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트로, 복고. 2020년부터 지금까지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유행이 지속되고 있다. 그 시절 향수를 불러 일으키던 신나는 여름 음악, 그리고 2000년대 미디엄 템포의 경쾌한 노래들까지. 과거 추억은 미화된다고 하지만, 요즘따라 코로나19로 인해 더욱 답답한 요즘, 과거 그 시절이 그리워 지는건 당연하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런 영향은 많은 분야에 공통된 사항이다. e스포츠도 예외는 아니다. 스타1에 대한 열풍도 그렇고, LoL도 과거가 그리워질 만큼 역사가 꽤 쌓인 리그가 됐다. 지금처럼 체계적이거나 완벽하진 않아도 스페셜리스트가 많아 더 흥미로웠던 부분도 있는 그 시절. 시대를 풍미했던 팀은 어디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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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당신의 인생팀은 어디입니까?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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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시절 낭만이 살아있던 얼주부
2012 아주부 프로스트




탑 '샤이' 박상면
정글 '클라우드 템플러' 이현우
미드 '래피드스타' 정민성
바텀 '웅' 장건웅
서포터 '매드라이프' 홍민기

2012 아주부 프로스트. LoL에서 낭만이 무엇인지를 처음으로 느끼게 해준 팀.

기존 아주부 프로스트는 '로코도코' 최윤섭이 바텀, '웅' 장건웅이 탑이었으나 스프링 시즌 형제팀인 블레이즈에게 결승전에서 패배한 뒤 '로코도코' 최윤섭이 탈퇴했고, 그 자리를 '웅' 장건웅이 바텀으로 내려오고, '샤이' 박상면이 새롭게 탑 자리를 맡는다.

'샤이' 박상면이 합류하면서부터 아주부 프로스트의 본격적인 드라마가 시작됐다. 2012년 여름, 4강에서 다시 만난 형제 아주부 블레이즈를 3:2로 힘겹게 제압했고, 결승전에서는 당시 유럽 최고의 팀으로 평가 받던 CLG EU와 만나, 세상에서 가장 짜릿한 스코어 패패승승승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아주부 프로스트의 경기에 많은 사람들이 매료됐던 이유는 완벽하지 않은, 인간미가 넘치는 팀이었고, LoL의 낭만을 자극했다. '매드라이프' 홍민기의 귀신 같은 블리츠크랭크 그랩, 라인전이 완벽하진 않으나 로밍으로 슈퍼 플레이를 보여주던 '래피드스타' 정민성 등 개성 넘치는 5인의 합이 빛났기 때문이다.

서머 롤챔스 우승으로 시즌2 롤드컵 진출권을 따낸 아주부 프로스트는 예선 3승, 8강 2:0, 4강 2:1로 승리하며 결승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결승에서 대만의 TPA에게 1:3으로 패배하며 LCK 지역의 첫 롤드컵은 준우승으로 마침표를 찍게 된다.


▲ 출처 : OGN 유튜브


전설의 시작, 2013 SKT T1
'고전파'에서 '페이커'로




탑 '임팩트' 정언영
정글 '벵기' 배성웅
미드 '페이커' 이상혁
바텀 '피글렛' 채광진
서포터 '푸만두' 이정현

SKT T1 2팀은 당시 인지도가 거의 없는 아마추어 위주로 구성된 팀이었다. 당시에는 복한규라는 스타 선수가 있던 SKT T1 1팀이 훨씬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래도 2팀의 대부분이 시즌2 솔로 랭크 천상계에 머물던 선수들이라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상당한 기대를 모았다.

'페이커' 이상혁의 데뷔전으로도 많이 알려진 경기인 아주부 블레이즈와의 대결, 당시 아주부 블레이즈는 '플레임' 이호종, '앰비션' 강찬용, '캡틴잭' 강형우 등, 내로라하는 슈퍼 스타들이 포진된 팀이다. 그런데, 신예들로 구성된 SKT T1 2팀은 아주부 블레이즈를 상대로 수준 높은 경기력을 선보이며 공식전 첫 승리라는 짜릿함을 맛봤다. 특히 '페이커' 이상혁의 '앰비션' 솔로킬은 아직도 많은 회자가 되는 장면이다.

하지만 2013 스프링의 주인공은 MVP 오존이었다. 당시 SKT T1 2팀은 물이 오를대로 오른 MVP 오존에게 1:3으로 패배했고, 3-4위전에서는 CJ 프로스트를 3:0으로 완파하며 첫 대회를 3위로 마무리하게 된다. 다음 시즌은 2013 서머부터 본격적인 SKT T1 2팀의 전성기가 시작된다.

방송 경기에도 완벽하게 적응한 SKT T1 2팀은 무적함대와 같았다. 16강 3전 전승, 8강 3:0, 그리고 지난 시즌 자신들에게 패배의 아픔을 줬던 MVP 오존과 4강에서 3:1 승리. 마지막 결승전은 지금은 의미가 조금 사라졌어도 당시엔 통신사 라이벌이 최대 빅매치 중 하나였는데, 마침 kt 롤스터 불리츠가 그 상대였다. 상황도 좋지 못했다. 결승전 2세트까지 모두 패배하며 0:2로 몰린 상황.

그런데 SKT T1 2팀은 결승 3세트부터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패패승승승이라는 짜릿한 스코어로 첫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특히 블라인드 픽으로 치러진 마지막 5세트 '페이커' 이상혁과 '류' 류상욱의 제드 일기토 장면은 다시 봐도 짜릿하다.

그리고 마침내 세계 최고의 무대에 진출한 SKT T1 2팀은 해외에 적수가 없었다. 당시만 해도 한국팀들과 해외 팀들의 기량 차이가 본격적으로 벌어지기 시작한 시기로, SKT T1 2팀을 막을 유일한 상대는 같은 LCK 지역은 나진 블랙소드 정도였는데, 4강에서 풀세트 접전 끝에 3:2로 승리했고, 결승전에서는 현 RNG인 로얄 클럽을 3:0으로 완파하고 1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세계 최고의 팀으로 거듭났다. 거칠 것이 없던 SKT T1 2팀은 다음 시즌은 13-14 윈터에선 무려 전승 우승이라는 전대미문의 기록을 달성하며 1년 농사의 마무리를 짓는다.

탈수기 운영의 시초, 삼성 갤럭시 화이트
운영의 묘를 가장 잘 살린 화이트




삼성 갤럭시 화이트는 정말 밑바닥부터 시작해 정점을 찍은 팀 중 하나다. 상대적으로 초반 지원이 빵빵한 대기업팀이 아닌 클럽팀(MVP 오존)으로 시작한 삼성 갤럭시 화이트 선수들은 데뷔부터 소위 말하는 엘리트 코스를 걸어온 팀이 아니다.

이 팀의 역사는 2012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2년부터 LCK에 모습을 보였지만 우승권 전력은 아니던, LCK보다 NLB에서의 기억이 더 남는 그런 팀이었다. 달라진 건 2013년부터다. 팀의 브레인 역할을 담당하게 될 '마타' 조세형이 합류하면서 '탈수기 운영'의 교과서로 자리매김한다.

MVP 오존의 주목도가 올라가게 된 시점은 LCK보다 온라인 대회를 통해서였다. 중국 온라인 대회에서 대만 TPA(시즌 2 롤드컵 우승팀)을 꺾은 것. 당시 TPA는 15연승 이상을 달리고 있었던 팀이자 지난 롤드컵 우승팀이라 더욱 화제였다.

그리고 MVP 오존은 기존 강팀들을 차례대로 제압하며 2013 스프링 첫 LCK 우승을 차지하고, 2013 서머에서는 SKT T1 2팀에게 4강에서 패하고 3-4위전에서 CJ 프로스트를 잡고 3위를 기록한다. 그리고 2013년 가을, 삼성 갤럭시로 인수되며, 삼성 갤럭시 오존이란 팀명으로 첫 롤드컵에 진출했다. 그런데, 잘나가는 SKT T1 2팀과 달리 삼성 갤럭시 오존은 귀신같이 조별 리그 탈락이라는 이변의 희생양이 된다. 앞서 말했다시피 그땐 한국팀과 해외팀의 격차가 꽤 큰 터라 그룹 스테이지 정도는 무난한 진출을 모두가 예상했는데, 프나틱과 갬빗 게이밍에게 밀렸다.

이대로 충분히 몰락의 길을 걸을 수도 있는 상황. 하지만 삼성 갤럭시 오존은 13-14 LCK 정규 리그에서 다시 괜찮은 폼을 보여줬고, 결승까지 올랐으나 SKT T1 2팀에게 패배하며 준우승에 머문다. 그리고 펼쳐진 스프링에서는 형제팀인 삼성 블루가 우승, 자신들은 3위, 서머 시즌에도 3위를 기록하며 꾸준히 좋은 성적으로 확실한 LCK 대표 강팀이 된다.

거기에 '폰' 허원석과 '루퍼' 장형석까지 합류하며 더욱 강해진 삼성 갤럭시 화이트는 2013 롤드컵 이후 LCK 우승을 차지한 적도 없지만 강력한 우승 후보로 거론됐고, 당시 롤드컵에 진출한 팀들 역시 '스크림에서 삼성 화이트를 이기면 자신감 UP'이라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이때 삼성 갤럭시 화이트의 장기인 탈수기 운영의 극치를 확인할 수 있는데, 현재까지도 시야 장악의 기초가 되는 '서포터-정글'의 호흡이 굉장히 좋았다.

그룹 스테이지를 가뿐히 통과한 삼성 갤럭시 화이트는 8강에서 TSM을 3:1, 4강에서는 자국 리그에서 본인들의 앞길을 자주 막았던 형제, 삼성 블루를 3:0, 그리고 결승에서는 로얄 클럽을 3:1로 꺾고 마침내 세계 정상에 오르게 된다.

삼성이라는 대기업 스폰, 그리고 세계 정상에 오른 선수들. 당연히 더 좋은 대우와 최강팀의 면모를 2015년에도 쭉 볼 수 있을거란 기대와 달리 삼성 화이트는 롤드컵 우승 이후 한 달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삼성 왕조'라는 생길 정도로 강력했던 삼성 갤럭시 화이트, 그리고 블루는 그렇게 공중분해 되어 각자 중국행이나 다른 팀으로 이적, 혹은 지도자 등 각자의 길을 걷게 되며 마침표를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