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HP(이하 HP)'가 처음 공개되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HP와 관련된 기사에는 어김없이 '포 아너'와 '쉬벌리'를 언급하는 댓글이 달립니다. 어떤 게임을 말함에 있어 다른 게임이 언급되는 건 어찌보면 아쉬운 일이긴 하지만, 게임이 너무나 닮아 있으면 피할 수 없는 일이죠.

8월 5일부터 시작된 HP의 첫 테스트에서 역시 또 느낄 수 있었습니다. HP는 포 아너와도 닮아있고, 쉬벌리와도 닮아 있습니다. 블레이드의 달리기는 '포 아너'의 워든의 달리기를 그대로 붙여넣은 듯 했고, 쉬벌리 생각도 플레이 내내 나곤 했죠. 개발진조차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던 바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그리 중요한 건 아닙니다.

장르적으로 아예 처음 만들어지는 게임이 아니라면, 결국 모든 게임은 어떤 게임을 모방하는 형태를 띌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그 이후입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서 새로운 무언가를 꽃피운다면, 이는 좋은 게임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방에 매몰되어 그 이상의 '좋음'이 보이지 않는다면, 많은 이들이 우려하듯 그냥 그럴싸한 카피캣 중 하나로 남을 뿐이죠.

아마, HP를 기대하는 분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부분도 그것일 겁니다. HP가 그 영감이 되어 준 게임들보다 한 걸음 더 나간 게임인지, 혹은 그냥 카피캣에 가까운지 말이죠. 오늘 이 자리에서 그에 대한 답변을 가감없이 들려드릴까 합니다.




지금까지와는 뭔가 다르다

먼저, 짚고 넘어갈점은 게임의 전체적인 느낌입니다. HP는 대부분의 한국 게임들에서 보이는 수많은 특성들을 따라가는 듯 하지만, 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약간은 동떨어진 듯한 느낌을 풍깁니다. '넥슨겜'이다 하면 한 번쯤 고개를 갸웃할 정도로 말이죠. 캐릭터의 모델링에서부터 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영웅 캐릭터인 '레이븐'의 모델링만 봐도 단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어린 아이에 가까운 몸집을 하고 고깔을 쓴 여마법사'라는 클리셰는 국산 게임에서 수없이 많이 쓰인, 비슷한 캐릭터만 수십은 찾아볼 수 있는 흔한 컨셉입니다. 현실보다는 2D 애니메이션이나 성형외과 모델로 써도 될법한 비현실적인 외모를 지니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하지만, HP에서는 아닙니다. 예쁘장하게 생긴 캐릭터인 건 맞지만, 그간 국산 게임에서 등장했던 미형의 캐릭터들에 비하면 그냥 미국 남부의 동네 꼬마 수준입니다. 또한, 갑옷이나 장비의 디자인도 현대식 전술 장비와 중세 갑옷의 어레인지라는 점이 특이할 뿐, 말도 안 되는 화려함이나 비상식적인 장식 등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갑옷에 덕지덕지 묻은 진흙이나 누비 갑옷을 잇는 매듭의 디테일 등은 굉장히 사실적인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 현대 전술 장비와 중세 갑옷의 컨셉이 합쳐진 HP의 장비들

▲ 이런 부분의 디테일은 꽤 멋지게 다가온다

디자인 뿐만 아니라 게임의 컨셉이나, 게임 플레이 경험 또한 이전의 국산 게임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새로움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가장 먼저 느껴지는 점은 '묵직함'입니다. HP는 액션 게임 치고는 굉장히 느린 흐름을 보여주는 게임입니다. 공격 한 번에도 수 초의 시간이 소요되고, 뛰는 속도도 그리 빠르지 않으며 일단 싸움이 시작되면 뒤를 보이고 도망치는 선택지는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끈적한 싸움이 이어집니다.

공중제비를 돌면서 칼질을 하거나 잔상이 남는 찌르기 등의 판타지스러운 기술은 아예 없습니다. 마법사인 '레이븐'의 공격기나 '스모크'의 힐 등을 제외하면 HP의 캐릭터 모션은 대부분 매우 사실적입니다. 캐릭터가 자기 몸보다 큰 망치나 말도 안 되는 크기의 대검을 휘두르는 일도 없죠. 실제보다는 다소 크게 만들어져 있지만, 어디까지나 사실적으로 납득이 가는 모양새입니다.

▲ 기병 영웅인 '먹바람'이 가장 판타지스러워보일 정도

달리 말하면, 굳이 해외 게임을 찾아서 즐기지 않고 국산 게임만 해온 게이머들에게 HP는 충격적일 정도로 새로운 게임입니다. 비키니 아머도 없고, 날개 없이도 날아갈 듯한 화려한 갑옷도 없으며, 사람 몸보다 더 큰 칼을 들고 싸우는 대신 진흙을 덕지덕지 묻힌, 누가 봐도 묵은 냄새가 날 것 같은 남정네들이 정직하게 사실적인 크기의 무기를 휘두르는 게임을 국내에서 언제 봤겠습니까.



포 아너냐? 쉬벌리냐?

서문에서 말하던 내용을 이어가보죠 이왕 닮았다고 한 거, 시원하게 무엇이 닮았는지부터 말해 봅시다. 'HP'는 단순히 포 아너와 쉬벌리의 짬뽕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많은 게임들에서 볼 수 있던 여러 요소들이 한데 모여있는 볶음밥에 가깝죠. 하지만, 대부분의 게이머분들이 쉬벌리와 포 아너를 말하시니 일단 이 두 게임을 중심으로 말을 해 봅시다.

▲ 아쉬웠던 작명 센스, X아치와 O-해머라니...

한 번 짚고 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포 아너'와 '쉬벌리'는 기본적으로 완전히 다른 게임입니다. 비슷한 점이라면 냉병기를 쥐고 투닥거린다는 것만 있을 뿐이죠. '쉬벌리'나 '모드하우'는 영웅이나 용사가 아닌, 그냥 병사1이 되어서 펼치는 난전이 주된 플레이입니다.

기술이라 해 봐야 좌베기 우베기 내려치기 찌르기가 전부니 숙련된 플레이어는 무기의 거리와 속도를 파악하고 본인의 기술과 패턴을 직접 만들어냅니다. 흘리고 발목을 벤다던가, 스텝을 적극적으로 활용해가며 단검을 쓴다던가 하는 식이죠.


▲ 나만의 기술 패턴을 만들어야 하는 '쉬벌리'(이미지는 쉬벌리2)

포 아너는 반대로 특별한 개인들이 펼치는 아레나 배틀에 가깝습니다. 캐릭터 개개인은 다양한 기술 커맨드를 가지고 있으며, 한 판의 참전 인원이 적기에 1:1 전투 구도가 쉽게 나옵니다. 전투에 돌입하면 어떤 공격을 내밀고 상대의 공격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다라 전투의 향방이 갈립니다.

두 게임의 공통점이라면, 결국 '수 싸움'이라는 겁니다. 쉬벌리의 난전도 해 본 사람들이라면 공감하시다시피 굉장한 수 싸움입니다. 공격이 단순하고 방어법도 직관적인 만큼 덧셈을 반복하는 기분이지만, 빠른 의사 결정이 필요하고 공격이 사방에서 날아든다는 특성 탓에 그만의 재미가 있습니다.

포 아너의 수싸움은 복잡한 방정식을 닮아 있습니다. 1:1이기에 다른 변수는 적지만, 온갖 기술로 무장한 캐릭터들이 등장하다보니 마치 격투게임처럼 상대의 심리를 읽고 카드를 내밀어야 합니다. 이 또한 쉬벌리와는 완전히 다르지만, 그만의 재미가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습니다. 상대를 완전히 파악하고 싸움을 주도할 때의 성취감은 굉장하니 말이죠.

문제는 오늘의 주인공인 HP입니다. 쉬벌리의 공방체계를 답습했고, 포 아너처럼 각 캐릭터가 기술을 지니고 있으며 심지어 영웅으로 변신하는 화신 시스템까지 가진 이상 두 게임의 재미를 함께 가져야 이상적인 그림입니다. 두 게임의 재미요소를 엮어 자신만의 수 싸움 방법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거죠. 실제 플레이에선 어떨까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직은 영 애매합니다.




체력이 모자라서 슬픈 우리 병사들

먼저, 가장 큰 문제가 있습니다. '스테미너'의 총량입니다. HP의 캐릭터들은 저마다 공격과 방어, 기술 시전에 필요한 스테미너 게이지를 지니고 있으며 굉장히 빠르게 소모됩니다. 큰 기술은 두어 번만 시전해도 지쳐서 헉헉대는 캐릭터를 볼 수 있죠.


▲ 공격 한 번에 급격히 깎여나가는 스테미너

'포 아너'를 상정하면, 적은 스테미너는 필요한 요소입니다. 1:1 대결에서는 스테미너의 관리가 굉장한 변수가 되며, 공격 주도권을 가졌다가도 스테미너 때문에 수세에 몰리는 경우가 흔합니다. 하지만, HP는 엄연히 난전 상황을 고려했음에도 스테미너의 총량이 포 아너와 그리 다를 바가 없습니다.

때문에, 똑같이 스테미너 시스템을 가지고 있지만 비교적 여유 넘치는 쉬벌리의 재미는 애초에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10명 이상이 맞붙어 투닥거리는 상황에서, 몇 번만 칼질을 하고 기술을 쓰면 캐릭터는 지쳐서 허덕대다가 두 세번의 칼질에 골로 가버립니다. 쏟아지는 칼질을 철벽처럼 방어해내는 가디언이나, 상대 공격을 능숙하게 받아내며 빈틈을 찌르는 스파이크 등은 없습니다. 그전에 지쳐서 죽거든요.


▲ 이 상황에서 수 싸움이 무슨 의미가 있나

'포 아너'의 재미도 찾을 수 없습니다. 어쩌다 상대와 1:1 상황이 되어서 싸우게 되었다가도 둘 다 지치는 순간 옆구리나 뒤통수에 칼질이 날아듭니다. 1:1의 진득한 싸움 끝에 승리를 쟁취하는 그림은 좀처럼 나오지 않습니다. 테스트에서 플레이할 수 있는 모드는 16대16의 난전이니까요.

만약에, 스테미너 시스템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면 좀 달랐을까요? 조금은 나을지언정, 역시 크게 다르진 않을 겁니다. 일단, 쉬벌리를 닮은 공방 시스템은 닮아 있을 뿐, 쉬벌리와 같은 섬세함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일단 무기의 사거리부터가 차이가 있긴 하지만 별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어차피 딱 붙어서 싸우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로 공격이 들어가질 않죠. 공격 모션이 느릿하고, 캐릭터들의 움직임은 그보다 더 느리기 때문에 거리를 재는 행위 자체가 어렵고, 난데없이 날아드는 적 공격에 반응할 정도로 캐릭터가 빠르지 않습니다.


▲ 그래도 공격에 맞춰 캐릭터를 움직이는 '허리돌리기'는 가능

때문에, 지금 시점에서 HP의 전투에서 찾을 수 있는 재미는 전적으로 운에 따릅니다. 어차피 체력이 달려서 그림같은 활약으로 다 때려잡기는 불가능에 가까우니 어쩌다 한번 들어가는 정타에 여러 상대의 머리통이 걸려나가는 걸 기대할 수밖에 없죠.

게임이 끝난 후, 최고의 플레이를 보여주는 하이라이트 장면도 대부분 상대의 공격을 능숙히 막으면서 하나씩 해치우는 그림보다는 우연히 들어간 럭키샷 한 방에 두세명이 썰려나가는 광경이 주를 이룹니다.

정리하자면, HP는 앞서 말씀드린 두 게임들의 장점을 그럴싸하게 가져왔지만, 그 요소들이 진짜 재미를 만들어내는 깊이까지 가져오진 못했습니다. 쉬벌리와 비슷하지만 쉬벌리같은 디테일은 없고, 포아너와 닮았지만 포아너같은 수 싸움은 쓸모가 없죠. 덕분에 두 게임에 비하면 생각할 여지가 적어 전체적으로 '쉬운 게임'이기는 하지만, 재미를 창출하는 구간을 배제하면서 만든 쉬움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 게임이 이제야 첫 테스트를 하는 입장이라는 점입니다. 모드에 따라 스테미너 총량과 회복량을 다르게 한다든지, 무기의 사거리나 모션 등을 보다 정확하게 개선해나간다면 쉬벌리에서 느낄 난전의 재미와 포아너의 치밀한 수 싸움을 살릴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 이런 부분은 또 포 아너가 생각난다



아직은 난감한 맵 디자인과 점수 체계

전투와 공방 시스템에서 잠시 눈을 떼고, 게임 자체의 시스템에 주목해 봅시다. 이번에 공개된 모드는 기본적으로 거점의 점령을 중심으로 합니다. '파덴' 맵의 경우 점수 획득이 가능한 하나의 거점과 이를 보조하는 두 거점이 존재하고, '모샤발크'맵의 경우 매우 정직한 일직선 전장으로 중앙에 하나의 거점이 있을 뿐이죠.

물론, 이 맵들이 나중에도 그대로 등장하리란 예상은 하지 않습니다. 지금으로서 이 맵들은 문제 투성이니 말이죠. 현재 존재하는 맵들의 문제점을 간단히 말하면, 우회로가 너무 적고, 주요 거점의 수가 적어 승패에 영향을 주는 요소가 적다는 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 협소한 직선 맵인 '모샤발크'

예를 들어 '모샤발크' 맵은 점령 가능한 거점이 중앙 하나인데다 공격로가 협소하다 보니 전황이 굉장히 원패턴으로 흘러갑니다. 상대가 먼저 거점을 점령하고 방어를 굳히면 근접 공격만으로는 뚫을 수가 없게 되어버리죠. 자연스럽게 궁수 비중이 올라가고, 궁수가 많아지면 직접 점령을 해야 하는 근접 공격수가 또 부족해 이를 뒤집기는 거의 어렵습니다.

'파덴'의 디자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세 개의 거점이 존재하지만, 실질적으로 승패에 영향을 주는 주요 거점은 하나이며, 거점 점령 시간에 따라 티켓의 소모량이 너무 극심하기 때문에 게임 초반 5분 정도 거점을 소유할 수 있다면 상대가 게임을 뒤집기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 대포 거점이 있으나 A만 먹고 있으면 그냥 이기는 '파덴'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전황에 변수가 되는 건, 노린 건지 실수인건지 모를 불합리한 점수 체계입니다. HP의 점수판 순위는 종합 점수로 계산됩니다. KDA와는 별개로 점수가 순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공격 한 번 없이 '스모크'로 힐만 하고 다녀도 상위권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식입니다. '모샤발크'의 주요 거점을 차지하고 있어도, 별다른 행위 없이 그냥 방어 태세를 갖추고 있다면 점수는 쥐꼬리만큼 들어옵니다. 게이머들은 상위권을 차지하기 위해 상대를 찾아 나서고, 심지어 점령한 거점을 버리고 야지로 진출하기도 합니다. 모샤발크 맵에서 역전이 일어나는 시기가 보통 이 시기죠. 승리에 취해서도, 방심해서도 아니고 점수가 너무 안 들어와서 점수 벌러 가다가 참변이 터집니다.

▲ 이기고 꼴찌하느냐, 지고 일등하느냐의 딜레마

'파덴'맵도 같은 문제를 공유합니다. 파덴 맵의 거점인 C에는 주요 거점인 A 거점을 공격할 수 있는 대포가 있습니다. 때문에 C를 점령하면 전투 주도권을 가져오기 쉽지만, 그 단물은 C를 점령한 인원들이 아닌, 대포를 탄 한 사람이 전부 가져갑니다.

대포를 쥐고 10명 20명을 때려잡는 이는 하이라이트에 영원히 박제되지만, 이를 돕기 위해 물심양면 나선 팀원들은 쥐꼬리만한 점수만 받은 채 백수가 되죠. 결국, 대포 조작 인원을 제외한 나머지 게이머들은 점수를 조금이라도 벌기 위해 거점을 버려두고 밖으로 나서고, 상대가 이 빈틈을 노려 대포를 뺏어가는 과정이 반복됩니다. 뒤에서 칼을 맞으면서도 마지막 대포 한 발을 쏘기 위해 죽음을 택하는 포수의 비장함은 덤이죠.

▲ 대포는 수천 점을 먹고 하이라이트를 차지하지만

▲ 그 대포 타게 해준 나는 3점따리

이 불합리한 점수 체계가 '노린 것'이라 하면 할 말이 없습니다만, 불쾌한 경험을 통해 전장의 변수를 만든다는게 과연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물론, 이 또한 첫 테스트인 만큼 개선의 여지가 있겠지만, 일단 지금의 상태로는 도무지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는 부분이었습니다.



비비기 전의 비빔밥

총평하자면, '프로젝트 HP'는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비비기 전의 비빔밥'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때깔은 곱고 예쁩니다. 방사형으로 늘어선 채소며, 중앙의 반숙 계란까지 이렇게 예쁠 수가 없지요. HP의 지금도 그렇습니다. 냉병기를 사용하는 대규모 액션 멀티플레이 게임? 너무 예쁘잖아요. 하지만, 비비지도 않은 비빔밥을 떠 먹어 봐야 좋은 맛은 느끼기 힘듭니다.

다행이라면, 채소들이 다 어디서 먹어본 맛좋은 녀석들이라 그럭저럭 구색이 갖춰졌다는 겁니다. 본 기사에서는 쉬벌리와 포 아너를 주로 말했지만, HP의 곳곳에서는 그 밖의 다른 게임들의 흔적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거점 단위의 맵과 아군 위치 부활, 사망 시 소생 요청이나 부활 포기 등은 '배틀필드' 시리즈와 완전히 똑같습니다.


▲ 특징적 시스템이라 할 수 있는 '변신'은 나름 괜찮았다

이제 중요한 건, 소스를 넣고 비비는 과정입니다. 비빔밥에는 당근과 계란이 모두 들어가지만, 당근과 계란만으로 뭔가 대단한 맛이 나진 않습니다. HP에 함유된 쉬벌리의 게임요소와 포 아너의 특성이 지금 당근과 계란의 입장이겠죠. 아직 개발 중이니 적당한 시판 소스만 가져다 얹어 둔 격이지만, 정식 출시에 이르기까지 모든 재료의 맛을 아우를 소스를 만들어내야 할 겁니다.

물론, '와 이건 정말 좋다'싶은 부분도 있었습니다. 튜토리얼에서만 들을 수 있는 아스트랄한 BGM은 개인적으로 큰 웃음을 주었으며, 외국인이 들었다면 어떤 느낌일지 상상하게 되는 가사였습니다. 어째서 이 좋은 음악을 튜토리얼에서만 들을 수 있는지 의문이었죠.

▲ 행 군 최고다! 행 군 살려줘!

기사 내내 아쉬운 말만 반복한 것 같은 느낌이지만, 그만큼 기대가 컸습니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으니 어느 정도 실망하리란 예상은 당연히 했었지만, 이를 각오했다 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나중에 나아지겠지'라는 마음만 전한다면 실제로 더 나은 게임을 만나긴 어렵겠지요.

또한, 게임 플레이를 반복하면서 실망한 만큼, 기대가 더욱 커지기도 했습니다. 기사의 초반부에서 말했던대로, HP는 지금까지의 국산 게임들이 보여준 '쉽고 계산 중심적이면서도 실력을 커버할 여러 수단이 마련되어 있는 게임'들과 달리 오로지 본신의 실력으로 해결해야 하는, 그러면서도 비현실적인 움직임과 가벼움이 아닌 묵직함과 사실적인 플레이를 추구하는 유일한 게임입니다. 그 컨셉만큼은 테스트에서도 제대로 보여주고 있죠.

지금 이 순간에도 고민을 거듭하실 개발진이 이 기사를 본다면, 조금은 따끔한 피드백 정도로 받아들여 주시길 바라는 바입니다. 그만큼이나, 한국에서 이런 장르의 게임이 등장한다는 점에 개인적으로 많은 기대를 하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정식 출시 이후 한 번 더 다루게 될 리뷰 기사에서, 다른 게임들의 그림자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앞선 문제점들이 대부분 해결되었다는 문구를 넣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