쳇바퀴처럼 매일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똑같은 전철을 타고 출근하는 직장인에게 있어서 얼핏 자유로워 보이는 1인 개발은 어딘지 모르게 낭만적으로 느껴진다. 더욱이 1인 개발로 대박이 났다는 소문을 듣노라면 지금이라도 당장 사직서를 내고 1인 개발에 뛰어들고 싶어질 정도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1인 개발로 성공한 사람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든다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기획부터 아트, 프로그래밍은 물론이고 출시와 운영까지 전부 혼자서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이리스크 로우리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1인 개발을 무려 12년간 이어온 개발자가 있다. 포춘 시리즈의 아버지 '도톰치' 장석규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중간에 대기업으로부터 투자를 받기도 했고 잠시 팀원이 늘어난 적도 있었지만, 결국 그는 다시 1인 개발로 돌아왔다. 모바일 게임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온갖 풍파를 겪은 그가 줄곧 1인 개발을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도톰치게임즈의 14번째 게임이자 포춘 크로니클 에피소드 10에 해당하는 '프론티어 오브 포춘' 출시를 기념해 이 의문을 풀고자 그의 사무실로 찾아가봤다.

▲ 도톰치게임즈 장석규 대표


Q. 오랜만의 인터뷰다. 도톰치를 잘 모를 독자들도 있을 것 같은데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1인 개발사 도톰치게임즈의 대표 장석규다. 2000년 게임사에 입사하면서 게임 개발에 몸담게 됐고 그러다가 2009년 아이폰3GS가 우리나라에 상륙할 때 '리버스 오브 포춘'을 출시하면서 1인 개발의 첫발을 뗐다. 그렇게 회사와 1인 개발을 병행하다가 2013년 퇴사하고 본격적으로 1인 개발자의 길을 걷게 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Q. 아이폰3GS가 일종의 전환점이 된 것 같다.

정확하다. 그전에도 인디 개발팀이라던가 이런 게 없던 건 아니지만, 대부분은 게임을 만들면 그걸로 끝이었다. 팔 창구가 없었다. 그런데 아이폰3GS가 우리나라에 상륙하고 앱스토어를 통해 게임을 낼 수 있게 되면서, 직접 '리버스 오브 포춘'을 개발하고 출시하면서 1인 개발에 대한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 도톰치게임즈의 시작을 알린 타이틀 '리버스 오브 포춘'


Q. 개인적으로 꼭 물어보고 싶었던 건데 도톰치가 무슨 뜻인가.

그런 질문 많이 받았다. 뭐 생선이냐는 얘기도 있는데, 그냥 게임할 때 주로 쓰는 닉네임 있지 않나. 그런 것처럼 내가 예전에 쓰던 닉네임이다.


Q. 2009년 '리버스 오브 포춘'을 출시할 때만 해도 이렇게 오래 1인 개발을 할 줄 몰랐을 것 같다.

사실 그때는 1인 개발자를 목표로 한 것도 아니었다. 그때는 그냥 내가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든다는 그 사실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즐거워서 개발을 한 거였다. 오죽하면 당시 게임사들은 야근이 일상일 정도였는데 야근을 끝마치고 지친 상태로 집에 오면 어디에 그런 체력이 남았는지 잠도 줄여가며 내 게임을 만들었다. 내 게임이 완성되어 가는 그 과정 자체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즐거웠다. 게임보다 코딩을 하는 게 더 재밌었달까.

그런 즐거움이 내가 지금까지 1인 개발을 할 수 있도록 한 원동력이 된 것 같다.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게임을 개발하는 게 즐거워서 아마 80살이나 90살이 되어서도 여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Q. 중간에 스카우트 권유라거나 이직할 생각은 없었나.

권유는 없었는데 회사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항상 있다(웃음). 1인 개발이라는 게 얼핏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까.

원래 만화가가 목표였는데 그때 그런 만화를 그린 적이 있다. 회사를 동물원으로 빗댄 거였는데 동물원의 동물들은 자유가 억압되어 있지만, 식사도 제때주고 상태도 관리해주지 않나. 그런데 밖은 정글이다. 자유로운데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고 식사도 알아서 챙겨야 한다. 1인 개발이 딱 이런 느낌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알아서 해야 한다. 그나마 나는 10년 넘게 1인 개발을 한 덕분인지 이런 정글 생활도 나름 익숙해진 것 같다.


Q. 정글 생활이 익숙해졌다지만 그럼에도 위기는 있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큰 위기가 두 번 있었다. 첫 번째는 '소서리스 오브 포춘'을 출시했을 때다. 다섯 번째 포춘 시리즈로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시기에 출시했는데 안타깝게도 그게 잘 안됐다. 외주로 번역가를 고용했는데 외주비보다 못 벌었으니 그냥 망한 거였다. 아내에게도 정말 미안해서 그때 회사를 구하는 동시에 정말 미친 듯이 차기작을 개발했는데 다행히 3개월 만에 출시한 '미스테리 오브 포춘'이 나름 준수한 성과를 기록해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그 다음 위기는 2015년 법인을 설립하고 직원을 채용했을 찾아왔다. 당시 내 눈이 너무 높아졌는데 콘솔 게임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지인들과 함께 PS4 버전으로 '히어로즈 오브 포춘'이라는 게임을 개발했는데 잘 안됐다. 그래서 결국 각자도생하기로 하고 모두 좋게 헤어진 후 혼자서 '미스테리 오브 포춘2'를 만들어 간신히 재기할 수 있었다.



Q. 눈이 높아졌다고 했는데 단순히 '까짓 거 이제 콘솔 게임도 만들어볼까' 하면서 하진 않았을 텐데?

당시 소니가 콘솔 인디와 관련해서 공격적인 행보에 나서고 있던 시기였다. 국내 인디 개발자들과 미팅도 자주 했고 인디 개발자들도 PS4에 도전하던 시기여서 2009년 '리버스 오브 포춘'을 출시했을 때처럼 제2의 앱스토어랄까. 콘솔 인디 시장이 생기겠구나 싶었다. 그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 생각해서 호기롭게 도전했는데, 너무 섣부른 판단이었다. 시장이 아예 달랐고 결과적으로 출시까지 간 인디 게임도 한두 개에 불과했다.


Q. 다시 팀을 꾸릴 생각은 없나.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지만, 지금으로서는 딱히 팀을 꾸릴 생각은 없다. 회사에서도 일해봤고 혼자서도, 팀으로도 일해봤는데 나한테 있어서는 다양한 시도를 빠르게 할 수 있는 1인 개발이 가장 맞는 것 같다.


Q. 아무리 즐거워도 회사 생활을 하면서 1인 개발을 병행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다.

아마 게임 개발자 대부분이 그럴 것 같은데, 게임이 좋아서 게임 업계에 온 사람들이다. 그래서 게임을 하는 것도 좋지만, 자신들이 좋아하던 그런 게임을 나도 만들고 싶다는 생각들을 하는데, 나 역시 그러했다. '파이널 판타지 택틱스'를 정말 좋아해서 나도 이런 게임 하나 만들고 싶다는 마음으로 만든 게 바로 '리버스 오브 포춘'이었다. 그렇게 버킷리스트를 달성하고 나름 만족했는데, 그때 애니팡이 나오더라. 그걸 보면서 퍼즐도 한 번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에 '소서리스 오브 포춘'을 만들게 됐고 그러다 보니까 포춘 시리즈가 점점 나오게 됐다.


Q. 단순히 재미있다고 회사를 박차서 1인 개발을 하는 건 좀 무모하지 않나. 나름의 가능성을 봤기에 한 것 아닌가.

처음에 '리버스 오브 포춘'을 출시했을 때 첫 달 매출이 70만 원 정도였던 거로 기억한다. 나쁘지 않은 성과였지만, 전업으로 하기엔 턱없이 모자랐다. 계기가 된 건 2013년도 출시한 '디펜스 오브 포춘'이었다. 첫 달 매출이 무려 천만 원이 넘었다. 그때 '이 정도면 1인 개발로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겠구나' 싶어서 결혼식을 앞둔 아내에게 허락을 맡고 본격적으로 1인 개발을 시작했다.

▲ '디펜스 오브 포춘'의 성공은 1인 개발에 확신을 심어주는 계기가 됐다


Q. 지금도 계속 혼자 개발 중이라는 건 뭔가 1인 개발에 대한 매력이 있기 때문인 것 같은데, 본인이 생각하는 1인 개발의 매력은 뭔가.

게임 개발 그 자체가 여전히 즐거운 것도 있지만, 시간을 내가 알아서 쪼개 쓸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인 것 같다. 회사 생활을 하면 정해진 시간대로 매일 일해야 하지 않나. 그런데 1인 개발은 내가 그 시간을 얼마든지 조절할 수 있다. 그래서 일할 때는 진짜 밤새도록 일하는 한편, 쉴 때는 또 마음껏 쉴 수 있다. 본인 스스로가 조절해야 하는 부분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이게 제일 좋은 것 같다.


Q. 보통 1인 개발이라고 하면 XX 키우기가 대박나면 XX 키우기2를 만드는 등 자가 복제를 하는 경향이 있는데 포춘 시리즈는 그런 경향이 적은 것 같다. 뭔가 개발자로서의 고집이 느껴지는데?

고집이라기보다는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는 게 재미있어서 그런 것 같다. 새롭게 퍼즐 로직을 짠다거나 액션 게임의 액션을 만드는 이 모든 게 그냥 재미있다.

물론, 그런 트렌드를 모르는 건 아니다. 한때 키우기 등 방치형이 인기를 끌 때 따라 해봤는데 비슷한 게임들이 너무 많이 나와서 그런지 성적이 저조했다. 그래서 그냥 다음에는 내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게임을 만들어야지 했는데 그건 또 잘 돼서 굳이 트렌드를 따라갈 필요성을 못 느꼈다. 뭐, 이런 것도 고집이라면 고집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Q. 언젠가 포춘 장르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내비친 바 있었는데, 여기서 말하는 포춘 장르란 게 뭔가.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를 보면 세계관은 다르지만, 시리즈를 관통하는 시그니쳐가 있지 않나. 초코보라던가 소환수, 주문 이런 게 있는데 그런 시그니쳐가 유지되는 걸 말한다. 포춘 시리즈에 빗대서 설명하자면 장르는 달라도 캐릭터는 유사한 그런 거로 이해하면 된다.



Q. 실례되는 질문일지는 모르겠지만, 보통 1인 개발이나 인디라고 하면 가난하단 이미지가 있지 않나. 거리의 예술가라고 할까. 그런데 10년 넘게 1인 개발을 했다는 건 나름 수익이 나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어떤가.

솔직히 항상 이번이 1인 개발자로서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개발한다. 이번에 안되면 접고 직장이나 알아봐야 하는데, 신기하게도 그런 위기의 순간에는 좋은 결과가 나오더라. 그래서 아직도 1인 개발을 하는 것 같다.

이게 참 미묘하다. 예를 들어 월 매출이 100만 원밖에 안 된다고 하면 안 하는 게 맞지 않나. 난 가장이기도 하고. 그런데 잘 될 때는 어느 정도 수익이 나오고 그래서 10년 넘게 1인 개발을 하는 것 같다.


Q.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다시 1인 개발을 할 건가.

할 거다. 게임 개발하는 게 너무 재미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럼에도 못내 아쉬운 게 있는데 프로그래밍 공부를 너무 늦게 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더 빨리 프로그래밍 공부를 할 것 같다.


Q. PC MMORPG를 만들고 싶다고 했는데 이 꿈은 여전한가.

여전하다. 포춘 시리즈를 보면 알겠지만, 캐릭터가 다양하다. 이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100대100 대규모 전쟁 게임을 만드는 게 꿈이다.


Q. 최근에 스위치로 인디 게임을 내는 사례가 늘고 있는데 도톰치게임즈는 어떤가.

어려운 문제다. 내고는 싶은데 일단 지금까지 출시한 게임들을 보면 콘솔에 어울리는 게 거의 없다. 그래서 아마 스위치로 낸다면 거기에 맞는 신작을 만들어서 출시할 것 같다.

한편으로는 유저들의 눈높이가 높아진 점 역시 신경 써야 할 부분이다. 예전에는 1인 개발, 인디라고 하면 퀄리티나 이런 부분에 대해서 유저들이 '그래, 인디인데 이 정도야 뭐'하고 용인해주는 부분이 있었는데 요즘은 다르다. 인디나 규모에 상관없이 잘 만들었는지 그렇지 않은지만 본다. 그렇기에 스위치로 낸다면 정말 혼신의 힘을 쏟은 그런 게임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 콘솔 버전은 현재도 고민 중인 부분이라고...


Q. 요즘은 엔진이 워낙 좋아져서 1인 개발을 하기 더 쉬워졌는데, 1인 개발을 꿈꾸는 개발자들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해준다면?

개발자든 아직 대학생이든 일단 몇 년간은 회사 생활을 하길 추천한다. 앞서 말했듯이 1인 개발은 정글이다. 스스로 먹이를 찾아 나서지 않으면 굶을 수밖에 없다. 외주를 줄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기획부터 아트, 프로그래밍까지 전부 혼자 해야 하기에 회사 생활을 하면서 이런 부분을 익히는 게 좋다.

동시에 회사 생활을 하면서 나처럼 1인 개발을 해보길 바란다. 정말 중요하다. 회사 생활을 하면 아무래도 빨리 만들어서 출시해야 한다는 그런 부담에서 자유롭지 않나. 그렇게 해서 게임을 완성한다면 1인 개발자로서 첫 스타트는 끊은 셈이다. 그다음부터는 매출 등의 성과를 보면 된다. 그런데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1인 개발은 안 하는 걸 추천한다. 얼핏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정말 힘든 길이다.


Q. 1인 개발을 한 지 12년 차인데 어떤 개발자로 기억되고 싶나.

게이머라면 다들 인생 게임이 있지 않나. 누군가의 인생 게임을 만든 개발자, 그렇게 기억되고 싶다. 몇 년이 걸리더라도 꼭 이루고 싶은 목표다. 만약 그런 게임을 만들 게 된다면 개발자로서의 목표는 전부 이룬 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