 불가능할 수 있다. AF, DRX전을 승리하고 PO 진출을 두고 경쟁하는 다른 팀의 경기 결과를 기다려야 하는 입장이다.





KT - 공동 7위

최근 경기 - vs GEN 1:2 패, HLE 0:2 패, LSB 0:2패

남은 경기 - vs NS, DK

핵심 전력 - 정글러 '기드온' 갱킹

보완점 - 라이너들 허무한 잘림, 무리한 한타

KT는 리브 샌드박스와 정반대의 분위기다. 스프링 1R에서 강팀을 상대로 승리하면서 오랫동안 PO 진출권인 6위 자리를 사수했지만, 2R 6연패와 함께 내려온 상황이다.

2R 초반의 흐름은 모호했다. 한타로 중심을 잡았던 1R의 흐름을 끌고 가려다가 오히려 초-중반에 주도권을 내주면서 격차를 좁히지 못했다. 1R에서 힘의 중심을 잡아줬던 '도란-유칼'이 상대 노림수에 허무하게 끊기면서 힘조차 발휘하지 못하고 패배하는 경기가 많았다. 후반 한타만 바라보는 KT는 LCK 팀 중 평균 경기 시간이 34분 44초로 가장 긴 팀이 됐다. 동시에 KT는 경기당 드래곤 획득수(2.24)와 획득률(48.1%) 모두 가장 낮은 팀이기도 하다. 뒷심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드래곤 스택마저 낮다 보니 자신들이 원하는 후반 역시 장담할 수 없게 됐다.

그러면서 최근 KT는 속도를 높이기 위한 변화에 나섰다. 정글러 '기드온' 김민성이 리 신과 같은 카드를 꺼내 갱킹으로 스노우 볼을 빠르게 굴려나갔다. '기드온'은 흐름을 잡기 위해 자신의 성장을 포기할 정도로 확실한 선택을 했다. 해당 플레이가 잘 들어맞는 듯했으나, 정글러가 성장을 포기한 만큼 그 효과가 오래가진 못했다.


KT는 좋은 흐름 속에서 또다시 상대에게 킬을 헌납하며 역전의 빌미를 제공했다. KT 팀원들이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곳을 활보하다가 상대의 노림수에 그대로 당해주고 말았다. 한타 단계로 접어들어도 KT의 합은 아직 완전하지 않았다. '노아-도브'로 딜러진을 교체해 초반 상황을 잘 만들어갔지만, 무리한 한타를 이어가다 다 잡은 승기를 놓치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그렇게 KT의 최근 경기는 허무한 패배가 많았다. 변화하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하고 있지만, 몇 번의 실수로 흐름을 그르치고 있다. 지금까지 시도한 변화의 끝이 실수로 인한 패배라면 아쉬울 수밖에 없다. 더 치열한 경기가 예상되는 이번 주에는 패배와 직결되는 큰 실수는 곧 LCK PO 탈락으로 이어질 것이다.





프레딧 브리온 - 현 9위

최근 경기 - vs LSB 0:2 패, AF 2:0 승, DWG 0:2 패

남은 경기 - vs HLE, NS

핵심 전력 - '엄티'와 '야하롱-라바'

보완점 - 경기력 기복

LCK 측에서 제공한 데이터를 보면, 프레딧 브리온이 PO에 진출 확률이 4.9% 밖에 안 된다. PO 진출을 앞두고 최선을 다 해 경기를 준비해야 하는 입장에서 정말 절망적인 수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프레딧 브리온은 시즌 초반부터 극악의 확률을 뒤집은 경험이 있는 팀이다. 최하위권에 있을 때, 1위를 달리고 있는 담원 기아를 상대로 첫 승을 거뒀다. T1을 상대로도 승리한 바 있다. 승자 예측은 당연히 '서부'의 두 팀을 향했겠지만, 브리온은 보란듯이 많은 이들의 예측을 뒤집어 버리는 저력을 뽐내곤 했다.

저력의 원천은 확실했다. 미드-정글에서 '엄티' 엄성현과 '라바-야하롱'이 주도권을 잡는 것부터 시작한다. '엄티'가 잘 풀렸을 때, 갱킹으로 미드 라인을 확실하게 제압하거나 상대 정글 지역으로 들어가 이득을 취한다. 거기에 '롤킹'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의 슈퍼플레이가 나오면 된다.


아쉬운 건 미드-정글이 주도권을 잃는 순간, 많은 브리온의 계획이 틀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앞서 '리치-서밋'에서 언급한 15분 간 탑 라이너 간 골드 격차에서 '호야' 윤용호는 최하위를 기록 중이다. 상대보다 711 골드나 밀리고 있다. 브리온의 경기에서 '호야'는 묵묵히 탑에서 버티면, 다른 곳에서 이득을 챙기곤 한다. 그런데, 다른 곳에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을 때, 탑이 그대로 밀리면서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라이너들 모두 유리한 구도의 한타에서 활약할 때가 빛나지, 불리한 한타를 억지로 열 때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브리온에게 미리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도록 해주는 미드-정글 주도권이 필수다.

승리 공식이 간파됐는지 브리온의 최근 경기 전적은 좋지 않다. 상위권 담원 기아와 PO 진출을 두고 경쟁하는 샌드박스를 상대로 패배했다. 남은 경기 역시 비슷한 대결 구도가 이어진다. 한화생명 e스포츠라는 상위권 팀과 대결한 뒤, PO 라이벌인 농심과 맞붙게 된다. 게다가, 한화생명-농심은 1R에서 브리온을 상대로 2:0으로 승리를 경험한 팀이다.

쉽지 않은 대결이 예상되는 가운데, 브리온은 농심을 향해 뿌릴 고춧가루를 한 줌을 손에 쥐고 있다. 브리온이 승리하면, 농심의 자력 PO 진출은 막을 수 있다. 그렇기에 LCK PO 진출을 두고 어떤 반전이 일어날지 모른다. '동부'의 이변을 이끌었던 브리온-샌드박스, 후반 변화를 꾀하는 KT, 동부 팀에겐 굳건한 농심이 있다. 이들이 한 주간 만들어낼 승부가 각본 없는 드라마로 남을 수 있을지, 정규 스플릿 경기 중 가장 뜨거운 경기가 나올 듯하다.



이미지 출처 : LCK 공식 유튜브 채널, 팀 공식 트위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